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천마에게 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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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날1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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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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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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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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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DUMMY

23화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생신... 생신..”


당초에 내 생일을 축하받은 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가장 최근에 기억나는 게 약 900여 년 전이니.


“생일 축하는 어떻게 하는 거지?”


말했다시피 900여 년 전에 기억나는 거라고는 친구들끼리 술이나 잔뜩 퍼마신 것밖에 없었다. 그 후에는 필름이 끊겨서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술을 좋아하시려나?”


아니, 애초에 잔뜩 술이나 퍼마시는 생일 축하는 빼야 하는 게 맞나?


“하영아, 하영이는 어떤 생일 파티가 좋아?”

“샌일..?”

“응, 생일.”


폐점 시간이 지나갔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당장 할머니 생신이 내일모레로 치달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영이는... 케이키를 먹고 시퍼요..”

“케이크 말하는 거야?”

“네에! 달아요.. 그리고 마시고.. 또 부드러어요..”

“그렇구나..”


일단 생신 파티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는 케이크가 필수였다.

생일파티를 잘 모르는 하영이도 케이크는 알지 않는가.


‘그래, 시내에 나가서 제일 큰 케이크로 사 오자.’


돈은 문제 될 게 없었다.


당장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갑을 빼 안을 열어보면 억 소리가 나게 들어있었으니까.


“그럼 생일 선물은 뭐가 좋을까? 하영이는 생각해 둔 거 있어?”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거.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영이는... 어, 하영이도 자 모르게서요..”


하영이도 인영도.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물건이 무엇인지. 즐겨보시는 Tv 채널이 무엇인지. 가끔 드시는 술은 무엇을 드시는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몰랐다. 항상 받기만 했기에 당연하다 여겼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걸 하영이도 느꼈는지 풀이 죽었다.


“하영이는 할무니에 대해서 잘 모라여..”

“응, 아빠도. 근데 있지 하영아.”

“네, 아바.”

“이제라도 알아가면 되는 거 아닐까?”


그래 기회가 없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이 적기다.


“오늘부터 할머니가 받고 싶어 하시는 물건에 대해서 알아보자.”

“꼬! 아라낼거에여!”


두 부녀가 손을 모으고 다짐했다.


***


인영은 거실에 앉아서 빨래를 개며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왜.”


맞은편에서 같이 빨래는 개던 할머니가 평일 드라마에 끝인 막장 드라마에 시선을 둔 채 답했다.


“할머니는 뭐가 좋으세요?”


붉은색 옷을 개며 묻자 할머니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일단 너 때문에 드라마 소리가 안 들리니 소리가 큰 tv나 저기 그 뭐야. 스피리인지 스파리인지 그것도 하나 있었으면 한다.”

“스피커 말씀하시는 거죠?”

“아, 그거나 저거나.”


할머니는 내 대답에 건성, 건성 대답하며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는 드라마를 보았다.


쫙!


김치 싸대기를 정장을 맵시 있게 빼입은 남자가 맞는 장면이었고 귓등을 때리는 찰진 소리였다.


‘그러니까.. 저 소리를 서라운드 사운드로 듣고 싶다는 건가?’

그런니까 저 김치 싸대기를 맞는 장면을..? 저 찰진 소리를?


대체 5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어째서 세상은 이리도 폭력적으로 변할 것일까.


오늘 인영은 자신이 1000년간 너무 늙었나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일단은 준비하기로 했다.


***


“할무니..”

“또, 왜.”


하영이가 입에 칫솔을 문 채 옆에서 같이 이를 닦으시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무니는 머가 가고 시퍼요..?”


치카, 치카.


혼자서 칫솔을 들고 분주하고 손을 움직이면서 할머니를 보았다.


이번에도 할머니는 살짝 고민했다.


“쥐새끼, 너는 이 칫솔질이 편하냐? 이 할미는 편하지 않다.”


벅벅. 할머니가 칫솔로 이 안쪽을 살살 긁어내시며 말했다.


“딱, 그 머시여. 자동으로 칫솔질 되는 그런 게 필요해. 진동인지 전동인지.”

“그런 게 이구나..”


할머니의 말씀을 경청하던 하영이 감탄을 흘렸다.


“그리고 할미는 냉장고가 너무 작은 거 같텨. 장을 봐도 많이 사면은 냉장고에 들어가질 않고. 적게 사면은 금방 식자재가 바닥나서 또 시내에 나가야 하고. 커다란 냉장고가 필요해.”

“그러쿠나..”


하영이 그렇게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제도 모르게 무엇인가를 꿀꺽 삼켰다.


꿀꺽.


“하영아!”


할머니와 하영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인영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치약을 삼키면 어떡해..”

“네에..?”


하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걱정하는 표정의 인영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데.. 마시서요.. 달기 마시 나서요..”


하영이가 칫솔에 바른 치약은 어린아이들에 대통령인 뽀로라가 그려져 있는 치약이었다.


딸기 맛이었고, 다행히 치약 한 부분에 먹어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래도 또 먹으면 안 돼 알겠지?”

“마시는데...”


다음부터 치약을 살 때는 약간 매콤한 2080으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


살금, 살금.


제대로 된 수확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집을 나서는 할머니의 뒤를 따랐다.


“아바.. 할무니 어기 가여..?”


졸린 눈을 비비며 억지로 잠을 깨우는 하영이가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영이의 질문에 답했다.


“친구분을 만나시러 가는 거 같아.”

“할무니.. 칭구..!”

“쉿, 쉿, 하영아 쉿.”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하영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입술을 잡았다.


두 사람은 걱정을 안고 벽에 숨어 눈에 빼꼼 내밀고 할머니를 살폈다.


“하영아.. 다행이다 할머니가 눈치채지 못해서..”

“휴우...”


그제야 입에서 손을 치운 하영이 안도의 숨을 뱉었다.


“이제부터 조심스럽게 말해야 해. 알겠지?”

“아라요..”


소곤소곤 말하며 할머니를 살폈다.


할머니는 어느 집 정문에 서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몇 분 두드리고 나자 문에서 이상하 할머니와 또래로 보이시는 할머니가 나오셨다.


“어머 상하야..”

“그래 내 왔다. 근데 그보다 이게 뭔 냄새여..?”


이상하 할머니가 콧등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아, 요거? 술 냄새여 술 냄새.”

“뭔 날이여? 대낮부터 술이라니. 자네답지 않은데..”


차갑게 쏘아붙이듯 상하 할머니가 말씀하셨지만, 걱정이 담겨있다는 건 할머니와 연이 있다면 모두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하 할머니의 앞에 선 할머니는 그런 상하 할머니가 익숙하신지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라. 뭐 일이 생겨서 먹나? 그냥 기분 좋아서 한잔 걸쳤어.”

“뭐가 그릭 기분 좋은데?”

“그게 있제? 우리 큰 손주가 오늘 아침에 택배를 붙인 거 있지? 그것도 엄청 비싼 와인으로?”

“와인?”

“그려 와인! 포도로 담근 주, 말이여.”


그렇게 말씀하신 할머니가 살짝 자랑하듯 포도주를 상하 할머니한테 보여주었다.


“헹, 결국 술이제.”


퉁명스럽게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에 부러움이 언뜻 이지만 엿보였다.


“에이, 들어와서 한잔 걸쳐..!”


그런 이상하 할머니를 할머니가 끌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 모습을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본 인영이 하영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트랑 전자 마트랑 다 가자.”


스피커, 냉장고, 전동칫솔, 와인, 케이크, 편지랑 꽃다발까지.

할머니가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자랑할 수 있을 만큼의 생신 잔치를 벌이기로 했다.


***


사무치도록 외로운 밤이었다.

달도 비치지 않고, 별도 반짝이지 않는 나 혼자만이 남아있는 듯한 그런 외로운 밤이었다.


술에 취해서 더욱 그런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거 같기도 했다.


“에휴, 주책도 이런 주책이 없지.”


벌써 12시가 지나갔으니 오늘은 제 생일이 것만 그녀는 아무런 감흥도 없어 보였다.


아니 혼자 보내는 생일이 익숙해진 것이었다. 젊은 나이에 결혼해 벌써.


78년.


그리고 약 20년간 생일은 그저 가족들과 소소하게 이야기하면 밥을 먹는 날로 빛이 바랬다.


“그마저도 올해는 안 온다니..”


참.


“에휴.”


나이를 먹고 술을 먹으니 또 주책이다.


땅을 보며 걷던 이상하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집을 보았다.

창문을 통해 빛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자나..”

“자네..”

“자는구나.”

이런 헛소리가 내 입에서 튀어나올 만큼 내가 많이 취했구나...


“나이를 먹고 술을 처먹으니까 그렇제...”


저 자신에게 타박한 이상하 할머니는 문의 도어락을 열어 패스워드를 주름진 손으로 꾸욱, 꾸욱 눌렀다.


그런 손을 내려다 본 이상하 할머니는 자신이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터인가 뭐시기인가 각성하고 나서 나름 젊게 살아왔다고 생각했 것만.


역시 밤이면 사무치게 외로운 것을 보며는 노망이 난 것이 분명했다.


띠.


띠리릭.


도어락에서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려오자 할머니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고요했다. 적적했고.


왜 이런 감상을 느끼고 있는지.


“어휴.”


드르륵, 현관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바닥이 따끈한 게 내가 말했던 대로 잘 보일러를 튼 모양이다.


상하 할머니는 외투를 벗어 안방 문 앞, 문턱 위에 걸려있는 빨래 걸이에 옷을 걸었다.


“티비나 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냥 자기로 했다.


그렇게 안방 문고리를 돌리려 할 때.


부엌 쪽에서 부스럭 소리와 함께 고운 목소리로 한 노래 소절이 들려왔다.


듣지 못한지 조금은 오래된. 노래.


“샌일 추카 함미다아.. 샌일 추카 함니다아.. 사랑하는 할무니.. 샌일 추카 함니다아!”


부엌의 문이 벌컥 열리며 새하얀 케이크를 든 하영이 나타났다.

그런 귀여운 증손의 뒤로는 새하얀 꽃과 짙은 분홍색 장미를 섞은 꽃다발을 선 채 빙그레 웃고 있는 손자가 보였다.


“할머니. 초 부셔야죠. 생일에 가장 중요한 게 초 부는 거 아니겠어요?”


얼떨떨한 표정의 할머니는 인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온 케이크 위에 올려져 있는 초를 불었다.


탁.


불을 켜졌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였다.

풍선도 보였고 얼음 바구니에 담가줘 있는 와인도 보였고 맛있는 음식들도 보였다.


“샌일 추카해요.. 할무니..”

“하.. 이런 야심한 밤까지 안자고 뭐하냐.”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신이 들어도 깜짝 놀랄 만큼 퉁명스러웠지만 작고 사랑스러운 증손과 손자는 그저 히히 웃었다.


“그야 당연히 할머니 기다렸죠.”

“하영이도요!”

“그래.. 그러냐?”


가슴 속으로 무엇인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오래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인지라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받으세요. 할머니.”


인영이 꽃다발을 건네며 꽃말을 설명했다.

“요, 하얀건 연령초로 장수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고요, 분홍색 장미는 고마워요, 라는 뜻이 담겨있어요.”

“이, 할미가 얼마나 더 살라고 이런 걸 줘?”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하영이랑 저랑 매년 이렇게 놀러와 맛있는 것도 먹고 하죠.”

“마자요!”


하영이 역시 동의했다.


“맨날, 맨날 올 거에여.. 할무기 조아해여..!”

“그렇다고 하잖아요.”


씨익, 짓궂게 웃는 손자가 참 얄미웠다.


“이미 불콰하게 취하신 거 같으신데. 외안이라도 한잔 걸치시고 주무실래요?”


얼음통에서 와인을 꺼낸 인영이 불쑥 내밀며 다시 한번 말했다.


“이거 엄청 비싼 거예요. 거의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이상하 할머니는 그런 손주의 말을 들으며.


지금 이 기분을 감정을 깨달았다.


‘외롭지 않은. 기쁨인가..’


오랜만에 느끼는 이 감정은 새롭고, 동시에 행복했다.

스읍, 받은 꽃다발에 냄새를 한번 맡았다.


싱그럽다. 나의 말도 저절로 싱그럽게 나왔다.


“새벽이니 적당히 처먹어라. 살찐다.”


퉁명스럽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싱그러운 한마디 뱉은 할머니가 바닥에 앉았다.


만족스러운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작가의말

제가 쓰면서도 참... 저도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걸 잘 모르고 있었네요..

글 쓰면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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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8화 도하 안녕? +4 21.09.29 2,131 56 12쪽
48 47화 갯벌 헌팅. +2 21.09.28 2,201 5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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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화 아빠. 그만! 멈춰! +3 21.09.24 2,687 56 12쪽
43 42화 하영이는 바다에 가고 싶어. +3 21.09.23 2,636 65 12쪽
42 41화 인영의 땀을 찾아라! +3 21.09.22 2,665 59 12쪽
41 40화 황소의 운동. +6 21.09.21 2,849 61 12쪽
40 39화 우리가 잊은 것. +5 21.09.20 3,013 61 12쪽
39 37화 어. 안녕하세요? +5 21.09.19 3,227 59 11쪽
38 37화 애견카페. +4 21.09.18 3,286 5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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