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카 랭커스터(2)

프레디는 예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 사냥을 나서야 하기에 마르카가 저택에 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온다고 하여도 아슬아슬하다고 여겼다. 버틀러 가문 분가라고 해도 귀족 가문 중 신분이 높으니 바쁘니 쉽게 자리를 비우기 힘들 터.
“오랜만이네.”
프레디는 본인과 같은 금발 머리카락에 녹색 눈동자를 번뜩인 인물을 맞이했다. 경계심을 바짝 세운 본심과 달리 겉으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반겼다.
여러모로 오랜만인데.
노크까지 해가며 정중히 입실한 마르카를 보며 프레디는 여러 심정 중 반가움을 가장 크게 느꼈다.
“예. 저도 오랜만이라 무척 반갑네요.”
프레디가 예의를 취하자 느긋하게 고개를 숙인 뒤 회답한 마르카.
프레디처럼 마르카도 나름 오늘을 기다려 왔을 게 틀림없다. 그녀가 짓고 있는 미소는 거짓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환한 점은 둘째치고, 앞으로 일이 기회이니 당연할 터.
“좀 더 자주 찾아뵙고 싶었는데 말이죠.”
“나도 마찬가지네.”
“그랬나요? 그러셨으면 생일 때 초대를 해주시지.”
부루퉁한 표정으로 지난 프레디 생일 때 초대를 받지 못한 점을 언급한다.
“서운했나?”
프레디는 사용인이 따르는 홍차를 찻잔을 보며 묻는다.
“당연한 말씀을요. 가뜩이나 좋은 신랑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저인데, 그런 기회를 놓쳐서 쓰나요.”
마르카는 누구 덕분에라고 뒷말을 붙였다.
곁에 머무는 사용인들은 모를 수 있으나 프레디는 그게 누군지 알았다. 아마 여기에 다른 귀족이 머문다면 익히 눈치챌 수 있었다. 마르카가 언급한 인물이 프레디 아버지인 랑발드임을 말이다.
사교계에 널리 퍼진 일이다. 랑발드가 아직 젊던 시절 분가였던 랭커스터 가문에서 반란을 일으킨 일화는 말이다. 당시 반란이 낳은 결과도 어느 귀족이라도 아는 사실이다.
익히 아는 랑발드가 영주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이러하였다.
당시 랑발드는 삼남으로 후계와 거리가 멀었다. 훗날 영지나 하사받으면 다행이었으나, 반란을 계기로 현재 자리에 앉게 되었다. 동시에 반란을 진정시키며 당시 랭커스터 가문영주와 주도자들을 모두 죽였다. 다름 아닌 마르카 부모까지 포함해서 죽였다.
즉, 마르카가 서둘러 후계를 이어받으며 시집을 가지 않는다면 랭커스터 가문은 영주 자리가 없게 된다.
“그래서 내심 기대했었답니다. 생일 파티 때 참가하여 좋은 신랑감이라도 물어볼까 하고 말이죠.”
본인 앞에 놓인 홍차를 마시는 마르카.
“그대도 이미 못 올 줄 알지 않았나?”
가벼운 헛기침을 한 프레디는 딱 잘라 말했다.
“이미 초대부터 못 받으리라고 알고 그대 직속 마검사를 통해 내게 생일 선물을 전하지 않았나.”
프레디 뒤에 딱 붙어 서 있는 발렌시아, 그녀와 같이 마르카 뒤에 있는 마검사를 흘깃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시치미를 떼는 마르카.
“그대 덕분에 잘 쓰고 있다는 감사의 말이라고 해두지.”
프레디는 본인 손목을 톡톡 치며, 호박으로 이뤄진 팔찌를 가리킨다.
“그러신가요. 무슨 말씀인지 저는 모르지만요.”
프레디는 그녀가 어떻게 예상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기에 내심 인정했으면 싶었다. 나아가 팔찌를 빌미로 본인 이득을 취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었다.
어째서일까.
신경이 쓰였다. 본인이 알고 있던 마르카는 미래를 내려다보는 능력은 없었다. 당연히 그녀 곁에 머무는 붉은 머리에 마검사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다 어떤 일이 벌어진다거나 누가 마법사인지 알 턱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내심 궁금하며 신경이 쓰인 프레디다. 그야 한결이던 시절 기억이 떠오르기 전, 호박으로 이뤄진 팔찌를 받았다. 다름 아닌 마르카 뒤에 서 있는 마검사를 통해 건네받았다. 기억이 떠오르기 전이라 수상함을 못 느꼈다. 또한, 기억이 떠올랐을 때는 닥칠 사건에 대응하느라 겨를이 없었다.
역시 당시에 마르카부터 만났어야 했나.
뒤늦게 후회 아닌 후회가 생겼으나 내내 한 가지 감정에 몰두할 수 없다. 애초에 그녀도 뒤에 인물도 마법사가 아니란 사실에 머리를 굴리며 당황하고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차기 공작님께서 감사하다고 말씀하니 여기서는 순순히 기뻐하도록 하죠.”
운을 떼며 말을 이어가는 마르카.
“잡담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바로 솔직한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본론인가 속으로 답하였다.
“얼마든지.”
긴장과 기대감을 반반씩 느끼며 드루와라고 여기는 프레디였다.
“예. 앞으로 있을 사냥 말인데요.”
프레디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바로 마주 앉은 터라 째진 프레디 눈빛은 한층 날카로워졌다.
“뭐든 결정을 양도해도 괜찮을까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본인 이득을 취할까 기대했던 프레디였다. 동시에 어떤 반응을 보이며 거절할까 혹은 수긍하는 방식을 취하며 이용할까 여겼던 그였다.
“양도라고 했나?”
머릿속은 온갖 흑심이 가득하였던 프레디 예측과 전혀 다르게 나오자 당연하게도 놀랐다. 기본적으로 귀족이란 본인 이득과 가문을 위하여 움직인다. 그런데 어째 마르카는 귀족이라면 드러나야 할 욕심이 없었다.
“예. 사냥에 필요한 물자나 인원, 인력 배치 등 모든 결정을 맡기고 싶네요.”
지금까지 눈을 가늘게 뜬 채 마르카를 지켜보던 프레디였다. 그의 눈은 잠시 크게 뜨이며 놀라워하였다. 주인 곁에 서 있는 마검사들도 알아볼 정도로 그는 당황했다.
“혹시 자신이 없나요?”
한동안 답이 없자 도발하듯 묻는 마르카.
“아니, 아니네.”
금방 평정을 되찾은 프레디 표정은 차게 가라앉았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
“다행이네요.”
안심했다며 웃는 마르카. 그녀에 온화한 미소는 전혀 읽히지 않는다. 웃음 뒤에 과연 어떤 의중을 숨기고 있을지 프레디는 짐작이 어려웠다.
정보가 얼마 없는 탓인가.
지금처럼 상대방을 파악하기 어려울 적에 억측을 내놓아봤자 오답이 대부분이다. 방향만 잘못 잡고 돌진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 뿐이겠지.
프레디는 지금 같은 경우 더욱 진솔하게 가보도록 하자고 여겼다. 괜히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쪽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대 가문을 한참 뒤에 배치할 수도 있네. 그래도 괜찮나?”
한 마디로 어떤 기회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마르카는 간단한 의미를 이해 못 할 상대가 아니다. 결국은 이해하고 어떤 의도를 숨겼는지 밝힐 터.
“괜찮아요. 어설프게 제가 지휘를 맡거나 나서봤자, 손해만 볼 거 같으니까요. 전부 맡기도록 하죠.”
프레디를 얕잡아보는지 아니면 진짜로 욕심이 없는지 알 수 없다. 프레디는 섣부른 태도와 말은 삼가야 한다고 판단하여 조금 더 그녀에 언행을 살폈다.
“그렇지 않나요?”
조용한 프레디를 살피더니 느닷없이 동의를 구한다.
“뭐가 말이지?”
“최근 수도에서 건방지게 세금을 약탈하던 마법사들을 붙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익히 들은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면 저보다 경험이 풍부하시겠죠.”
아니냐며 한 번 번 프레디에게 답을 요구했다. 긍정밖에 고를 수 없는 반응을 듣고자 하는 마르카였다.
“그렇지.”
프레디는 고개를 끄덕여 줬다.
“부정은 않겠다.”
“그렇다면 더욱 제가 지휘를 맡을 이유도 없으며 어설프게 이렇게 하고 싶다고 의견을 내놓아서도 아니 되겠죠. 저보다 조금이라도 경험이 높으신 분께 전담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답니다.”
마르카 의견은 지극히 옳다. 옳았기 때문에 프레디는 더 의심쩍었다. 귀족에게서 나타나야 할 이기심은 없고 정당하기만 했기 때문에 의심스러웠다.
솔직히 귀족다운 점이 엿보이지 않은 탓도 있으나 다른 이유도 있었다.
원작과 다르잖냐.
프레디가 익히 아는 세계수의 게임 시절과 다른 탓이 사실 가장 컸다. 그녀는 야망이 큰 인물이었다. 배경 설정 탓도 있어서 불리한 분가에 머무는 현실을 싫어하여 본가를 넘보는 캐릭터였다.
또한, 그녀 역시 프레데리카처럼 욕심이 많은 여자였다. 세계수의 기적 당시 마르카 개인 루트를 진행하면 공작 가문 승계까지 하는 인물이었다. 공작 가문 후계인 프레디를 제거하면서까지 말이다.
권력에 대한 갈망이 심했던 인물인데 어째서 대놓고 양보를 하지.
프레디는 도리어 너무나도 의심스러워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리고 저보다 판단력이 좋은 분께서 혹 후방을 맡기신다면 기꺼이 그러도록 할 계획이랍니다.”
프레디는 듣고 있다가 어떤 한 단어에 그만 꽂혔다.
“후방 말인가?”
“예. 방금 뒤쪽에 저희를 배치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에.”
“내 등을 노리고 싶었나?”
프레디는 의심하던 찰나에 문뜩 한 가지 가능성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속담이기도 한 경우가 말이다.
“전방에서 앞장서서 몬스터를 정리하면, 뒤에서 그대로 지친 나를 제거라도 할 셈이었나?”
등을 살짝 의자에 기대며 묻는다.
자고로 몬스터 사냥을 하는 동안은 지금처럼 냉철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 사방에서 마검을 충돌시키며 생과 사를 오갈 게 뻔하다. 그런 장소에서 실수로 마검을 아군에게 휘둘러도 책망하기란 어렵다.
프레디는 짐작하기를 마르카가 처음부터 다 계산하지 않았나 의심이 되었다. 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도록 하여 후방에 배치 당한다. 이때 전방에서 나선 프레디가 지치면 그대로 공을 가로챈다는 심보가 아닐까 싶었다.
“너무 저에 대한 신용이 낮으신데요.”
마르카는 아니라며 프레디 질문에 머리를 가로저었다.
“우선 정정하자면, 저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또한, 후방에 배치하시는 의견은 제가 내놓은 게 아니랍니다. 그렇죠?”
“!!”
생각해보면 그랬다. 아직 결정된 부분도 아닐뿐더러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프레디 본인이었다.
“아버님 세대 일 때문에 제가 혹여나 칼을 품고 있지는 않을까, 의심하시는 듯합니다만."
어쩌면 선입견일지 모른다. 마르카가 언급한 아버지 세대 벌어졌던 일 때문에 프레디도 모르게 의심이 싹텄는지 모른다. 하물며 세계수의 기적 당시 알고 있던 마르카가 있던 탓에 더욱이 의심이란 색안경을 썼는지 모른다.
"내내 강조하듯 저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마르카는 말을 끝내며 어떤 방식이든 편하게 결정하시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프레디는 어째 마르카가 내놓은 술수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하면 할수록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 의심은 걷어주시고 부디 믿어주시길 부탁드리죠."
마르카는 고개를 숙여 청했다.
어쩌면, 원작과 다른가.
원작이랑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그러다 보니 마르카 개인에 대한 부분도 일말의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프레디는 작게나마 그렇지 않나 추측하였다.
"알았다."
프레디는 작게 긍정했다.
아니겠지.
자연스럽게 싹튼 생각을 곧장 부정한다. 그야 그럴 리가 없다. 너무 자의식 과잉이다. 프레디가 대외적으로 이룬 일은 엄청나지 않다. 겨우 그 정도 활약으로 단념할 인물이 아니다. 마주한 마르카는 말이다.
"내 고민을 해보도록 하지. 어느 쪽에 해야 할지. 괜찮겠지?"
프레디가 구한 동의에 긍정한 마르카.
"당연한 말씀을. 저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이번에 이렇게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걸요."
듣자니 꼭 욕심이 없다는 발언이었다.
과연, 그럴까.
한결이던 시절 익히 듣기로는 돈에 관심이 없다는 사람일수록 돈 욕심이 많다고 했다. 즉, 욕심이 없는 듯한 사람일수록 속으로는 욕망을 갈망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 작가의말
읽어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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