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화 도주
제 81화 도주
그 순간 돌연 자동차 한 대가 클랙슨을 울리며 쏜살같이 달려왔다.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았다.
자동차에는 스피니와 경찰관들이 타고 있었다.
스피니는 멀찌감치 떨어져 쫓아오다가 모르타르가 세연 일행을 향해 ‘실렌트’를 발사하려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저 자는 모르타르 아냐? 뭐하는 거야? 야, 밟아. 짓눌러버려.”
모르타르는 자동차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으나 자동차는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똑바로 달려오고 있었다.
모르타르는 깜짝 놀라 길 옆으로 몸을 던졌다.
자동차는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모르타르의 차를 정면으로 부딪고 30미터 가량 죽 밀고나갔다.
모르타르는 논바닥에서 몇 바퀴 뒹군 후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늦었어도 차에 치일 뻔했다.
그의 옷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그의 승용차도 박살나 연기를 내뿜었다.
모르타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달려오던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자동차는 보닛이 열린 채 한쪽 전조등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심하게 찌그러져있었다.
차 안의 사람들은 터진 에어백에 파묻혀 알아볼 수 없었다.
얼핏 보면 과속으로 달리던 차가 도로 위에 세워져 있는 모르타르의 차와 충돌한 모습이었다.
세연 일행은 도망치다가 쾅 소리에 놀라 일제히 뒤돌아보았다.
검은 승용차가 모르타르의 차를 들이받고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모르타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세연은 황급히 일행에게 소리쳤다.
“천운이야. 하늘이 돕고 있어. 모두 돌아와서 차에 타. 그리고 모엠, 네가 운전해. 빨리 빠져나가자.”
일행은 서둘러 차에 올랐고 모엠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충격을 받아서인지 쉽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모르타르는 뒤에서 털컥 소리가 나자 몸을 돌려 일행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모두 버스에 타고 달아나려하고 있었다.
모르타르는 ‘실렌트’를 주머니에 넣은 채 소형버스를 향해 달리려고 했다.
그런데 허리가 삐끗하며 심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차를 피하려고 땅에 구를 때 다친 모양이다. 그러나 모르타르는 이를 악물고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르샤가 소리쳤다.
“모엠, 서둘러! 그가 쫓아오고 있어.”
그러나 시동은 걸릴 듯 걸릴 듯 걸리지 않았다.
모르타르의 얼굴이 사이드 미러에서 어른거렸다. 나르샤는 발을 동동 굴렀다.
다행히 모르타르는 발이 진창에 빠져 쉽게 가까이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부르릉 소리와 함께 소형버스가 꿈틀거린다. 드디어 시동이 걸렸다.
모르타르가 기어코 가까이 와서 잡으려는 순간 소형버스는 앞으로 쑥 나간다. 그리고 바로 도로로 올라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모르타르는 이를 바드득 갈고 달아나는 소형버스를 응시하며 소리쳤다.
“망할 것들!”
그 사이 모르타르의 차를 추돌했던 자동차의 문이 열리고 스피니와 3명의 경찰관들이 몸을 드러냈다.
스피니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소형버스를 잠시 응시한 후 모르타르를 향해 소리쳤다.
“어? 이게 누군가? 모르타르 아닌가? 오랜만이야.”
스피니는 말하면서 몸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려는 듯 팔을 빙빙 돌리고 다리를 크게 움직이며 깡충깡충 뛰었다.
스피니의 그런 우스꽝스러운 행동은 가뜩이나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모르타르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경찰관 하나가 커다란 플래시를 들고 무례하게 모르타르의 얼굴을 이리저리 비추고 있었다.
모르타르는 얼굴을 찡그리며 팔로 얼굴을 가렸다.
스피니는 쏘아보는 모르타르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런데 차를 도로 위에 그냥 세워놓으면 어떻게 해? 그것도 깜깜한 밤중에 말이야. 도로교통법 위반인 거 몰라? 경찰은 여기 있으니까 따로 부를 필요는 없지만 보험처리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모르타르는 그제야 그가 스피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흠칫 놀란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가 스피니라면 분명 주위에 지원부대가 있을 것이다. 모르타르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말을 받았다.
“스피니 부장인가? 자기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려는 나쁜 버릇은 여전하군. 그러나 오늘은 임자를 잘못 만났어.”
모르타르는 말을 하면서 면밀히 주위를 살폈다.
적은 스피니를 포함해서 네 명이다. 모두 권총을 소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 쪽은 혼자다. ‘실렌트’를 갖고 있었지만 사정거리가 짧고 연속으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적이 흩어져서 공격을 한다면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모르타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차하면 도망치려고 도주로를 찾아보는 것이다. 스피니는 웃으며 말했다.
“뭐야. 벌써 달아나려고? 사고가 났는데 처리도 하지 않고 도망가면 그건 뺑소니야.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고?”
모르타르는 아무 대답도 없이 긴장한 채 도로 뒤 쪽을 바라보았다. 작은 불빛들이 번쩍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지원부대 차량의 불빛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정말 지원부대라면 머뭇거릴 수가 없다. 자칫 도망갈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모르타르는 말했다.
“스피니 부장, 나는 모르타르야. 누가 도망친다고 그래?”
그러나 말이 끝나자마자 몸을 돌려 논 한가운데로 뛰기 시작했다.
멀리 어두운 산 그림자가 보였다. 그 산까지만 달아나면 절대로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스피니는 모르타르를 화나게 해서 잡아놓으려고 하였으나 그가 대응하지 않고 도망치자 당황해서 말했다.
“여우같은 놈. 빨리 쫓아가 잡아. 총을 사용해도 좋아.”
경찰관들은 쫓아가며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둠 속이었고, 바닥이 진흙탕이어서 똑바로 맞추기 어려웠다. 총알은 애꿎은 바닥에 퍽퍽 박힐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모르타르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모르타르는 가까이에 총알이 박혀 진흙이 튈 때마다 움찔하며 방향을 틀었다.
어느 순간 총알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맞추고 돌멩이는 튀어 오르며 모르타르의 등허리를 때렸다.
모르타르는 깜짝 놀라 비틀거렸으나 용케 중심을 잡았다. 스피니가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플래시를 흔들면서 다리에 비춰!”
모르타르의 발밑으로 플래시 불빛이 사이키 조명처럼 아래위, 좌우로 어지럽게 움직였다.
발밑이 어지러워 제대로 걸음을 내딛기가 어려워졌다. 그는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발이 꼬여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것을 본 경찰관들이 전력을 다해 달려오자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경찰관 하나가 소리쳤다.
“꼼짝 마! 손들어!”
모르타르는 엉덩이를 땅에 댄 채 몸을 돌렸다.
멀리서 보기에는 손을 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어느새 ‘실렌트’가 들려 있었다. 그는 손목을 움직여 경찰관들을 향해 ‘실렌트’를 발사했다.
스피니는 모르타르의 손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반사적으로 진흙탕에 납작 엎드리며, “위험해! 피해!” 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순간 웅, 소리가 들리며 그의 머리 위로 붉은 섬광이 지나갔다.
스피니는 얼굴과 옷이 흙탕물로 범벅이 된 채 고개를 들어 경찰관들을 보았다.
그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실렌트’에 맞아 허수아비처럼 논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있었다. 플래시만 손에 매달려 불안정하게 논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모르타르는 일어서서 마네킹이 된 경찰관들에게 다가갔다. 플래시를 한 개 빼앗아 경찰관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비춰보았다. 그러나 스피니는 없었다.
스피니는 고작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엎드린 채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모르타르는 플래시를 이리저리 비추며 스피니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넓은 어둠 속에서 쉽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때 스피니가 발을 움직이는 바람에 아주 작게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순간 모르타르는 몸을 낮추고 어둠 속으로 ‘실렌트’를 겨누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발사할 생각이다.
모르타르는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소리에 집중하자 사방에서 휑하게 바람 부는 소리가 들리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스피니는 엎드린 채 권총을 꼭 잡고 팔을 조금씩 앞으로 뻗었다.
당장 총을 발사하면 경찰관들이 맞을 수도 있었으므로 모르타르가 경찰관들에게서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모르타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돌연 허리를 구부리고 꼼짝 않는다.
스피니도 총을 겨누려던 자세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고요한 어둠 속에 침묵이 이어지고 숨소리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 전신에서 땀이 흘러내리고 팔과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먼저 움직이면 지는 것이다.
그러나 모르타르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대여섯 대의 차량들이 어느새 가까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타르는 갑자기 플래시를 내던지고 불빛이 비치지 않는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스피니는 뒤늦게 총을 쏘았으나 총소리만 허공에 메아리칠 뿐이었다.
스피니는 뒤따라 달리며 소리쳤다.
“이 비겁한 놈아! 멈춰!”
그러나 모르타르는 대꾸하지 않고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순식간에 산이 있는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스피니는 쫓아가다가 숨을 헐떡거리며 경찰관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쫓다가는 오히려 ‘실렌트’에 당할 수도 있었다.
곧이어 경찰 차량들이 도착하고 경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미 모르타르는 사라진 뒤였다. 스피니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실렌트’에 당한 경찰관들은 한 시간이 더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잃어버린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눈만 끔벅거렸다.
경찰관 한 명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스피니는 한숨을 쉬며 경찰관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모르타르의 무기에 당했어. 어떤 무기인지 모르겠는데 위력이 대단했어. 지금 몸 상태는 어때?”
“머리가 멍하고 탈진한 기분이 드는 것 외에는 큰 이상은 없습니다. 조금 구토가 나오려고도 합니다. 기억도 나지 않고요.”
스피니는 조금 생각한 후에 말했다.
“아마도 두뇌에 타격을 주는 무기인 것 같아. 어떻게 하는 걸까?”
스피니는 두려움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앞으로 ‘블랙선’과 전투가 벌어질 때 적이 손전등 같은 것으로 겨누면 빨리 피해.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피하는 게 상책이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모르타르는 어디로 갔습니까?”
스피니는 어둠 속의 커다란 산 실루엣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산으로 도망쳤어. 이곳 관할 경찰서에 연락해서 즉시 산을 수색하라고 해.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흔적이라도 찾아야지. 그리고 승용차를 한 대 수배해서 빨리 보내라고 하고. 세연 일행을 쫓아가는 것이 우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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