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도 아카데미에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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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09.0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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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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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에 피어난 꽃 2

DUMMY

우리가 도착하자 마을 촌장을 비롯한 성도교인들이 마중을 나왔다.

대부분 레벤라의 성도교인들, 신도교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오네와는 달리 검은색의 깔끔한 신부복을 입고 있는 그들은 나이와 종파를 떠나 감목 대리라는 직급을 가진 이오네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환영합니다. 감목님과 그 일행분들."


"반갑습니다, 형제자매님들. 델파론 감목 대리인 이오네 크리스타냐입니다."


"먼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지요."


"감사합니다, 자, 함께 가시지요, 릭스, 리젤 형제자매님."


.......와, 순간 너 누구느냐고 물을 뻔 했다.

함께 가시지요?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지경이다. 원래 이 종교 사람들은 다 저런가?

리젤역시 어이 없어 하는 거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오네는 자신의 스승인 주교를 대신해 이 자리에 온 거다. 대부분 자신의 아래로 깔고 보는 놈답지 않게 스승에 대한 공경심 만은 진짜라 그런지 여간 가식이 아니다.

리젤은 불편한 표정으로 내 귓가에 속삭인다.


"릭스, 못 볼걸 봐서 그런지 속이 안 좋습니다."


"......참자. 이것도 일이야."


나는 돈을 받고 리젤은 교단일이니 참아야 한다.

.

.

.

성도교인들은 마을에 남는 공터에 천막을 치고 지내고 있었다.

전부 현지인이 아니라 이오네가 교단에 지원을 요청해 온 이들이라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원작이나 게임에서나 레벤라는 주로 아군보다 적으로서 더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오만방자한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지구에서나 여기서나 참된 종교인은 많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들끼리 지내며 검소하게 식사하는 그들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선해 보인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풀밖에 없어. 만약 교인들 앞에서 고기 없다고 반찬투정하면 내가 직접 고기로 만들어줄게."


고기를 만들어 준다는 게 아니라 고기로 만들어 준단다.


"그 정도로 개념 없게 살진 않았어."


"그럼 다행이고."


메뉴는 이오네의 말대로 비타민과 탄수화물 파티였다.

삶은 감자에 당근과 양파를 넣어 끊인 수프. 그나마 다행인 건 달걀은 있다는 거?

그거라도 먹기 위해 우리는 줄을 서서 배식을 기다렸다.

그 시간에 이오네는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기 전에 내가 델파론 동, 서, 남 쪽에 반석을 세웠다고 한 거 기억나지?"


"어."


"음기가 북쪽으로 몰리면서 무슨 현상이 일어날지 몰라. 대충 망령이 튀어나온다든가 인근 몬스터들이 습격하든가 그런 일이 벌어지겠지."


터전을 잃을지도 모르는 악령들의 마지막 발악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힘을 못써. 정확히는 내가 중간에 의식을 멈추고 개입하면 말짱 꽝이야."


"의식은 어떻게 하는 검까?"


"낮에는 대지의 정기를 끌어 네 게의 반석에 연결할 거고 밤에는 하늘을 종이 삼아 천체로 신언을 적을 거야. 오늘 저녁부터 내일 새벽까지 반석 위에서 기도하고 있어야 하니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가 해결해줘."


"......어....음......고생하십쇼."


거의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기도를 올리는 건 강한 고행을 요구한다. 평소에 이오네를 아니꼽게 보는 리젤이지만 그런 고행을 자처하니 만약 나쁘게 볼 수만은 없었다.


"만약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습격받는 건 의식을 치르는 곳이 될 거야. 기도중에 불순한 마력이 끼어들면 안 되니 그건 성도교인이 지켜야 해. 그러니 반석 쪽은 리젤이 맡고 혹시 근처 마을에 뭔가 일이 생기면 그건 릭스 네가 맡아."


"알았어."


"일단 검 줘봐."


나는 허리춤의 걸을 뽑아 이오네에게 건넸다. 그는 아무것도 끼지 않은 오른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날을 잡더니 조용히 눈을 감는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천주님이 되리니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내 검에 깃든다. 단순히 검만 강화된 게 아니라 나 몸과 마력, 심지어는 감정까지 고요하게 고조되는 게 느껴진다.


"드래곤이라도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어지간한 몬스터나 언데드들은 너희 손에서 다 정리될거야."


"만약 우리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적이 나오면 어떡함까?"


"뭐, 최악의 사태가 나오면 내가 의식을 중단해야지. 그렇게 되면 다시 사방에 반석을 세우는 것부터 다시 해야 하고. 걱정하지는 마. 이런 시골에 출몰하는 몬스터가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냐."


이오네의 말대로 나와 리젤을 제압할만한 몬스터는 개체별 차이가 인간급으로 나는 휴머노이드 몬스터나 드래곤, 혹은 리치같은 존재들뿐이다.

실제 이벤트에서도 대부분 캐릭터 이벤트들답게 큰 고난이나 위험은 없다.

대부분 캐릭터 이벤트에 가장 중요시 되는 건 인연이다.

지금부터 치러질 이벤트의 주인공은 이오네와 저기 있는 여자다.

급식대 앞에서 사람들의 식판에 음식을 떠주고 있는 긴 회색 머리의 평범한 여자. 선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는 어디서나 볼수 있을법한 평범한 시골 아낙네다.

다만.....


"...........아."


그녀를 본 이오네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진다.


".........어?"


이오네를 본 그녀의 눈 역시 마찬가지로 경악에 물든다.

원작에서는 이미 나온 내용으로 게임에선 원작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이오네의 과거 이야기를 게임을 통해 마무리한다.

시궁창에서 태어나 죽음으로 빚어진 한 아이의 이야기를.

.

.

.

고요하고도 거룩한 밤. 타탁 타탁 나무를 갉아 먹으며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서 한 여인이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불꽃에 비쳐 주황색 음영이 드리워진 여인은 아이를 안고선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왠지 딱딱한 가면 같은 미소를.

여인은 눈앞에 있는 수도복을 입은 바위 같은 거구의 남자를 보며 말했다.


"이 아이는 천사 같아요."


"......."


석상같은 거한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희로애락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건 말건 여인은 몸을 살짝 틀어 아이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 아이에겐 빛이 없거든요."


-빛을 향한 찬가. 프롤로그-

.

.

.

레벤라 제국이 동쪽으로 떠나고 서쪽 대륙에서는 서 대륙의 맹주가 되기 위한 오랜 전쟁이 펼쳐졌다.

백 년에 가까운 전쟁 끝에 최종적으로 승리한 건 동쪽 끝의 블렛 반도에 있는 작은 왕국 라디안이었다.

서쪽 제국의 맹주가 된 라디안 왕국은 엘라디안 제국으로 개명하고 본격적으로 대륙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대전쟁의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아 제국이 눈이 미치지 않은 변두리는 여전히 전쟁상태나 다름없는 아비규환이었다.


이곳의 이름을 소년은 몰랐다. 그저 얼핏 듣기론 테루사라고 부르긴 한 것 같은데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제국 변두리에 있는 이 테루사에는 제국의 지방 관리조차 없었다.

대전쟁이 끝나고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이 테루사는 지금도 전쟁 중이었다. 타국의 침략이나 외부의 적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이 작은 인간 군집 속에서 인간들끼리 끝없이 싸우고 쟁탈할 뿐이었다.

이곳을 다스리는 이들은 영주나 관리가 아닌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강도나 산적, 폭력배들이었다. 국가라는 단합된 힘이 미치지 않는 이곳에선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약육강식만이 그저 유일한 법이었다.


이름없는 소년은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강간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저 하룻밤의 쾌락이 만들어낸 산물인지 모른다.

그냥 자신을 인지했을 때부터 그는 혼자였다.

땅에서 주운 작은 칼 한 자루로 쥐 새끼나 작은 짐승을 잡았고 벌레를 씹으며 살아남았다.

부모가 없는 아이가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그런 환경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아이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거의 짐승이나 다를 바 없었다.

입고있는 옷은 성인의 시체에서 주워 팔과 다리가 땅에 질질 끌리는 남루한 옷.

집은 테루사에 널리고 널린 반쯤 부서진 주인 없는 집을 떠돌며 숨어 살았다.

그저 하루하루 의미 없이 보내는 소년의 인생은 생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본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굳이 이 소년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부모 없이 살아남은 아이들의 삶이 대부분 그러했다.

시궁창의 소귀나 다름없는 아이들의 삶.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봤자 그저 눈앞의 단편적인 쾌락에 충실해 살인과 강간을 서슴지 않는 괴물이 될 뿐이었다.

이 인세의 지옥은 그런 곳이었다.


그 지옥에도 마침내 빛이 찾아왔다.


산적, 강도, 약탈. 수는 많지 않지만 지속해서 행해지던 범죄행위 탓에 제국의 중앙에서 이 테루사의 존재를 눈치채게 되었다.

먼저 보내진 것은 소수의 군대였다.

그저 녹슨 칼 한자루 휘두를 줄 아는 게 전부였던 테루사의 범죄자들은 서른도 안되는 제국의 군인들에게 모두 제압당했다.

그다음으로 온건 성도교의 교인들이었다. 교세를 넓히기 위해 온 것이 아닌 그저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온 이들은 가장 먼저 갈 곳 없는 아이들부터 돌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소년은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


"아, 안녕."


기껏해야 열여섯, 열여덟쯤으로 보이는 회색 머리의 평범한 소녀가 아이들에게 손을 흘들며 어색하게 인사한다.

하나같이 꾀죄죄하고 피 냄새와 악취를 풍기는 아이들은 그저 경계 어린 눈으로 소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과 다른 종이나 다른 거나 마찬가지인 아이들을 보며 소녀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 일단 밥부터 먹을까?"


성도교 봉사활동으로 온 소녀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내주었다.

찐 감자와 옥수수 가루에 당근, 양파를 넣고 끊인 수프. 그리고 삶은 계란.

훗날 이오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아이는 처음으로 맛있다는 감각을 배웠다.

.

.

.

나와 리젤, 이오네는 배식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양이 너무 적슴다."


한끼에 십 인분을 가볍게 먹어치우는 리젤은 시무룩한 얼굴로 감자를 깨서 조금씩 입에 넣었다.

대충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걸 예상한 나는 미리 준비해놓은 육포나 사탕 같은 열량 많은 간식들을 꺼내 그녀 앞에 놓았다.


"리......릭스!"


"혹시나 해서 챙겨뒀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열량이라도 든든하게 채워둬야지."


"최고임다, 릭스!"


리젤은 식판 위에 올려진 음식들을 빠르게 흡입하고 내가 가져온 간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오네는........


"......그리운 맛이네."


스프를 한입 떠먹고는 쓴웃음을 짓는다.

저 연한 스프의 맛은 이오네가 평생 잊지 못한 맛일 거다.

그런 음식을 먹으면서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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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고구마가 아카데미에서 살아남았어요.(1부 완결) 22.07.02 123 1 9쪽
73 천둥의 별과 검은 매 - 인연은 기적을. 22.06.26 106 2 9쪽
72 천둥의 별과 검은 매 - 대적자 22.06.25 104 2 10쪽
71 천둥의 별과 검은 매 - 고구마 VS 사이다패스 2 22.06.21 97 2 11쪽
70 천둥의 별과 검은 매 - 고구마 VS 사이다패스 22.06.19 139 2 8쪽
69 천둥의 별과 검은 매 - 무기 들어라, 주인공. 22.06.19 106 2 9쪽
68 천둥의 별과 검은 매 - 아버지 아버지 어찌하여..... 22.06.16 105 2 12쪽
67 천둥의 별과 검은 매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22.06.11 105 3 11쪽
66 천둥의 별과 검은 매 -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22.06.05 103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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