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첫 등원.
31화
첫 등.
두리번, 두리번. 터벅, 터벅.
엄마와 케르베로스의 눈에 한심함이 어렸다.
“어우, 야! 정신 사납게 뭐해!?”
결국 참지 못한 엄마의 고함이 고막을 마구 두들겼다. 그리고 고막을 때리는 소리 옆으로는 귀여운 하영이의 목소리가 섞였다.
“우와.. 아바 바르다..”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식은땀을 흘리는 인영이 빠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영아..”
그런 인영은 발을 동동거리며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멈추고 해맑게 웃고 있는 하영에게 다가갔다.
그 후 털썩 무릎을 꿇고 엄마에게 머리 손질을 받는 하영이를 끌어안았다.
“어린이집 안 가면 안 돼?”
하영이는 계속해서 해맑게 웃으며 기대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
해맑게 웃지도 못하겠고 기대 대신 걱정과 잠시 떨어질 생각에 손발이 달달 떨렸다.
“얼씨구, 하영이가 어디 전쟁통에 가기라도 하냐? 어? 위험한 곳에 가냐?! 어린이집! ‘어린이’집에 가는 건데 다 큰 녀석이 그러고 있어!”
“절씨구!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린이집에 위험한 게 얼마나 많은데! 눈을 괴롭힐 수도 있는 모래도 있고! 혹시 나쁜 친구가 있을 수도 있고! 제가 없어서 넘어질 수도 있잖아요! 못 보내! 우리 하영이 못 보내겠어요!”
획. 앉아있던 하영이를 크게 끌어안았다.
“이...놈이..!”
엄마의 목소리가 분노로 미세하게 떨렸다.
“원수 같은 놈아! 빨리 안 꺼져?”
짜악!
시원하고 찰진 등 싸대기 소리가 집 전체에 퍼졌다.
소리를 들은 케르베로스의 3쌍의 눈에는 왜 저렇게 사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 담겼고.
[( ̄へ ̄)]
시스템은 실눈을 뜬 채 한심하게 보고 있었다.
형은 병X라고 중얼거리며 지나갔고, 아빠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얼굴로 옆에서 그냥 Tv를 계속 시청했다.
유일하게 자신을 보고 등을 어루만지고 있는 건 내 딸 뿐이었다.
“아바.. 하영이 어리니집 가야 해여..! 도하란 새기 손가라 거러서요.. 아바가 약소으 지켜야 하다고 해자나요..”
“응..”
벌써 내 딸이 이만큼이나 컸나? 약속도 지켜야 한다는 걸 아는 우리 하영이가 너무 기특했다.
물론, 그렇다고 내 걱정이 눈 녹듯이 녹아버린 건 아니었다.
“훌쩍..”
코를 한번 먹고 인영은 하영이를 다시 소파에 앉혔다.
“흐윽..”
고개를 획 돌린 인영이 하영이를 눈에 담지 않았다. 더 담았다가는 정말 보내기 싫어질 거 같다.
“염병.”
***
양 갈래로 길게 땋은 하영이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걸었다.
씩씩하게 걷는 하영이의 모습은 감개무량 그 자체였다.
라온 어린이집 정문에 잠시 멈춘 인영이 하영이와 눈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친구랑 싸우지 말고, 다치지 말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알겠지? 친한 친구도 사귀고..”
더 말하고 싶지만 지금 보내지 않으면 방금 말했다시피 보내고 싶지 않아질 거 같다.
“네에! 아바눈 하영이 미고이서요..!”
후우. 헤어질 준비를 한 인영이 어린이집 초인종을 눌렀다.
땅동~~!
벌컥. 어린이집 문이 열리고 기다리고 있던 소민채 원장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아버님 오셨어요?”
“네에...”
힘없이 답한 인영이 하영이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신발장에는 어제 보지 못했던 하영의 이름표가 적힌 신발장이 하나 생겨있었다.
그게 다시 한번 하영이가 나와 떨어진다는 걸 상기시켰다. 우수에 찬 눈으로 신발장을 보는 인영을 착각한 듯 소민채가 설명했다.
“어제 바로 만들어뒀어요. 하영이 이름표는 해바라기 반에 맞춰서 꾸며봤는데, 어떠세요?”
“좋아요... 너무.”
“하영이도 조아요..!”
“그래? 다행이다. 하영이가 좋아한다니까.”
소민채가 익숙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스읍...
눈물이 차오르는 걸 억지로 참으며 마지막으로 하영이와 인사를 나눴다.
“하영아, 아빠 갈게. 아빠 보고 싶으면 선생님께 말씀드려, 아빠가 바로 달려올게. 알겠지?”
“네에..”
인영은 하영이를 꼭 끌어안았다.
애틋한 부녀를 보는 소민채 선생님은 뒤에서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님. 저희 어린이집 아이들은 모두 착해요, 괴롭힘도 없고. 놀림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원래 견주들 모두가 그렇게 말하곤 들 해요.. 어린애들이 개라는 건 아니지만...”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영이 90도 인사를 하고 뻣뻣하게 몸을 돌려 부자연스럽고 동작이 크게 하고 어린이집을 나갔다.
“아바 자가..!”
하영이의 인사를 받은 인영의 눈에 눈물이 조금 맺혀있었다.
***
멀어지는 아빠의 등을 본 하영은 왠지 시무룩해졌다.
“아바...”
눈물이 맺힐 정도로 슬픈 건 아니지만, 그냥 시무룩하고 저기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하영이의 감정을 대충이나마 눈치챈 원장님이 급히 입을 열었다.
“하영아, 이제 가자. 친구들이 모두 하영이 기다리고 있어.”
“우웅.. 네에.”
고개를 끄덕인 하영이 아빠의 등에서 시선을 떼고 원장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해바라기 반으로 향했다.
손을 잡은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선샌님..”
“응? 왜?”
“아바가 하영이 데리러 올가요..?”
“아.”
소민채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처음 어린이집에 오는 어린아이들이 생각하는 게 별로 없었기에 하영이가 말하고 있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하영아, 하영이는 아빠 좋아하지?”
“네에.. 하영이는 아바 마니 조아해여.. 막, 막. 보고 시퍼요...”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는 하영이를 보는 소민채의 입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응, 그래. 하영이가 아빠를 좋아하는 만큼 아버님도 하영이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을까? 아니면 하영이보다 더 좋아할 수도 있고.”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하영이가 걱정 한 꺼풀을 벗어던지고 힘차게 답했다.
“우우.. 아니에요, 하영이가 더 조아해요..!”
“크크, 그래 하영아 하영이가 아빠 더 좋아하는 거로 하자! 그럼 하영아 친구들 만날 준비는 끝났어?”
별로 걸은 거 같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은 벌써 해바라기 교실 문 앞에 있었다.
“아직 안됐으면 빨리 심호흡하고.”
“후우, 호오. 다 해서요..”
“쿡쿡, 그래.”
소민채는 하영이의 손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안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 문을 열어젖혔다.
드르륵, 소민채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동시다발적으로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안녀하세요!”
그런 아이들에 인사를 들으며 소민채가 하영과 함께 교실의 앞으로 이동했다.
“반가워요, 여러분.”
“네에!”
하영이는 이런 분위기가 처음인지 선생님의 뒤에 숨어 눈만 빼꼼 내밀어 교실을 살폈다.
12명 정도의 어린아이들이 교실 자리에 앉아서 하영이와 선생님을 보고 있었다.
“우와, 예브다..”
한 남자아이의 말에 소민채는 ‘껄껄’ 웃었다.
“맞아요. 엄청 예쁜 친구죠?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생활한 친구예요. 자, 하영아 자기 소개해보자.”
하영이는 어젯밤에 아바와 할무니 그리고 크아바 앞에서 연습했던 자기소개를 친구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했다.
“안녀..! 나는 하영이야.. 6사리고. 오늘 처음으로 와서... 다드 잘 부타카게..!”
그렇게 말하곤 손을 흔드는 하영이의 모습에 어제 만났던 말총머리를 한 차도녀 차도하를 제외한 모든 어린아이가 넋을 놓았다.
몇몇 남자아이는 얼굴까지 붉힌 것은 안 비밀이었다.
하영이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소민채를 돌아보았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소민채가 탄성을 뱉자. 탄성을 들은 원생들이 정신을 차렸다.
“우와!”
짝, 짝, 짝!
용기를 낸 하영이에게 박수! 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손뼉을 쳤다.
“하하, 하영아 저기 도하 옆에 앉아.”
“..네에..!”
새로운 친구들에게 환영을 받아 기분이 한껏 업된 하영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하의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 하영아? 약속 지켜줬구나..”
“웅, 안녀 도하야..!”
하영과 도하는 어제 어린이집을 떠나기 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그런 약속을 하영이가 지켰으니 적은 호감이 많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하. 오늘은 새로운 친구가 왔으니 기념 삼아서 그림을 한번 그려보도록 해요! 주제는 자유롭게 원하는 걸 그려보도록 해요.”
그림이라는 말에 하영이의 어깨가 올라갔다.
“어머, 우리 하영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네에! 하영이 아바가 그림 잘 그려요..! 그래서 그림 조아요..”
“그랬구나. 나중에 아버님이 그린 그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네.”
“네에..!”
그런 모습을 지켜본 도하 역시 그림을 보고 싶은지 하영에게 물었다.
“하영아, 나중에 나도 보여주라.”
“응! 도하야, 나준에 보여주게..!”
하영이의 대답이 긍정이자 주변에 모든 친구가 입을 열었다.
“하영아 나도 보고 싶어!”
“결혼하자!”
“그 전에 우리 친해지자!”
중간에 그냥은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섞여 있었지만, 하영이는 결혼이라는 단어를 자세히 모르고 있었기에 인영의 귀에 흘러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하영이가 당황하자 소민채가 다시 급하게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제 최고의 그림을 그려보도록 해요. 그리고 다 그리고 나서 발표도 할 거예요!”
““네에!””
***
“하영아 잘 지냈어?”
하교 시간이 되자마자 빛살과 같이 튀어온 인영이 하영을 끌어안았다.
“네에..! 그러데 하영이 아바 보고 시퍼서요..”
“그랬구나..”
인영이 조금 더 세게 하영이를 끌어안았다.
소민채가 가족의 표본 같은 신파극을 찍는 두 부녀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엄청 일찍 오셨네요? 원래 대부분은 이 시간대에 안 오시거든요.”
“아, 그런가요..”
너무 과했나 싶지만. 나와 하영이만 좋으면 상관없으니 딱히 상관없었다.
“아, 맞아, 아버님 오늘 하영이가 그린 그림이에요.”
A4 종이보다 조금 더 커다란 크기의 용지를 받은 인영이 그림을 뚫어져라 보았다.
“와...”
예전처럼 형태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뭉개진 그림이 아니었다.
도화지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는 나와 하영이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였다.
그리고 그림의 중앙에는 손을 잡은 어른과 아이가 있었다.
이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김인영과 김하영이었다.
“하영이가 오늘 그림 발표하는 데 얼마나 해맑게 웃으며 말하던지. 그런 아빠가 있구나! 저도 부러울 뻔했다니까요?”
“그렇군요.”
수줍게 웃으며 내 뒤에 몸을 숨기는 하영이가 그랬다니.
“힘냈구나. 우리 하영이?”
“..헤헤 네에!”
수줍게 웃은 하영이 내 뒤에서 나와 그림을 설명했다.
“이거는 아바란 하영이에요... 그리고 이거는 아바란 하영이가 사는 고이고... 그리고 할무니란 크아바란 할아부지가 가치 이서요.”
하영이와 인영의 옆으로는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빠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아바란 하영이라 행보케요..! 가치 이서요..”
“그러쿠나..”
인영은 하영이를 안아 들고 빙글빙글 돌았다.
두 부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소민채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희 반 아이들이 하영이를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저희 반 남자애들 절반이 모두 하영이를 그렸어요. 호호, 막 결혼한다...”
우뚝.
무엇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소민채가 말을 멈췄다.
“아버님 무슨 일 있으세요?”
소민채가 조심스레 우뚝 멈춰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영을 살폈다.
“그놈... 아니 얘들은 누구입니까?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역시 어린이집은 위험하다.
- 작가의말
다행히도 제 그림 실력이 하영이와 비슷해서 한 번 그려 보았습니다. ㅎㅎ
동그라미는 제가 글에 표현하지 않은 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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