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뒷처리 (25)
어처구니 없는 웃음은 공허하다. 영혼이 담기지 않은 의미가 불명한 대답을 대신하는 용도로 사용하기에 텅 비어 있다. 마치 지금 존의 웃음 소리처럼 말이다.
“아직 결혼도 못한 내가 아기가 생겼네!”
군인은 자기 무기를 가족과 애인처럼 다루라고 했더니 진짜 가족이 되게 생겼다. 검을 가지고 태교를 하라고? 미친 소리 하고 있네.
“진정해. 아직 깨어 나지도 않았다고. AI가 자아가 생길지 생기지 않을지는 계속 사용해봐야 알아.”
“그럼 그 전까지는 뭔데?”
“그냥 검이지. 용도가 아주 다양한 것이 끝이야.”
존의 모습을 보며 웃으며 대답하는 조지. 그 태도가 매우 불량하여 마치 정신나간 친구를 놀리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 했고.
조지의 말에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존. 이걸로 방패와 대검을 만들면 됐지 뭘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몸체를 이루고 있는 부속품이 마치 갑옷처럼 네 몸을 감싸던가, 아니면 특정한 기계장치로 만들 수 있을거야. 아주 세밀한 것은 어렵겠지만 최소 크기가 지름 1센치미터 정사각형을 넘어가는 물건이라면 모두다 만들 수 있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조지가 존이 바닥에 놓은 총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기장을 이용해서 네 총의 화력을 더 강화할 수 있겠지. 고폭탄을 사용하지 않은 금속 탄두라면 뭐든지 강화할 수 있을거야.”
“저번에 총으로도 변할 수 있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더니 정말로 그렇게 했구만.”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거치대에 있는 검을 두드리며 말하는 조지. 꽉 찬 느낌의 금속이 두들겨지는 소리가 난다.
“사실 어떻게 사용하는지 예시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필요한 전력이 너무 많아서 여기에 있는 발전소의 힘으로는 구현을 못하겠더라고. 작동 테스트를 못한 것이 유일한 단점이지.”
“얼마나 많이 필요한데?”
“현재 이 도시는 기존의 소규모 원자력 발전소와 항구에 있는 원자력 발전함까지 포함하면 한 1000메가 와트를 생산할 수 있을 거야. 그 중에 100메가 와트는 있어야 최소 조건이 충족되지. 그러니까 이건 사실상 마스터 전용 무기나 다름없어.”
조지의 설명에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존. 기사가 낼 수 있는 출력이 얼마만큼 정도인지는 이때동안 살아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마스터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기에 아직까지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흠··· 그걸로는 잘 모르겠는데. 난 저 검을 사용하는데 조금 묵직한 느낌을 받은 것 말고 별로 힘들다는 느낌을 못 받았거든.”
“당연하지. 마스터 최소 발전량은 3000메가와트급 발전소와 맞먹으니까. 너는 리베라 표준 원자력 발전소보다 더 강한 출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돼.”
“그렇구나!”
이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직감한 존. 어쩐지 저번에 공격하기 전에 차량 충전용 발전을 하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전에 발전소와 비유하기는 했는데 진지하게 믿지는 않았다. 정말로 표준 발전소만큼 전력이 강할 줄은 몰랐지!
하지만 의미는 겨우 그 수준이 아니다. 작은 몸으로 강한 출력. 감각적으로 다룰 수 있는 수많은 장비들. 그는 잘만 사용하면 한 개 군단과 비슷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조지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넌 이제 걸어 다니는 전략 무기나 다름 없어. 이제 중요한 인물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야. 자신의 위치를 좀 더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으라고.”
“좋은 사실을 알려줘서 차암 고마워. 조지. 이제 군대에 마음에 들지 않는 일 있으면 바로 전역 신청서 제출 해야지.”
전략 무기고 뭐고 다 때려 치우고 싶은 마음에 조지의 말을 비꼬는 존. 그렇게 중요하다면 평소에 좀 잘하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는 조지. 이 친구는 또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인가.
“영창간다.”
“보낼 수 있다면 보내 보시지! 나 같은 중요한 인물을 내버려 두겠어?”
“지랄하지 말고. 너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다 있어요. 네가 난리치면 제압이 아니라 바로 사살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쳇.”
조지의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소문으로 프로그래머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매뉴얼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으니까.
“한가지 알려주자면 이제부터 공부를 좀 하는게 좋을 거야. 네가 이 검을 더 잘 사용하려면 감각이 아니라 기계가 작동하는 정확한 원리와 구조를 알아야 하니까.”
“이 나이 먹고 공부하라고? 싫은데.”
인내심 없는 존은 책은 읽지 않는다. 영웅은 공부 따위 하지 않으니까.
“넌 무슨 어른이 되고 나서도 애처럼 철이 없냐.”
“젖병 대신 술병 빠는 어른이 된거지.”
“잘났다. 그래.”
///////
이 도시가 살기 위해선 항구는 쉬지 말아야 한다. 계속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과 물자의 순환을 유지해야 이 도시는 숨을 쉬고 움직일 수 있다.
그만큼 항구는 규모가 크고 움직이는 배도 많다. 1킬로미터가 넘는 컨테이너 플레인이 다닐 수 있을 정도 거대한 부두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메어 랜드를 떠나야 하는 병사들이 집으로 가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 비행기가 아니라 배를 타고 가기 위해서.
“죽지 말고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해요.”
“약속할게.”
이곳의 주민과 결혼한 군인이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거기 너! 대열에서 벗어나지 마!”
“내무반에 대검 놓고 간 새끼 누구냐!”
병사들을 통제하고 배에 탑승시키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부사관들과.
“기밀 문서 전부 가지고 왔나 다시 확인한다.”
“이동 과정에 필요한 물자 보고서 어디 있나!”
마지막으로 놓친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장교들.
이들을 모두 통솔하는 사람이 바로 총 책임자 존 밀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그여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그는 뭘 하고 있을까.
“아니, 우리가 왜 배를 타고 가는 거냐고!”
수화기를 들고 한참 짜증을 내고 있다.
“요한! 댁은 편하게 비행기 타고 하루만에 돌아갔으면서 왜 나는 배를 타고 오란 겁니까!”
-비행기가 며칠만에 우수수 만들어지는 줄 아나. 걸어오지 않으면 다행이지, 왜 그렇게 불평 불만이 많아!
“그래도 여기 오는데 그렇게 시간도 많이 안 걸리면서!”
-컨테이너 플레인은 할 일이 많아서 거기에 신경 쓸 정도로 수량이 넉넉치 않아! 그게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건가!
“또 기밀이라고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됐고 바쁘니까 이런 쓸데 없는 전화 걸지 마!
“요한? 요한! 빌어먹을 영감탱이!”
일반적으로 끊긴 전화. 존이 다시 통신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존의 위치는 메어 랜드, 요한은 어디인지도 모르겠는 위치. 전화를 연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다. 잘못하면 기밀을 유지하고 있는 장소가 들킬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나마 존재하니까.
“다 늙어가지고!”
-쾅!
수화기를 강하게 내려치는 존. 수화기에 화를 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탑승 안하십니까?”
“뭐야, 한니발이냐?”
또 어디선가 가지고 왔는지 모를 술병을 들고 나타난 한니발. 요즘 한나와 만나지 않고 존을 계속 찾아다니는 것이 보인다.
“너는 바로 수송선에 안타고 뭐하냐?”
“전 지금 가면 쥐어 짜입니다. 결혼하고 나니까 한나가 더 무서워졌어요.”
“그러게 기사랑 결혼하는 거 아니라고 내가 조언해줬는데.”
“그래서 요즘 죽을 맛입니다. 밤만 되면···. 어우!”
보아하니 한니발은 또 수송선에서 한나와 만나면 방에서 잔뜩 성관계를 할 것 같아서 존을 찾아 대피한 것이었다. 일단 그는 존의 부관이니까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제 부관 일이나 열심히 해야 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안하면 내가 한나한테 던져버릴 줄 알아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례를 하고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건네 주는 한니발. 존은 축제 이후로 술을 언제나 끼고 살았다. 이제 취하지도 않아서 더 많이 마시고 있다.
“드디어 조국으로 돌아가네요. 1년 만입니다.”
“그렇게 말한 것 치고 워터트리에서 중간에 한번 돌아가지 않았었지.”
“그건 휴가였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그리웠던 참호로 복귀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니발의 이상한 추억에 공허하게 웃으며 묻는 존.
“넌 거기가 좋았냐?”
“좀 더럽고 불결하긴 해도 나쁘진 않았지요. 특히 저희가 있었던 A6 구역은 소문만 들어보면 다른 참호에 비하자면 천국 같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천국은 개뿔···.”
한니발이 건네 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거지 같은 참호···.
전쟁에 낭만 따위는 없고, 그걸 증명해주는 것이 참호다. 칙칙한 남정네 밖에 없는 흙구덩이 속에서 즐거운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러고보니 이제 어디로 가는지 아십니까?”
“몰라, 사실 방금 그거 물어보려고 요한 장군한테 전화했는데 까먹고 못 물어봤어. 배와 기차 타고 수도로 가는 것 말고 몰라.”
“요한 장군님이 일부로 말 안해준 거 아닙니까?”
“알게 뭐야.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투덜거리며 한모금 마신 술을 한니발에게 건네 주는 존. 술을 주고 받으며 시간을 대충 때운다.
“저기 아주 꿀이 떨어지네.”
“신혼이지 않습니까.”
“너도 신혼이잖아. 한나 혼자서 두고 뭐하냐.”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지랄하네.”
존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조지와 셸리가 있는 곳이다. 한달 좀 짧은 시간 동안 만나고 고작 며칠 전에 결혼을 했지만 셸리는 진심으로 조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금방 사랑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깊은 상처. 그리고 그걸 보듬어준 조지. 셸리에게 조지는 새로운 희망이다.
“금방 돌아올게.”
“절대 다치지 마. 알았지?”
“안전한 곳에 있을거야.”
“정말이야? 믿을 수 있어?”
“그래, 다치지 않고 돌아오도록 약속할게.”
존의 말대로 꿀이 아주 끈적이며 떨어지는 조지와 셸리. 사실 이 둘 말고도 주변에 연인과 약속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었다.
한달이라는 시간은 지치고 힘들어하는 도시 주민과 전쟁으로 상처입은 병사들의 관계가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평생의 인연을 이어질지, 아니면 한순간의 불장난이 될 것인지는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메어 랜드에서 리베라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도 결혼을 해야 하나?”
“존, 제가 보기에는 평생 혼자 살 팔자입니다.”
“넌 또 맞고 싶냐?”
하지만 이미 손은 한니발의 머리를 움켜잡고 있다.
“끄아아아악!”
왜 이러는 걸까.
///////
모든 병사를 태운 수송선은 항구를 떠난다. 난간에는 연인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보내는 병사들과 항구에는 사랑했던 남자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안아주기를 비는 여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야속하게도 배는 항구를 떠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마음이 없는 배는 가야 할 방향으로 간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 워터트리에 있는 호수로. 그리고 호수에 있는 기차역에서 거대한 기차를 타고 다시 본국으로 귀환하기 위해서.
이때동안 이동한 거리가 길어서 하루 아침에 돌아가지도 못했다.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은 걸리는 거리. 느릿느릿 가는 탓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 덕분에 중간에 볼 만한 것이 몇 개 있기는 했다.
메어 랜드의 외각에 있는 도망자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 슈발리에에 있었던 화학전의 여파로 죽어버린 숲. 그리고 제염 작업을 완료한 곳에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있는 리베라의 수송선. 구축함의 강과 하늘에서 다가오는 괴수 퇴치.
워터트리에선 스테인리스로 이루어져 있는 새로운 수상 도시가 지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선로를 두줄이나 사용하고 일반적인 기차보다 4배는 거대한 새로운 수송 기차도 봤다. 그들이 지킨 터널이 완전히 원래 모습을 되찾고 그곳에서 기차가 지나다니는 것을 보았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신기했다. 우리가 지킨 이 땅이 이렇게 바뀌었다.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모를 자원과 현지민들의 노동력, 그리고 처음 보는 로봇의 도움으로 그들이 지나갔던 곳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마침내 수도로 돌아갔을 때 수많은 것이 변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언제나 좋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라고?!”
-쾅!
요한의 탁자를 강하게 내려치는 존.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수도의 국방성으로 돌아와서 군단장 요한에게 보고 하는 자리.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존은 하극상이나 다름없는 짓을 하고 있다.
“F4 구역으로 가라?”
“그래, 존.”
존의 살기어린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철 컵에 있는 커피를 마시는 요한. 예상했던 행동인지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다.
“거기가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나?”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지. 신병이 들어가면 15시간 뒤에 죽는 곳. 기사들의 무덤.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지옥. 그런데 지금 그런 곳에 내 부하들을 데리고 가란 말인가.”
이제는 존대조차 하지 않고 분노를 표현하는 존.
“소문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이지. 그렇게 전사율이 높지는 않아. 걱정하지 말게나.”
“또 무슨 개소리로 변명을 하려는 거지? 나는 상부의 명령으로 개 같은 타국에서 모르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다. 내 소중한 부하도 잃었지. 그런데 이제 남아 있는 부하들 까지 모두 죽으라는 소리냐?”
“죽지 않을거야.”
“변명하지마!”
-쾅!
탁자에 금기 갈 정도로 내려친 존.
“1년이다! 1년동안 좆 같은 전장을 전전하며 다시 돌아왔어! 그런데 고작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주고 다시 참호로 돌아가라고?!”
“그걸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
“다 좆까라 그래!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 그런데 이제 다 뒤지라고 하는건가!”
“진정하게.”
요한이 침착하게 존에게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불에다 기름을 부웠다.
“어떻게 진정할 수가 있어!”
-와장창!
책상에 있는 서류와 물건을 전부 벽으로 밀쳐 버리는 존.
“A6 구역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은 이제 중대 규모 밖에 안 남았어! 워터트리에서 함께 했던 연대는 이제 대대가 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놓아줄 거냐!”
“오, 이런.”
이마를 잡고 다시 정리를 해야 한다는 현실을 부정하는 요한. 예상은 했지만 짜증은 난다.
“그래서 전역을 시켜 달라고?”
“그래, 적어도 원하는 사람은 전부.”
“하아아···.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나. 그건 어렵다고. 중상자에게 인공 장기와 의수, 의족까지 매달고 전장에 보내고 있는 판국에 사지 멀쩡한 병사를 고작 해외 파견에서 갔다 왔다는 이유로 전역 시킬 수 없어.”
“또, 또! 변명이야!”
얼굴이 일그러지는 존.
“안전한 방에서 펜대나 굴리고 서류나 작성하는 노인이 그렇지. 우리가 전쟁터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었는지도 모르면서!”
“뭐?”
언성을 높이지 않던 요한이 그 말에 유일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늙은이야. 너는 네가 전쟁터로 보내고 죽어서 돌아온 병사의 이름을 기억하기도 하는 거냐! 하물며 얼굴이라도 본 적은 있냐!”
“예의를 갖춰라. 기사. 아무도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 못해.”
“이등병의 이름은 기억하기라도 하나! 하물며 참호에서 하룻밤이라도 보낸 적이 있냐!”
“입 닥쳐!”
“정곡이 찔리겠지. 왜냐하면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으니까!”
“닥쳐!”
-쾅!
이번에 탁자를 치는 사람은 요한이다. 박차고 일어나서 노인의 힘없는 주먹이 탁자의 잔해를 파고든다.
“나는 내가 보낸 모든 병사를 기억한다! 나의 서명으로 인해서 죽은 모든 군인의 얼굴과 이름을 잊지 않는다! 이 빌어먹을 별을 달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명예야!”
“그럼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기억은 하나! 기억하고 있냐고!”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그렇게 알고 싶냐! 그럼 알려주마! 총 235,895명이다! 내 실수로 죽은 병사가 총 235,895명이라고!”
그의 손으로 죽은 병사의 숫자. 십만 단위의 숫자가 나왔을 때 존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기억하고 있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저 많은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전부 기억하고 있을까? 상관 없다. 적어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요한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전쟁이 터지고 장군들이 작성해야 하는 서류는 배로 들었다. 쉬는 시간은 거의 사라지고 잠을 자야 하는 시간도 줄여야 했다. 그 짧은 시간에 요한은 모든 병사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언젠가는 잊게 되더라도 지금 당장은 기억하려고 한다.
그런 장군을 빌어먹을 늙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깊은 한숨을 내뱉고 다시 자리에 앉는 요한.
“하아아···. 이제 진정 했나?”
“···.”
화가 나지만 억누른다. 요한에게 화를 내야 할 명분이 없으니 더는 화를 내고 싶은 기운도 없다. 허탈하다.
“진정 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부대를 F4 구역으로 보내자고 의견을 낸 사람은 내가 아니야. 철강부 장관님이지.”
“···그분이?”
“그래, 샬리이비스 철강부 장관님. 정확히 너를 지목했어.”
“왜 나를 지목 한 거지···?”
“나도 모르지. 그래서 지금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어거스트 브라운 산림부 장관님이 자네를 호출했네.”
품속에서 담배를 꺼네고 피우는 요한.
“후우우···. 그 두분이라면 뭔가 알고 계시겠지.”
엉망이 된 집무실에 연기가 차오른다. 분노가 가득 찬 이 방에 하얀색 연기가 이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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