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멸망의 서곡(序曲)

2029. 3. 31. 토요일 밤 7시, 광주광역시에 있는 천하 장례식장 201호.
건설회사와 변호사 사무실 조화가 그곳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줄지어 조문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하나같이 검은 정장에 검은 뿔테 안경, 단정한 머리.
다들 척 보아도 공부 좀 했을 것 같은 인상이다.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와 흥에 겨운 대화가 터져 나오고 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은 것. 늘 함께 있지만, 서로를 바라볼 수 없다.
상주인 이동주 변호사는 어제와 오늘, 오백여 명에 이르는 조문객들을 응대하느라, 녹초가 된 상태다.
평소 하지 않던 절을 그렇게도 많이 했으니, 무릎이 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절을 할 때마다 엉거주춤, 모양새가 우스워지고 있다.
“이 변, 그동안 고생 많았어. 힘내시게!”
법무법인 한결의 대표변호사 김정현이 조문을 마치고, 동주의 손을 꼭 잡는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내일 발인 마치고, 모레부터는 정상 출근하겠습니다.”
“아니야! 더 쉬고 마음 좀 정리되면, 그때 차분히 나와.”
동주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의무연수를 법무법인 한결에서 했다.
그때 김정현 대표는 책임감 있고, 업무능력이 뛰어나며, 무엇보다 친화력이 좋은 동주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봤다.
그래서 연수가 끝나기도 전에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해, 결국 그를 영입할 수 있었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김수연 변호사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오빠! 힘들더라도 꼭 기운 내세요.”
“고맙다. 수연아!”
그녀의 큰 눈망울에는 어느새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김수연 변호사는 김 대표의 외동딸이다. 법무법인 한결에서 동주와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다.
그녀는 동주가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 생각에, 종종 넋이 빠져 있는 걸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이 순간, 동주의 아픔이 그녀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때 장례식장 복도 쪽에 있는 휴게실 TV 앞에서, 크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식장 내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하나, 둘 복도 쪽으로 향한 뒤, 점점 소란스러운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동주는 장례식장에서 불미스러운 사고라도 났을까 걱정돼, 서둘러 복도로 나갔다.
많은 사람이 TV 앞에서 넋이 나간 듯 입을 벌리고, 탄식을 내뱉고 있다.
“이게 뭐야, 말도 안 돼!”
“방송 사고겠지?”
“다시 한번 긴급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 한국 시각 18시 10분경 미항공우주국 나사(NASA)에서 공식 발표한 내용입니다.
지구로부터 8만 1,000km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한 후, 금성 쪽으로 향할 것으로 예측했던 99942 행성, 일명 아포피스(Apophis)가 확인결과 궤도가 바뀌어, 현재 지구를 향해 시속 10만km 속도로 돌진하고 있습니다.”
“무슨 영화 찍고 있는 거야?”
“완전히 스토리가 딱 ‘딥 임팩트’ 아니면 ‘아마겟돈’인데!”
여기저기에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터져 나온다.
“이 소행성은 지름이 11km, 무게가 200억t에 이릅니다. 나사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앞으로 13일 뒤인 4월 13일, 일본 오키나와 동남쪽 3,500km 해상에 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헉!”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지더니, 어느새 서늘한 공포감이 소용돌이친다.
“아저씨, 다른 방송 좀 틀어봐요!”
“이런 걸 믿으란 말이야?”
“저기 CNN 좀 틀어봐요!”
“만우절은 내일인데, 벌써 이런 장난을 치면 안 되지!”
TV를 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믿을 수 없다며, 한마디씩 하고 있다. 정현은 옆에 서 있는 동주를 넋이 나간 눈빛으로 바라보며 묻는다.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도 아니잖아.”
너무 놀라 말문이 막힌 동주는 정현의 질문에 답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마도······!”
아래층에서 TV 리모컨을 가지고 뛰어온 청년 하나가 급하게 채널을 튼다. KBS도, SBS도, 종합편성 채널에서도 비슷한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그 뉴스들은 사이 사이에 CNN 같은 외신 뉴스의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지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2억 개에 해당하는 충격이 있을 텐데요.
충격 후 10분 이내에, 반경 3,000km까지 핵폭발과 같은 충격파가 퍼져나가, 그 내부에 있는 생명체는 모두 불타 재가 될 겁니다.
2시간 뒤에는, 높이 500m가 넘는 해일이 북반구와 남반구를 향해 밀어닥칠 텐데요. 러시아 최북단까지도 쓰나미가 일어, 지표면에 있는 모든 것이 물에 잠기게 됩니다.
그 뒤로는 리터 규모 10 이상의 지진이 적어도 한 달 이상 발생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걸 파괴할 것으로 보입니다.”
동주는 너무도 놀라, 그 자리에서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추어가는 듯, 주변 사람들의 말소리가 늘어난 카세트테이프에서 나는 소리처럼 흐물거리며 춤을 추었다.
‘아무래도 진짜인가 보다.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하필 초상집에서, 이런 타이밍에······!’
밤 9시에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다. 조문객들이 황급히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있다.
“이 변호사 미안해! 너무 빨리 가게 돼서······.”
김정현 대표는 황망한 낯빛으로 수연의 팔을 붙잡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오빠, 미안해! 오래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대표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연아! 너도······, 잘 들어가!”
아포칼립스 D-14, 2029. 3. 31.(토) 밤 8시 30분.
빈소에는 이제 동주와 여동생 동아만 남아 있다.
장례서비스를 돕던 직원들은 모두 서둘러 떠났다.
몇몇 테이블에는 음식과 술병이 치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복도에는 슬리퍼들이 뒤집히거나, 짝을 잃고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맞은 편 202호나 다른 층도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TV에서는 계속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오빠! 정말일까? 이렇게 지구가 멸망하는 걸까?”
동아의 떨린 목소리에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불안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동아야, 너무 걱정하지 마. 오보일 수도 있고, 나사 발표가 정확한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
“설령, 진짜라고 해도 이런 내용의 영화 많이 봤잖아! 아마 핵미사일로 소행성을 폭파할 수 있을 거야. 적어도 궤도를 바꾸는 방법 정도는 있겠지.”
“그러기엔 너무 촉박하지 않을까?”
“그래도 아직 2주일 정도 남았으니까, 충분히 준비할 수 있을 거야.”
동주는 동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불안한 마음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영화 아마겟돈에선 주인공이 극적으로 소행성을 파괴하던데, 과연 현실에서도 그럴까?’
밤 8시 55분, 정부 발표가 자못 궁금해진다.
‘우리도 무슨 대책이 있겠지?’
그때 급하게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가 1층에서부터 점점 가깝게 들려온다.
“동아야! 미안해. 많이 늦었지?”
“아니야 오빠! 어제도 와줬잖아. 일도 많을 텐데, 내가 미안하지. 그런데 뉴스는 봤어?”
“응. 방금 오면서 차에서 라디오로 들었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사실이 아니겠지. 그렇죠. 형님?”
“나도 그러길 바라는데······.”
동아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 최용석, 그는 광주와 전라남도 지역을 방위하는 육군 제10보병사단 소속 중위다.
고등학교 때부터 동아를 마음에 품고, 계속 쫓아다닌 녀석이다.
동아는 용석을 친구로만 생각했을 뿐이라, 연인 사이를 기대하는 그를 계속 밀쳐 내왔다. 그런데도 용석은 10년이 넘도록, 줄곧 동아의 곁에서 자리를 지켰다.
최근에 동아가 마음을 열기 시작해, 이제는 친구가 아닌 연인이 된 사이다.
“지금부터 이번 행성 충돌 사태와 관련한, 청와대의 공식 입장을 알려드립니다.”
천하 장례식장 2층 빈소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휴게실 TV 앞에 모였다. 긴장된 순간, 죽음이 일상인 이곳에 더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제발! 사실이 아니길, 나사가 시뮬레이션을 잘못했길······.’
동주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며, 정부 발표에 온 신경을 집중해 귀 기울였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국가와 국민 모두의 생명을 좌우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임을 인식하고, 즉각적인 대응조치를 취하고자 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와 군에서 국가안보 비상위원회를 결성해, 현재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 현장으로 바로 가보겠습니다.”
단상 뒤에 있는 기다란 선반 위로 롤러블 TV의 화면이 스르륵 올라오고 있다.
화면 가득 국가안보 비상위원회의 회의장 모습이 드러나고, 점점 맨 앞에 앉아있는 박민우 대통령의 얼굴 쪽으로 클로즈업된다.
“정부는 이번 소행성 충돌 위험을 전시,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서, 행정 및 사법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부득이 현 시간부로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사태 해결을 위해선 국력을 총 집중해야 하고, 사회적 불안, 소요사태 등의 발생을 미리 방지할 필요가 있어 내린 고육지책입니다.
그러니 부디 국민 여러분의 많은 양해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계엄사령관이 모든 사회안전망, 통제시스템을 진두지휘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 주요한 내용은 대변인 발표로 갈음하겠습니다.”
‘뉴스가 나온 지 불과 2시간도 안 됐는데 즉각적인 계엄령이라니, 사태가 심각한 게 분명하다.’
선반 위로 올라왔던 롤러블 TV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대변인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브리핑을 재개했다.
“대통령의 계엄선포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어서 후속 조치 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계엄령에 따라 앞으로 오후 6시 이후로는 4인 이상이 모이는 집회가 금지되고, 밤 9시 이후로는 전국 어디에서도 통행이 금지됩니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의 소행성 대비 조직과 기관이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일명 '코드원(Code-one)' 시스템을 구축했는데요.
코드원은 각국의 도움을 받아 7일 이내에, 소행성을 요격할 수 있는 우주선을 발사할 겁니다. 이 우주선들은 가동할 수 있는 모든 핵 전술을 탑재해, 소행성을 파괴하거나 궤도를 바꿀 텐데요.
만일 이러한 조치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미흡할 경우를 대비해, 생존 대비책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정부와 코드원을 믿고, 종전과 다름없는 일상생활을 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칩니다.”
제발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었는데······, 이제는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주는 갑작스러운 두려움에 몸이 옹송그려지고, 털끝이 쭈뼛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고작 13일 뒤면 나 또한 죽을 수 있다니······.
너무 잔인한 운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동아도 용석도 넋이 빠진 모습이다.
“오빠! 용석아! 우리 이제 어떡해?”
- 작가의말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께 흥미진진한 모험의 긴장과 스릴을, 그리고 때론 마음 따뜻해지는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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