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화 타투어 이야기
제 20화 타투어 이야기
타투어는 시궁창에서 기어 나온 듯 그늘지고 축축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피부가 검고 심하게 얽어있어 구역질이 날 정도로 흉측한 얼굴인대다가 야릇한 냄새를 항상 달고 다녔다.
그의 직업은 타투이스트(문신을 해주는 사람)였는데, 이상한 냄새는 문신을 해주기 위해 그가 항상 갖고 다니는 약물 탓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괴물 같은 모습을 징그러워하며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문신 솜씨가 뛰어나서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타투어는 한 건장한 남자의 팔뚝에 문신을 해주고 있었다.
호랑이가 태양을 내리치는 모습이었다.
그의 손은 빠르고 정밀한 기계였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호랑이 얼굴의 수염 한 가닥까지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사내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꿈틀거린다. 하지만 신음을 하면서도 점점 완성되는 문신을 보며 희열에 들떠 입을 헤벌린다.
그 때였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갑자기 모자를 눌러 쓴 사람이 뛰어들었다. 그의 손에는 시퍼렇게 잘 벼려진 칼이 들려져 있었다. 칼은 피를 찾아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모자를 쓴 사람은 문신을 하고 있는 사내의 팔뚝을 힐끗 본 후 고개를 들었다.
사내는 잔뜩 긴장을 한 채 몸을 움츠리고 눈을 부라렸다.
타투어는 놀라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모자를 쓴 사람은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쏜살 같이 칼을 내뻗었다.
그러나 사내도 만만치 않았다. 몸을 틀며 칼 든 손을 잡아채 몇 번 탁자에 내리치자 모자를 쓴 사람은 칼을 놓치고 말았다.
사내는 모자를 쓴 사람을 찍어 누르고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그러나 침입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모자를 쓴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칼로 사내의 등을 푹 찔렀다.
사내는 등을 더듬으며 괴로워하다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고꾸라졌다. 그를 찌른 사람이 칼을 뽑자 피가 번지며 등을 빨갛게 물들인다.
다른 사람이 타투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자식은 어떻게 하지?”
“죽여 버려. 사람 같지도 않은 놈이야.”
순간 타투어는 일어나 문신용 칼을 마구 휘둘렀다. 검고 얽은 얼굴에 독기가 올라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짐승 그 자체였다.
쉽게 타투어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너무 늦어 한 사람의 팔에 길게 상처가 나고 말았다.
그는 팔을 감싸고 비명을 질렀다. 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며 금방 바닥을 흥건히 적신다. 그는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말했다.
“이놈이.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러나 타투어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른다.
두 사람은 의자를 들고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쫓기듯 거실로 밀려나왔다.
타투어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상처를 입은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평생 햇볕에 그을린 듯한 까만 피부. 움직일 때마다 입에서 새나오는 기괴한 괴성.
끔찍한 악몽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잘 훈련된 사람들이었다. 넓은 곳으로 나오자 한결 움직이기가 편해졌다.
피할 생각 없이 덤벼들기만 하는 타투어의 앞에 슬쩍 의자를 밀어 넣는다. 타투어는 발이 걸려 의자와 함께 넘어졌다.
순간 한 사람이 빠르게 달려가서 타투어의 배를 힘껏 걷어찬다. 마르고 빈약한 체구의 타투어는 공중에 붕 뜨더니 맥없이 고꾸라졌다.
두 사람은 서서히 타투어에게 다가갔다. 타투어는 반격하려고 꿈틀거렸으나 명치를 맞아 손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팔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말했다.
“이 놈은 나에게 줘.”
그는 칼을 들고 씩 웃으며 타투어에게 말했다.
“나는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누가 나를 괴롭히거나 상처를 주면 내 안에서 악마가 튀어 나와. 악마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몸에서 살고 있었어. 내가 상대에게 열배 백배의 고통을 주지 않으면 악마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나를 괴롭혀. 그러니 네가 고통을 받아들여. 이 고통은 네가 내 안의 악마를 끌어냈기 때문에 생긴 거니까.”
그는 칼을 들어 타투어의 심장 부근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지금부터 네 심장을 천천히 찌를 거야. 한 1분 정도 걸릴까? 아니 5분, 10분 정도 걸릴 수도 있겠지. 내 기분에 따라 속도는 달라질 거야. 자, 천천히 고통을 음미해봐.”
그는 타투어의 앞섶을 풀어헤치고 칼끝을 서서히 밀어 넣었다. 조금씩 피가 배어 나오고 칼은 점점 깊이 들어간다. 타투어는 입을 벌리고 쇠못으로 벽을 긁는 소리를 낸다. 비명은 끊어지지 않고 뱀처럼 길게 이어졌다.
순간 밖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뛰어 들어왔다. 뜻밖에도 트레이서들이었다.
두 사람은 어, 어 하는 순간 순식간에 트레이서들에게 둘러싸였다. 두 사람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 칼을 휘두르며 사방을 둘러본다. 도망칠 곳이 보이지 않았다.
앞에 있던 경관이 노려보며 경찰봉을 좌우로 흔든다.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경찰봉.
두 사람이 경찰봉에 정신을 팔린 사이 두 명의 경관들이 그들의 뒤로 바짝 붙는다.
갑자기 앞에 있는 경관이 경찰봉을 크게 휘둘렀다.
두 사람은 펄쩍 뒤며 뒤로 물러섰다. 순간 뒤에 있던 경관들이 기다렸다는 듯 오금을 걷어찼다. 두 사람은 별다른 반항도 못해보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곧 수갑이 채워지고 두 사람은 밖으로 끌려 나갔다.
타투어는 넋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때 트레이서 킹, 기영이 다가와 타투어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다행이군. 살짝 긁힌 정도야.”
타투어는 안면이 있는 듯 그를 알아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킹이 이곳까지 어쩐 일입니까?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말입니다. 뭔가 찝찝하네요.”
기영은 타투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타투어는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해 앉은뱅이처럼 기어 나왔다. 기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근처 카페로 데리고 갔다.
타투어는 고통스러운 듯 계속 배를 주물렀다. 기영은 그에게 담배를 권하며 말했다.
“많이 아파?”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기영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도와주는 게 어때? 내가 너를 보호해주지 않으면 너는 한 시간도 살아있지 못해.”
타투어는 가래 끓는 소리로 내뱉었다.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너는 마약 판매, 장물처리, 킬러 알선, 신분증 위조 등의 혐의를 받고 있어. 대부분 사실이겠지. 증거야 찾든지 만들든지 하면 되니까. 최소한 20년 이상 형을 받게 될 거야. 그렇지 않아?”
“그래서요?”
“그런데 너는 타투이스트란 참 좋은 직업을 갖고 있어. 솜씨도 일류라서 도시의 유명한 악당들이 다 너에게 문신을 의뢰하지. 그래서 너는 모르는 일이 없어. 특히 음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말이야.”
타투어의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나더러 당신의 정보원이 되란 말입니까?”
“그래. 맞았어. 정보원. 바로 그거야.”
“하지만 그것이 알려지는 즉시 나는 죽은 목숨입니다.”
“너는 이미 죽은 목숨이야. 방금 네 손으로 신흥파의 행동대장을 죽였잖아.”
“그는 갑자기 쳐들어온 녀석들이 죽인 겁니다.”
기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걸 누가 믿겠어. 슬쩍 소문을 흘리면 다 네가 죽인 것으로 되는 거지.”
타투어는 기영의 뻔뻔스러운 모습에 치를 떨며 말했다.
“말도 안 됩니다. 나는 절대 죽이지 않았습니다.”
기영은 대답 없이 미소를 지은 채 웃기만 했다. 타투어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려와 나를 구한 겁니까? 그들이 쳐들어온 지 3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설마 당신이 조작한 겁니까?”
기영은 긍정도 부정도 안 하고 웃기만 했다.
“지금 네가 걱정해야 할 일은 지난 일이 아니야. 앞으로의 일이지. 어떻게 살아남을 지에 대해서만 걱정하면 되는 거야.”
타투어는 증오의 눈으로 기영을 쏘아보았다. 검은 얼굴이 점점 붉어진다. 얽은 얼굴에 주름이 잡히자 악귀의 모습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기영은 눈 하나 깜짝 않고 타투어를 쏘아보았다.
그 때 타투어의 목에 걸린 팬던트가 눈에 띄었다. 기영은 팬던트의 뚜껑을 열었다. 아주 아름답고 예쁜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기영은 물었다.
“누구야?”
타투어의 얽은 얼굴에서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그의 보물이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딸입니다.”
“설마.”
“내 얼굴을 보고 하는 말이라면 이해합니다. 내 얼굴은 원래부터 이러지 않았습니다. 화공약품에 쏘여서 이렇게 된 겁니다. 게다가 이 아이는 엄마를 닮았죠. 하지만.”
타투어는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기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하지만 뭐?”
“시한부 생명입니다. 희귀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합니다.”
기영은 갑자기 울컥했다. 그의 딸 세연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만히 탄식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뭐해. 곁에서 돌봐줘야 하잖아.”
“나는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이런 몰골로 어떻게 가까이 갑니까. 아이가 놀랄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이는 몇 살이야?”
“여섯 살입니다.”
“한참 예쁠 때로군. 학교도 가야하고. 그러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 거야?”
타투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영은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그도 세연 앞에 나서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지 않았던가. 기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의 이름은 뭐야?”
“명주입니다. 박 명주.”
타투어는 가슴 아파하는 기영을 우두커니 지켜봤다. 그가 왜 안타까워하는 걸까? 혹시 그라면···.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다.
“트레이서 킹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뭐야?”
“내 딸이 죽을 때까지 아빠처럼 돌봐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아는 모든 정보를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기영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세연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딸 앞에도 나서지 못하면서 남의 딸을 돌봐준다는 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는 말했다.
“미안해. 나에게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아빠가 돼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씩 찾아가서 외롭지 않게 말동무만 해주면 됩니다. 그 아이는 잘해야 한 달밖에 살지 못합니다. 부탁합니다.”
기영은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타투어의 모습은 너무나 간절했다. 기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세연의 얼굴이 눈앞에 스친다. 그녀는 말했다.
‘아빠. 뭐해? 도와주겠다고 말해.’
결국 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주는 1인 병실을 쓰고 있었다.
기영이 꽃다발과 곰 인형을 들고 들어오자 명주는 꽃처럼 활짝 웃으며 말했다.
“누구세요?”
“나는 아빠 친구야. 아빠 부탁으로 왔어.”
명주는 생각대로 아주 귀여운 아이였다.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갸름한 얼굴. 그러나 오랜 병원 생활 탓인지 얼굴에 핏기가 없고 매우 파리했다.
몸과 머리에는 모니터와 연결된 여러 개의 전극이 부착되어 있었다. 팔에 꽂힌 주사 바늘을 통해 흘러들어가는 노란 약물.
많이 아플 텐데 명주는 태연히 웃고 있다. 기영은 세연의 어릴 때 모습이 생각나 빙긋 웃었다.
그런데 명주는 아빠의 부탁이란 말을 듣자 표정이 금방 어두워진다.
“아빠는 어디에 있어요? 왜 나를 보러 오지 않아요? 내가 너무 아파서 그런 거죠?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나는 곧 다 나아서 씩씩하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아빠에게 나를 보러 오라고 해주세요.”
기영은 순간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왔다. 기영은 꾹 참고 말했다.
“아빠는 외국에 계셔. 가까이에 있다면 바로 널 보러왔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빨리 오라고 말해볼까?”
“왜 외국에 계셔요? 혹시 내 병원비 때문에 돈 벌러 가신 거예요? 그러면 나는 병원에 있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세요. 나는 이렇게 움직일 수 있어요.”
명주는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렸다. 그러나 곧 힘이 빠져 털썩 침대에 쓰러졌다.
바로 경보장치가 울리고 간호사와 의사가 달려왔다. 의사가 맥없이 누워있는 명주에게 응급처치를 한 후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억기는 당황해서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절대 아이를 흥분시켜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흥분할 만한 얘기도 절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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