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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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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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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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 목소리

DUMMY

“엘레나.”

“(...)”

“엘레나.”

“(...)”

“내가 다시 한 번 람쿤을 혼내도록 하지.”“아니. 그게 아니야.”

“그럼? 원하는 게 뭐지?”

“내가 람쿤을 혼내도 이해해줘요.”

“그래. 알겠어.”

“나도 새끼니까 이해하려고 해요. 그런데 갑자기 화가 솟구칠 때가 있어요.”

“그래.”“그래도 노력해볼게요. 당신 새끼니까. 어린 새끼는 그런 존재니까 이해해 볼게. 그래도 혹시 내

가 람쿤에게 화를 내면 이해해줘요.”

“그래.”

“고마워요.”


엘라나가 아직도 서럽다는 듯 등을 들썩이며 울었다. 보쟈크는 그런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등을 핥아주자 엘레나가 목을 그의 목에 비볐다.

두 얼룩말은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등을 갈귀를 목을 핥아댔다.





보쟈크가 어디에 가든 엘레나가 찰싹 붙어다녔다. 풀을 뜯을 때도 물을 먹을 때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잠시 쉴 때도 엘레나는 한 시도 보쟈크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보쟈크도 마찬가지였다.


“새”라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

새 암컷, 엘레나.


엘레나를 바라보는 보쟈크의 눈이 어찌나 끈적이던지.


그렇다고 보쟈크가 사랑놀이만 할 얼룩말은 아니었다.

새끼를 낳기 위한 교미는 엘레나와도 진행되고 있었지만 아라라와도 하루가 멀다하고 붙어먹었다.

보쟈크의 가혹한 훈련에 카투와 하바, 람쿤이 잘 따라오고 있었다.

보쟈크는 엘레나와 람쿤 사이가 걸리기 했지만 엘레나는 그날 밤 운 이후로 람쿤에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역시나 현숙한 암컷이었다.


“스완디!”


보쟈크는 여전히 스완디 마음에 걸렸다. 차타즈가 스완디를 마음에 들어했다면 뻔질나게 이 곳을 찾아 들었을텐데 차타즈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차타즈는 언제 만났지?”


스완디는 차타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만날 일 없어요.”

“차타즈가 인사하러 온다 하지 않았던가?”

“싫어요. 차타즈 만나고 싶지 않아요.”


싫어지고 싶었다. 오지도 않는 수컷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비참했다.

그렇다고 차타즈를 찾아가서 왜 오지 않냐고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싫어졌다?”

“네.”

“왜지?”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암컷들이랑 무리를 지어서 살겠다고.”

“거짓말이에요.”


카투가 나타나 끼어들었다.


“너 차타즈 좋아하잖아.”

“아니거든?”

“아버지. 얘 차타즈를 바라보는 눈빛에 아주 꿀이 떨어졌어요. 근데 차였나 봐요. 그래서 다시 암컷들하고 살겠다 이러는 거예요.”

“오빠가 뭘 안다 그래?”

보쟈크는 생각이 많아졌다.

하긴, 능력 있는 수컷의 마음에 드는 것이란 어려운 일이지.

내 눈에만 스완디가 이뻐보이는 것일까.


“하바, 람쿤!”


하바와 람쿤은 어미들 곁에 있다가 보쟈크에게 뛰어 온다.


“가자!”

“어디를요?”


하바는 신이 나서 물었으나 보쟈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얄미운 짓을 하실까? 오빠 독립이나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독립은 할 수 있겠어?”


못났다고 자존심이 적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세렝게티에서 공평한 것은 단 하나.

모두에게 똑같은 자존심이 주어졌다는 것.


“내가 마음만 먹으면 독립 언제든 해! 난 너처럼 결혼 상대에게 차여서 울고 그런 거 없어.”

“나 운 적 없는데?”


거짓말이었다. 흘러나오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리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생활하던 스완디였다.


“과연.”

“훈련이나 잘 받아. 다른 수컷들한테 뒤지게 얻어터지지 말고.”


스완디는 상한 마음을 괜히 카투의 마음을 찌르려는 걸로 대신한다. 하긴 카투가 먼저 비겁하게 나왔으니 이상할 것도 없고.


어쩌면 보쟈크는 스완디보다 카투를 더 신경 써야 했다. 이제 독립을 할 나이가 다가오는데도 독립할 생각 없이 무리에서 뻗대고 있으니 말이다.


보쟈크는 사실 카투가 더 늦게 독립해주기를 바라는지도 몰랐다. 그가 병으로 죽게 되면 이 무리를 이끌 수컷은 카투였다. 아직 하바와 람쿤은 크지 않았기에 몽겔리와 아라라는 성체 수컷이 필요할 것이다.


“아빠.”


차타즈를 만나러 가는 길.

보쟈크는 어린 새끼인 하바와 람쿤을 데리고 간다. 하바는 아빠와 어디를 간다는 사실에 들떠있었고 민수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민수는 여전히 이 곳 세렝게티를 누비는 것이 좋았다.

하바는 입이 들썩 거린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아빠는 엘레나 이모가 제일 좋아요?”

어린 새끼다운 질문.


“아빠는 하바 엄마도 람쿤 엄마도 사랑한단다. 엘레나 이모도 사랑하고.”

“엄마가 그랬어요. 아빠가 엘레나 이모한테 폭 빠져버렸다고. 그렇게 되면 하바도 사랑하지 않게 될 거라고.”


보쟈크는 아라라가 이럴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달리는 것을 멈추고 하바와 람쿤을 바라보았다. 어린 새끼들은 올망졸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 니들은 내 분신이야.”

“분신이요? 분신이 뭐예요?”

“니들이 나고 내가 니들이라는 거다.”


하바는 너무 어려운 말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한다.

민수는 보쟈크의 말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민수 형아.”


다시 현명의 목소리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민수 형아.”


보쟈크의 눈에 들어오는 어느 암컷과 수컷. 서로의 몸을 열정적으로 핥고 있었다. 발정기는 그들의 혀가 상대의 몸을 끊임없이 핥게 한다. 보쟈크의 눈에 분노가 서린다.


“아빠. 우리 안 가요?”


하바는 보쟈크가 바라보는 곳을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민수는 그제야 보쟈크가 보고 있는 커플을 바라본다.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암컷이 아니라 수컷이었다. 누가 봐도 멋있게 근육이 잡힌 수컷. 보쟈크가 젊었을 적에 저런 성체였을까? 민수는 이 수컷도 보쟈크만큼 강한 수컷이라는 예감이 든다.


“차타즈.”


멋있게 근육 잡힌 수컷의 갈기를 핥으며 암컷이 말했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차타즈가 암컷의 뒤로 돌아가 그의 것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민수는 스완디가 흠모하는 수컷이 이 얼룩말인 것을 알게 된다. 아무래도 스완디는 저 수컷을 차지하지 못할 듯 했다. 민수도 차타즈가 강에서 악어의 턱주가리를 뒷발차기로 뭉게버렸다는 사실을 들은 적 있었다.


보쟈크는 발걸음을 돌려세웠다.

그도 젊었을 적 그랬다. 이 암컷 저 암컷 모두 마음에 들었었지. 그도 그럴 것이 세렝게티의 암컷들 모두 그를 원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차타즈가 스완디를 마음에 들어 스완디만 사랑하면 좋겠지만 그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잘난 수컷의 마음을 뺏는 것은 어쩌면 사자를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법.


스완디를 사랑하지 않는데도 딸을 차타즈에게 보내는 것이 옳은 것일까?

보쟈크는 옳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결혼의 결정은 그도 아니고 스완디도 아닌 차타즈에게 달려있겠지.


“아빠. 왜 다시 돌아가요?”


하바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물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서 니들 젖 먹어야지.”

“그럼 우리 달려요!”

“그러자, 달리자.”


하바가 신나서 달려나가자 보쟈크도 뛰어나갔다. 그리고 민수도 따라 나섰다.

민수의 눈에 자꾸만 차타즈가 들어왔다. 보쟈크를 닮고 싶고 차타즈를 닮고 싶었다. 강한 수컷에 대한 열망이 그의 마음 속에서 자꾸만 커져 나갔다.






현명은 맞으면서도 민수 형아가 생각났다.

그가 지금 기댈 곳은 민수 형아 뿐이기에.


화장실로 들어 간 형아가 없어져 버린 건 여전히 미스터리 한 일이었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형아가 정말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걸까?


“아악.”


거침없는 발길질에 몸은 더 동글게 말아진다. 애벌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형아.”


현명이 이를 악물면서도 민수를 불러본다. 부르면 그가 오기라도 할 것처럼.


“형아?”

“민수 형아.”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자꾸만 민수 형아를 찾게 된다.


“이 새끼 누구 부르는 거야?”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인간들은 어쩌면 동물과 같다. 잔인함은 세렝게티의 사자 못지 않다. 현명의 얼굴에 피가 나는 것을 보자 피를 본 사자처럼 더 흥분한다.


“몰라. 병신 새끼.”


현명의 얼굴에 코피가 쏟아지고 입에서 피가 난다.

잔혹하게 밟힌 현명의 얼굴과 그 얼굴을 보며 웃는 잔혹한 보육원 친구들.





“으악.”


민수가 푸드득 잠에서 깨어난다.

며칠째 같은 꿈이다. 현명의 잔혹하게 짓밟힌 얼굴이 떠오른다. 그 얼굴에서 학교에서 맞았던 자신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서울로 돌아가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이 꿈에서 벗어나지 않을 듯 하다.


“왜 그러니, 람쿤?”


몽겔리도 잠에서 깨어났다. 며칠 째 람쿤이 잠을 들지 못한게 신경이 쓰인 터였다.


“아니에요.”

“이리 오렴.”


민수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자 몽겔리가 람쿤 곁으로 갔다. 몽겔리가 람쿤의 등을 핥아주려 하자,


“하지 마요.”


민수는 자동적으로 내뱉는다.


“아, 죄송해요.”


그러고는 곧바로 사과한다.


“또 악몽을 꿨니?”


아들을 키운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단 말인가. 하긴 알려주었어도 똑같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 어떤 새끼도 입의 혀처럼 사근사근 하게 굴지는 않을테니. 새끼들도 자유의지와 생각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렇게 엄마를 거부하는 듯한 아들의 태도란···.


서운함을 뒤로 하고 부드럽게 물어보려고 애쓴다. 내 새끼에게 서운함을 느끼면 안 된다. 새끼는 그저 사랑받고 격려받고 모든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아야 하는 존재니까. 주는 존재가 아니니까. 받는 존재니까.


“제가 인간이라고 말씀드린 적 생각 나시죠?”

“생각나지, 그럼.”

“제가 다시 서울로 잠깐 갔다 와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래도 이번에 만약 다시 서울에 간다면 몽겔리에게 말은 하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안 돼!”


몽겔리가 소리를 높였다. 저도 모르게 소리가 커졌다.


“다시 돌아올게요.”“나도 데려가렴.”

“데려 가라구요?”

“니가 말하는 서울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그 곳에 나도 데려가렴. 혹시 알아. 나도 순간이동을 했는데 인간으로 빙의가 될지.”“그건 안 돼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그럼 가지 마. 거기에 니가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없잖니.”

“아빠의 숨겨놓은 아들이 있어요. 그 아들이 친구들한테 맞는 것 같아요. 자꾸만 나를 불러요. 꿈에서도, 눈을 뜨고 있을 때도.”

“무리가 너를 불러 그렇게 괴로워했구나. 잠자면서.”


괴로운 건가?

민수는 자신의 감정을 잘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한 번 가봐야겠다는 것.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꿈에서 벗어날 수 있을 듯 했다.


“반드시 돌아올게요. 저번에도 돌아왔잖아요.”

“안 돼.”

“저···. 갈 데도 없어요, 이제.”

“(...)”

“제가 돌아올 곳은 여기인 것 같아요.”


아직도 이 세렝게티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보쟈크처럼, 그 때 본 차타즈라는 수컷처럼 멋지게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점점 들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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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죽을 때 죽더라도 21.12.14 92 3 12쪽
86 아들 (2) 21.12.14 92 3 12쪽
85 아들 21.12.13 91 3 11쪽
84 세렝게티를 떠나면 21.12.13 108 2 12쪽
83 21.12.12 88 1 12쪽
82 텃새 21.12.12 87 3 12쪽
81 응고롱고로 21.12.11 92 1 12쪽
80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21.12.11 99 1 12쪽
79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 21.12.10 89 2 11쪽
78 슬픔 속에도 평안이 있고 평안 속에도 분열이 있는 법 21.12.10 96 2 12쪽
77 약점과 유혹 21.12.09 105 2 11쪽
76 새끼의 거래 21.12.09 98 2 11쪽
75 운명의 얄궂음 (2) 21.12.08 95 2 11쪽
74 운명의 얄궂음 21.12.08 101 2 11쪽
73 비극적 운명 21.12.07 108 1 11쪽
72 암컷과 발정기 그리고 새끼 21.12.07 150 3 11쪽
71 오래된 욕망 21.12.06 114 2 12쪽
70 죽음의 강, 마라 (2) 21.12.06 99 3 12쪽
69 죽음의 강, 마라 21.12.05 98 3 12쪽
68 강한 수컷이란 21.12.05 105 3 11쪽
67 두 암컷을 가진 다는 것 21.12.04 146 3 11쪽
66 약한 놈이 죽는 법 +1 21.12.04 117 2 11쪽
65 공포와 루머 21.12.03 128 2 11쪽
64 첫 교미 +1 21.12.03 263 2 12쪽
63 독립 21.12.02 100 1 11쪽
62 암컷 쟁취를 위한 결투 21.12.02 106 2 11쪽
61 살생의 맛 21.12.01 96 2 11쪽
60 죽이겠어 21.12.01 11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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