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죽음의 화신 아포피스
아포칼립스 D-13, 2029. 4. 1. 오후.
동주는 무등산 벙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생존 벙커에 대한 아이디어가 쉴 새 없이 솟아오르는 것에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단한 변호사 생활 중에 하나의 낙이라면,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SF와 아포칼립스 물을 미치도록 좋아했다.
좀비나 외계인 침공, 핵전쟁이나 전염병, 소행성이나 혜성 충돌. 너무 우려먹어 다들 비슷한 느낌이지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 쓰는 인간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끌렸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며, 언젠가 꼭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동주는 영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마치 그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생존본능을 깨웠고, 그런 느낌 모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은수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느라, 늘 잠이 부족해 허덕대는 동주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것이 나름 탈출구였고, 해방구였다.
“고맙다, 상진아. 우선 상황을 봐보자. 소행성이 폭파될 수도 있는 거니까.”
서강파는 광주 최대 폭력조직이다. 그 녀석들이 탐낸다는 건 분명 뭔가 있는 게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 몫이 되긴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주는 무등산 레이더기지 이외에 다른 적합한 벙커가 있는지 직접 살펴볼 생각이다.
“그래, 나도 아직 확실하게 정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그쪽 상황은 내가 유심히 살펴볼게.”
상진은 매일 같이 서강파가 운영하는 도박장을 드나들고 있었다.
“잠도 못 자서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어. 저녁에 내가 연락할게.”
“그래.”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고, 이제 동아랑 어머니 편하게 보내드릴게.”
“알았어, 힘내라 친구. 난 그럼 가볼게, 안녕!”
상진은 자신이 몰고 온 드론 택시를 타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는 낮엔 부업으로 드론 택시 영업을 하고, 밤에는 본업으로 큰 판이 벌어지는 무대를 찾아 나선다.
* * *
추모공원 봉안당 앞에 동주와 동아가 나란히 섰다.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는 엄마의 사진 속 얼굴을 보며, 저렇게 웃는 모습을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는지 떠올려본다.
췌장암 말기, 간에 전이된 암 크기가 10cm를 넘어선 이후로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한시도 제대로 눕거나 앉지도, 먹지도 못했다.
항암 부작용으로 발이 붓고, 피부 부종, 발진으로 걸을 수도 없게 되었을 무렵. 더는 써볼 항암제가 없다는 담당 의사의 매정한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엄마의 처연한 얼굴이 떠오른다.
만약 아포피스를 파괴하지도, 그 궤도를 바꾸지도 못한다면······!
고대이집트 신화에서 빛과 질서 그리고 창조를 상징하는 태양신 라(Ra)의 숙적이 바로 아포피스(Apophis)다.
맹독을 지닌 독사의 형상으로, 어둠과 혼돈,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악의 화신이다. 절대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이기도 하다.
이 소행성은 2004년에 처음 발견됐는데, 그때 이 녀석 때문에 인류가 멸망할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하필 이름을 죽음의 화신 아포피스로 지었단 말인가?
“엄마가 마지막에······, 좀 덜 고통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동아가 눈물을 훔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말이다. 동주는 흐느끼는 동아의 어깨를 토닥토닥하며, 슬픔을 견뎌내 본다.
“힘내자, 동아야!”
* * *
어둠만이 가득한 밤.
집에 도착한 동주는 혼자서 캔맥주를 들이켜며, 상진을 기다리고 있다. 어제 본 은수와 태호의 모습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아니야, 생각하지 말자.’
고개를 몇 번이고 저으며, 숨을 크게 내뱉는다.
‘뉴스나 살펴보자.’
휴대폰을 만지다, 읽지 않은 카톡 메시지가 많은 걸 발견했다. 대학 선후배들, 친구들, 시민단체 회원들이 보내 준 위로의 글이 많았다.
유심히 보니 대학원 동기 카톡방은 얼마나 많은 대화가 오갔는지, ‘300+’로 표시되어 있었다. 상례를 치르느라 무음으로 해둔 통에 이제야 몰아서 본 것이다.
동주는 광주에 있는 한빛 대학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딴 후, 현재는 박사과정 3학기째다. 변호사 활동을 하며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 3회 야간 수업을 듣고, 리포트 작성과 발표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한 후배 대학원생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석사과정도 제대로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동생들이 학교 정보를 제공해주는 곳이 바로 이 카톡방이다. 평소에는 간간이 서로 안부를 묻거나, 대학원 정보를 주고받던 조용한 방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불이 붙었을까?’ 자못 궁금해졌다.
공대 교수들이 이번 아포피스 충돌과 관련해 난상토론을 벌인 일 때문이었다. 뉴투브에서 오가는 해괴망측한 괴담과는 엄연히 수준이 달랐다.
비관론을 펼친 교수는 핵미사일로 소행성을 파괴하거나, 궤도를 수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포피스는 얼음먼지로 만들어진 혜성과 달리 단단한 암석인 데다, 그 규모가 크고 속도가 빨라, 설령 수십 기의 핵미사일이 충격한다 해도, 그냥 튕겨 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궤도를 바꾸려면 행성의 측면을 정밀 타격해야 하는데,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는 아포피스를 맞추는 것조차도 힘들다는 의견이다.
낙관론을 펼친 교수는 타격지점을 잘 선택하면 아포피스를 파괴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궤도 정도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이 보유한 ICBM(Inter 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대륙간 탄도 미사일) 중 최신형인 ‘미니트맨 Ⅲ’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 길이 약 3m, 지름 71cm, 무게 약 4t, 폭발 위력은 TNT 약 2만t에 해당)’에 비해 20배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중력과 공기저항이 작용하는 지구상에서 사거리가 15,000km 이상이고, 최대 마하 23의 속도로 목표물을 타격한다.
그 정밀도 역시 향상돼, 오차가 100m 이하라 지름이 11km나 되는 아포피스를 충분히 명중할 수 있고, 20기 정도의 핵폭탄이면 산산 조각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교수들이 하는 토론이라, 역시 어려운 기술적인 대화가 많았다.
다음으로, 소행성의 이동궤도가 왜 변경된 건지에 관한 토론이다.
가장 일반적인 이론이 야르콥스키 효과다.
노를 저으면 그 반작용으로 배가 전진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태양과 마주한 소행성의 지표면은 뜨겁게 달궈지며 열을 머금는다.
이렇게 달궈진 면은 소행성이 이동해 태양 반대쪽을 향한 뒤에도 여전히 열기를 내뿜는다. 이렇게 튀어 나가는 열기에서 일종의 추진력이 생겨, 궤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아포피스 같은 급작스러운 궤도변화는 야르콥스키 효과에 의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반론이 유력하다. 만일, 야르콥스키 효과라면 이미 수개월 전에 궤도변화가 관측되어야 한다는 거다.
가장 유력한 견해는 다른 소행성과의 충돌이다.
그 주된 논거는 바로 궤도가 변경될 무렵, 아포피스 주변에서 번뜩이는 섬광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소행성은 그 크기도 크고 지구와도 가깝게 지나갈 것이 예상돼, 이미 2010년경부터 과학자들이 주시하고 있었다. 그동안 꾸준히 관측했는데, 아포피스와 충돌할 것으로 보이는 소행성이나 운석은 없었다.
그 밖에 아포피스 내부의 핵이 분출해 화산폭발이 있었고, 그것이 궤도를 변경했다는 설도 있다.
이런 이론들 모두 변경된 궤도가 정확하게 지구와 맞물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우연이라고 말할 뿐이다.
그런데 어느 한 교수가 이번 소행성 궤도변경은 인간이 자행한 것일 수 있다고 말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인터넷 괴담 수준의 황당무계한 이야기 같아, 그 교수의 말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런데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들을 조합해보니, 결코 쉽게 무시할 내용이 아니었다.
나사는 2010년부터 소행성 궤도변경 임무(ARM, Asteroid Redirect Mission)를 수행해왔다. 그 목적은 크게는 자원채굴과 소행성 충돌로부터 지구를 방위하는 것이다.
소행성은 철, 니켈, 희토류 등 희귀광물이 풍부해, 그 경제적 가치가 상상을 초월한다.
나사가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 벨트에 위치한 소행성 ‘16프시케(Psyche)’에 탐사선을 보냈는데, 그 가치를 무려 1,000경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수년 전부터 여러 소행성에 탐사선을 보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은 이미 2005년 이토가와 소행성에 탐사선 ‘하야부사 1호’를 보내, 세계 최초로 소행성의 미립자 채집에 성공했다.
이어 2014년에 발사한 ‘하야부사 2호’는 지구에서 3억 4,000만km 떨어진 소행성 ‘류구’에서 토양을 채집해 지구로 보낸 뒤 아직도 탐사 중이다.
이에 뒤지지 않으려 대한민국도 2021년에 지금 지구로 돌진하고 있는 소행성 아포피스에 대한 탐사계획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어느 순간 흐지부지돼버렸다.
‘어떻게 소행성의 궤도를 변경한다는 걸까?’
동주는 끝없이 솟아나는 지적 호기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검색에 열을 올렸다.
지름 10m 이하의 작은 소행성의 경우는 궤도를 변경하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우주선을 이용해 포획까지 할 수 있다.
우주선을 소행성과 똑같은 속도로 맞추면, 마치 우주 공간에 함께 정지한 것과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때 우주선 앞쪽에 설치한 포획망을 아나콘다가 먹이를 먹기 위해 아가리를 크게 벌리는 것처럼 펼치고, 그 안으로 소행성이 들어오도록 한다.
이때 소행성이 상당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어, 포획망 안에 있는 얇고 긴 털을 이용해 감속시키고, 회전이 멈출 때 외골격을 오므려 포획한다.
포획이 어려운 큰 소행성의 경우는 중력견인(gravity tractor)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궤도를 변경한다.
우주선이 단순히 소행성 주위를 공전하는 것만으로도 소행성과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견인 효과로 궤도가 미세하게 바뀐다.
소행성의 궤도를 좀 더 크게 바꾸려면 소행성에서 암석을 채집해, 우주선의 무게를 늘려 공전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우주선의 질량이 크면 클수록 궤도 변화 역시 커지는 셈이다.
‘과연 이 정도로 소행성의 궤도를 변경하는 게 가능할까?’
동주는 이해할 수 없어, 여러 과학 논문과 뉴스들을 샅샅이 살폈다.
실제 탐사선이 수행한 건 아니지만, 저명한 과학자들이 검증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는 찾을 수 있었다.
지름 540m인 이토가와 소행성 바로 옆에서, 지름 3m짜리 암석을 든 우주선을 공전시켰다. 60일이 지나자, 미세한 중력의 영향이 쌓여 거대한 소행성의 궤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단지 작은 암석을 든 우주선의 공전만으로도 거대 소행성의 궤도를 바꿀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저 교수의 말처럼 누군가 계획적으로 아포피스의 궤도를 바꾼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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