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액션스쿨에서 의식을 잃은 하윤

나희와 하윤과 20대 초반 모델은 착용한 하네스에 와이어를 연결하고 대기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무술 감독은 분명 위험한 액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것이다.
하윤은 자기가 나희를 추천했기에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마음에 걸렸다.
조금 전까지 피곤함에 젖어 눈꺼풀이 무거웠던 나희는 와이어가 연결되자 눈빛이 초롱초롱 살아났다.
와이어 줄도 당겨보고 검을 들고 휘둘러보고 신났다.
나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와이어를 경험해 본 터라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 무술팀들도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걸 보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CF는 배우가 꿈인 나희에게 온 첫 번째 기회다.
친구 하윤의 추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윤뿐만이 아니라 여기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실망하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나희는 진호 때문에 한숨도 못 자고 액션스쿨에 왔다.
피곤하고 졸리지만 와이어 액션 연습에 집중하기 위해 심호흡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회의를 마친 무술 감독은 자기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갸우뚱거리며 준비를 마친 세 사람에게 다가왔다.
큰 키에 마른 체격의 무술 감독은 나희의 와이어를 당겨보며 다시 한번 점검하고 박수를 치며 준비를 시켰고 관계자들은 콘티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모두 긴장한 상태로 마지막 와이어 액션 연습을 지시하기 위해 무술 감독의 사인을 기다렸다.
무술 감독의 손 사인에 맞춰 하윤과 나희와 20대 초반 모델은 5층 높이의 천장을 향해 붕 떠올랐다.
순식간에 5층 높이까지 올라간 세 사람은 CF 감독의 “슛!” 소리가 들리자 검을 휘두르며 액션 연기를 시작했다.
검을 휘두르며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던 하윤이 20대 초반 모델을 공격하자 20대 초반 모델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연기를 했다.
이때 하윤의 뒤에서 나희가 검으로 하윤을 공격하자 하윤은 방어하며 뒤로 물렀다.
두 사람은 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처럼 공중에 떠서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공중에 서서 맞선 두 사람은 이제 날아가며 검술을 펼쳐야 했다.
주인공 하윤은 나희를 물리치고 우아하게 땅에 내려오고 나희는 빙글 돌며 멀리 사라진다.
시범에서 나희 역을 맡은 무술 팀원이 사고가 난 씬이고 나희가 모델이 되기 전 나희 역을 맡았던 모델이 이 부부분에서 사고를 당해 모델이 나희로 바뀐 씬이다.
CF감독과 관계자들의 시선은 모두 나희에게 몰려 있었다.
무술감독은 위험한 액션을 해야 하는 나희 역할에 대역을 쓰자는 의견을 전했지만 게임회사 관계자들은 이미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뒤집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행히 나희는 안정감 있게 균형을 잡고 있었고 검술을 시작하기 위해 검 끝을 하윤에게 겨눴다.
하윤은 와이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몸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날을 꼬박 세우고 액션스쿨에 온 하윤은 공중에 떠오르자 현기증과 함께 전에 없었던 긴장감이 밀려왔고 몸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엉망이 된 상태였다.
하윤의 얼굴을 보며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나희는 입으로 “괜찬아?”를 만들어 보였고, 하윤은 나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로 “그럼”을 보여줬다.
오늘은 촬영 전 마지막 와이어 액션 연습이자 테스트다.
하윤은 10년 만에 만난 자신의 첫사랑 나희가 배우가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희를 강력 추천했다.
나희는 오늘 처음으로 광고주인 게임회사 관계자들과 스텝들 앞에서 자신의 와이어 액션을 보여주는 자리다.
광고주는 완전 신인인 나희에게 오늘 연습을 지켜본 후 출연확정과 계약서에 도장을 찍겠다고 했다.
갑질 아닌 갑질을 나희는 흔쾌히 받아들인 상태였다.
혹시라도 연습에 지장이 생긴다면 나희가 계약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윤이 최대한 침착한 모습으로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나희에게로 향하자, 와이어가 두 사람의 대결을 위해 맞붙었다.
하윤과 나희는 서로를 향해 정면으로 다가가며 화려한 검술을 시작했다.
와이어는 옆으로 이동했다가 뒤로 이동했다가 검술에 맞춰 움직였다.
이제 하윤이 나희를 향해 검을 휘두르면 나희가 뒤로 빙글 돌며 사라지고 하윤은 땅에 안전하게 착지하면 끝이 난다.
하윤이 나희를 베듯 검을 휘두르자, 나희는 뒤를 향해 서커스를 보여주듯 안정된 자세로 빙글빙글 돌며 사라지고 있었다.
공격을 마친 하윤이 땅에 착지를 하려는데 균형을 잡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쏠리며 거꾸로 매달렸다.
와이어가 그 자리에서 멈춰 섰지만 5층 높이에 거꾸로 위태롭게 매달린 상태였다.
떨어지지만 않았지 조금 전 거꾸로 떨어졌던 무술 팀원과 같은 상태였다.
CF 감독과 스텝들은 일제히 일어나 소리를 질렀고 게임회사 관계자들도 놀란 눈으로 하윤이 내려올 바닥으로 달려갔다.
“하윤씨! 정신 차려요!!”
“이하윤씨!! 이하윤씨!!”
스텝들은 하윤의 의식이 돌아오길 바라며 소리를 질렀고, 무술 감독은 와이어를 제어하는 특수 효과팀에게 소리쳤다.
“조심해. 조심. 특효팀! 뭐가 문제야?”
이때 와이어가 흔들거렸고 거꾸로 매달린 하윤의 시선은 흐릿해지며 정신을 잃었다.
특수 효과팀은 하윤의 와이어에 무슨 문제가 발생했는지 와이어를 체크하는데, “휘리릭” 소리와 함께 하윤의 와이어 한쪽이 잘려져 천장으로 솟아올라갔다.
하윤은 와이어 줄 하나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고, 그 남은 한 줄마저 제어가 되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하윤은 급기야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손에서 떨어트렸다.
소품용 검은 하윤 아래에서 지켜보던 게임회사 관계자들 사이를 아슬하게 비켜서 바닥에 꽂혔다.
하윤을 구조하기 위해 무술팀들이 하네스 착용을 하는데 하윤의 하네스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하윤은 곧 땅바닥에 곤두박질 칠 것이다.
“야! 빨리들 준비해!!”
무술 팀에게 소리치는 무술 감독의 외침이 액션스쿨 안을 울렸다.
이때 하윤의 반대편 천장 끝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나희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감독님!! 저를 하윤이 쪽으로 보내주세요!!”
특수 효과팀이 무술 감독을 바라보자, 언제 땅에 떨어질지 모를 상태에서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
무술감독은 고개를 끄덕했다.
나희는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던지고 하윤을 향해 날아갔다.
“하윤아 제발 조금만 버텨.”
나희의 간절한 바람에 하윤의 눈이 살며시 떠졌다.
흐릿한 시선으로 정신을 차려보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자신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윤은 바닥에서 자기를 향해 소리치는 사람들의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하네스의 안전 핀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희의 손이 하윤의 몸을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하윤은 몸이 하네스를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지는 걸 느끼며 다시 정신을 잃었다.
“하윤아!!”
하윤의 귀에 나희의 목소리와 “으악!!’ 비명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다.
***
병실에서 눈을 뜬 하윤은 흰색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여긴 어디지? 내가 살아 있는 걸까? 며칠이 지났을까?
하윤이 눈을 뜨자 하윤 옆에 앉아 있던 부모님이 하윤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하윤아! 괜찮니?”
“하윤아 엄마야 엄마 알아보겠어?”
하윤은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고 자기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됐다.
“여기 병원이야?”
“그래 하윤아. 병원이야.”
“삼일 동안 눈을 안 떠서 엄마가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알아? 어휴~ 다행이다. 다행이야.”
부모님의 목소리 톤에서 삼일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하윤은 몸을 일으키려고 해봤지만 삼일 동안 누워 있어서인지 마음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윤의 엄마는 일어서려는 하윤의 손을 잡아 끌어당겨 침대에 앉혔다.
“갑자기 일어나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일어나.”
“그런데 내가 어떻게 병원에 온 거지? 나 기억이···.”
하윤은 액션스쿨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가 하네스에서 자신의 몸이 빠져나오는 느낌과 비명소리만 기억 날 뿐 다른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니 친구 나희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너를 겨우 잡았덴다.”
하윤은 엄마의 말에 나희를 떠올렸다.
“엄마. 나희는···?”
하윤은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나희를 찾았다.
“어···. 그게···.”
하윤의 아빠 목소리가 작아지자 하윤은 몸을 일으켜 세우며 조금 전 목소리보다 더 크게 물었다.
“아빠 나희는? 나희 괜찮아?”
하윤의 엄마는 하윤을 침대에 다시 눕히며 말했다.
“하윤아 일단 안정 좀 취하고···.”
“야!! 이하윤 너 의식 돌아왔냐?”
이때 나희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하윤의 귀에 들렸다.
하윤은 나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곳을 찾기 위해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다.
하윤의 아빠가 옆 침대 커튼을 걷어내자 하윤의 시선이 2인실 병실에 옆 침대에서 멈췄다.
옆 침대에 누워 있는 나희는 깁스 한 왼쪽 다리를 천장에 걸려 있는 끈에 올려놓고 양팔은 깁스를 한 채 벌리고 있었다.
나희의 몸은 미이라처럼 흰색으로 돌돌 말려 있었다.
부러지고 금 나가고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나희야!! 너 괜찮아?”
목 보호대를 한 나희는 정면을 보며 하윤에게 말했다.
“야!! 내 목이 이래서 내가 날 못 보거든, 니 눈엔 내가 괜찮아 보이냐??”
“도나희. 너 정말 나한테 왜 그래??”
나희는 분명 하윤을 구하면서 몸이 망가졌을 것이다.
중 3 겨울방학에는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야외 생방송을 끝내고 방송국에 돌아갈 때 문신한 조폭들에게, 촬영 연습 중 의식을 잃고 바닥에 떨어질 위기에 처한 자신을.
어린 하윤은 또래보다 작고 약했다.
하윤은 중 3 겨울방학에 자기를 구해 준 나희를 언니로 착각하며 첫사랑에 빠졌다.
그 언니는 같은 고등학교 같은 학년 펜싱부 선수 도나희였다.
언니가 아닌 친구였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기 전 하윤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캐나다에서 나희를 잊지 못했던 하윤은 나희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고 기상캐스터에 합격했다.
바쁜 일상 속에 나희를 찾았지만 나희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야외 촬영 중 지진이 발생했고 위험에 빠진 하윤을 기상청에 근무하는 진호가 구해줬다.
그렇게 진호와 친구가 됐고 지속된 진호의 구애에 결국 연인이 되었다.
부모님이 인도네시아로 봉사활동을 가신 진호는 같은 나이의 남매 같은 친구와 주택 1,2층에서 산다고 했다.
특이했지만, 그 친구의 부모님과 진호의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절친이였다고 했다.
하윤이 진호의 성북동 집에 처음 가던 날 하윤은 그렇게 찾았던 첫사랑 나희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진호와 함께 살고 있는 남매 같은 친구가 바로 나희였다.
내 친구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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