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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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칼과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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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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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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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단기필마(4)

DUMMY

이번기회에 적의 수장을 생포하는 전과쯤은 필요한 시점이었다.


몇 일전 굴욕적인 패배의 쓴맛은 이미 잊었다.


앞으로 수없이 많은 전투를 생각하면 그쯤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였던 것이다.


대충 3~400정도의 조선병사들이다.


절반쯤 죽여 놓고 나머지는 생포해서 구로다 나가마사에게 건네면 돌아올 반응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전방을 지켜보던 요시무네는 흐뭇한 표정으로 양손으로 흐트러진 콧수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장을 살피며 기회를 엿보던 조경이 품안에서 호각을 꺼내 입에 물었다.


이쯤이면 됐다.


몸을 돌려 호각을 불려는 찰나였다.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눈앞에 병장기를 앞세워 쏟아져 나오는 왜놈들.


최소 2~300명 정도 수준, 놀란 조경이 호각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정보에 의하면 최소 10리길 밖에 있어야 할 놈들이었다.


아니 그보다 빨리 움직였다 하더라도 돌격대로 보낸 정기룡부대와 마주쳤어야 할 놈들이었다.


그렇다면 예상보다 빠르게 진격했고, 정기룡부대는 순식간에 전멸했다는 결론이다.


아까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병력을 앞뒤로 집결시키며 틈을 봐야했다.


당황한 표정들의 병사들이 조경의 명령에 빠르게 움직이는 듯 했지만 서로 눈치를 살피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용감한 병사들이 짝을 이루어 놈들에게 거센 저항을 시도하고는 있었지만 돌아오는 건 처참한 비명소리와 차마 감지 못하고 죽어버린 한을 품은 눈들 이었다.


잠깐 사이에 삼할 이상의 병사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앞뒤로 밀고 들어오는 왜놈들이 조총을 쏘지 않고 오히려 압박만하고 조여들고 있는데 뻔히 눈에 보이는 행동이다.


항복이다.


생포하겠다는 소리다.


칼을 내려놓으란 소리고, 저항하면 가차 없다는 거였다.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작전회의 때 그토록 말리던 백병전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활을 이용한 기습공격 후 퇴각, 다시 목을 지켰다가 기습공격을 감행했어야 했다.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자신을 책망했고, 자신 때문에 죽어간 병사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뒤늦은 후회다.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쥐고 있던 칼날이 아래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또 수십이 목숨을 잃고 어딘가 잘려나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병사들의 목이 베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은 무리다.


남은 병사들이라도 살려야했다.


결사저항을 하고 있는 뒤쪽 상황과는 달리 놈들의 본진 쪽은 조용한 상황, 수하들을 뒤로 물렸고 천천히 말을 앞세워 거들먹거리며 앞으로 다가오는 왜놈의 지휘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손가락이 자신에게 향해있었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분하고 억울했다.


주위에 병사들이 어깨를 흔들며 목이 터져라 뭐라 외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개가 바닥으로 숙여졌다.


손에 쥐고 있던, 그 동안 많은 전장을 함께 했던 친구 같은 애검, 아무리 비싼 보검을 선사 받았다고 한들 이놈처럼 정이 많이 든 놈이 없었고 무척이나 아꼈던 애검이다.


팔이 부르르 떨렸다.


다시 머리를 들었고 왜놈 지휘관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크게 입을 벌리며 웃고 있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게 생긴 깎아 내린 벼랑 끝 절벽 앞에서 웅크리고 아래를 지켜보고 있던 무수였다.


가파른 호흡을 연신 내쉬고 있던 무수 곁에 춘호도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놈들은 본다고 눈에서 활이 쏟아져 나가는 것도 아닌데 눈 한번 깜빡 거리지 않고 왜놈들을 노려보고 있던 무수였다.


대원들이 전부 도착하자 무수가 입을 열었다.


“내려간다.”


가픈 숨을 몰아쉬던 대원들이 아래를 훑어보고는 가파른 깎아진 절벽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혼자 간다. 나머진 저쪽 퇴로를 확보하고 병사들을 구한다. 전원 활을 이용해서 퇴로의 잔당을 소통하고 전원 무사귀환을 명한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춘호가 지휘관이다.”


“시간이 없어서 긴 말 안하겠다. 한발에 한 놈씩이다. 너희들이 집중해야 밑에 조선의 병사들이 산다.”


“춘호야 부탁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습을 감춘 무수, 갑자기 활을 재고는 이내 거침없이 한발을 쏜 춘호였다.


주인 손을 떠난 화살의 목표물이 어딘지 확인조차 안하고 몸을 돌린 춘호였다.


“간다.”

춘호가 쏜살같이 절벽상단을 따라 뛰어가자 담이가 화살에 궤적을 쳐다보다 히쭉거리며 뒤를 따랐고, 황당하다는 표정의 나머지 대원들이 활을 꺼내들며 뒤를 따랐다.


쉬수수수숫.


희뿌연 흙먼지가 무수주위에 흩날리며 빠르게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막 내려간 듯 보이지만 절벽이라도 물길은 존재한다.


그 물길엔 잔풀들이 우거져 있기에 집중하면 바위들만으로 이루어진 것보다는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다.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아차 하는 순간 저승사자의 퍼런 입술을 봐야한다.


적당한 곳을 찾았고 지체 없이 몸을 날린 무수였다.


바닥을 딛고 미끄러지는 발바닥에서 불에 대인 듯 화끈거렸고, 중심을 잡고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손바닥에서 뼈가 갈리는 통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눈 깜짝 할 사이 절반쯤 내려왔고, 도약을 준비하며 몸을 곧게 세웠다.


착지 할 지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무수의 시선에 통나무가 쓰러지듯 뒤로 넘어가는 놈이 입에 화살을 물고 있었고 터져나간 뒤통수에서 붉은 피분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세워놓고 월도와 편곤으로 실험을 자행하던 잔인한 놈, 언제고 다시 만난다면 그냥 못 보낼 거란 다짐이 현실이 됐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놈은 죽이고 나서다.


벼랑 끝에 섰고, 제일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던 놈이다.


무수가 절벽을 내려가는 도중에 무수를 발견한다면 무조건 꽁무니를 뺄 놈이었다.


마침 도착한 춘호에게 적진에 단신으로 가야한다는 간단한 설명과 대원들을 인솔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이 작전에 가장 중요한 건 놈을 죽이면서 시선을 모아야 내가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말에서 뒤로 넘어가는 요시무네로 놈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모아지며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고, 뒤엉켜 허둥지둥 거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빠르게 미끄러져 나갔고 바닥에 거의 도착한 무수가 힘차게 도약을 시도했다.


부우웅.

빙그르. 빙그르.


몸을 웅크려 네다섯 바퀴를 바닥에서 뒹굴다 방금 떨어진 요시무네가 타고 있던 말 앞에까지 순식간에 도착했고 몸을 일으킨 무수였다.


표정이 오만상이었다.


멍석에 말려 구타를 당하고 난 뒤의 몸 상태가 딱 이런 것 같았다.


뼈마디는 물론이고 손과 발 심지어 사타구니까지 욱신거렸다.


앞뒤로 수많은 왜놈들에게 둘려 쌓인 한복판에 바닥에 시체가 되어 놈들에 발에 짓밟혀 있는 조선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그랬던가? 아픈 것도 사치라고.


후후.


가슴을 열었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월도를 움켜쥐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왜놈들이 갑자기 튀어나온 인영에 이게 뭐지 하는 표정으로 힐끗 쳐다보다 놀라기도 잠깐이었다.


월도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스커엉, 서걱. 스커엉, 서걱.


월도의 궤적이 날카롭고 더 간결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간에 무게감 있게 돌아가며 둔탁한 소리를 냈었다면 지금은 숙련된 장인의 간결한 무두질 소리가 나고 있었다.


손속도 매서워졌다. 아니 무서워졌다.


간결해진 만큼 더 빠르게 지나가는 월도는 놈들의 목, 허리, 그리고 심장, 사타구니 사이, 적은 힘으로 치명적인 곳으로만 골라서 베어가거나 잘려지고 있었다.


쓰러진 지휘관을 보살피던 놈, 지켜보던 놈, 당황하다 멍하니 있던 놈들, 벼락같은 무수의 출현에 저항도 못하고 그대로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벼락 맞은 저수지에 죽은 물고기가 떼 지어 떠오르듯 시신들이 늘비해져 갔다.


서걱, 서걱.


멈출 줄 모르는 월도, 순간 은아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 죽이는 거 안 무섭냐고···, 무섭다. 나도 사람이라 무섭고 두렵다고, 그런데 그 무서운 것 보다 내 가족, 친지, 친구들이 험한 꼴 당하는 게 더 무섭고 견디기 힘들다고 대답했다.


어머님 말씀도 떠올랐다.


앞에 나서지 말고 뒤에서 천천히 시늉만 하고 부상당하지 말고 살아남으라고···, 대답은 씩씩하게 잘했다. 네 라고. 애교까지 떨면서 말이다.


풋.


쓴 웃음이 튀어 나왔다.


지금 적진에 홀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아는 순간 등짝에 불이 날게 뻔했고, 입이 얼얼할 정도로 볼 살을 쥐어뜯길게 분명했다.


볼은 은아일 거다.


그런데 어머님.


스컹, 스컹.


위급한 상황에, 혹은 적에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동료나 친구들이 가족이 있다면, 아니, 내가 그런 상황에 있다면 어머니는 불속이라도 저를 구하러 들어올 거 압니다.


저도 그래요.


가족, 친구, 동료들, 더 나아가 우리 조선의 백성들이 눈앞에서 험한 꼴 당하거나 죽어 가는데 가만히 지켜만 본다면 그건 사람새끼 아닙니다. 어머님.


퍼어억, 털썩.


월도의 손잡이 뒷부분으로 왜놈의 한쪽 눈을 꿰뚫고는 몸을 한 바퀴 돌아 놈의 턱을 짓이긴 후 주위를 훑어보던 무수였다.


궁사, 조총병들이 한참 뒤에서 달려 나오고 있는 상황.


몸을 날렸다.


덩그러니 주인을 잃어버리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던 관리 잘된 흑마의 고삐를 낚아챘다.


무수가 올라타자 앞발을 힘껏 올리며 포효를 하고 있었다.


고삐를 잡아챘고, 무릎으로 몸통을 조였다.


히이이이이힝~! 푸르르~!




웃다가 피를 토한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본적은 없었다.


한참을 크게 입을 벌리고 웃던 놈이 통나무 넘어가듯 피를 뿜어내고는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우왕좌왕 하던 왜놈들.


시야에 들어온 검은 물체, 흡사 멧돼지 연상케 했다.


흙먼지를 날리며 엄청난 속도로 절벽에서 미끄러지다 갑자기 튀어 올랐고 바닥에 부딪힐 때쯤 둥그런 모양을 하며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번쩍!


햇살에 날카로운 금속의 번쩍거림과 동시에 등을 보이는 한 사람, 월도가 들려있었다.


돌격 대장 정기룡이었다.


죽은 줄만 알았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이고, 왜 하필 적진 한가운데에서 나타났단 말이냐.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져 적진 한가운데서 혼자? 귀신인가?


의심스러웠다.


옷소매로 눈을 비벼대자 고여 있던 눈물이 닦여지며 눈이 맑아졌다.


부릅뜬 두 눈에 잠깐의 의심이 사라졌다.


정기룡의 월도가 춤을 추기 시작하자 왜놈들이 장단에 맞춰 피 보라를 일으키며 말린 짚단 잘라내듯 팔, 다리, 머리들이 여기저기가 솟구치며 픽픽 쓰러지는 몸뚱어리들이었다.


믿기 힘든 광경이 다시 이어졌다.


말이 앞발을 들자 한 줄기 빛이 번쩍였고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정기룡이 현란한 마상무예가 펼쳐지며 월도가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뭐지? 뭐지? 저···, 저···, 조.....조자룡이 나타났다.”


옆에서 지켜보던 병사가 외쳐대기 시작했다.


“저기~!!”


“어?”


“저···, 저기 말이다.”


“조자룡이라고~! 조자룡~!”


유비의 부인과 자식을 구하려 조조의 대군을 단신으로 맞서 싸워 구출해나간 불세출의 영웅, 그가 환생해 자신들을 구하러 나타난 거다.


조경의 병사들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모여진 시선은 치열한 전투 중에 있는 병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병사들이 정기룡을 보며 하나같이 입을 열었고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툭하고 나타난 인마, 병사들의 눈엔 적진에 홀로 말을 타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조자룡을 보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돌격대장 정기룡 장군님이다.”


“정기룡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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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 21.10.04 83 2 12쪽
26 제 4장 단기필마(5) 21.10.02 86 2 12쪽
» 제 4장 단기필마(4) 21.10.02 8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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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4장 단기필마 21.09.30 9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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