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살인을 피하는 법 1
‘후우!’
명석은 방바닥에 누워 깊게 호흡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명석을 살인범이 된 사건 속으로 이끌었다. 어느새 명석은 넋이 나간 채 지난 삶의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
졸업식을 열흘 앞둔 2010년 2월 1일 월요일. 명석의 인생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날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상원이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지연의 어머니인 것을 알게 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아니다.
비극의 시작은 상원이 지연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이었다. 지연은 그 마음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지연아, 집에 가는 길에 너네 학교 앞 대강분식에서 순대볶음 좀 사와라. 엄마가 오늘 순대가 땡기네. 수연이도 먹을 거니까 3인분에 군만두도 좀 사고. 야, 차지연 듣고 있니?”
집으로 들어오던 상원이 미경과 지연의 통화 내용을 듣게 된 건 우연의 장난이었을까? 아니면 미경의 부주의 때문이었을까? 결국 지연이 우려 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우리 학교 앞 대강분식을 말하는 거 같은데? 차지연이라고? 차지연 동생이 1학년 차수연이라고 했었는데... 저 아줌마 딸이 옆 반 차지연? 뭔가 재미있는데?’
상원은 자기도 모르게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갔다.
미경이 내뱉은 말의 조각들을 맞춰 전체 퍼즐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경이 화장실 청소를 하는 동안 상원은 주방에 놓인 미경의 핸드백에서 지갑을 몰래 꺼냈다. 그러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상원은 신분증에 적힌 주소를 유심히 보았다.
‘주소가 뭐 이래? 아파트도 아니고 빌라도 아니고. 흠... 심심한데 가서 좀 골려줄까?’
상원은 아무렇지 않게 지갑을 제 자리에 되돌려 놓고는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상원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지도를 참고해 지연의 집을 찾아갔다.
‘뭐야. 이런 다 쓰러져 가는 집에도 사람이 사는 건가? 엄청 허름하네. 이런 데 사는 주제에 나를 괄시했다 이거지? 어이가 없네.’
반반한 얼굴이 전부인 지연이 가난한 주제에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니 상원은 열이 받았다.
상원이 대문 앞에 서서 안을 힐끔거렸다.
잠시 후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오는 지연이 대문 앞에 서있는 상원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네가 거기 왜 있는 거야?”
“어? 너야말로 여기 왜 있는 거야? 난 우리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어떻게 사시나 궁금해서 와 본건데.”
놀리는 듯 뺀질대며 말하는 상원의 말에 지연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무무무슨 소리야?”
“야 진작 말하지 그랬냐? 그럼 아주머니께 더 신경 써 드렸을 텐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알아듣게 설명해.”
지연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신기한 인연이다? 도우미 아주머니 딸이 너라니. 다 알고 왔어. 크크크큭. 그런 재미있는 일을 너 혼자만 알고 있었냐.”
“......”
“아, 오르막길 올라오니 엄청 목 탄다. 등산한 느낌이야. 물 한잔 마시자.”
지연은 한참을 말없이 상원을 노려보았다.
“물 만 마시고 가라. 더 할 말 없으니까.”
지연은 매섭게 째려보며 쌀쌀맞게 말했다.
지연이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상원이 뒤를 따라갔다. 집 전체에 인기척이라고는 없이 고요했다.
“완전 절간 같다. 여기 왜 이렇게 조용해?”
상원은 두리번거리며 마당에 걸려 있는 빨랫줄과 2층으로 난 계단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당에서 계단으로 연결된 반지하실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여기서 기다려. 물 가져 올게.”
현관문 앞에 상원을 세워두고 지연은 집 안으로 들어가 물 한잔을 가지고 나와 상원에게 건넸다.
상원은 목구멍을 최대한 열고 물을 쭉 들이켰다.
지연은 팔짱을 끼고 물 마시는 상원의 얼굴을 짜증스럽게 쳐다봤다.
빈 잔을 손에 든 상원이 문이 살짝 열린 지하실을 턱으로 가리키며 지연에게 물었다.
“저기 지하실에도 누가 사는 거야?”
“뭐. 누가 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지금은 비었어.”
지연이가 별걸 다 묻는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상원의 눈빛이 순간 서늘하게 변했다.
상원은 컵을 받으려고 내민 지연의 손을 거칠게 붙잡고 지하실로 강제로 끌고 갔다. 지연의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명석은 신형이와 당구 한 게임을 하고 집으로 오던 중이었다. 저만치 집이 보이자 명석은 미리 열쇠를 꺼내려고 가방에 손을 넣었다.
그 때였다. 상원이 명석의 집 대문에서 무언가에 쫓기듯 튀어 나왔다.
“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명석이 그 모습이 의아해서 따지듯 물었다.
“......”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상원이 명석을 보고 순간 주춤했다.
이내 상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갈 길을 가려했다.
명석이 상원의 손목을 잽싸게 잡아챘다.
“야. 거기서 왜 나오냐고?”
명석이 붙잡은 상원의 손목을 통해 온 몸의 떨림이 전해졌다.
‘이 새끼, 왜 사시나무처럼 떠는 거야?’
상원은 명석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명석은 영문을 모른 채 열려있는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2층에 가기 위해 계단을 절반쯤 올랐을 때 지하실 문이 평소와는 달리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지하방에 지금은 아무도 안 살 텐데 문이 왜 열려있지?’
무언가 이상했다.
인간의 촉은 아마 스스로를 위험에서 지키려는 본능에서 생겨났을 것이었다. 명석은 그 촉을 믿고 지하실 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지하실 문을 열자 명석은 상원이 펼쳐놓은 악의 구렁텅이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아아아아아악! 지... 지연아!’
명석은 지연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명석은 목격자가 아닌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과거를 회상하던 명석은 끔찍한 기억을 떨치려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두 번이 아니라 열 번을 다시 산다 해도 그날의 기억은 아마 초 단위로 기억할 수 있으리라.
기억 속 그날이 너무 선명해 마음이 괴로웠다.
‘내가 공현석 감독을 만나게 되는 거나, 대학생이 되는 걸 보면 지난 삶의 일이 꼭 일어나는 건 아니야... 불안해하지 말자. 난 이미 홍상원을 때려눕힌 사람이라고. 별일 없을 거야.’
명석은 의식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노오력과 의지를 다 해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잖아. 그래서 좋은 결과들도 있고. 이번 삶은 확실히 달라!’
명석은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
“야 출출한데 뭐라도 먹을까?”
명석과 신형, 영석은 부모님이 여행을 떠난 유현의 집에 모였다. 명석도 과거 기억은 접어두고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놀며 기분을 전환하고 있었다.
“엄마가 카레 한 솥 해놓고 가셨어. 배고프면 즉석 밥에 카레 먹을려? 푸하하하하.”
신형의 제안에 유현이 개구지게 웃으며 대답했다.
“부모님 여행 매뉴얼이라도 있는 거냐? 우리 엄마도 여행 갈 때 그렇게 카레를 해놔요. 아니면 곰국. 크크큭”
영석도 뭐가 우스운지 한참을 소리 내서 웃었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보가 터지는 나이였다.
“야 엄마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냐? 운 좋은 줄 알아. 카레해줄 엄마 있는 거.”
“얘는 왜 또 코미디를 다큐로 받아.”
명석의 장난스런 푸념에 신형이 센스 있게 대꾸했다.
“됐고. 출출할 땐 치킨이지. 오늘 이 형이 쏜다. 1인 1닭으로 4마리 주문해!”
“오우. 오명석, 아니 형님! 오늘 용돈 좀 받으셨습니까? 바로 주문하겠습니다.”
주문한 치킨이 도착하자 유현이가 냉장고에서 캔 맥주 4개를 꺼내왔다.
“형이 사다 놓은 거 슬쩍 마시자. 치킨엔 맥주지!”
“야 5개 중 4개나 꺼냈는데 어떻게 슬쩍이냐. 완전 티 나지.”
“괜찮아. 괜찮아. 형한테 술값 주면 돼. 소심하기는.”
명석과 친구들은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케이블TV에서 재방송하는 ‘무안한 도전’을 킥킥거리며 보고 있었다.
“캬. 맥주 맛 좋다. 치킨에 맥주는 환상의 조합이야.”
먹성 좋은 영석이 닭다리를 뜯으며 말했다.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명석은 기분이 좋아졌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
“와, 쟤 골 때린다. 집 앞에 가짜 CCTV를 달아놨어.”
TV에는 무안한 도전 출연자의 집 앞에 달린 가짜 CCTV 카메라와 경고 문구가 클로즈업 되었다.
‘어. 저거 괜찮은데?
명석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라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가짜라도 그럴싸한데? 집 앞에 택배 있어도 안심이겠다.”
“야 안심이고 뭐고. 아파트에 저런 거 달아놓으면 완전 돌아이로 찍히겠다.”
“쟨 저거 아니어도 이미 돌아이야. 하하하하.”
명석은 먹던 치킨을 내려놓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내가 왜 진작 저 생각을 못했지?’
명석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 CCTV 카메라를 주문했다.
‘집 앞에 CCTV가 있으면 나쁜 맘을 먹었다가도 포기하지 않겠어? 설령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증거로 쓸 수도 있고... 여러모로 안심이지.’
명석은 진작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내가 누명쓰고 감옥 가는 것도 억울한 일이지만 꽃다운 나이에 죽게 된 지연이 삶도 너무 아깝잖아. 절대로 그런 일이 다시는 있어선 안 돼!’
다음 날 CCTV 설치 기사가 명석의 집에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CCTV 주문하신 오명석 고객님이신가요? CCTV 설치하러 왔습니다. 카메라 어디에 설치해 드릴까요?”
설치 기사가 명함을 건넨 후 능숙하게 제품을 꺼냈다.
“대문 앞에 설치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문 앞에 방문자들이 잘 보일 수 있는 위치에 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에 도둑이 자주 드나 봐요?”
‘초라한 집에 웬 CCTV라는 소리군. 물건이 아니라 내 인생과 친구 목숨을 훔쳐간 자식을 잡으려는 거다. 왜!’
“아, 도둑보다는 택배 도난도 몇 번 있었고요.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이 꽤 많아서요.”
“네, 그러시군요. 요즘 그런 이유로 가정집에서도 CCTV를 구매하시는 경우가 꽤 있어요. CCTV로 촬영한 영상을 저장하는 녹화기는 어디에 두실 건가요?”
“저희 집이 2층인데 거기에 설치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영상은 2주일 정도 저장이 되고요 모니터를 연결하시면 녹화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설치 마친 후에 사용하는 방법은 다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대문에 CCTV를 부착하고 있을 때 마침 지연과 수연이 집에 들어왔다.
“오. 이거 CCTV야? 진짜 작동되는 거야?”
지연이 흥미로운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응. 택배 주문할 때 도난당할 까봐 불안하기도 하고, 쓰레기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하니까.”
“와우. 오빠 멋지다. 완전 안심되는데? 어두울 때 이 동네 왠지 으스스하잖아. 근데 어두울 때도 선명하게 찍히나?”
“네 그럼요. 주간에는 컬러로 찍히고요, 야간에는 흑백으로 자동 전환돼서 촬영됩니다. 선명하게 식별하실 수 있으십니다.”
설치 기사가 수연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했다.
“좋다. 그런데 이 CCTV 영상 확인할 일 없으면 더 좋겠네.”
지연의 말에 명석도 누구보다 동감했다.
“그러게. 근데 이거 설치만 해놔도 사람들이 조심하니까 아마 이상한 행동 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설치 다 했습니다. 서비스로 이 스티커 드릴 게요.”
[방범 CCTV 작동 중]
명석은 설치 기사가 준 경고 스티커를 문에 붙였다.
‘이제 안심이다.’
명석은 CCTV가 자신을 그리고 지연을 보호해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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