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내 힘 돌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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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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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3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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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1. 이별 (6)

DUMMY

171.


“... 무슨 일이시죠.”


“아. 다름이 아니라, 저희 연구소에서 하는 실험에서 작은 문제가 하나 발생했는데, 마나현상분석학 전문가인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그런 의미에서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 무슨 문제입니까?”


“죄송하지만 제가 말재주가 모자라서, 말씀드리기보단 직접 저희 연구소로 가서 눈으로 보시는 게 훨씬 빠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겨울이는 여기서 잠시 쉬도록 하고, 저랑 둘이 빠르게 갔다 오는 건 어떻겠습니까?”


노골적인 유인을 펼치는 한가을. 예상대로 한가을의 목적은 한겨울이 아니라 나였다. 한편 녀석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한겨울이 내게 눈으로 말을 걸어왔다. 웃기게도, 이제는 입모양으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대화가 됐다.


‘뭐 해? 얼른 갔다 와. 한가을 저 자식 꿍꿍이 알아내려 왔다며. 좋은 기회잖아.’


‘... 괜찮겠냐. 너 혼자 남는데.’


‘응? 왜. 걱정돼? 나 혼자 남으면 무슨 일 생길까봐?’


‘... 살짝.’


‘이히히. 뭐래. 야. 나 이제 내 한 몸 못 지킬 정도로 약하지 않거든? 그리고 뭣하면 이걸로 도망가면 되니까, 걱정 말고 갔다 와.’


‘...’


살짝 웃으며 은근슬쩍 주머니 속의 [워프 키트]를 살짝 내비치는 한겨울. 뭔가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니 발목은 안 잡거든?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온몸으로 말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저... 교수님. 혹시 시간 안 되십니까? 정 안 되시면 저녁 먹고라도-”


“... 아닙니다. 조금만 있다 나가겠습니다.”


“아. 협조 감사합니다. 여튼 준비 되시면 정원 쪽으로 나오십시오. 미리 차를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저벅- 저벅-


점점 멀어져 가는 한가을의 발소리. 나는 라인하르트와 메시지를 나누던 마나블렛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 금방 다녀올게.”


“말로만?”


“... 응?”


“다녀오기 전에, 해줘야 할 게 있잖아.”


그리 말하고선 눈을 감고 턱을 살짝 들더니, 그대로 입술을 뻐끔거리는 한겨울. 카메라 있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러는 뻔뻔한 모습에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할 건 해야 했다.


쪽.


번개처럼 입을 맞추고 떨어지자, 천천히 눈을 뜨는 한겨울, 녀석이 묘한 미소를 띤 채,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잘 다녀와. 쓸데없이 다치지 말고. 알겠지?”


“... 노력할게.”


당연한 소리지만, 노력이 항상 보답을 하는 것은 아니다.


---


띵-!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

[ 목적지 : 매지시아 생체마법공학연구소 ]


“하하. 죄송합니다. 저희 집에서 이렇게 멀 줄은 몰랐네요.”


“...”


빨리 갔다 오자던 한가을의 말이 무색하게, 이동에만 40분이 넘게 걸렸다. 녀석의 고급 승용차가 멈춘 곳은 거주구역 외곽의 소규모 무인 연구소. 말이 소규모지, 그래도 이니시움 강의동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


녀석을 따라 불 꺼진 연구소 1층 로비로 들어가자마자, 홀로그램 창이 하나 떠올랐다.


[ 매지시아 생체마법공학 연구소에 방문하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됐고,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


[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하시려면 생체 스캔이 필요합니다. ]

[ 생체 스캔을 시작합니다. ]


지이이이잉-


어디서 나온 건지도 모를 레이저가 한가을의 손을 스캔하기 시작하던 바로 그 때.


띠링-!


[ 라가놈 -> 권민성 : 허허. 자네 타임 패러독스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 겐가? ]


한창 관심이 고플 나이의 노인네가 아까 하던 대화를 계속하고 싶은지, 다시 한 번 메시지를 보내왔다. 답장하려던 찰나, 생체 스캔을 받던 한가을이 물어왔다.


“누구입니까?”


“... 그냥 아는 사람입니다.”


“아하하. 그렇군요. 허나 죄송하지만, 연구소 내에서 마나블렛 사용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보안 이슈가 있어서요.”


“...”


아무래도 라인하르트한테 답장은 나중에 해야 할 것 같다.


[ 생체 스캔 완료! ]

[ 어서 오십시오. 한가을 이사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한편 생체 스캔이 끝나자마자, AI 비서로 추정되는 여성형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한가을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C-7 구역에서 진행된 추가 실험은 어떻게 됐지?”


[ 24시간 전부터 진행된 2773건의 추가 실험 결과는, 모두 실패로 기록됐습니다. ]


“... 모두?”


[ 네. 모든 실험체들은 과도한 변이 끝에 사망하거나, 변이 전에 신체의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었습니다. ]


“... 그렇군. 그럼 건물 불 키고, 실험실은 기본 세팅만 다시 해 놔.”


[ 알겠습니다. ]


팅- 팅- 팅- 팅-


여성형 홀로그램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연구소 전체에 불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가을 역시 진지한 표정을 풀고, 내 쪽을 보고 웃으며 손짓하며 연구실 내부를 안내했다.


“일단 오신 김에 이곳 소개부터 하자면, 저희 매지시아 컴퍼니의 생체마법공학 연구소입니다.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군용 생체병기죠.”


“그렇습니다. 잘 아시는군요. 하하.”


모를 수가 없지. 매지시아가 만들어낸 생체병기들과는 이미 ‘저쪽 세계’에서 질리도록 싸워 봤으니까.


“...”


“...”


저벅- 저벅-


특히 지금 내 옆에서 점잖은 웃음을 띤 채 걷고 있는 한가을, 이 녀석이 만드는 생체병기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것들뿐이었다.


사고를 전염병처럼 퍼뜨리는 생체병기 [인플루언서]라던가, 혹은 4만 개의 뇌를 연결해서 마나를 증폭시킨 [올 포 원]이라던가, 또 자기 누나인 한봄과 한여름을 섞어서 만든 [아수라]까지... 잠깐. 혹시 ‘저쪽 세계’의 한겨울도 이 놈 손에-


“무슨 일 있으십니까? 표정이 좋지 않으시군요.”


조금만 약한 모습 보이자마자, 알아채고 물어오는 한가을. 그래. 딴 생각 할 때 아니다. 놈은 그 한가을이다. 집중하자.


“... 별 일 아닙니다. 그냥 좀 긴장해서.”


“하하하. 권민성 교수님에게도 의외로 귀여운 일면이 있으시군요.”


“...”


“비록 이곳이 군용 생체병기 만드는 곳은 맞지만, 그래도 전혀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처가 사업장에 구경 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신 김에, 작은 조언도 해 주시는 거고요.”


“... 아. 예.”


“하하. 제가 설마 매제 될 사람에게 해코지라도 하겠습니까?”


본인도 아니고 클론 조종하면서 그런 말 해 봐야 아무런 설득력 없었지만.


“... 그도 그렇네요. 하하.”


나는 녀석의 장단에 맞춰, 그저 멋쩍게 웃었다. 한가을의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선, 최대한 어벙하고 멍청한 척을 해야만 했으니까.


----


[ 지하 5층을 설정하셨습니다. ]

[ 해당 층은 관리자만이 출입 가능합- ]

[ 권한이 인증되었습니다. ]


엘리베이터를 타고.


[ 이 보안문 너머의 구역은 ‘베드로’등급의 보안 구역입니다. 권한을- ]

[ 인증되었습니다. ]


보안문을 3개나 통과하고 나서야, 드디어 매지시아의 비밀 연구공간이나 다름없는 공간 C-7구역에 도착했다.


거창하게 숨겨 놓은 것이 무색하게, 꽤나 평범한 구조였다. 흰 등이 설치된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수많은 실험실 문이 존재하는 그런 일자형 구조.


물론 평범한 실험실과는 달리.


- 끼에에에에!

- 아아아아악!


뮤턴트 것인지 사람 것인지 모를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는 것이 사소한 차이였지만, 말 그대로 사소한 수준. 한가을도 별로 신경 안 쓰는지.


“그나저나 저희 겨울이는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습니까? 좋아하게 된 계기라도 있으셨습니까?”


“... 모르겠네요. 어쩌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하하하! 그렇군요. 하긴 원래, 사람이란 생물이 자기 마음을 잘 모르죠.”


“...”


걷는 내내 별 영양가 없는 사소한 농담이나 던지고 있을 뿐. 그렇게 계속 걷던 나와 한가을은 복도 끝에 위치한, 거대한 마나 컴퓨터가 있는 장소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저희 문제 관련 영상이 저장돼 있는, C-7 구역의 메인 컴퓨터실입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번거롭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권민성 교수님.”


“... 별 말씀을요. 그보다 그 문제란 건 뭡니까.”


“저희가 이곳에서 작은 실험을 하는데, 번번이 실패하는군요. 뭐가 문제라 그런지 몰라서 그러는데... 어디 한 번 영상을 봐주시겠습니까?”


“... 일단 한 번 보겠습니다.”


씨익 웃는 한가을.


“바로 틀어드리죠.”


녀석은 마나 컴퓨터로, 홀로그램 동영상을 띄웠다. 나보다 훨씬 어린 또래의 작은 소년에게, 여섯 개의 주사기를 꼽는 영상.


그리고 그 주인공은.


- 다음 실험체는 CODE-0226. 실험을 시작한다.


바로 10년 전의 나, 아니. ‘이쪽 세계’의 나였다.


[ 아아아아악! ]


- 이상반응으로 변이 발생... 이번에도 실패인가.

- 매뉴얼대로 행성 패러독스에 폐기한다.


영상을 보자마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오랫동안 가둬 두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 까악- 까악-

- 애 시체가 버려져 있는데?

- 하루이틀이야? 연합놈들이 애들 버리는 게... 아니. 잠깐. 얘 살아있는데?

- 어떡할까? 고기로 쓸까?

- ... 미쳤냐? 죽은 거나 고기로 쓰는 거야. 살아있는 애들은 쓸모가 더 많다고. 일단 데려가.


박준 사부를 만나기 한참 전의, 패러독스에 도착하기까지의 기억들.


나도 모르게 몸이 떨리는 가운데, 한가을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이 영상을 토대로 이제 모순의 마나라는 것을 만들고 있는데... 잘 안 되는군요.”


“... 무슨 꿍꿍이지?”


“하하. 혹시 기억하십니까? 전에 교수님 댁에서, 저와 손잡고 연합을 이기고 최고의 권력을 누려 보자고 했던 것을요.”


“...”


“그런데 아무리 계획을 짜도 무리더군요. 국가형 기업이라는 시스템은, 이미 그 안에 속한 순간 제가 붕괴시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약간 발상을 바꿔 보았죠. 연합을 무너뜨리고 새 권력의 토대를 다질 수 없다면, 차라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내가 연합을 세우는 건 어떨까?”


쿵. 쿵. 쿵-


순간 컴퓨터실 바깥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묵직하고 날카로운 발소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헛소리지만, 의외로 한 가지 방법이 있더군요. 바로 우주의 섭리에 반하는 존재, 모순의 마나가 깃든 육체만 있다면요.”


“...”


“그런데 제 능력으로는 아무리 실험해도, 모순의 마나라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더군요. 그렇다고 이 영상 속 실험체를 쓰자니, 이건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했거든요.”


쿵-! 쿵-! 쿠웅-!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점점 커져가던 그 때, 한가을. 아니 한가을의 클론이, 젠틀한 웃음을 비치며 말을 이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권민성 교수님의 육체가 필요한데, 혹시 협조를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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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 이별 (6) +2 22.10.31 508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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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169. 이별 (4) +2 22.10.26 504 18 10쪽
173 168. 이별 (3) +3 22.10.24 514 1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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