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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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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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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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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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 이분 삼십초 열시간 삼십분

DUMMY

“좀 피곤해 보이시네요”


오윤희가 STVC방송국 근처 식당의 객실에 들어오는 원동윤 피디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네. 요즘 계속 그럴 일이 생기네요. 그런데 어쩐 일로 보자고 하셨죠? 천수희씨가 다른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거면 백현수 본부장님이 이미 알려줬는데요”

“원피디님이 수희를 떠올리고 직접 작품을 써 주셨는데 전화보다는 이렇게 식사라도 대접하면서 사과드리는 게 맞죠. 이번에는 어쩔 수 없게 되었지만 다음 기회에는 함께 할 수도 있고요”


사실 오윤희의 목적은 사과 말고 따로 있었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 수희 말고 다른 좋은 배우들도 많아요”


원동연 피디는 한숨을 쉬었다.


“백본부장님에게도 말씀드렸는데 그 드라마 제작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아! 그런가요?”


원동연이 문득 말했다.


“오팀장님”

“네?”

“오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팀장님도 중국자본 투입된 작품은 다 망한다고 생각하세요?”


오윤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중국쪽과 일을 해 본적이 없어요. 그래서 몰라요. 그런데 피디님은 백본부장이 한 말이 많이 신경쓰이신가 봐요?”

“한번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까 자꾸 비슷한 이야기가 귀에 들려서”


좋은 매니저에게 경청의 기술은 기본이다.


“비슷한 이야기요?”


오윤희는 적극적인 관심을 표시했고 원동윤 피디는 그 때부터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고려 구마사’를 방송했던 STS가 이번에는 ‘스노우 레인’을 방송한다고 해요. ‘스노우 레인’ 알죠? ’고려 구마사’ 때 그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게 굉장히 말이 많았는데”

“네. 민주화 운동을 상당히 왜곡할 여지가 있다고”

”그 쪽 아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거기도 중국 자본 받은 다음에는 우리 방송사와 똑 같이 돌아간다고 해요. 밑의 직원들이 아무리 의견을 말해도 위에서 무작정 밀어붙인다고. 백본부장 말대로 STS의 고위층들은 이미 중국자본에 목줄 잡힌 가마우지가 된 걸까요? 혹시 우리 STVC도 마찬가지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오윤희는 아직 백본부장의 주장은 음모론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피디님은 백본부장의 말을 다 믿으세요? 저는 비약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스노우 레인을 쓴 작가요. 지난번에는 독립지사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던 작가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모독하는 스노우 레인을 썼죠”


그러나 원동윤 피디는 그 음모론에 푹 빠져버린 것 같다.


“그 작가도 중국자본에 잡아 먹힌걸까요?”


오윤희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애매하게 웃었고 원동윤 피디는 자기 생각에 빠져서 계속 말을했다.


“200억을 들인 ‘고려 구마사’가 방송 2회만에 취소되었어요. 그런데 이번 ‘스노우 레인’도 똑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요. 방송국 이미지가 땅에 떨어지는 건 당연하고 최악의 경우 방송사 면허가 취소될 가능성도 있는 심각한 문제죠. 그런데 방송국 높은 사람들은 괜찮다고 그대로 진행하라고 한다고 하죠. 조금의 리스크라도 보이면 난리를 치는 사람들에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오윤희 역시 공중파 중에서도 민자 방송인 STS에서 그렇게 일이 진행이 되는 건 정말 수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일에 바빠 중국자본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아 백본부장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저도 백본부장이 한 말이 다시 생각나네요”

“뭔가요?”

“중국은 한류의 영향력을 이용하고 싶어한다. 시스템을 카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사람을 하나씩 잡아먹으려는 것이다. 시간은 많고 기회는 계속 있으니 실패해도 상관없다. 천천히 계속해서 기회를 노리며 계속 우물에 독을 풀다보면 언젠가는 역사를 왜곡하는데 성공하고, 동북공정을 성공시키고, 한국 엔터테인먼트에서 이뤄낸 성과를 중국이 다 먹어 치울 수 있다”


그 말을 듣던 원동연 피디가 소름이 끼치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개새끼들, 그대로 둘 수는 없어요”


쓸데없이 비장한 목소리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나요?”


원동윤이 입을 비틀었다.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도 없다고 할 수는 없죠”


그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


“네?”

“방금 번쩍하고 영감이 왔어요. 이걸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고요. 꾸준하게 한치한치 잠식해 들어오면서 사람을 매수하는 중국자본, 시장에 번져가는 독. 그걸 이미지화 하는 거예요. 중국에 한류 전담 공작부서가 생겨나고 한국에 그걸 눈치챈 사람이 생기는 거죠. 백본부장님 같은. 주인공이 중국 자본의 침식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걸 드라마로 만드는 거예요”


오윤희는 방송가에 퍼져있는 원동윤 피디에 대한 평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또라이 중에 상또라이라고 했지?’


딱 맞는 평가 같다.


“그걸 만들 제작사가 어디 있고, 방송해 줄 방송사가 어디 있을까요?”


오윤희는 아무리 상또라이라도 방금 한 말을 실행할 생각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제작사야 찾으면 되고 요즘 시대에 방송을 꼭 방송사에서 하나요? 그리고 중국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OTT플랫폼도 있잖아요. 뉴플렉스라고. 혹시 이런 기획이면 훨씬 더 쉽게 투자를 받을 수도 있어요”







오늘 촬영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이자 거의 마지막 부분인 마형사와 장청의 여객터미널 화장실에서의 대결장면이다.

두 남자의 격렬한 싸움에 박살이 날 화장실은 당연히 세트로 만들었다.

유리와 거울, 변기와 타일, 금속과 나무 모두 잘 부서지면서도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만들어졌고 혹시 테이크를 다시 가야 할 때를 대비해서 예비용 소품 재료를 가지고 세트제작팀이 대기중이다.

진철은 감독이 새벽에 급하게 그렸다는 콘티를 집중해서 보았다.

감독이 그림 솜씨가 좋지 못해 사람을 뼈다귀로 그렸지만 알아보는 것은 전혀 문제없다.


‘이전의 콘티와는 뭔가 느낌이 다른데? 뭐가 다르지?’


진철이 고개를 갸웃하며 정신을 집중해 겨우 그 원인을 찾아냈다.


‘시점이 계속 변하네’


시점은 카메라의 위치다.

일단 인물을 먼 거리에서 한 번 잡고, 다가가서 인물에 집중하고 그 다음은 클로우즈 업, 마지막에 다시 전경을 잡던 것이 지금까지 크라임시티의 촬영이었다.

하지만 진철이 지금 보고 있는 콘티에서는 달랐다.


‘좌에서 우, 또 우측 위에서 좌측하단, 또 좌측 위에서 우측 아래, 다음은 위에서 보는 건가? 이렇게 어떤 의미가 있지?’


진철은 감도식 감독을 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중년 남자다.

그런데 저 남자가 전쟁터 같은 촬영현장을 배우와 스텝 모두에게 존칭을 쓰면서,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매끄럽게 지휘해 냈다.


‘어찌보면 카리스마를 내세우는 감독보다 더 대단한 걸지도 몰라’


이번 작품이 입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지금까지 쭉 평정을 지켜왔던 그 감독의 눈빛이 좀 달라졌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콘티만 보고 감독이 뭘 하려는지 분석해 낼 수는 없지만 오늘 감감독이 뭔가 작정을 했다는 것만은 충분히 느껴졌다.


‘그러면 배우도 부응을 해 줘야지’


진철은 감감독과 액션감독을 향해 말했다.


“오늘 촬영은 대역배우 없이 제가 다 연기를 했으면 하는데요?”







액션감독도 지금껏 크라임시티를 촬영하며 진철을 겪었고, 얼마전 공개가 된 [삼국 팔검전] 역시 봤다.

하지만 그의 무술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진철이 티를 내지 않았으니까.


“강진철씨 액션 연기 실력이 좋은 건 알아. 하지만 스턴트는 일반 액션연기와는 달라. 위험을 회피하는 훈련이 필요해. 그건 몸을 잘 다룬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냐”


장청은 날아가 세면대의 거울에 처박히기도 하고 화장실 문을 박살내며 쓰러지기도 하고 소변기에 부딪치기도 해야 한다.

아무리 옷 속에 안정 장비를 입고, 다치지 않도록 세트를 만들었다고 해도 부상의 위험은 언제나 있다.


“스턴트 교육은 [삼국 팔검전]을 준비하면서 다 이수했습니다”

“응? 팀 허슬의 교육과정을 말하는 건가?”


팀 허슬은 [삼국 팔검전]의 액션팀인데 이쪽 분야에서는 가장 규모가 컸고 따로 스턴트 훈련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네”

“그냥 교육을 받은 게 아니고 수료를 인정받았다고?”

“네”


그렇다면 얘기가 좀 다르다.

팀 허슬의 스턴트 교육은 업계에서 공인자격증 같은 위상이 있으니까.


‘강진철의 무술실력과 운동능력에 교육까지 수료했으면 괜찮겠지’


액션감독이 감감독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삼국 팔검전] 봤어. 강진철이 액션능력은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로 따져도 따라올 사람이 없을 걸?”


촬영감독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감감독 차례다.


“가능하다면 배우가 모든 연기를 다 하는게 가장 좋기는 하죠. 알겠습니다. 오늘은 강진철씨가 스턴트연기까지 다 하도록 하죠”


교통정리가 끝나자 마동철이 말했다.


“이야! 진철이. 오늘 나 원 없이 손 맛 한번 보는 건가?”


마동철은 원래 대역배우를 쓰지 않았다.

날아가고 던져져 깨지는 스턴트가 필요한 배역은 전부 장청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네. 선배님. 잊지 못할 예술적인 리액션을 해 드리겠습니다”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이 전 촬영은 거의 전부 연기 전체를 마친 후 테이크를 다시 가고 클로우즈 업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촬영은 달라요. 동작들 전부 끊어서 갑니다”


감독의 설명에 따라 배우들과 카메라가 움직인다.

주먹을 내지르는 동작을 한번 하고 카메라의 방향을 바꾸고 다시 한 동작을 하고 다시 카메라의 방향을 바꾸고 어쩔 때는 두 대의 카메라를 사용하기도 했다.


“콘티 안에 어떻게 찍을지 다 그려 놨습니다. 잘 봐요. 한 번은 장청 어깨 너머에서 찍고 이어지는 씬은 마형사의 어깨 너머를 찍습니다. 오늘 촬영은 계속 이런 식으로 이어질 겁니다. 그리고, 여기 통로가 T자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천정의 카메라가 잡습니다. 그 때는 서로 멱살을 붙잡고 돌아주세요”

“평소보다 훨씬 더 카메라 방향을 많이 바꾸네?”


촬영감독이 말했지만 불만이라는 말투는 아니다.

감감독은 평소에도 테이크를 많이 가져가는 감독이지만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연기를 시키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점심 전에 시작했던 리허설은 어두워져 끝났고 저녁식사를 하고 난 후에야 진짜 촬영이 시작되었다.


장청은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은 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그 때 그의 뒷 편에 다가오는 마동철 형사가 거울을 통해 보였다.


“험악한 얼굴 들여다보며 뭐하냐?”


그리고 얼굴 가득 짜증을 드러내며 말했다.


“물 잠궈. 자식아! 세금도 한푼 안내는 새끼가 물을 펑펑 쓰고 말이야”


뒤돌아 마형사를 보던 장청은 슬쩍 주변을 훑은 후 말했다.


“겁 없네?”

“왜? 혼자 와서? 너 같은 쓰레기 잡는데 그럼 부대로 몰려와야 하냐?”


잠시 쉰 후 마형사가 장청이 손에 든 여권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재주도 좋아. 그 여권은 또 어디서 위조한 거야?”


장청이 ‘훗’ 웃은 후 여권을 천천히 소변기 위 선반에 올려 놓다가 불시에 마형사를 습격했다.


“이, 개쉑~~~~~!”


액션이 시작되었다.


이분 삼십초 길이의 [크라임 시티] 마지막 격투씬은 이후 열 시간 삼십분 동안 촬영이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99 란마아부지
    작성일
    22.02.21 15:39
    No. 1

    대한민국 경찰은 가해자 가족이 사정해서 물어보면 피해자 신상 술술 부는구나
    설마 현실에서도 그렇진 않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한탄
    작성일
    22.02.27 11:52
    No. 2

    가해자가 합의한다고하면 피해자 의사 상관없이 개인정보 다 준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가끔 보복범행으로 이차 피해가 생기지만 다 알려주는게 관행이라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5 카포차
    작성일
    22.03.11 02:32
    No. 3

    자의로 처벌하는것은 범법행위입니다.당신도 범죄자.
    이렇게 돼면 개나소나가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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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119 니들이 뭘 알아 22.08.28 269 7 12쪽
118 118 파티 22.08.25 262 6 13쪽
117 117 미혼모와 미친놈 22.08.23 272 6 13쪽
116 116 촬영은 계속되었다. 22.08.21 298 5 11쪽
115 115 태봉과 도화와 봉구 22.08.19 280 3 12쪽
114 114 내가 미친놈인 게 다행이다 22.08.17 298 4 11쪽
113 113 닮았다 22.08.16 284 6 12쪽
112 112 괜찮아 안 괜찮아 22.04.19 686 13 12쪽
111 111 휴가 가자 +1 22.04.17 837 13 12쪽
110 110 언리얼 22.04.15 856 12 12쪽
109 109 드라마 작가 22.04.13 897 8 11쪽
108 108 사투리 연습 22.04.11 892 10 13쪽
107 107 라이벌리 22.04.09 895 8 11쪽
106 106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22.04.07 824 13 13쪽
105 105 MAPA 2차 주주총회 +1 22.04.05 874 17 15쪽
104 104 겨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팠던 걸까? 22.04.03 846 17 12쪽
103 103 뭐가 있는 날 22.03.31 704 16 12쪽
102 102 찌그러진 거울 +2 22.03.29 693 14 12쪽
101 101 도약을 해보자 +1 22.03.26 712 16 12쪽
100 100 굿이 끝나고 촬영이 시작됐다 22.03.24 754 19 13쪽
99 099 굿은 굿엔딩이 될 수 있을까? +3 22.03.22 705 21 13쪽
98 098 북소리와 방언 22.03.19 723 22 13쪽
97 097 너였냐? 22.03.15 732 20 12쪽
96 096 김율 +2 22.03.13 722 20 12쪽
95 095 어디 귀신 없나? +2 22.03.10 820 23 17쪽
94 094 중철무속연구소 22.03.08 804 25 17쪽
93 093 지옥에서의 초대 +1 22.03.06 838 21 13쪽
92 092 온갖 긍정적인 시그널의 총합 +2 22.03.04 821 2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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