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5)

“그래서 어떤가요, 당신 의견은?”
평소 프레디와 달리 즉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순간이나마 호흡이 길어졌던 원인은 단순히 그녀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은 프레데리카가 아름답기도 했으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어라? 제 질문이 어려웠나요?”
나른한 목소리로 묻는 프레데리카.
“그렇게 고민할 게 없다고 보는데요.”
아쉽다며 본인 뺨을 살짝 어루만지는 프레데리카.
“아닙니다.”
“뭐가 아니죠?”
담담한 어조로 묻는다.
“고민할 부분이 많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프레데리카 질문만 보더라도 고민은 많이 해야 했다. 무려 제국 내 큰 문제가 될 사안이니까.
“특히 지금 번스타인 부인.”
온화한 표정을 지니던 프레데리카 불현듯 눈썹을 찡그리자, 프레디는 실례라고 입을 열었다.
“프레데리카 부인께서는 제게 어떤 입장을 원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고민할 부분이 생겼습니다.”
“그게 무슨?”
알 수 없다며 명확하게 말해달라는 듯 묻는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제 아버지, 랑발드 영주님께서는 부재중입니다. 전 그런 영주님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프레데리카는 이해를 했다는 듯 그랬군요,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해하신 듯합니다.”
“그럼요. 아마 아시겠지만, 번스타인 가문을 실질적으로 제가 움직이고 있죠. 그런 제가 그걸 모를까요?”
실제로 그랬다. 번스타인 가문은 프레데리카 직접 좌지우지하고 있다. 랑발드와 마찬가지로 서류상 번스타인 가문영주는 수도에 가 있는 상태다. 하지만 실제 영주나 다름없는 인물은 눈앞에 프레데리카다. 모든 결정권은 그녀가 쥐고 있으며, 어느 정도 사교계 인사라면 다 아는 진실이다.
“설마 제가 어떻게 부인을 얕잡아 보겠습니까.”
프레디는 살짝 등을 뒤로 젖히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죠?”
프레데리카는 안심했다며 방긋 웃는다.
“그나저나 어쩌죠. 고민되네요, 개인인지 가문인지.”
버릇인지 프레데리카는 내려놓았던 손을 다시금 뺨에 얹는다. 그대로 고개를 한쪽으로 치우쳐 고민에 빠진 듯 행동한다.
개인적 협력과 가문으로써 협력은 엄연히 다르다. 입장도 그렇고 협력하는 힘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프레데리카는 차이점을 이해한 듯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프레디는 그 모습을 조용히 감상했다. 어디까지나 하얗고 고운 피부에 웃는 모습이 이쁜 그녀 모습을 지켜본 게 아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보고 있다가 정답이었다.
프레데리카가 어여쁘다고 해도 그걸 볼 겨를이 없다. 실제 속내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었다며 안도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큰 이벤트잖냐.
머릿속에서 프레디는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야 제국 내 분쟁을 가속화 하는 주범이 되느냐, 마느냐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프레디도 본인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마법사들을 건들고자 했다. 선전포고를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 또 노려지면 어떻게 하겠는가 싶었다. 또한, 본인 목숨 이외에도 아델을 노리는 짓이라도 해서 계획을 틀어 놓으면 기분이 잡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저지를까.
고민하고 있음은 사실이나, 거의 손을 잡는 쪽이 프레디 본심에 가까웠다.
우선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온건파는 아닐지언정 강경파 마법사들은 목적이 제국 붕괴였다. 제국을 붕괴하려고 귀족들을 하나둘씩 제거하고자 하는 게 강경파 마법사다. 프레데리카며 프레디며 둘 다 제국 귀족이다. 강경파가 활동을 활발하게 움직인다면 분명 부딪친다.
다시 말해 제국 내 귀족인 이상 강경파 마법사와 충돌은 정해진 운명 같은 셈이다. 신에 장난 같은 숙명을 프레디가 모를 수 없다.
언젠가는 노려질지 알고 있던 프레디는 우연히도 강경파 마법사들에게 선전포고할 계획이었다. 본인이 목숨을 언제 노려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성격이 아니다. 무엇보다 계획이 틀어지는 일만큼은 극구 사양이다. 마침 여기 지식은 꽤 알고 있으니 이용하여 먼저 제거해주는 게 프레디 성격에 가까웠다.
그런데 어째서 고민이냐, 즉답으로 찬성하면 그만 아닌가 싶을 수 있다.
문제는 프레데리카기 때문이다. 마법사들과 분쟁이 고민이 아닌 셈이다. 강경파 마법사 중에서도 키워봤던 캐릭터도 있으니 망설이냐고 하면 아니다. 약간은 있을지언정 그게 주는 아니다. 실행에 옮겼을 때 구하고 싶은 인물은 구할 수도 있다. 그 정도 자신은 있는 프레디.
과연, 이게 함정이냐 어쩌냐는 거지.
프레디는 겉으로 팔짱을 끼고 있으나 살포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갈팡질팡하고 있던 셈이다.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프레디 결정은 아직인데 프레데리카는 끝났는지 입을 열었다.
빠르네.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을 해보고 있었던 프레디다.
1회차 보스였다는 점이나 경계해야 할 인물이라는 게 거절할 이유였을 뿐 그 이외는 없다. 반대로 거절을 하면 경계할 인물이 어떻게 움직일지 더 고민하게 될 수도 있다.
프레데리카인 점을 놓고 보면 거절이 좋다. 그러나 거절하면 성가신 그녀를 적으로 돌려야 한다. 특히 이렇게 대놓고 제국을 흔들겠다고 선언하는 대범한 그녀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손을 잡는 게 좋아 보이는 한편. 프레데리카는 짧게 고민을 끝내고 프레디에게 제안했다.
“둘 다 하도록 하죠.”
망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프레디에게 두 손을 살포시 맞물리며 말하는 프레데리카.
“저와 함께 제국을 지배하려면 가문 정도는 손에 넣어야지 않겠어요? 그러니 가문을 장악하고 제게 협력하세요, 프레디.”
“쓰읍.”
프레디는 혀를 찰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러죠? 아무런 말이 없네요.”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프레데레카 말은 틀리지 않았기에 뭔가 반박이 어려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레디는 묘하게 설득이 되었다.
“더는 고민하지 말죠, 프레디.”
“후우.”
프레디는 고개를 살짝 떨구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좋습니다. 좋아요, 프레데리카 부인. 그렇다면 뭘 어떻게 할 셈입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구체적인 제안 내용을 듣고자 하였다. 어떻게 움직일지 정도는 듣고 싶었다. 세부적인 내용도 없이 승낙하는 얼간이 짓은 사양이었다.
“당신이라면 알고 있겠죠, 꿀이라고 말하면.”
“꿀? 설마, 볼드 윈 가문 물건 말입니까.”
볼드 윈 가문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판매를 하기는 했으나, 그 뒤에 번스타인 가문이 있었다. 정확히는 프레디와 마주 앉은 프레데리카가 뒤를 봐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프레디만큼은 모를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걸 그들에게 제공해볼까 하네요.”
“뭣 하러 그런 짓을······.”
프레디는 말을 하다가 뒤늦게 이해를 했다.
“역시 부인께서는 마녀가 맞는 듯합니다.”
프레디는 팔짱을 풀고 한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칭찬 감사히 받도록 하죠.”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답한 프레데리카.
“아직 남았던 모양입니까, 예의 꿀이.”
“누군가가 계획을 멋대로 망가뜨려서 그렇게 되었네요.”
프레디는 그 순간 웃었다. 웃으며 안타깝게 되었다며 꼭 남 일처럼 답했다.
“그보다 마법사들에게 듣기는 한답니까? 그 꿀 말입니다.”
프레디가 묻는 의미는 여러 가지였다. 꿀에 들어간 성분인 마나를 증폭시키거나 고갈 현상, 마지막으로 중독 작용까지 포함되었다.
“예. 이미 영지 내 마법사인 몇몇을 대상으로 해봤네요.”
프레데레카는 긍정했다.
실언했네.
프레디는 아까 프레데리카에게 마녀라고 했으나, 분명한 실수다. 앞에 마주 앉은 그녀는 악녀다. 게임 속에서는 마녀라는 배경 설정이 있었으나, 실제로 접하고 보니 악녀가 적합해 보였다.
“행동이 꽤 빠르십니다.”
프레디는 속으로 느낀 점을 발설하지 않고 전혀 다른 말을 하였다.
“그럼요. 누가 멋대로 제 계획을 수정했으니 다음 일을 진행해야죠. 거기다 이래 봬도 언제까지 화가 난 상태로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좋은 면모인 듯합니다.”
프레디는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참, 덧붙여서 말하자면 이미 계획은 진행 중이랍니다.”
“벌써 말입니까?”
프레디는 이때 또 다시 살짝 놀랐다. 이렇게 빠를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예. 그럼요. 곧 몬스터가 움직일 시기잖아요? 그때 마법사들까지 폭주한다. 마침 몬스터 사냥을 위해 준비된 마검사가 몬스터와 더불어 마법사까지 제압하기 위해 움직인다. 딱딱 들어맞잖아요?”
옳은 말이다. 실제로 마검사, 군인들은 가을을 대비하여 훈련하며 다른 시기보다 철저한 대비를 한다. 시기적으로 미리 배치된 마검사들이라면 폭주한 마법사들 따위 제압이 가능하다. 세계수의 기적에서는 이를 대비하지 않아 제국은 혼란에 빠진다.
“좋습니다. 부인과 함께 하겠습니다.”
프레디는 거기까지 듣고 상황을 이해해 버린 탓에 승낙해버렸다. 더는 고민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어머, 어머.”
프레데리카는 아직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프레디가 알겠다고 말한 순간 놀랄 뿐이었다. 감탄인지 모를 말을 뱉으며 프레디를 바라봤다.
“기꺼이, 부인 일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듣고 있자니 적어도 실패는 없다고 본다. 거기다가 프레디가 원래 하려던 벨레노를 이용한 함정까지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이 없이 좋아 보인다. 그런데 거절하다니 있을 수 없다.
“후후.”
프레데리카는 입꼬리를 한껏 늘어뜨리며 웃었다. 꽤 기쁜 듯 보였다.
“아버님께서 수도에서 돌아오시면 설득하여 가문과 가문으로써 협력을 약속해드리겠습니다.”
프레디는 그녀의 미소를 뒤로하며 멋대로 말을 계속했다.
“또한, 부인 계획을 방해했던 실력을 곁에 서서 마음껏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주시길.”
고개를 살짝 숙여 최대한 협력을 약속한 프레디였다.
“후후. 당신이 보여줄 선물이 벌써 기대되네요.”
“실망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프레디도 프레데리카와 마찬가지로 웃어 보였다.
프레데리카를 향해 악녀라며 속으로 칭했던 프레디였다. 그러나 워낙 사나운 눈매를 하고 있던 그였다. 그런 탓인지 방금 프레데리카 일에 협력하겠다고 말한 순간 보인 미소는 더 악질이었다. 겉만 봐서는 프레디가 훨씬 더 프레데리카보다 더 사악한 인물로 보였다.
“그래서 말입니다, 프레데리카 부인. 제가 먼저 우선 와인에 대한 답례부터 할까 합니다. 어떠신지요?”
“답례 말인가요?”
“예. 좋은 와인을 제게 주셨으니 답례가 당연하리라고 봅니다.”
프레디는 본인이 준비 중이던 계획을 살포시 프레데리카에게 털어놓는다. 다름 아닌 강경파 마법사를 함정에 빠뜨릴 일을 말이다.
“어머, 와인보다 비싼 값 같은데요?”
프레데리카는 듣더니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까. 만족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예, 그럼요. 제가 원하던 그림을 그려 볼 수 있으니 오히려 더 감사하죠.”
쇄골쪽에 살포시 손을 올리며 고개를 숙이는 프레데리카.
프레디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가 마른 침을 삼켰다.
크, 크네.
“어머, 프레디?”
다시금 숙였던 고개를 올리다가 프레디와 시선이 딱 마주한 프레데리카. 그녀는 콧소리를 섞어가며 프레디를 불렀다.
"왜 그러시나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프레디는 시선을 빠르게 돌리며 프레데리카를 외면했다. 그런 그를 보며 재밌다며 웃는 프레데리카였다.
- 작가의말
읽어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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