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이야기는 대체로 쓸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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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창벽
그림/삽화
Bratja
작품등록일 :
2021.10.10 15:10
최근연재일 :
2022.01.09 19: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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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88,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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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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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 57_우려하던 일은 대체로 현실이 된다

DUMMY

클레어가 깜짝 놀란 얼굴로 예배당 장의자 위를 가리켰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알렉스 씨가 왜···아니 그보다, 먼저 이쪽으로 눕히세요.”

“예, 예 알겠습니다···!”


클레어의 지시에, 어쩔 줄을 모르고 발만 구르고 있던 청년회 사람들이 황급히 들쳐 업은 남자를 근처 장의자로 데려갔다.


“조심해서 살짝 내리라고. 그래···살살 내려 놔.”


여전히 의식이 없는 남자를 조심스럽게 장의자 위에 눕힌 뒤.

클레어가 그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신음 소리를 토해내는 남자.

그의 흰색 셔츠는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특히나 그의 머리와 얼굴은 마치 피를 뒤집어 쓴듯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호흡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네요.”


남자의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댄 클레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엔 목덜미 쪽을 짚어보는 클레어.

그녀를 향해 주변을 둘러싼 청년회 사람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시, 시스터! 알렉스는 괜찮은 겁니까!?”

“이 자식 이대로 죽는 건가요!?”


애가 타서 아우성치는 건장한 청년들.

그들을 진정시키는 한편으로, 클레어는 부상당한 남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잠시만요. 상처 부위를 확인해 볼게요.”


출혈이 집중된 머리 주변.

곧 상처 부위를 발견한 듯, 클레어가 피로 떡이 되어 엉켜 있는 남자의 정수리 부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머리 쪽에 타박상. 출혈의 원인은 이쪽 상처 때문인 것 같네요. 다행히도 상처가 그리 깊지는 않아 보여요.”


그렇게 말한 클레어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창고에서 붕대랑 소독약을 가져 올게요. 그동안 알렉스 씨 상태를 봐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가는 클레어.

그녀의 등 뒤로 청년회 사람들의 대답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이 있은 뒤.

청년회 사람들은 하나같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시스터 덕분에 살았다.”

“그러게, 시스터 클레어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


부상당한 남자를 눕혀놓은 장의자 주변을 둘러싼 세 명의 장정들은 그제서야 겨우 한숨 돌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멀찌감치 떨어져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리아가 다가가서 물었다.


“저기 아저씨들. 좀 물어봐도 되요?”

“응···? 아, 시스터의 친구라고 했지? 아리···아리, 아? 였나, 이름이? 왜 그래?”


경황이 없었던 탓일까.

그들은 지금껏 아리아가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듯이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래도 몇 번이고 마주친 아리아의 얼굴을 기억하고는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내 이름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넘어가죠.”


아리아는 쓸데없는 통성명을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것보다, 사람이 다쳤는데 왜 병원이 아니라 성당으로 데리고 왔는지 좀 의문이라서 말이에요.”

“야, 그건···!”


아리아의 질문에, 남자들 중 하나가 당황한 듯 머리를 긁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장신의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해왔다.


“당연하잖아. 얼마나 뜯길지도 모르는 병원에 데려가서 어쩌게? 누굴 빚더미에 앉히려고.”

“아···여기 미국이었지 참.”


그의 말에 납득한 얼굴로 아리아는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때, 손에 응급상자를 든 클레어가 예배당으로 돌아왔다.


“가져왔어요! 알렉스 씨는 괜찮아요?”

“예? 예···일단 숨 쉬는 데는 문제없어 보입니다.”

“잠깐 실례할게요.”


클레어는 멀뚱멀뚱 서 있는 장정들 사이를 헤치고 의식불명의 남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응급상자에서 소독약과 붕대 등, 필요한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으···으읏···.”

“조금만 참으세요.”


상처 부위를 소독하자, 쓰러진 남자의 입에서 옅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중하게 작업을 계속하는 클레어.

그녀는 소독이 완료된 부위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붕대를 감았다.


“시스터란 직업도 어지간히 중노동이군. 이런 것까지 일일이 해줘야 하는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빈정거리는 악마에게 어이없다는 투로 대꾸하는 아리아.

잠시 후.

응급처치를 끝낸 클레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요. 할 수 있는 조치는 했지만, 혹시 이상이 생기면 바로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거에요.”

“가, 감사합니다 시스터!”

“하아~~, 시스터 클레어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한 거라곤 고작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은 게 전부인걸요.”


감격한 청년회 사람들의 감사의 인사에, 클레어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인 청년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알렉스 씨는 왜 다치신 거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그, 그게···실은.”


클레어의 물음에, 청년회 사람들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을 밀쳐내고 장정 하나가 앞으로 나와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답답하긴! 알렉스 자식, 로스 씨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자기 멋대로 재개발 반대 시위에 나갔다고요!”

“시위···에요?”

“그렇다니까요! 오늘 델런 스트리트에서 재개발에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거든요. 이 자식이 몰래 거기에 참가해버리는 바람에 이 난리법석이 된 겁니다!”


그의 말에 클레어는 깜짝 놀란 얼굴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알렉스 씨가 시위에 참석했다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게 왜 이런 부상을 당하게 된 거죠?”


그녀의 말처럼, 알렉스란 청년이 시위에 참석한 것과 그의 부상은 그다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아~, 말주변하고는! 그래가지고 시스터가 알아 듣겠어? 넌 좀 빠져 있어 봐.”


클레어의 의문에, 알렉스를 업고 왔던 남자가 나서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실은 델런 스트리트에서 있었던 재개발 반대 시위에 찬성파 녀석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렇게 서로 대치하던 두 집단이 결국에는 주먹다짐까지 했다는데, 아무래도 알렉스 녀석, 거기에 말려든 모양입니다.”

“우리가 알렉스를 말리려고 시위 현장에 도착했을 땐, 저 녀석 진작에 피칠갑을 하고 쓰러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 차로 여기까지 데려왔습죠, 하핫!”

“그게 웃을 일이냐···.”

“시, 시끄러. 넌 좀 빠지라고.”


청년회 사람들은 멋쩍은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때, 장의자 쪽에서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윽···으···여, 여긴, 어디야···?”


그 소리에 이끌려 모두의 시선이 장의자에 누워 있는 남자에게로 쏠렸다.

그는 느릿한 동작으로 머리를 부여잡고는,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알렉스! 너 이 자식, 정신이 드냐!?”

“얼마나 걱정했다고, 이 녀석! 진짜 나한테 죽어볼래?”


남자가 정신을 차리자, 청년회 사람들이 반색하며 그의 주변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남자는 멍한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긴, 어디지?”

“여긴 성당이야. 시스터 클레어한테 감사하라고. 널 치료해준 게 시스터니까!”

“아···.”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클레어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때요? 괜찮으신가요?”

“고, 고맙습니다, 시스터···. 뭐가···뭐가, 어떻게 된 건지 원···.”


자신의 눈앞에 클로즈업 된 클레어의 얼굴에, 남자는 민망한 듯 시선을 돌리며 볼을 긁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질투 섞인 비난의 목소리가 쇄도했다.


“바보 같은 자식. 그러게 왜 로스 씨 말도 안 듣고 네 멋대로 시위 같은데 껴든 건데!?”

“그래! 지금 자칫 잘못하면 우리들 입장이 더 난처해질 뿐이라고 로스 씨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빈정대며 틱틱 쏘아대는 청년회 사람들.

지금 그들의 모습에서는, 처음 남자를 들쳐 업고 왔을 때의 절박한 분위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여러분, 알렉스 씨는 아직 안정이 필요해요. 너무 그렇게 몰아세우지 마세요.”

“아, 네···. 시스터 클레어의 말씀대롭니다.”


클레어의 나직한 한마디에, 청년회 남자들은 금방 온순한 양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클레어가 부상 당한 청년 쪽을 돌아보며 질문했다.


“알렉스 씨, 머리 쪽을 다치셨는데···몸에 이상은 없나요? 왜 상처를 입었는지 기억은 나세요?”

“···머리가 좀 무거운 것 빼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자신의 머리에 감긴 붕대를 어루만지며 남자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다시 청년회 사람들이 놀리듯 말해왔다.


“하아~. ···애초에 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머리빡이 깨지냐? 찬성파 녀석들이 휘두른 플랜카드 모서리에 찍히기라도 했냐? 하하!”

“야, 그래도 환잔데 좀 적당히 해라.”


하지만 주변의 야유에도, 남자는 기묘한 표정을 한 채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게, 나도 잘···. 좀, 이상했어···.”


좀처럼 의미를 알기 힘든 남자의 대답에 삽시간에 적막이 찾아왔다.

클레어는 남자와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질문했다.


“이상···했다니요? 혹시 기억에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기억은 납니다. 단지···.”

“야, 알렉스, 이 망할 자식아! 뜸들이지 말고 확실하게 말하라고!”


답답해하며 윽박지르는 동료들의 추궁에, 그는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을 떠올리려 애쓰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인파에 떠밀려서 시위대 선두까지 밀려나갔는데···그때까지만 해도 찬성파도 반대파도 서로 노려만 보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그래서요?”


조용히 다음 말을 재촉하는 클레어.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슬며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 것인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런데 갑자기···찬성파 쪽에서 왠 사람이 하나 뛰쳐나오더니, 나한테 달려들어서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어요. 그 새X 완전히 미친 X 같았다고···!”

“···뭐야 그럼? 그럼 네 머리통에 난 상처가, 설마 주먹질로 난 상처라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다소 어이없어하는 청년회 사람들의 반응에, 부상 당한 남자는 억울하다는 듯 펄쩍 뛰며 항변했다.


“지, 진짜야! ···쪽팔리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손 쓸 틈도 없었다고.”

“야, 야, 야! 무용담도 적당히 부풀려야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으라고?”

“진짜라니까! 자기가 얻어 맞은 이야기를 부풀려서 뭘 어쩌겠다고 내가!?”


내가 맞네 네가 맞네 하며,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이는 청년회 사람들.

적어도 그 모습으로 봤을 때, 알렉스란 청년의 부상은 그리 심각하진 않은 듯 보였다.

한편, 아리아는 예배당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한데.”

“뭐가?”


되묻는 악마에게, 아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저 알렉스란 사람이 한 이야기 말이야. 마지막에 등장한 재개발 찬성파의 인물···왠지 빙의자인 것 같지 않아?”


갑작스런 맞불 시위.

거기에 더해, 대치 상태였던 두 집단에서 가장 먼저 달려 나와 폭력을 휘두른 인물.

알렉스란 청년의 말을 믿는다면, 그를 폭행한 인물이 바로 이번 유혈 사태의 기폭제가 됐다고도 볼 수 있었다.


“흠···그건 너무 억측 아닌가? 아니면 단순히 네 바람이겠지.”


악마로부터 돌아온 회의적인 대답.

하지만 아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이상해. 죄다 이상한 것 투성이라고.”

“뭐가 말이야? 너도 음모론자로 전향이라도 한 건가? 크킄!”


귓가에서 비웃는 악마의 목소리에도, 아리아는 허공을 노려보며 생각을 정리하듯 말을 이어갔다.


“로페로 시장의 실종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에서 모조리 냄새가 난다고.”


지금 아리아가 느끼고 있는 위화감.

그것은 이 일련의 사건들이, 마치 잘 짜인 각본 위에서 행해지는 작위적인 결과물로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모든 것이 예정된 수순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은 그 불길한 예감에···아리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작가의말

제3부 [잔을 넘치게 할 마지막 한 방울]이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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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 108_피난민 거주구의 사람들 21.12.27 73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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