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붉은 사막 (2)
저의 첫번째 작품입니다.
“무엇을 보고 있나?”
책 읽기에 너무나도 몰두한 라뮤는 어느새 방안으로 들어선 드마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드마르는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굳은 표정으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아끼는 책들이 라뮤의 주변으로 어지럽게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드마르의 표정이 더욱더 사나워졌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라뮤는 급히 책을 덮고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띠며 물었다.
“자네는 이 집의 손님이네만, 내 허락도 없이 물건에 손을 대는 건 현명한 짓이 아닐세.”
드마르의 목소리는 전과는 다르게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의 안색 역시 불쾌한 듯 차갑게 변해 있었다.
“죄···죄송합니다. 어르신. 저도 모르게 그만.”
“그럼 이만 책들을 정리하지.”
드마르의 말에 라뮤가 바닥에 있는 책들을 집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르신.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혹시 여기 있는 책들 모두가 어르신 것입니까?”
“내 물건들이니 내 집에 있겠지.”
드마르는 라뮤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날이 선 듯한 그의 태도에 라뮤는 흠칫 놀랐지만 궁금한 것을 참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 혹시 이 책이 무슨 책인지도 아시는지요?”
라뮤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고 있던 검은 표지로 덮인 책을 들어보이며 물었다.
그의 질문에 드마르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모르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색을 하며 짧게 대답했다.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든 라뮤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었다.
“정말입니까? 이 책이 무슨 책인지 모르십니까?”
드마르는 라뮤가 들고 있는 책을 힐끔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그저 집안 대대로 내려온 책들일 뿐이야.”
별거 아니라는 드마르의 대답에 라뮤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다면 이 책들을 저에게 파실 수 있으십니까? 여기 전부가 아니라, 그저 몇 권의 책이면 됩니다. 제가 값은 아주 후하게 쳐 드리겠습니다.”
라뮤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드마르에게 물었다.
하지만 드마르의 표정은 전에 없게 차가워졌다.
“아니 될 말이네. 그 책들은 팔려는 것이 아니야.”
그는 팔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르신.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 책은 고대의 지혜를 간직한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저 같은 마법을 다루는 자에게는 아주 진귀한 것이지요. 그러니 제가 이 책의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저에게 파십시오.”
라뮤는 물러서지 않고 드마르를 향해 간청했다. 그는 진심으로 이 책이 필요했다.
“내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난 팔 생각이 없어.”
하지만 드마르의 태도는 확고했다.
“하지만 어르신. 이 책들은 이곳에서 아무 의미도 없이 묻혀가고 있지 않습니까? 저에게 주신다면 제가 세상을 위해서 아주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드마르는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허? 세상을 위해서라고?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한마디 하지. 그 책들은 이곳에서 고대의 신들과 함께 잊혀져 버리는게 나아. 그것이 내 결정일세. 그러니 더는 팔라는 헛소리는 집어치우게.”
드마르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후 방안에는 답답한 정적이 흘렀다.
순간 라뮤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이 책이 어떤 것인지 아시는군요?”
드마르는 그의 말속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꼈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라뮤를 노려보았다.
한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 드마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지. 그래서 팔지 않으려는 거야. 그 책들은 나와 함께 이곳에 묻히는 편이 나아. 그게 세상을 위한 일이야.”
드마르는 전보다 훨씬 주눅이 든 목소리로 체념한 듯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당신만의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은 후대를 위한 유산입니다. 이렇게 썪어가서는 안됩니다.”
라뮤는 드마르를 향해 훈계하듯 따졌다.
“후대를 위한 유산이라고? 자네는 그 책을 만든 이가 이 세상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도 하는 소리야?”
라뮤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난 드마르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잘 알지요. 그가 저지른 끔찍한 짓을요. 순결성을 잃지 않은 수천 명의 처녀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아기들을 제물로 바친 이야기 말입니까? 그것뿐입니까? 그의 악행들로 인해 중앙 대륙의 삼 분의 일 이상이 죽어 나간 것을요.”
“그걸 알면서도 이 책을 원해?” 드마르가 물었다.
“그가 비록 악마라고 해도, 그의 지식까지 악마인 것은 아닙니다. 그의 저서들은 후대를 위해서라도 전해져야 합니다.”
순간 라뮤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드마르는 자신도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네···미친 소리를 하는군. 후대를 위한다는 자네의 말. 나는 동의하지 않네. 오히려 후대를 위해서 그것은 없어져 버려야 해. 그 책에 담긴 끔찍한 것들은 모두 없어져 버려야 해. 더는 자네의 궤변 따윈 듣고 싶지 않네.”
드마르는 손을 내저으며 라뮤의 말을 끊었다.
“그건 안될 말입니다. 이건 인류를 위한 유산입니다. 당신 맘대로 없앨 수 없어요.”
라뮤는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누가 그걸 정하나? 이건 내 물건이야. 이 책을 불살라 버릴지 팔아버릴지는 내 맘일세.”
드마르가 신경질적으로 답하자 순간 라뮤는 두 눈을 부라리며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이런 정신 나간 늙으니 같으니라고. 이런 사막에 있다 보니 머리가 돈 거야? 이런 귀한 걸 불사른다고? 내가 그렇게 놔둘 것 같아?”
라뮤가 돌변해서 소리치자 순식간의 드마르의 얼굴은 목에서부터 머리까지 시뻘게져 갔다.
그는 라뮤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그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뭐라고? 나보고 정신이 나갔다고? 이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사막에서 죽어가던 놈을 살려줬더니, 뭐? 당장 이곳에서 나가. 당장 꺼져.”
드마르는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쳤다.
이에 라뮤는 그를 한동안 노려보더니 천천히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드마르는 그의 등 뒤에서 여전히 분기탱천한 상태로 씩씩거렸다.
문 앞에 다다른 라뮤는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 재빨리 품 안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고는 드마르를 향해 겨누었다.
지팡이의 끝은 정확히 드마르의 몸통을 향해 있었다.
“지···지금 뭐 하는 거야? 나를 위협하는 거야? 이런 미친놈···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라뮤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어이가 없는 드마르는 그를 향해 길길이 분노했다.
“입 닥쳐. 한마디만 더 지껄였다가는 주둥아리를 갈가리 찢어 놓을 테니.”
라뮤가 당장이라도 죽일 기세로 외치자 드마르는 순식간에 뱀 앞에 놓인 개구리처럼 굳어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묻지. 책들을 나한테 넘긴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더 이상의 흥정은 없어.”
라뮤의 제안에 드마르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탐욕으로 물든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드마르의 머릿속에 어제의 일이 스쳐 갔다.
목숨을 구해준 대가를 원수로 갚으려는 그의 간악함과 자신을 무시하고 협박하는 그의 무례함. 세상을 위한다는 핑계로 자신이 평생을 지켜온 물건을 훔쳐 가려는 그의 뻔뻔함에 화가 치밀어오른 드마르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주먹을 세차게 흔들며 그를 향해 돌진했다.
“헤리오차.”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드마르를 향해 라뮤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일 초도 되지 않아 드마르의 몸뚱어리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서는 바닥에 쿵 하고 내리꽂혔다.
“미련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라뮤는 차갑게 식어버린 그의 앙상한 몸을 향해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맞은편에 있는 책장을 향해 걸어갔다. 찬찬히 책들을 읽어내려가던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이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이거야. 이 책들이야.’
라뮤는 금덩이라도 발견한 양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잠시 후 원하는 책들을 모두 챙긴 그는 방안을 쓱 둘러보았다.
바닥에 놓여있는 드마르의 시신에 그의 눈길이 잠시 머물렀지만 이내 코웃음을 치며 일말의 미련도 없이 집을 나섰다.
그날 밤 거대한 불꽃이 붉은 사막 한편에서 피어올랐다.
얼마 후 불길이 잦아들자 남은 것이라곤 검게 그을린 잿더미뿐이었다.
선호작 추가와 추천 부탁드려요! 어떠한 댓글도 감사합니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