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이별의 끝을 붙잡고
단상 앞으로 뛰쳐나온 기자들이 회견장을 나서려는 대변인을 붙잡고는, 득달같이 질문을 쏟아붓는다.
“소행성이 갑작스럽게 궤도를 변경한 건 무엇 때문인가요?”
“아포피스 주변에서 번뜩이는 섬광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정체가 무엇입니까?”
“현재 기술로는 핵미사일의 사정거리가 2만km를 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정말 핵미사일을 발사해, 소행성을 파괴하거나 궤도를 변경할 수 있습니까?”
“지구 가까이에서 소행성을 타격할 경우, 행성 파편과 방사능으로 인해 참사를 막을 수 없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쏟아지는 질문을 무시하고 자리를 떠나려는 대변인, 앞줄에 있던 기자들이 다시금 그를 막아선다. 건장한 체구의 기자 하나가 대변인의 팔을 잡아끌며, 버럭 고함을 친다.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고요. 세상에! 질문도 안 받고 자리를 뜬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제대로 답변해주세요!”
이제 모든 기자가 단상 앞쪽으로 몰려와, 대변인을 에워싸고 거칠게 답변을 요구한다.
“제가······, 음······ 전문가가 아니라서, 적어 온 내용 이외에는 달리 알려 드릴 것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청와대 대변인이면 알 만큼 알 것 아닙니까?”
“코드원 시스템은 구체적으로 뭐고, 언제 누가 만든 겁니까?”
“소행성 파괴나 궤도변경에 실패했을 때, 생존전략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성난 기자들이 다시금 답변을 회피하는 대변인을 몰아세우고, 질문을 쏟아붓는다.
“그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시 브리핑이 있을 겁니다. 그때는 꼭 전문가와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 단상 옆 커튼이 급하게 열리고, 그 사이로 무장한 군인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뒤로 국방부 위기대응반 하동기 소장이 들어와 단상의 마이크를 잡는다.
“앞서 발표대로 현 시간부로 계엄령이 선포됐습니다.
저희 군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부정확한 정보가 언론이나 SNS를 통해 유포됨으로써, 사회불안을 초래하는 걸 결코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정부와 군의 브리핑은 오후 1시 한 차례 있을 겁니다. 오직 그때 나온 정보만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부디 인터넷상으로 유포되고 있는 여러 허위정보에 현혹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브리핑은 여기서 마치고, 내일부터는 제가 직접 브리핑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동기 소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총을 든 군인들이 단상 앞에 줄지어 서서 기자들이 앞으로 나서는 것을 막아선다. 현장 중계도 급하게 종료되고, 바로 스튜디오 모습이 비친다.
장례식장 복도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눈치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도대체 우리 정부는 무슨 일을 한다는 거야? 우린 핵미사일도 없잖아. 결국, 기껏해야 생존대책이나 세운다는 건데······.”
“생존대책이 말이 돼? 500m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잠실 롯데월드타워 높이인데, 그 정도 해일이 밀어닥쳐 싹 쓸어버리면 살 방법이 있냐고?”
“저 기자들 말대로라면, 핵미사일로 행성을 파괴하는 건 불가능한 거 아니야?”
여기저기에서 비관적인 예상들이 계속 터져 나온다.
‘핵미사일로 아포피스가 파괴되기만을 기대해야 한다는 건가? 실패하면······, 모두가 죽는다. 젠장! 엄마! 며칠 뒤면 우리도 엄마 곁에 있을지 몰라!’
동주의 마음은 이미 멸망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용석아! 와줘서 고맙고, 동아랑 먼저 들어가. 난 내일 발인 문제로 담당자와 이야기 좀 하고 갈게.”
“네, 형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빠! 그럼 먼저 들어갈게.”
떠나는 동아와 용석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본 후 혼자 남은 동주. 엄마의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회한에 젖는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엄마! 동아랑 잘 살겠다고 약속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그때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이 시국에 누가 문상을 왔지?’
돌아서 입구를 향해 걸어가 보니, 그곳에 송은수와 그녀의 남자 친구 김태호가 와 있었다.
얼음장처럼 굳어버린 동주.
*
은수와는 3년 동안 깊이 사귄 연인 사이였다. 10일 전쯤 은수로부터 새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침대에서 열정적인 관계를 마친 직후에······.
“오빠, ······나 태호 오빠랑 사귈까 해. 미안해! 좀 더 빨리 말하지 못해서.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 우리 이렇게 만나는 건······.”
동주는 갑작스러운 은수의 고백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 ······네가 요즘 태호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많길래,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잘 됐다. ······태호 정도면 좋은 남자지. 잘 나가는 외과 의사에 잘 생기기까지 했으니.”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동주는 마치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맥주 캔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침착한 몸짓과는 달리 그의 심장 박동은 거세지고, 머리끝으로 쑥 피가 쏠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자존심은 놀란 내색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아! 바람 좋다. 시원해!”
주변 경치를 바라보며 맥주를 들이켜는 동주의 뒷모습은 그저 평온해 보일 뿐이었다.
은수는 ‘어쩜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너무도 의아하고 믿을 수 없어 그저 동주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
“동아가 연락해줬어.”
은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연락했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었어. 미안해!”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어머니가 나 많이 이뻐해 주셨는데, 마지막에 못 봬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
은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소매로 훔쳐내고 있다.
동주는 헤어지고 난 후 서먹서먹해져, 일부러 은수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태호까지 데리고 나타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먹서먹한 공기가 휑한 접객실을 더 썰렁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려운 발걸음 해줘서 고맙다.”
동주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예의는 갖춰야 할 것 같아 어렵게 태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요! 당연히 와봐야지요.”
태호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답한다. 모두가 불편한 이 자리, 쉽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 계속 무거운 침묵만이 흐른다.
동주는 자기 앞에 놓인 종이컵에 천천히 술을 채웠다. 맥주가 차가는 시간이 몇 분은 되는 듯한 느낌이다.
“너도 한잔할래?”
“아니요. 차를 가지고 와서, 우린 그냥 음료수만 마실게요.”
‘보통 때라면 술을 마다치 않았을 은수인데······.’
은수는 독서와 영화감상을 좋아한다. 자기가 본 책과 영화 내용에 대해 동주와 대화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겼다. 동주 이외에 다른 사람과도 이런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수줍음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동주는 그런 은수의 마음을 잘 알기에 직접 독서동호회를 찾아 나섰고, 그곳에서 한빛 대학병원 의사 김태호를 만났다.
그곳에서 재미를 느끼는 은수를 바라보며 안도했고, 그녀가 점점 밝아지는 것 같아 흐뭇했다. 바빠서 동호회에 나가지 못했지만, 은수를 위해 회식 자리에는 빠지지 않으려 애썼다.
그때마다 책과 영화 이야기로 밤을 새우며, 그녀와 함께 주점의 술을 모두 동나게 하곤 했다. 그랬던 그녀가 오늘은 종이컵 한 잔의 술마저 마다하니, 혼자서 김빠진 맥주를 들이켜는 동주는 마음 한편이 서운했다.
“뉴스는 봤지? 어떤 것 같아?”
둘 사이가 어떤지 물을 수도 없고, 마땅히 할 말도 없어 동주가 내뱉은 말이다.
“무서워! 그런데 지구가 멸망하면 나만 죽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죽는 거니까, 왠지 덜 불안한 것 같아.”
마음이 여린 은수다운 말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다.
남은 사람들이 눈에 밟혀, 죽지도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 죽은 뒤에 아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아쉬울 것도 없지 않을까? 남보다 일찍 죽는 억울함도 없으니, 그래 위안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오빠는 어떤 것 같아?”
“난, ······사과나무나 하나 심으려고.”
“하하! 아······, 미안합니다.”
태호가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온 웃음에 놀라, 바로 사과했다.
“아니야. 웃기려고 한 말인데, 뭘. 설마 지구가 멸망하겠어! 무언가 대책이 나오겠지.”
동주는 빈 종이컵에 다시 맥주를 쏟아 넣고는, 바로 단번에 마셔 버렸다.
“이렇게까지 와줘서 정말 고맙다.”
어색한 분위기가 더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이제 슬슬 일어서 달라는 표현이었다. 눈치 빠른 은수는 태호의 팔을 잡아끌며 일어난다.
“오빠! 어머님 편히 모셔드리고, 마음 잘 추슬러.”
“응, 그래야지. 고맙다!”
태호가 은수의 손을 잡고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동주는 그들의 뒷모습이 너무도 낯설었다.
‘은수가 언제부터 태호를 좋아하게 됐을까?’
동주는 은수와 잠자리를 한 후에는 서로 몸과 마음이 통해서인지, 평소 같으면 하지 못할 말도 쉽게 꺼내곤 했다. 뒷감당하지 못할 말도 다 그때 나온 말이다.
“좋은 남자 있으면 언제든지 사귀어봐.”
“걱정하지 마! 나 좋다는 남자는 정말 널렸어. 내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사귀고, 연애도 할 거니까 걱정 접으세요. 이 겁쟁이 샌님아!”
적당히 멈출 줄을 알았어야 했는데, 동주는 내친김에 한 발 더 나가고 만다.
“좋은 남자 생기면 미리 알려줘, 남자는 남자가 제일 잘 알아보니까. 괜히 이상한 녀석 만나서 고생하지 말고.”
은수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동주를 바라보며 쏘아붙인다.
“오빤 내가 다른 남자와 연애하고, 잠까지 자도 괜찮아?”
“음······, 나도 그러면 되지, 큭큭!”
“그게 말이야?”
화가 난 은수는 옆에 있던 솜 베개를 들어, 그의 머리를 몇 번이고 내리친다. 동주는 잽싸게 베개를 빼앗은 후, 은수의 잘록한 허리를 한쪽 팔로 감쌌다. 그리곤 힘있게 자기 몸쪽으로 끌어당긴다.
“이 나쁜 놈! 정말 날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은수는 이처럼 무정한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이 미워져, 눈물을 글썽인다. 이때 동주는 은수의 눈에 맺힌 눈물을 입으로 훔쳐내며, 뜨거운 키스를 쏟아붓는다.
은수와 행복했던 시절, 사랑싸움하던 시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무덤덤한 척 연기하며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동주의 가슴은 쉼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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