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릭 더 프릭(Kreak the F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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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IALOV
작품등록일 :
2021.07.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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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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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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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s Return

DUMMY

우리는 세리나와 로브를 뒤집어쓴 신자들을 따라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언제까지 가야 하는 거야?”


애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난리를 치고도 안내해 주는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랄프가 말했다.


“괜히 이상한 데로 끌고 갈까 봐 그러지.”


나는 피식 웃으며 애쉬의 불필요한 걱정에 태클을 걸었다.


“아까 나한테 하는 짓 못 봤어? 어떻게 하려고 했으면 진작에 했겠지.”


그때, 앞서가던 신자들의 무리가 갑자기 멈춰섰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


그 순간, 세리나가 땅에 손을 대자 보이지 않던 손잡이가 튀어나왔다.


“평소에는 감춰두고 있답니다.”


그녀가 손잡이를 당기자, 바닥이 휙 들어 올려지며 숨어있던 지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오시죠.”


우리는 신자들의 뒤를 따라서 계단을 내려갔다. 좁은 계단을 일렬로 내려가다 보니, 중간중간 횃불이 켜져 있는 원형 계단이 나왔다. 원형 계단 주위의 공간이 이상할 정도로 넓어서, 횃불이 중앙에 있는 계단만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우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횃불에만 의지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수많은 사람이 주위에서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꼭 무슨 이교도 집단 같···윽!”


클로이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푹 찔렀다. 나는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짧은 신음을 했다. 세리나는 들은 채도 안 하며 묵묵히 계단을 내려갔다.


어느새 심연으로 이어져 있을 것만 같던 기나긴 원형 계단이 끝나고, 넓은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의 양쪽으로 로브를 뒤집어쓴 신자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들을 하나둘씩 지나칠 때마다,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왜 저렇게들 쳐다봐?”


세리나가 냉담하게 답했다.


“뜻하지 않은 방문이라 많은 분이 당황하셨을 겁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세리나가 복도 끝 벽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문을 양쪽으로 열며 말했다. 안쪽에는 넓은 중세시대 알현실 같은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카펫도, 왕의 기품이 느껴지는 가구도 없었다.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회색 돌벽 위에는 끝이 휘어진 십자가가 인상적인 ‘왕좌’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 순간, 벽에 있던 수많은 횃불이 동시에 불이 붙으며 왕좌 위에 앉은 자의 모습을 비췄다.


위엄있는 인상을 주는 백발의 올백머리,


날카로워 보이는 짧은 하얀 수염,


괴물이 할퀸 듯한 가로로 그어진 4개의 흉터.


그 모습은 마치···


“여긴 뭔 중세풍 판타지 영화라도 찍냐?”


세리나가 비아냥대는 나를 가볍게 무시하며 말했다.


“크라실 대주교님, 히어로 유니온의 크릭 더 레전드께서 대화를 청하셨습니다.”


“뭐, 이제는 레전드도 아니지만 말이야.”


그러자, ‘왕좌’에 앉은 그가 루비를 물고 있는 괴물의 머리를 본떠 만든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며 말했다.


“이곳에 데려왔다는 건···”


그가 나의 앞으로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확인했다는 뜻이겠지?”


나는 의아한 듯이 되물었다.


“확인?”


“예, 확인했습니다.”


세리나가 여전히 내 말을 못들은 체하며 답했다.


“크릭, 이 혈기 넘치는 젊은이여! 나는 그대가 한 짓을 모두 알고 있네.”


“그래,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아닌가? 여기 TV는 나와?”


“그리고 자네의 과거, 자네의 출생, 그보다 거슬러 올라가서···”


크라실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자네의 기원까지 알고 있다네.”


“더러운 손 치워.”


나는 크라실의 손을 옆으로 쳐냈다. 그러자 세리나가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무례한 행동은···”


“세리나.”


크라실의 위세가 느껴지는 무거운 목소리가 알현실에 울려 퍼졌다.


“잠깐 자리를 비켜주게.”


세리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알현실을 나갔다. 크라실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이곳에 찾아왔다는 건, 모든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이겠지.”


그는 지팡이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는 나와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네. 사람들을, 더 나아가 전 인류를 지키는 운명을 말이야. 그래서 자네의 희망을 향한 열망을 시험해본 것이라네.”


그러고는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자네는 특별해.”


‘네가 널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가질 수 없다!’


헬브링어 자식의 마지막 비명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하지만,”


크라실이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탕 내리치며 말했다.


“자네가 이번에 한 행동, 그것은 정말 크나큰 파국이었네. 우리가 오랜 시간 갈아오던 맹수의 이빨을 자네가 모조리 뽑아버린 거지.”


“이빨?”


나는 눈을 부릅떴다.


“그런 ‘이빨’ 취급이나 당하면서 사람들을 몰살시켜놓고는 뭐? 내가 그걸 다 뽑았다고?”


그러고는 크라실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잘 들어, 노친네. 우리는 네가 기르는 맹수도 아니고, 너희가 말하는 여신의 가녀린 목 속으로 파고 들어갈 같잖은 이빨 같은 것도 아니야. ‘그들’은 ‘우리’고, ‘우리’는 세계의 일부다. 세계의 일부를, 희생이라는 명분으로 도려내면서 무슨 희망을 만들겠다는 거야!”


“···와.”


뒤에서 일행들이 입을 벌린 채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크라실이 숨죽여 클클 웃으며 내게 말했다.


“‘무슨 희망’이라···”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내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자네가 생각하는 희망은 뭔가?”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희망? 희망은··· 그러니까···”


그러자, 크라실이 다시 한번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며 말했다.


“우리 ‘하티크바’에게 희망이란, 실낱같은 빛줄기라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희미하게 비춰주는 빛줄기.”


그 순간, 눈꺼풀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도저히 뜰 수가··· 아니, 애초에 내 눈은 감겨있지 않았나? 내가 있는 곳은 어떻게 생겼더라? 나는 지금 어디를 밟고 있는 거지?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겠어···


불안해···


무서워···


“크릭.”


뭐, 뭐야. 누구야?


“뭔가 보이나?”


보일 리가 없잖아. 눈앞이 이렇게나 어두운걸.


어?


저건 뭐지?


밝아.


밝은 빛이 보여.


어?


저쪽에 뭐가 있는지 느껴져.


안심하고 내디딜 수 있는 땅,


따뜻한 공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자, 어떡할 거지?”


빠, 빨리 가야 해. 빛이 꺼지기 전에 서둘러야 해. 안돼. 점점 꺼지고 있어. 기다려. 또다시 어둠 속에 혼자 남기 싫어. 제, 제발 잠깐···


-퍽!


그 순간 딱딱한 뭔가와 온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느껴지며, 잃었던 감각과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뭔···”


고개를 들자, 눈앞에는 견고하게 쌓은 회색 돌벽이 있었다.


“크릭!”


일행들이 내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멍청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바로 옆에서 부르는 것도 못 들었냐?”


클로이가 말했다.


“나 지금 무슨···”


랄프가 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하아 크릭··· 너 갑자기 뭐라 중얼거리더니 전속력으로 벽에 달려가서 부딪쳤어. 정말 기억 안 나?”


애쉬가 나이프를 꺼내 들며 말했다.


“또 정신계인가···”


뮨이 눈을 찡그리며 손을 꽉 쥐었다.


“진정들 하게. 해할 마음은 전혀 없으니까. 그저 이 젊은이에게 희망이 무엇인지 알려준 것뿐이라네.”


크라실이 내게 다가와 손을 뻗으며 말했다.


“희망이란··· 어떻던가.”


“무척이나··· 따뜻하고, 편안했어.”


나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가 내 손을 붙잡으려던 순간, 나는 그의 손을 탁 치며 말했다.


“하지만 희망이란 건 확정 지을 수 있는 게 아니야. 희망은 정해지지 않은 거지. 그것이 희망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향해 뛰어갈 수밖에 없는 거야.”


내가 손을 뻗자, 옆에 있던 랄프와 클로이가 나를 일으켜줬다.


“그리고 나는 그런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크라실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아주 간단해.”


나는 그의 눈앞에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말했다.


“네가 벌이는 모든 일들, 그 시시한 반딧불이들을 전부 터뜨려 죽여주지.”


그리고는 손을 천천히 치우며 그와 눈을 맞췄다.


“그러면 네 눈앞에는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커다란 빛줄기가 보일 거야.”


“크흐흐흣···”


입 주위에서만 감돌던 크라실의 작은 웃음소리가, 이내 사방에 울려 퍼졌다.


“크하하하하! 좋아!”


그 순간,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온몸이 움직이기를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크라실이 천천히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기대하고 있도록 하지.”


그러고는 나를 뒤로 밀어 넘어뜨렸다. 그런데, 몸이 나동그라져야 하는 곳에 바닥이 없었다. 나는 칠흑 같은 심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이게 뭔···!”


그 순간 랄프, 뮨, 애쉬, 클로이가 차례로 심연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들은 마치 심연을 보지도 못했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기듯 자연스럽게 이곳에 떨어졌다.


안 돼···


“잘 가라.”


안 돼···


“안돼애애애애애!”


그때,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소리 지르지 마! 안 그래도 골통 아파 죽겠구만.”


클로이가 이명이 들릴 만큼 귀 가까이에서 소리를 빽 질렀다.


“윽···”


고막 안쪽에서부터 통증이 밀려왔다. 삐 소리가 가실 때쯤, 귀를 틀어막은 두 손을 내리며 물었다.


“여긴 어디야?”


“보면 모르냐? 아까 거기잖아.”


나는 고개를 들어서 주위를 살폈다. 바로 앞에 우리가 타고 온 회색 밴이 보였다.


“뭐야, 그냥 내보낸 거야?”


애쉬가 나이프를 닦으며 말했다.


“내보냈다기보단, ‘놔준’거지.”


애쉬의 말에 모두가 잠시 침묵했다.


“엄청난 능력이었어. 조종도, 암시도 아닌, 생각 자체를 바꿔버리는 힘이라니···”


랄프가 말하자, 애쉬가 반론했다.


“생각을 바꾸는 건 아닐 거야.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이미 온 세상을 자신의 이상향으로 만들었겠지.”


나는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무슨 능력이든 간에, 말도 안 되는 능력이라는 건 확실해.”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클로이가 물었다.


“이제부터 그 녀석이 벌이는 일을···”


“아니, 아니, 어떻게 그걸 찾아낼 거냐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뭐야, 너 설마···”


“그, 그건 잘···”


그러자 클로이가 내 멱살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야 이 머리에 든 거 없는 얼간이 자식아! 내가 계속 말했지!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랄프와 애쉬가 마른세수를 했다. 뮨은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번뜩 생각난 말 뱉지 않고는 못 배기겠냐? 니가 무슨 고장 난 수도꼭지야? 그 자리에서 말로 어떻게든 구워삶았으면 힌트라도 얻었을 것 아니야!”


“자, 잠깐만, 우선 이거 좀 놓고···”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여기서도 애정 다툼 중인 거야?”


우리는 모두 얼어붙은 채로 공중을 쳐다봤다. 톰, 흑발녀, 그리고 그들의 중앙에 있는 건···


“라, 라슬···”


나는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내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 씨익 웃으며 말했다.


“믿고 맡겼더니 아주 엉망이네. 혼날 각오는 됐겠지?”


작가의말

 Q) 크릭에게 뭘 하신 거죠?

 크라실:  때로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는 편안한 쉼터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스스로 내어놓게 하는 것. 나는 그것을 조종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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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Legend Never Die 22.01.29 19 0 12쪽
34 Meal 22.01.17 29 0 11쪽
33 Return 22.01.14 27 0 13쪽
32 Face your fault 22.01.06 27 0 12쪽
» Legends Return 22.01.02 13 0 12쪽
30 Hope 21.12.28 36 0 12쪽
29 Archbishop 21.12.24 38 0 12쪽
28 Salvation 21.12.21 44 0 11쪽
27 Solution 21.12.17 31 0 12쪽
26 Hidden Truth 21.12.10 25 0 12쪽
25 Broken Justice 21.12.07 24 0 12쪽
24 Knock Out 21.12.04 25 0 12쪽
23 Assemble 21.12.01 29 0 12쪽
22 Struggle 21.11.26 30 0 12쪽
21 Forgotten Story 21.11.25 20 0 12쪽
20 Unknown 21.11.23 31 0 13쪽
19 Mind Controler 21.11.18 27 0 12쪽
18 Reunion 21.11.15 2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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