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으로 키운 딸이 방송 천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온리원.
작품등록일 :
2021.07.30 08:00
최근연재일 :
2021.09.14 08: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16,304
추천수 :
2,655
글자수 :
247,349

작성
21.08.14 23:15
조회
2,881
추천
64
글자
12쪽

016. 깨우러 가지도 않았는데 일어난 거야?

DUMMY

개미가 되어서 땅 파고, 집 지어서, 알 낳는 뭐 그런 게임을 했다.

아마 예전에 무슨 사마귀 시점 미연시 같은 걸 했을 때, 후속 리뷰하려고 비슷한 종류를 사둔 것 같았다.

그 게임은 암사마귀의 호감을 얻어서 잡아먹히는 해피 엔딩(?)과 호감을 얻지 못해 번식하지 못하고 죽는 배드 엔딩으로 나뉘었다.

반면, 어제 한 그 개미 게임은 그냥 노가다였다.

내가 미술 전공이었으면 개미 왕국을 좀 더 아름답게 팔 수도 있었겠지만, 내 미적 재능으로는 하트 모양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땅을 파서 집을 지으면 혼자 막 알을 낳았다.

알에서는 개미들이 또 태어났고, 그때부터는 모든 개미 시점을 돌아가며 집을 짓거나 먹이를 구해와야 했다.

복잡한 데다가 중간에 버벅거리며 꺼지기도 해서 그리 오래 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잠자리인가 파리가 되어서 인간 어린이의 손길을 피해 도망가는 게임이 차라리 더 재밌었다.


‘모기였나?’


아무튼, 잠자리채인지 전기 파리채인지를 들고 쫓아오는데 완전 무서웠다.

벌레의 시야가 정말 그런지는 몰라도 어째 화면은 깨진 거울에 비친 것처럼 어색했고.

띵디딩~ 띵~ 디딩~

오늘도 활기찬 알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늦게 자긴 했어도 침대에서 편하게 자서 그런지 컨디션은 좋았다.


“아침밥을 뭘 먹으면 좋을까······.”


리내는 더 재우다가 밥이 다 되면 깨울 생각이었다.

주방으로 들어간 나는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지난 일주일.

나는 아침밥 메뉴로 고통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야매 자취 요리는 보통 맵고 짜고 자극적인 맛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리내에게는 적합하지 않았으니까.

‘우리 아이, 건강한 아침밥 메뉴’라는 책도 샀지만, 주방 한쪽에 자리만 차지했다.

하나 따라 해 보려면 조미료부터 준비해야 하는 터라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아빠!”


깨우러 가지도 않았는데 리내가 어느새 다가와 내 등에 손도장을 찍었다.


“우리 딸, 일어났어?”

“네!”

“아빠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잘 일어났네?“

“네!”

“우리 딸, 천재네!”


별거 아닌 일에도 칭찬 많이 해 주기.

심리 상담소에서 조언한 것도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리내가 이전 가족과의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있지만, 나중에는 다 터놓고 말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꼭 알아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더니, 그럼 사소한 일에도 칭찬을 많이 해주라는 말을 들었다.

위축된 아이에게는 폭풍 칭찬이 명약인 듯했다.


“착한 딸이에요?”

“대단하고, 엄청나고, 멋진 딸이지!”


리내는 헤헤 웃고는 도도도 달려가 의자를 빼서 그 위에 올라가 앉았다.

식당에 가면 아직 아기 의자를 쓰는 애지만, 집에서는 일반 식탁 의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우유 팩을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따님, 오늘은 어떤 시리얼로 하시겠습니까? 혹은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음······.”


다섯 가지 시리얼과 식빵을 차례로 살핀 리내는 잠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중얼거렸다.

숫자를 세는 것 같았다.

그냥 ‘저거!’ 하고 삿대질해도 될 텐데, 요새 숫자 삼매경이었다.

아직 10까지밖에 못 세면서도 그랬다.


“셋째!”


엄지, 검지, 중지를 편 리내가 소리쳤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거?”

“네!”


오늘 리내의 선택은 도넛 모양 초코 시리얼과 마시멜로가 들어 있는 거였다.

리내 전용 시리얼 그릇에 시리얼을 잔뜩 부어주고, 우유도 부었다.

그리고 손에 숟가락을 주면 끝.

나도 같은 걸로 아침을 해결했다.

리내는 여전히 급하게 먹었지만, 처음 왔을 때에 비하면 느긋해진 편이었다.


* * *


한편, 상담 선생님은 게임과 관련한 내 질문에도 진지하게 답해주셨다.

의견은 보육원 원장님과 같았다.

아이가 좋아하니까 해보시는 건 어떠냐고.

다만, 너무 자극적인 게임은 리내가 불안정한 만큼 자제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닌카이도 게임팩을 하나 새로 샀다.

7세 이상 게임이 따로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성인이 된 후로는 19금이냐 아니냐만 구분해서 플레이했으니까.

아이가 생기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건 어쩌면 이런 이야기였던 걸지도 몰랐다.

리내를 등원시킨 나는 어머니회를 피해 퀵 귀가한 뒤, 집안일을 시작했다.

세탁기부터 돌려놓고, 청소기를 잡았다.

나 혼자 살 때는 샤워했는데 수건이 없을 때쯤에 세탁기를, 맨발로 돌아다니는데 발이 시커멓게 변하거나 뭉친 먼지가 태양계를 형성하려고 할 때쯤에 청소기를 돌리곤 했다.

설거지야 전에 말한 대로 쌓아놓고 쌓아놓았다가 날벌레가 생태계를 이루기 시작하면 했고.

그마저도 상태가 너무 안 좋으면 전문 청소 업자를 부르고 하루 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리내 기관지에 안 좋다고 해서 하루에 한 번 온 집안을 쓸고 닦아 먼지 한 톨 남기지 않았다.

나도 내가 어떻게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이런 게 부성애가 아닐까?

내가 낳지는 않았지만, 내가 기르고 있으니까.

아빠 소리도 매일 듣고 있고.

리내가 ‘아빠!’ 하고 부르면서 달려올 때는 정말 귀엽다.

그건 오빠, 아저씨, 삼촌 등으로 불렸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설거지는 아까 나가기 전에 했고······.’


청소기를 다 돌렸으니, 이제 세탁기가 다 돌아갈 때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소파에 앉은 나는 오랜만에 TV를 켰다.

마지막으로 본 채널이 키즈 채널이라, 켜자마자 어린이들이 율동을 하고 있었다.

방송에 나올 애들이면 대체로 한 미모들 하겠지만, 역시 내 눈에는 리내가 세계, 아니, 우주 최강 예뻤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평일 낮인 만큼 볼 만한 건 없었다.

나는 TV를 끄고 소파에 누웠다.

이럴 때는 SNS나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게 정답이었다.

리내 오기 전에는 보통 잠으로 시간을 다 보낸 거 같은데, 요즘은 그렇게까지 자지 않게 되었다.

아웃스타그램에 들어가니, 선이 녀석이 올린 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를 태그해서 올렸는데, 리내와 녀석이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선호 딸내미랑♥


보니까 올린 지 좀 됐는데, 아래에 댓글이 잔뜩 있었다.

나는 만들어놓고 남 글만 봐서 많이 언팔 당했는데, 녀석은 개인 계정인데도 선후배들이랑 잘 지냈는지 친구가 많았다.


-선호 결혼했어???

-너 왜 톡 안 보냐?

-작가님, 개인적인 SNS에 이렇게 댓글을 남겨 죄송하지만, 혹시 연락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ㅠㅠ


음, 작가 계정이 아닌데도 작가임을 알 수 있는 저런 댓글도 있었다.

녀석은 편집자로 추정되는 댓글에도 모두 하트를 눌러놓았는데, 딱 하나만 그냥 두었다.


-안녕하세요, 리원 엔터테인먼트입니다. 디엠 드렸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 댓글이 진짜 리원이면, 대기업에서 리내의 사진 한 장을 보고 스타성을 봤다는 건데······.


‘이거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지?’


키즈 모델이나 연예계 일을 시킬 생각은 없지만, 이런 제안을 받은 거 자체가 대단한 일 아닌가.

녀석이 일어나 있을 시각은 아니긴 했지만, 나는 전화로 과연 무슨 메시지가 왔는지 물어볼 참이었다.

아웃스타그램에서 나오려는데, 알림이 하나 와 있던 걸 이제야 발견했다.

댓글에 있던 그 리원 엔터테인먼트였다.

장황한 글자의 나열이 보였지만, 나는 일단 계정부터 눌러서 들어갔다.

파란 딱지가 붙어 있는 진짜였다.

연예인들이 팔로우 하고 있는 진짜 계정.

상대가 어떤지 확인했으니, 이제 메시지를 읽을 때였다.

갑자기 메시지를 보내서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하는 글은, 대충 요약하면 이랬다.


1. 리내를 연예인 시킬 생각이 있는가?

2. 있다면 리원 엔터에서 잘 키워주겠다.

3. 키즈 모델부터 시작해서 아이의 재능에 따라 다양한 직업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재고해 봐라.


솔직히 5살짜리 아이 사진 한 장 보고 뭘 알 수 있나 싶긴 했지만, 그러니까 전문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전에 리원 엔터 사장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했던 이야기가 감명 깊기도 했고.

물론, 사장이 엔터의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는 건 아니리라.

이런 SNS 캐스팅 같은 건 더더욱.

아이돌 데뷔 조 오디션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그래도 리내한테 물어보고 한번 경험 삼아 다녀올까?’


개인적인 호기심에 리내를 이용하는 기분이긴 하지만······.

왠지 리내는 내 이런 생각을 읽고 가겠다고 할 것 같아서, 그냥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나이를 더 먹어서 장래 희망이 연예인이 되면, 그때 시작해도 안 늦었다.

아웃스타그램을 나온 나는 기지개를 켜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리내가 집에 없으면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지.

세탁기도 돌아가는 중이었다.

심심해진 나는 어제 리내와 한 약속을 떠올리며, 리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구석에서 내 책을 꺼냈다.

흐음.

임기응변으로 요약해서 읽어주는 것보다야 미리 정리해서 메모지를 붙여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책을 들고 나온 나는 책상에 가서 앉았다.

플롯 짜는 것도, 설정 메모도, 집필도 다 컴퓨터로 해서 막상 메모지에 펜으로 요약하려니까 어색했다.


‘호위무사가 아련하게 여자 주인공 이름을 부르는 것까지 읽었다고 했으니까······.’


나는 휘리릭 넘기며 삽화를 찾았다.

연재본에는 나중에야 추가되었지만, 단행본에는 책 중간에 삽화가 있었다.

삽화 작가님이 ‘웹툰화 하시게 되면 꼭 저도 후보에 넣어주세요!’라고 하실 만큼 작품을 좋아해 주셨던 게 떠올라서 괜히 죄송해졌다.

이렇게 단행본 만들고 할 때만 해도 나는 절필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였다.

내가 이 나이에 딸을 키우게 될 거라는 것도 몰랐으니까.

자꾸 딴생각이 들어서 옆길로 샜지만,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요약에 들어갔다.

시작했을 때는 메모지에 바로 썼는데, 중간부터는 컴퓨터를 켰다.

광활한 한글 창을 켜고 있으니까 속이 좀 울렁거렸는데, 곧 괜찮아졌다.

문서 제목은 ‘리내용_요약본_동화st’로 정했다.

다 정리한 후에 메모지에 옮겨 적을 생각이었다.

첫 글자를 입력하기까지 약간 저항감이 있었지만, 한 번 하고 나니까 다음부터는 휙 달리게 되었다.

옛날에 글 썼을 때처럼, 수정도 별로 없이 쭉쭉.

이런 로판풍으로 동화책을 내는 것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1권 요약이 끝났다.

뭔가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폰을 보니까 알람이 울리기 1분 전이었다.

그 말인즉, 빨래는 이미······.

띵디딩~ 띵~ 디딩~

알람이 울렸다.

나는 알람을 끄고, 폰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벌써 리내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빨래는 돌아와서 다시 헹굼과 탈수를 돌린 뒤에 널어야 할 것 같았다.


‘금방 할 줄 알았는데, 요약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네.’


동화로 각색하느라 더 그런 것 같았다.

1권 쓰는 데에는 대략 50시간 정도 걸렸을 테니까 요약에 3시간이 걸린 거면 선방한 걸지도.


‘리내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 글을 쓰다니.

조회 수 안 나오면 가차 없이 갈아엎던 과거의 내가 들으면 기가 차 할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 기분이 좋으니까 됐다.

띵.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나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리내를 데리러 갔다.

딸은 절필한 아빠도 글 쓰게 하는 법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지갑으로 키운 딸이 방송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21.09.15 567 0 -
44 044. 자랑은 아니지만 +9 21.09.14 1,063 43 12쪽
43 043. 또 같이 +5 21.09.13 1,048 36 12쪽
42 042. 같이 +4 21.09.12 1,215 46 12쪽
41 041. 섭렵 +5 21.09.12 1,162 40 12쪽
40 040. 재밌어요! +5 21.09.11 1,286 45 13쪽
39 039. 이거 다 리내 거야 +5 21.09.10 1,431 45 12쪽
38 038. 소속사 투어 (2) +5 21.09.08 1,494 47 13쪽
37 037. 소속사 투어 (1) +4 21.09.07 1,502 43 13쪽
36 036. 사고가 났어요 +6 21.09.06 1,605 46 12쪽
35 035. 샤따 내려요 +4 21.09.05 1,706 50 12쪽
34 034. 상상의 바다를 허우적대 +5 21.09.04 1,742 53 12쪽
33 033. 세 가지 질문 (2) +3 21.09.03 1,777 61 13쪽
32 032. 세 가지 질문 (1) +4 21.09.02 1,814 53 13쪽
31 031.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시길 +6 21.09.01 1,865 52 13쪽
30 030. 이쪽이랑 이쪽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4 21.08.31 1,911 56 12쪽
29 029. 게스 해요 +4 21.08.30 1,990 57 13쪽
28 028. 만만치가 않네? +4 21.08.28 2,209 56 12쪽
27 027. 세 개 +3 21.08.27 2,257 56 13쪽
26 026. 재밌냐? +2 21.08.26 2,379 62 12쪽
25 025. 아빠는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3 21.08.24 2,494 67 13쪽
24 024. 맴매 맞죠? +5 21.08.24 2,425 60 12쪽
23 023. 주말에 어디 가기로 했지? +2 21.08.23 2,453 55 12쪽
22 022. 그건 왜 물어봐? +3 21.08.21 2,663 60 12쪽
21 021. 구독 꾹! 좋아요 꾹! 알림 설정 띠링띠링! +4 21.08.20 2,713 60 12쪽
20 020. 잘 좀 말해주세요 +3 21.08.19 2,710 64 13쪽
19 019. 아빠는 뭘로 돈 벌어요? +3 21.08.18 2,766 63 12쪽
18 018. 뱁배 +2 21.08.17 2,705 64 12쪽
17 017. 무슨 일 있었어? +2 21.08.16 2,765 64 13쪽
» 016. 깨우러 가지도 않았는데 일어난 거야? +4 21.08.14 2,882 6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