정말 이서준 그놈이 맞았어?
평소에도 화를 자주 내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김혁준 과장은 그것이 박태균 차장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어제저녁 이서준에게 걸려온 전화와 절대 무관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조용히 회계팀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와서 다시 비상계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목록에서 이서준을 찾고 전화를 걸었다.
“실장님, 접니다.”
-그래? 알아봤어?
“조금 전에 법무팀 박태균 차장이 왔다 갔는데, 아무래도 우리 팀장에게 결재서류를 건네주고 간 듯합니다.”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상당히 의심스럽다. 쉽게 말해서 그런 말이었다.
“제가 어떤 서류인지 보려고 하니, 잽싸게 숨기더라고요. 그러곤 욕까지 하며 나가라고 소리치는데, 아무래도 실장님이 말한 게 맞는 듯해서요.”
-그래 알았어, 고마워 김 과장. 내가 이번에는 정말 주점 데려가 줄게.
“정말이죠?”
이서준은 통화를 끝내고 집무실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켰다.
사무용 컴퓨터가 따로 있었지만 사적인 업무를 처리할 때는 노트북을 이용해서 언제나 노트북 전용 백 가방에 넣고 다녔다.
법무팀에서 회계팀으로 서류가 올라간 것이 맞다면 승인이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차피 스위스 핫머니를 현금화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3일은 걸린다.
그러니 지금부터 준비하면 시간이 딱 맞아떨어진다.
노트북 화면을 보며 스위스 계좌와 비번을 입력했다.
3,500억 원금에서 수수료를 제외한 3,000억이 화면에 나왔다.
스위스 계좌를 다시 한번 핫머니로 전환한 거라 수수료가 10% 이상으로 상당히 많이 빠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추적이 어려운 돈이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이제 이 돈을 현금화시키면 양병현 그놈도 곧 알게 되겠지? 내가 호루스의 정체라는 걸···.’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이서준은 돈을 조금 더 묵혀 두지 않고 현금화를 시도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완벽한 계획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이게 말이 돼!”
양병현이 집무실 의자에 앉아서 서류를 훑어보다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고 서류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확실합니다, 이사님. 그 어디에도 이서준 실장이 가지고 있는 주식이나 자금은 없었습니다.”
박창신 실장이 여기저기에 훑어진 서류를 손수 주우며 말을 이었다.
“회사에서 나가는 월급을 제외하고는 딱히 다른 곳에서 들어오는 돈도 없다고 합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보육원에서 차곡차곡 모은 300만 원이 그자의 전 재산이었다고 합니다. 서류를 뽑으면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서초동 은행장을 통해 구두로 분명 그렇게 전달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개자식이 쥐뿔도 없으면서 내게 그렇게 까불었단 말이지?”
“어떻게 할까요? 이사님.”
“저번에 준비하고 있다는 일은 어떻게 됐어? 아직이야?”
“준비는 되었는데, 양기필 도련님께서 동의를 해주셔야 확실히 그자를 회사에서 내보낼 수 있을 듯합니다. 근데, 도련님께서 이서준 실장을 상당히 아끼는 편이라 순순히 동의해줄지 의문입니다.”
양병현은 문제 될 것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놈은 걱정하지 마, 절대 내 말을 거역하지 못할 테니까. 그나저나 법무팀으로 보낸 3,500억 결재는 어떻게 됐어?”
“오늘 박태균 차장이 출근하자마자 회계팀 최종협 팀장에게 넘겼다고 하니 오늘내일 안으로 처리가 될 겁니다. 회계팀에서 결재 승인만 떨어지면 만에 하나 이사진 중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못할 겁니다. 물론 회장님께서 아실 리도 없고요.”
어차피 그 일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한두 번 시도한 일도 아니었으니.
정작 문제는 이서준이었다.
“이서준 그놈이 차명계좌를 이용했을 수도 있잖아?”
“차명계좌를 이용했다고 해도 삼심그룹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움직였다면 어떤 형식으로든 분명 흔적이 남았을 겁니다. 하지만 서류상으로는 특별히 새로운 인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자가 정말 소수에 지분을 사들였다고 하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건 정말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소수의 지분일 때입니다.”
“사모펀드 형태로 들어왔다고 하면?”
사모펀드는 비공개로 투자하는 형식이라 얘기가 달랐다.
확실히 양병현은 머리가 좋았다.
“음···. 그렇군요, 이사님. 사모펀드 형태로 들어왔다고 하면 조금 더 조사를 해봐야겠네요. 하지만 이사님 말씀대로 3,500억이나 되는 자금이 들어왔다고 하면 아무리 사모펀드 형태라 해도 서류상 숨기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최근 사모펀드 중에 자금이 크게 들어온 곳이 있는지 알아봐. 사모펀드를 만든 주최자가 있을 테니까, 정말 그놈이 그쪽 경로로 돈을 굴렸다면 반드시 꼬리가 잡힐 거야.”
“근데, 이사님. 외람된 말이지만 정말 이서준 실장이 호루스와 연관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내 촉이 그래. 박 실장도 잘 알지?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촉이 틀린 적이 없다는 거.”
“그렇긴 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그자가 정말 그 정도의 돈을 지금 가지고 있다면 벌써 한국을 뜨지 않았을까요? 근데 오늘도 멀쩡히 회사에 정상적으로 출근했습니다.”
그러니 아닐 거로 생각한다는 말이었다.
“아냐, 틀림없이 그놈이야. 첨부터 묘하게 기분이 좋지가 않았어. 결정적으로 로비에서 그놈을 봤을 때 직감했지, 그놈의 태도를 보고 말야. 그러니 샅샅이 뒤져서 뭐라도 찾아내. 그놈을 회사에서 내보내는 건 그다음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이사님.”
박창신 실장은 집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이서준에 대해서 불법도 서슴지 않고 파고들기 시작했다.
통장내역을 알아보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다.
없는 사람들에게는 규칙이 어쩌고 법규가 어쩌고 해서 안 된다고 딱 잘라 잡아떼는 공공기관 관료들도, 권력이 있고 돈이 있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관대하다.
더럽고 아니꼬아도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이 현실이고 그것이 사회조직의 어두운 부분이다.
그렇게 3일이 지났다.
그가 무언가를 알아냈는지 영업본부 총괄 상무실 문을 다급하게 열고 들어갔다.
“이사님, 찾아냈습니다!”
“뭐? 그럼 정말 이서준 그놈이 맞았어?”
양병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사님. 지금까지 저희가 알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자금이 스위스 은행 계좌를 통해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병신 같은 은행장들! 당장 회계팀에 연락해서 관련된 은행 계좌는 모조리 다른 곳으로 바꾸라고 해!”
“아닙니다, 이사님. 은행장들이 알 수 없었던 건 그 자금이 핫머니로 전환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로서도 알 길이 없었을 겁니다. 핫머니로 전환된 자금은 국가에서도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근데 그 돈이 조금 전에 현금화되었다고 합니다.”
양병현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니까 현금화를 시켜서 이제야 알아냈다는 소리군!”
“당장 검찰에 넘길까요?”
“당연하지! 당장 신정근 차장검사에게 연락해!”
“알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섣부른 행동이었다.
이미 거짓 장부를 만들어 그룹 차원에서는 없어진 돈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검찰에 3,500억이나 되는 자금을 사기당했다고 말한다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가만!”
박창신 실장이 신 검사에게 전화를 넣으려고 하자 양병현이 또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전화는 연결된 상태였다.
-여보세요. 이봐, 박 실장?
전화기 너머에서 신정근 검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양병현은 대강 둘러대고 전화를 끊으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자 눈치 있게 박창신 실장이 둘러댔다.
“아, 죄송합니다. 신 차장님.”
-뭐야? 무슨 일이야? 왜 말을 안 하고 뜸을 들려.
“그게, 그냥 안부 차원에서 연락 드렸습니다.”
-싱겁기는···.
“실은 이번에 저희 쪽에서 신 차장님 여행이나 한번 다녀오시라고 떡값을 넣어드릴까 해서요.”
-그런 일이라면 평소대로 김 부장을 통해서 넣으면 되잖아?
“아, 그렇지요. 그래도 차장님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이리 전화를 드린 겁니다.”
일반 직장과 달리 검사들은 차장이 부장보다 급이 더 높았다.
부장급은 거의 차장의 수행비서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떡값을 핑계 삼아 전화를 끊었지만, 양병현은 개의치 않았다.
“잘했어.”
“근데, 이사님. 왜 갑자기 말리신 겁니까?”
“우리가 너무 성급했어, 검찰 라인은 반드시 회장님의 귀에 들어간다는 거 몰라? 그리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어차피 그쪽으로 넘어가면 돈을 회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져.”
밀린 세금으로 환수될 테니까.
“그렇군요. 그럼 이제 어떻게···?”
탁!
양병현은 손바닥으로 강하게 책상을 내리쳤다. 그러곤 분노가 실린 눈으로 사납게 소리쳤다.
“어쩌긴 뭘 어째! 이서준 그놈에게 돈을 돌려받아야지, 당장 그놈을 불러와!”
“네, 이사님.”
박창신 실장이 나가려고 하자 다시 한번 쩌렁쩌렁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냐! 내가 직접 가야겠어. 그놈이 개망신을 당하는 모습을 감사팀 직원들에게 똑똑히 보여줘야지. 그럼 기필이 그 녀석도 그놈을 절대 옆에 두려고 하지 않을 거 아냐?”
“그렇군요. 조직 내 소문이란 금방 퍼지기 마련이니까요.”
“퍼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뭐 있어? 기필이 그놈을 감사팀 사무실로 불러와. 그놈이 보는 곳에서 이서준 그 사기꾼 놈을 뭉개버릴 테니까.”
그러곤 양병현은 집무실 문이 부서질 정도로 강하게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그 소리에 비서 데스크에 앉아 있던 한소희 비서가 화장을 고치다 말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파우더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어머!”
하지만 아직 놀라기에는 일렀다.
부글부글 타들어 갈 것 같은 양병현의 눈동자에 그녀는 떨어진 파우더를 주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일어나서 고개만을 깊게 숙이고 인사를 건넬 뿐이다.
“이사님, 어디···.”
가시냐고 말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비서 데스크로 연결된 문까지 거칠게 열어젖히고 나가버렸다.
“이봐, 한 비서.”
박창신 실장이 양병현을 따라나서다 말고 멈칫하고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네, 실장님.”
“사무실에서 화장이나 고칠 생각하지 말고 전화나 잘 받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이미 한소희 비서의 늘씬한 다리로 향해 있었다. 자신이 유난히 좋아하는 커피색의 스타킹을 그녀가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얼굴과 몸매가 반반해서 데려왔으니 주기적으로 화장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전부 비즈니스야? 그렇지?”
“아, 네.”
그녀는 마지못해 대답은 했지만 생각 같아서는 책상 위에 놓인 손거울을 당장이라도 집어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보이기 전에 박창신 실장은 빠르게 양병현을 따라 밖으로 나가버렸다.
‘변태 같은 영감탱이 왜 저래 진짜! 왜 맨날 날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양병현과 박창신 실장은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감사팀이 있는 28층으로 내려갔다.
띵!
내리자마자 박창신 실장은 양기필이 있는 상무실로 향했고, 양병현은 곧장 감사팀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직원들이 깜짝 놀라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팀장님, 양병현 이사님 오셨어요?”
김인혁 대리가 껌뻑껌뻑 자리에서 졸고 있는 박도현 팀장을 빠르게 깨웠다.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서.
“아이고, 이사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눈곱이 낀 상태로 박도현 팀장이 헐레벌떡 일어나 다가와서는 말을 건넸다.
“이서준 실장, 지금 어디 있어?”
“네? 이서준 실장은 지금 집무실에 있는데요.”
그러곤 손가락으로 집무실을 가리켰다. 무엇을 하는지 블라인드가 쳐져 있는 상태였다.
양병현은 다시 곧장 그곳으로 다가가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 작가의말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고라 오타나 어색한 부분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빠르게 다듬어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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