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갱생(狂魔更生)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서담.
작품등록일 :
2021.08.0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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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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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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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에서 일어난 일(4)

DUMMY

“···겁에 질려서 머리가 돌아버린 거냐?”


잠시 당황했던 곽섭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함정에 걸려 사술에 당해 놓고 저 당당한 태도는 뭐란 말인가?


호연은 여전히 태연한 태도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이게 내 의도였다. 네 속셈대로 따라줘서 귀혼시마의 비처에 들어오는 거.”

“···뭐라고? 크하핫!”


호연의 말을 허세로 여긴 곽섭은 광소를 터트렸다.

불리한 상황에 처하니 되지도 않는 허장성세를 부리는 모양이었다. 안쓰러운 꼴이 따로 없었다.


“뭐. 믿기 싫으면 믿지 말고.”

“하, 그래. 일단 믿어주도록 하지. 그래서 친히 함정에 걸려주시면서까지 실행하려고 했던 계획이 뭐냐?”

“도둑질.”

“······뭐?”

“여기 털려고 왔다고.”


가볍게 대답한 호연은 몸 상태를 점검했다.


묶인 상태로 족히 몇 장 위에서 떨어졌는데도 몸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귀혼시마가 마경에 깔아뒀을 빽빽한 진법들을 건드리지도 않고 은신처에 무혈입성한 것이다.


‘역시 속아주길 잘했군.’

-···간도 크다. 무슨 술법일 줄 알고 몸을 던져?

‘확실했다니까. 마두 경력이 몇 년인데.’


호연은 호리의 핀잔에 반문했다.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도박을 할 리가 있겠는가.


축경(縮境)의 술(術).

곽섭이 펼친 술법은 사교의 술법사들이 애용하는 것이었다. 근거리의 지정된 좌표로 대상을 이동시키는 술법.


‘어디로 갈지는 뻔했고.’


곽섭이 도망칠 곳이라 해봤자 귀혼시마의 안가밖에 없었다. 청룡대 무인들 몰래 그 내부를 털려는 호연에게는 최고의 기회였다.



“···하, 어이가 없군.”


호연의 대답을 듣고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곽섭은 곧 혀를 차면서 말했다.


“허세도 적당히 떨어야지. 내가 무슨 술법을 부렸는지 알아차린 건 그렇다고 쳐도, 그 정도 지식이 있는 놈이 이따위 선택을 할 리가 있나?”

“음, 뭐가 이상하지?”

“술법을 다룰 줄 아는 자를 술법사의 영역에서 상대하는 게 최악의 선택이라는 걸 알 테니까.”


곽섭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입술을 꽈득 깨물었다. 검붉은 피가 튀면서 목 아래로 흘러내렸다.


-웅웅웅.

동굴 내부가 기묘한 소리로 메아리쳤다. 귀혼시마의 영역 안에 펼쳐진 술진들이 혈액에 반응하는 소리였다. 곧 피가 새까만 연기를 뿜으며 증발하기 시작했다.


“흐읍!”


피를 매개로 점혈을 풀어낸 곽섭은 양팔에 힘을 불어넣었다. 퍽. 그를 묶었던 밧줄이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


호연은 눈을 크게 떴다. 당황한 그 모습을 본 곽섭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역시 상대는 사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호연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두려운 듯이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크흐흐. 이제야 스스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통감하는 모양이군. 이건 수태의 술이라는 술법이다.”

“수태의 술?”

“그래.”


곽섭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수태(獸態)의 술(術)!

피를 바치는 대가로 시전자의 힘과 내공을 크게 부풀리는 술법이었다. 시전 난이도가 높은 사술이었지만, 귀혼시마의 영역이 돕는다면 그도 펼칠 수 있었다.


설명을 듣던 호연은 슬쩍 되물었다.


“그 효과도 분명 대단하겠지?”

“흐흐, 그렇다. 이 피를 대가로, 곧 나는 이 영역에서 일류의 경지에 들어선다. 그렇게 떨고 있도록 해라!”

“···곧?”

“그래. 목도해라! 그분께서 내려주신 힘······ 크아악!”


-쾅!

곽섭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의 위협을 듣던 호연이 곧바로 뛰쳐나와 얼굴을 갈겨버린 것이다.


무방비하게 주먹을 허용한 곽섭은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호연은 보법을 펼쳐 따라붙으며 한심하단 목소리로 말했다.


“이래서 술법사들이 문제라니까. 자랑을 할 거면 술법이 끝나고 해야지, 그 전에 신나서 다 말해주면 되나?”

“······!”

“무인으로서는 삼류군.”

“놈!”


후웅! 곽섭은 날아가는 와중에도 팔을 뻗었다.

중심도 잡히지 않은 공격이다. 호연은 가볍게 고개를 틀어 주먹을 피했다. 권풍에 그의 앞머리가 살짝 흩날렸다.


‘음.’


어설픈 공격이지만 확실히 주먹에 담긴 기세는 무서웠다. 아마 조금만 더 있으면 힘이 더 올라오리라.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그 전에 끝낸다.’


“놈. 죽여버리겠······!”


-빡!


호연은 정신을 차리려는 곽섭의 오금을 걷어찼다.

채 균형을 찾기 전에 다시 허용한 일격. 곽섭의 중심이 기우뚱 앞으로 쏠렸다. 호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법을 펼쳤다.


하나, 둘. 가볍게 뻗은 세 보에 곽섭의 후방이 점해졌다. 호연은 곽섭의 허점으로 사지를 찔러 넣었다. 곧장 반격하기 힘든 위치였다.


“!”


곧 호연의 팔다리가 몸 곳곳을 뱀처럼 감쌌다.

상대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절묘한 유술이었다. 사지를 옭아매자 옴짝달싹 못 하게 된 곽섭은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컥!”

“손속에 사정은 못 두겠군.”


호연은 그대로 몸 전체에 힘을 줬다.


우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곽섭의 뼈가 뚝뚝 부러지는 게 느껴졌다. 무인으로서의 단련을 거치지 않은 몸은 그렇게 단단하지 못했다.


“끄아악······!”


곽섭의 힘이 풀리자 호연은 한 손을 떼 온몸의 혈도를 두들겼다. 이러면 사술이고 뭐고 숨이나 쉬는 게 고작일 터였다.


마지막으로 혼혈(昏穴)을 짚자 곽섭은 그대로 풀썩 정신을 잃었다. 호연은 곽섭의 몸을 밀쳐내고 일어났다.


“윽.”


호연은 찔끔한 표정으로 몸을 풀었다.

그래도 확실히 강력한 사술이긴 한지, 힘을 맞대고 나니 몸이 뻐근했다. 주변을 둘러본 호연은 남은 밧줄로 곽섭을 칭칭 묶었다.


“이제 됐군. 귀찮은 놈 같으니.”

-······쟤가 좀 불쌍하게 보이면 내가 이상한 거지?

“응.”


호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곽섭이 아낌없이 밑천을 다 퍼주긴 했지만, 배교도인 이상 불쌍한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이놈들이 죽인 양민만 몇인데.”


당장 호연이 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이강촌에서도 수많은 피해자가 나왔을 터였다. 그걸 생각하면 하등 미안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그래. 아무튼 나 이제 나가도 되겠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자 호리가 성좌신주 속에서 퐁 튀어나왔다. 동굴 바닥에 대고 기지개를 켠 백여우는 다시금 호연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

“일단 내부 구조부터 확인하고.”


호연은 주변을 관찰했다.

곽섭과 싸우느라 몰랐는데, 그들이 떨어진 공동은 생각보다 그 규모가 컸다. 사방으로 뚫린 통로는 맨눈으로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다.


“청룡대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바깥에 있는 진법부터 파훼해야겠지. 기반은 다 여기 있을 테니까.”

-그 다음에는?

“그야 도둑질을 해야지.”

-···누가 마두 아니랄까 봐.

“······.”


마두라는 말에 호연은 살짝 찔끔했다. 곧 그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생각해봐, 호리. 귀혼시마 같은 마두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면 어디서 온 거겠어? 당연히 사악한 마음으로 사악한 방법을 써서 얻은 거겠지.”

-···그렇겠지.

“그럼 그걸 다시 마두한테서 훔치는 건 정의로운 행동이 아닐까? 그래, 의적인 셈이지.”

-······.


기적의 논리에 호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기 합리화를 성공한 호연은 한층 당당한 태도로 걸음을 옮겼다.


“자, 가자. 정의로운 도둑이 되러.”

-······원시천존이시어. 부디 허락하소서.


호리는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기도했다.



* * *



그 시각 동굴 외부.


“······.”

“후우.”


청룡대가 휴식하고 있는 주둔지의 분위기는 암울했다. 정확히는 추백령이 호연과 정찰 임무를 나간 후 혼자 돌아왔을 때부터.


-대주······!

-추백령. 무슨 일이지? 진호연은?

-진호연이······!


“······.”


사소백은 창백한 얼굴로 돌아왔던 추백령을 떠올리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한숨이라도 내쉬고 싶었지만, 옆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추백령을 보고 있자니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그 정도는 덜했지만, 다른 청룡대 무인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입이라 한들 동료를 잃는 건 정신적으로 충격이 큰 사건이었다.


하물며 그 동료가 남을 위해 희생했다면 더욱이.


남을 위해 초개처럼 몸을 던지는 의기(義氣). 백도에서 자주 강조하는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를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살아 있을까?’


솔직히 확률은 희박했다.

속절없이 사술에 당한 이상 반격의 기회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하물며 상대는 사교도였다. 인질을 내세울 이유도 없는 만큼 호연을 살려둘 가능성은 적었다.


“심부로 나아간다.”


그럼에도 사소백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적을 가르는 음성에 청룡대의 무인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괜찮겠습니까? 귀혼시마가 펼친 사술이라면 청룡대에도 피해가 클 수 있습니다.”

“귀혼시마는 지금 근방에 없다고 했다. 절정의 술법사가 펼친 진법이라도 직접 조종하지 않는 이상 크게 위협적이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야······.”

“그리고 진 무사가 그 안에 있지 않나. 살아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니라면 시신이라도 수습해야겠지.”

“······.”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마지막 말은 추백령에게서 나왔다. 사소백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죄책감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아니었다.


추백령은 굳건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녀는 곧 평소의 가벼운 모습이 싹 가신 분위기로 창을 들고 일어났다.


“명분이라면 제가 가장 큽니다. 저 대신 목숨을 던진 후배를 찾는 일인데, 앞에 서지 않는다면 어찌 맹의 무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추백령.”

“제가 질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그래. 알겠다.”


사소백은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추백령에게도 지켜야 하는 명예가 있었다.


“저도 앞에 서겠습니다.”

“술법이라면 저도 조예가······.”


추백령의 말이 시위가 됐는지, 청룡대의 다른 무인들도 하나같이 앞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호연과 같은 신입인 당소소와 당우현도 있었다.


하나같이 결연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사소백은 그 단합에 내심 감탄했다. 청룡대의 결속이 한층 더 굳어진 것이다.


‘···대단하군.’


호연의 의기로운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 사실을 떠올린 사소백은 다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죽기엔 정말 아까운 인재였다.


‘대체 무슨 마음가짐이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군.’



* * *



“날로 먹으니까 기분이 좋군.”


그 시각.

호연은 귀혼시마의 동굴을 탈탈 털어먹고 있었다.


호연은 주섬주섬 땅바닥을 훑었다. 파괴된 진법의 핵을 중심으로 온갖 희귀한 술법의 재료들이 흩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호리.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나 봐. 혈교 시절에는 생각도 못 했는데, 이렇게 복이 오니까 알겠네.”

-······난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착하게 살아야겠군.”


호리는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호연은 전혀 개의치 않고 광석이며 약재들을 쓸어 담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추코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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