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탈주범의 운빨 회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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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설.
작품등록일 :
2021.10.08 14:01
최근연재일 :
2022.02.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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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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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5화. 내가 이 구역의 오지라퍼다

DUMMY

“이런 곳은 혼자 밥 먹기 정말 애매하겠어요. 제가 하는 혼밥은 학생식당이나 분식집 정도인데... 여긴 혼밥 난이도 최상이네요. 크크큭.”

“으... 응? 혼밥이 뭐에요?”

“아 혼자 먹는 밥이요. 처음 들어보세요?”

“응. 요즘 애들 말인가 봐. 재미있는 말이네.”


‘아차차. 아직 혼밥이라는 말을 안 쓰는 건가?’

명석은 ‘혼밥’이라는 말이 없는 시대라면 오드리가 혼자 밥 먹는 것을 어려워할 만 하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학원 친구에게 사는 점심치고 매우 과한 대접이었지만 명석으로선 부담이 덜하게 느껴졌다. 오드리가 평소 먹기 힘들었던 것을 같이 먹어주는 거니까.


“뷔페는 혼자오기 어려운 곳이지. 나는 많이 먹는 편은 아닌데 가끔 이런데서 기분 좀 내고 싶더라고. 아들 녀석들이라도 있으면 가끔 오면 되지만...”

“와. 제가 양아들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입니다. 호텔 뷔페 사주시는 엄마라니. 흐흐흐.”

“뭐라고? 푸호호호호.”

오드리가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었다.


호텔 뷔페의 마력에 무덤에 계신 엄마가 들으면 서운할 말이 술술 나왔다. 기왕 불효한 김에 아침에 아버지가 정성스레 발라주신 갈치구이를 똥으로 배출하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 후레자식을 용서하소서.’


“그럼 음식 좀 구경해볼까요?”

“응.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먹고 싶은 거 담아 와요. 나도 그럴 거니까. 후훗.”


명석은 순백의 큼지막한 접시를 들고 음식을 둘러보았다.

어린 시절 결혼식이나 친지 돌잔치로 뷔페를 갔을 때 엄마가 해준 충고가 생각났다.


- 맨 처음엔 샐러드를 담아 와야 된다. 그 다음에 고기나 해산물을 먹고. 김밥이나 볶음밥은 먹지 마. 그건 집에서도 먹을 수 있으니까. 아, 초밥은 오케이. 그리고 디저트나 과일은 가장 마지막에 먹어야 돼. 알겠지?


엄마의 신신당부에도 명석은 김밥이나 초코케이크, 아이스크림을 가장 먼저 먹곤 했다. 채식주의자 어린이가 아니고서야 첫 접시에 샐러드를 먼저 담을 아이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뭐가 그리 안타까운지 본인의 접시의 음식을 명석의 입에 넣어주었다.


명석은 좀 전의 불효를 뉘우치고자 엄마의 유지를 받들어 일단 샐러드를 접시에 담았다. 신선한 채소의 알록달록한 색감에 입맛이 확 당겼다. 그리고는 오드리가 담는 훈제연어와 훈제농어를 따라 덜었다. 고소한 냄새의 양송이수프까지 담아 테이블로 다시 돌아왔다.


접시 가득 이것저것 잔뜩 담아온 명석과는 달리 오드리는 접시의 여백이 돋보이게 음식을 가져왔다.

말과는 다르게 뷔페에 대한 진정성이 결여된 행동에 “에? 조금 드시네요?”라고 명석이 물었다.

“아냐. 나 천천히 많이 먹어. 호호호.”

“오.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응. 그래요.”


두 사람은 각자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담아온 음식마다 다 너무 맛있어서 명석은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다.


“뷔페는 음식 고르는 재미가 있어서 난 좋은데 내 주변 사람들은 음식 가지러 왔다 갔다 하는 게 귀찮다고들 하더라고. 이야기에 집중할 만 하면 자리를 뜨니까 대화하기도 불편하다고 하고.”

“먹는 게 귀찮다니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아요.”

“그러게.”

“그럼 남편 분과 오시면 되잖아요.”

명석이 음식을 오물거리며 해맑게 말하자 오드리의 얼굴에 어둠이 내리었다.


“응. 남편은 많이 바쁜 사람이라.”

“아. 그러시군요.”

“명석이는 가족이 어떻게 돼? 전에 수업시간에 들을 때는 아버지 이야기 밖에 안 하는 거 같아서. 형제는 없어?”

“아, 저는 아버지 밖에 없어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형제도 없고요.”

명석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훈제연어 옆에 놓인 다진 양파와 완두콩 같은 초록색 음식을 함께 먹는 거였구나, 오드리의 접시를 힐끗 보며 깨달았다.


“저런. 힘들었겠구나.”

“아뇨? 안 힘들었는데요?”

“그럼 다행이다. 혹시 내가 실수한 건 아니지?”

오드리는 평범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가 언짢았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럴 리가요. 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속이 투명한 명석이라면 꾸며낸 답을 하진 않았을 거라 여기며 오드리는 안도했다.


두 번째 접시에 담아온 등심 스테이크와 포크바베큐립, 양갈비, 왕새우구이를 정신없이 흡입하고 있을 때였다.


“어머. 사모님, 안녕하세요? 여기서 만나네요.”

오드리 못지않게 우아한 차림새의 여인이 오드리를 향해 격식 있게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양 고문 님.”

오드리는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놀란 기색을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죠?”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누구?”

고문이라는 사람이 명석을 힐끗 보며 오드리에게 물었다.


“아... 그게... 저희 둘째아이 친한 친구에요. 고마운 일이 있어서 제가 점심 대접 중이었어요.”

“아.”

명석은 일면식도 없는 오드리 둘째아들의 친구가 되었다.


“요즘 김 의원님은 잘 계시죠? 여의도에서 활약이 대단하시던데 이제는 더 큰 일 하셔야하지 않겠어요? 호호호.”

“아. 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의원님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아니죠?”

양 고문이 오드리의 표정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네? 소문이요?”

“아... 아닌가 봐요.”

“뭔데요? 말씀해주세요.”

“두 분 이혼 소송 중이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오드리의 표정이 차갑게 변하는 듯 싶더니 바로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재미있는 소문이네요.”

“그렇지요? 아니시죠? 사람들이 이렇게 없는 말을 지어내고 그런다니까요. 참.”

“바깥양반한테 말하면 펄쩍 뛰겠어요. 호호호.”

“어머, 어머. 의원님께는 말씀하지 마세요. 저도 그냥 오다가다 주워들은 건데요. 기분 상하실라.”


차마 두 사람을 보지는 못하고 귀만 쫑긋 세우고 있던 명석은 오다가다 주워들은 얘기를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패기에 놀라 고개를 들어 양 고문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봤다.

혹시나 오드리가 기분 상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였다.


“사모님, 그러지 말고 언제 부부동반으로 한 번 뵈어요. 저희가 모실게요.”

“네. 그러시지요.”

“네. 꼭 시간 내주세요. 연락드릴게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또 뵙겠습니다.”

두 사람은 상견례 자리에서 마주한 사부인들처럼 깍듯이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명석은 두 사람의 대화가 불편해서 저절로 식사를 멈추고 있었다. 지인이 자리를 떠나자 오드리가 의자에 다시 앉았다.


“아우 미안해요. 아는 사람을 다 만나네.”

“그럴 수도 있죠. 뭘.”

“내가 학원 다닌다고 말하기가 뭐해서 그냥 아들 친구라고 했네. 이해해요.”

뭐든지 조심스러워하는 오드리에게 명석은 사람 좋은 미소로 답했다.


오드리는 양 고문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음식을 앞에 두고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깊숙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아직 많이 안 드셨는데. 조금 더 드세요.”

명석의 권유에 오드리가 물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다시 음식을 조금씩 입에 넣기 시작했다.


명석은 갑자기 오드리의 남편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의원님이라며 떠받드는 말투였는데.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구의원? 시의원? 설마 국회의원?’


“남편 분이 중요한 일을 하시나 봐요?”

“응. 지금 공직에 있어.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서 자수성가한 사람이야.”

“우와. 배울 점이 많은 분이겠어요.”

“응... 그렇지...”

“저도 꿈을 크게 가지면 남편 분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하하하. 어려운 환경인 건 비슷한 거 같은데요. 뭐 공부를 잘 하진 못했지만요.”

“그럼. 명석이는 성품이 좋아서 뭐든지 잘 할 거야. 근데 남편은 꿈이 큰 사람이라 내가 좀 힘들어. 내 그릇이 작아서겠지.”

오드리가 얇게 썬 스테이크를 입안에 밀어 넣으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특히나 너무 잘 나고 부러운 상대면 더 그러지 않겠어요?”

“응?”

“아까 지인 분께서 하신 말씀 들었는데... 신경 쓰지 마시라고요. 다 오드리 님 부부를 시기, 질투해서 그런 걸 거예요.”

“후우.”


아는 사람을 만나고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명석이 주제넘은 위로를 건넸다. 오드리는 한 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명석은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 사이에 한 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오드리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없는 말도 아니야. 지금은 남남이나 다름없거든. 아이들 보면서 사는 거지. 남편 지위와 체면이 있으니까...”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오드리의 얼굴이 처연해보였다.


소문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구나, 명석은 갑자기 마주하게 된 오드리의 가정사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혹시 윈도우 부부 같은 건가요?”

“응? 뭐라고? 오하하하하!”

심각하던 오드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했다.


“맞아. 윈도우 부부. 앞에 하나가 더 붙어야지. 쇼, ‘쇼’윈도우 부부. 명석이 너무 웃기다.”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때론 무식함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아하하하하. 말 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 했어요.”

명석이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아. 호호호. 덕분에 근래 들어 가장 많이 웃었어. 고마워.”

“그렇게 활짝 웃으시니까 훨씬 보기 좋습니다. 하하하.”

명석의 지나가는 칭찬에 오드리가 부끄러운 내색을 비치며 음식이 조금 남은 접시를 밀어놓고 일어났다. 명석도 다시 새 음식을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근데 방학인데 아드님들은 한국에 안 들어오세요? 저야 덕분에 뷔페 얻어먹고 좋긴 한데 오드리 님은 아들 분하고 같이 드시면 좋잖아요.”

“걔네는 나보고 미국 오라고 그래. 부모 사이가 냉랭하니까 한국집이 그립지가 않나봐.”

오드리는 명석이에게 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부부 간의 불화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렇구나. 제가 오드리 님 아들이라면요...”

“응?”

“아... 아녜요. 제가 주제넘은 말을 할 뻔 했네요.”

“아니야. 나 궁금한데? 명석이가 내 아들이라면?”

“전 엄마가 어떤 상황이든 행복하길 바랐을 거 같아요.”

“행복... 그래.”

말을 마치고 명석은 더 이상 주제넘은 말을 말아야지 다짐하고는 생선회와 초밥을 마구마구 먹었다.


죽기 전의 삶을 따져봤자 기껏 서른한 살이었다. 어머니뻘 되는 오드리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하는 게 스스로 보기에도 우스웠다. 그것도 경험해본적도 없는 부부 문제를...


학원 동급생끼리의 선을 넘지 말아야지 다짐했지만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 오지라퍼, 명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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