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의 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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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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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9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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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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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마타르의 축일.

DUMMY

"영혼의 새가 인도하길"



명복을 빈 일마타르는 이름없는 묘 위에 연람색의 스카비오사 한 송이를 올려놓았다. 근처에선 아다파가 발을 들어 지면이 울리도록 땅을 찍어내고 있다. 발길질 한 번에 시신 한 구가 들어갈 만한 구덩이가 파인다.


한 번에 한 구덩이,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게 끝나진 않는다. 고성이 울릴 때마다 사방으로 흙더미가 비산한다.


굴 속에서 꺼내둔 모든 시신의 수습과 매장을 끝내고 아다파는 일마타르가 일러준 대로 다시 포티리 부족을 찾아갔다.


아다파는 상석에 앉아 부족들을 향하여 제 뜻을 전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 근처에선 멘티르 녀석들이 나타나지 않을 거다"



이것은 아다파에게 사실이자 다짐이기도 했다.



"부족의 연명에 어찌 보은을 해야 할지···"



젊은 추령은 고고해 보이는 그에게 어울릴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이었다. 추령은 급기야 부족민들을 보며 무어라 근심섞인 말을 하기도 했지만 부족민들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다파는 난처해하는 이들을 보며 말했다.



"무얼 바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보은을 하고 싶다면···"


"이날을 축일로 정해 일마타르에게 감사제를 지내라"


'아다파!'



일마타르는 놀라 당장 꺼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날은 그 녀석이 너희들에게 선물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추령이 웃으며 답했다.



"허허허! 알겠습니다"


"성신의 아다파여 영원하소서!!"



멀어지는 아다파의 뒤로 포티리의 부족민 모두가 제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어 축수했다.


그의 뒤로 저를 숭상하는 무리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다파는 바위가 부서질 정도로 힘껏 땅을 박차 날 듯 달렸다.


아다파는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달했다. 아다파는 해안가 모래톱 위에서 트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거야?"



아다파는 대답 없이 뒤돌아 멀어져 갔다.



"······"



조용히 해안가를 벗어나던 아다파는 또다시 뒤돌아 허공을 바라봤다. 일마타르는 아다파가 바라보는 쪽을 보긴 했으나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구름과 허공이 전부였다.



'대체 뭘···'


"두두두두-"



모래가 솓구치며 아다파는 바다로 달렸다. 달리던 그가 발을 구르자



"꿍-"



넓은 범위의 모래들이 일제히 솓아오르며 아다파의 인영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허공을 가르는 아다파는 그의 영안에 비춰지는 구름 너머의 곳을 향하고 있었다.


떠오르는 그의 영체는 난운 사이로 삼켜졌다. 끝도 없이 솓구칠 것 같던 아다파의 영체도 어느 순간 구름 사이에서 더 이상 떠오르지 못했다.



'조금만!'


'···더!'



간절한 아다파의 시야에는 먼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땅 덩어리가 있었다. 찰나 드러났던 땅 덩어리는 다시 구름에 가려지며 멀어져갔다.


아다파가 날아가 버린 뒤 일마타르는 마냥 아다파를 기다리며, 일렁이는 해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떠나 사라진다 해도 누가 있어 나무랄 만한 것도 없었고, 아다파는 저를 따라오라 한 적도 없었다.


사막에서 말라가던 그에게 마나를 전해 준 것만으로 그녀가 건낸 은혜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녀의 심성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의 어려운 부탁을 들어 준 아다파에게 작은 보답이나마 도움을 주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



'가 버린 거 아냐?'


'괜히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아다파에게 일마타르의 인내심도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때 바다 가까이 자리한 그녀 앞에서 물보라가 피어올랐다. 방심하고 있던 일마타르는 뒤늦게 아다파가 되돌아온 것을 알았다.



"어딜 갔던 거야?"


"바수르"



대륙을 떠도는 일마타르조차 그 지명은 생소하게 들렸다. 그녀가 되물었다.



"섬이야?"


"아니"



아다파는 손가락을 들어 먼 구름을 가리켰다.



"도시"


"무슨 뜻이야 그건?"


"내 등에서 날개가 돋아난다면 모를까 지금은 갈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하늘로 날아가야 한다는 거야?"


"그렇다"



골몰하던 일마타르는 화색이 변하더니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런 거라면 방법이 하나 있어"


"무슨 방법?"


"대장공 고브누"


"그 자의 실력이라면 날개를 달아 줄 수 있을지도 몰라"


"어디에 있나"


"타리르의 마세위 절벽 아래야"


"타리르라면···"


"먼 남서쪽이지"


"이곳에서 대양을 건너는 배를 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없어"


"···그런가"



일마타르는 아다파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일마타르의 조언대로 남서방향으로 향하던 둘은 작은 도시 어귀를 지나고 있었다.


부서진 도시의 잔해들은 파멸의 과정을 알려주듯 쓰러진 벽과 기둥 건물 곳곳 검게 그을린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웬일인지 아다파는 그 도시의 대로를 한달음에 가로질러 지나지 않고 천천히 도시의 경계를 돌아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일마타르는 미적거리는 그의 의도가 궁금했다.


이유를 물어보려던 때 일마타르는 하늘에 구름이 밀려들고 주변이 어두워지는 걸 느꼈다. 뇌운 사이로 천둥이 내리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멀찍이 보이는 동굴로 빗방울을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비가 쏟아 내려도 상관없는 듯 가던 길만 향하는 아다파를 불렀다.



"아다파"


"아다파!"



불러도 대답이 없자 그녀는 아다파의 앞을 가로막을 생각이었다. 그때 빗소리만 가득했던 어둑한 수목사이로 북소리와 이상한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교리의 성가와 기도문을 섞어놓은 것 같은 낮은 목소리였다. 그 서늘한 소리들이 사방을 메우자



"둥-"



큰 북소리와 함께 아다파의 머리 위, 사면에서 그물들이 날아들어 덮쳐왔다. 일마타르는 소리를 지르며 아다파를 향해 운신하려 했지만 사방을 뒤덮는 목소리에 제자리에서 팔을 뻗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아다파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았다.


반신마저 한 자리에 묶어놓을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구사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존재들인지 의문이 일던 때 수풀 속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망령의 종속인지 그들의 머리는 모두 적색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불꽃 사이로 두 눈과 입도 밝은 적황으로 불타고 있었고, 피혁을 기워입은 옷에 팔목과 종아리에는 주홍색 비환과 북과 무기를 둘러 맨 차림이었다.


비극인지 다행인 건지 그들은 일마타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아다파의 상체를 속박하고 노예처럼 그를 끌고 가면서도 그들의 노래는 계속되었다. 그녀는 잡혀가는 아다파를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쿵-"


"후두두둑-"


"쾅!"



일마타르가 세이드에 걸려들어 환상을 보며 정신이 혼몽한 사이 아다파는 습격한 수십의 정령들과 원치않는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정령들은 아다파에게 함정이 들키자 수목을 일으켜 그를 묶고 거석을 떨어뜨리며 땅거죽을 갈라놓으려 했다. 하지만 대지를 뒤흔드는 사굴로 그를 묶어두려던 정령들의 공격은 아다파의 전신에 푸른빛이 발하며 산산이 부서졌고 곧 난전이 이어졌다.


정령들이 아다파에게 날아들자 허공을 찢는 천둥소리가 울렸다. 수 백번 푸른 불꽃을 일으키며 격돌하고 거목이 거암과 섞여 골렘이 되어 일어나며 영험한 힘이 깃든 화살과 날붙이가 날아드는 모습은 천계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ᛁᚹᛟᚾᛏ ᚺᛖᛋᛁᛏᚨᛏᛖ ᛚᛁᚴᛖ ᚹᛁᚾᛞ ᛁᚾᛗᚤ ᚠᛟᛟᛏᛋᛏᛖᛈᛋ"



아다파의 머리위로 골렘의 주먹과 화살들이 덮쳐왔다. 지면을 울리는 굉음과 동시에 옅은 먼지속에서 나타난 아다파는 골렘의 팔 위를 타 오르기 시작했다.


골렘의 팔 위로 정령들의 공격이 떨어지며 바위와 나무 조각들이 부서지고 깨지며 떨어져 나갔지만 아다파에겐 닿지 못했다. 단숨에 골렘의 어깨에 닿은 아다파가 발을 구르며 날아 골렘의 머리를 꿰뚫어 버렸다.


어깨와 머리가 산산이 부서져버린 골렘은 몸부림치다 힘을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낙하하는 부서진 바위들과 거목 사이로 떨어지는 아다파를 찾아낸 정령들은 그 짧은 순간 바위와 거목사이를 날고 디뎌 뛰어다니며 공격했다.


아다파는 머리를 노려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고 튕겨 내며 다시 한번 세이드를 외웠다.



"ᚷᛁᚷᚨᚾᛏᛁᚲ"



아다파의 몸이 법칙을 무시하듯 커다란 바위들보다 먼저 아래로 빨려 들어 땅 위에 곤두박질쳤다. 땅 위에 닿은 아다파는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지 않고 떨어지는 바위를 날려 전부 상쇄시켰다.


바위와 거목이 지면에 떨어져 허공에 흙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를 때, 아다파는 가려진 시야 사이를 오가며 토연 속에 자리한 정령들을 하나둘 씩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사태를 알아차린 몇몇 정령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시야를 확보했지만, 이미 삼 할 가까이 쓰러진 상황이었다.


연기 속에서 빠져나왔는지 아다파는 그 주변에 없었고 다시 정령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수목 사이를 오가며 땅 위에 자리한 정령들을 사냥하는 모양이었다. 동료들이 삽시간에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던 정령들은 아다파의 움직임을 예상하여 공중에서 공격을 쏟아 내렸다.


하지만 아다파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지면을 휩쓸고 다니며 단 한번도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더욱더 공격을 집중적으로 퍼붓던 정령들은 어느 순간 날아드는 그림자들에 와해 돼 버렸다. 아다파는 땅 위에 쓰러져 있는 정령들을 허공에 집어던졌던 것이다.


차라리 바위를 던졌더라면 튕겨내고 부수며 쉽게 막아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날아드는 동료를 베어내고 찌를수 없었던 정령들은 피하려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날아드는 인영에 맞아 지면에 떨어지고, 몇몇은 동료를 붙잡으려다 부딪히는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해 떨어졌다.


떨어지는 정령들은 또다시 더 많은 돌팔매로 쓰이며 공중을 배회하는 정령들은 모두 지면에 쓰러졌다.


더욱 긴 싸움이 될 것 같았던 전투는 정령들의 전력이 무력화되며 승패가 갈렸다. 엉망이 된 대지에 쓰러진 한 정령에게 아다파는 물었다.



"왜 급습한 거지?"


"너희들은 일마타르의 동료 아닌가?"


"그게 이유다"


"무슨 말이지?"


"네 마수에 그녀가 사라지길 원치 않았다"


"뭐?"


"아스타로스는 네 함정에 목숨을 잃지 않았나"



아다파는 그제서야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에게서 그녀를 구하려 했던 것이다. 아다파는 한숨이 나왔다. 그가 잠시 방심 한 것이라 여긴 한 정령이 또다시 아다파에게 날아들자 그의 손이 불꽃을 흩뿌리며 녀석을 날려 버렸다.



"그녀를 데려가라"



그의 말에 정령은 반신반의한 기색이었다. 진심인지 묻고 싶은 정령이었지만 그의 말에 대답하진 않았다.



"내 뒤를 쫓지 말라 전해라. 따라오는 자는 모두 죽이겠다"



아다파가 멀어지자 정령들은 천천히 다가가 아직 환상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일마타르를 데려가 버렸다. 멀어지는 정령들을 뒤로 한 아다파의 얼굴에는 씁쓸한 표정이 새어 나왔다. 잠시 길잡이가 되 주었던 그녀 마저 데려가 버렸다.



'무엇을 믿어야 하나'


'외롭다는 마음이 이런 건가'



또다시 버려진 기분에 그는 외로웠다. 강인한 영체에 반신의 존재인 그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목적지도 더욱더 멀게 느껴졌다. 아다파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가 나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아가야 할 의지가 한풀 꺾인 것 같았다.


걷던 그는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푸른 하늘에 뜬 구름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돌아갈 수 있을까'


'되돌릴 수 있다면···'



문득 그 아이를 발견 하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모르는 게 편했을지도 몰랐다.



'아스타로스는 왜'


'그 아이를 없애려던 저의가 무엇인가'


'마르두크-'


'헬은 무엇을?···'



복잡한 생각이 다시 떠오르자 그는 고개를 저어 그 생각들을 떨쳐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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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뇌신조.1 23.10.30 12 1 14쪽
72 수르 늪 23.10.23 14 1 18쪽
71 흉포한 늑대.2 23.10.16 14 1 13쪽
70 흉포한 늑대.1 23.10.09 19 1 12쪽
69 딜런 23.10.01 18 1 15쪽
68 난전.3 23.09.24 18 1 12쪽
67 난전.2 23.09.17 19 1 12쪽
66 난전.1 23.09.12 19 1 13쪽
65 마르코.2 23.09.09 19 1 17쪽
64 마르코.1 22.02.06 28 1 12쪽
63 그래니어의 침소. 22.01.30 33 1 22쪽
62 발데마르의 서신. 22.01.16 38 1 15쪽
61 비질. 22.01.09 28 2 11쪽
60 결혼식. 22.01.05 34 2 20쪽
59 비탄.2 22.01.04 35 2 18쪽
58 비탄.1 22.01.04 3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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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망각의 술.1 21.12.31 35 2 12쪽
54 신목 엘름. 21.12.30 41 2 14쪽
53 난쟁이 두린. 21.12.29 32 2 13쪽
52 인환.2 21.12.28 34 2 11쪽
51 인환.1 21.12.27 32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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