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충돌 확률
아포칼립스 D-12, 2029. 4. 2. 오후, 한빛 대학 화학공학과 교수실.
오 교수는 날카로운 동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한 표정이다. 하지만 마치 이미 예상 질문에 들어 있었던 내용이라는 듯 자신 있게 대답했다.
“맞아.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고려해볼 내용이지. 현재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무인 우주선으로 X-37B가 있어. 사람이 탑승하지 않으니까 우주에서 700일 이상 머물기도 하지.”
“와!”
“그런데 말이야, 이런 무인 우주선이라는 건 뉴스 검색해보면 나오는 것처럼 고장이 잦아. 유인 우주선은 인간이 고장 부분을 수리할 수라도 있는데, 무인 우주선은 약간의 고장이라도 발생하면 수리가 곤란한 문제가 있지. 게다가 무인 우주선은 실시간 제어가 곤란해.”
“아, 그렇군요.”
“예를 들어 화성탐사선(Curiosity 호나 Perseverance 호)이 대표적인 무인 우주선이야. 화성궤도에 진입한 뒤 지표면에 로버(Rover, 행성 표면을 탐사하는 로봇)를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게 가장 중요해.
그런데 이건 지구에서 출발할 때 만들어 둔 프로그램(자동 제어 시스템)에 따라 진행되거든. 왜냐하면, 거리 때문에 지구 관제소에서 화성탐사선과 교신하는 데 20분이나 걸리니까, 도저히 실시간 제어를 할 수 없어서야.”
“음······.”
“결국, 무인 우주선으로 아포피스를 타격하려면, 지구에서 출발할 때 미리 궤도나 타격지점을 모두 계산해 자동 제어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거지. 그런데 불과 1주일 만에 그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
“아!”
동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표정이다.
“그리고, 동주가 말한 것처럼 가미카제 방식이 어쩌면 정확도를 높일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그것도 영화에서는 쉽게 표현하지만, 말 그대로 영화니까 그럴 뿐이야.”
“······.”
“비행기 동체로 항공모함이나 구축함을 직접 타격하는 건 보통 숙련된 비행사가 아니면 곤란해.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사용한 ‘가미카제’도 전투기 수백 대를 투입해, 고작 함선 몇 척 파괴하는 정도에 불과했거든. 물론 미군의 포격이나 전투기 공격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런데 시속 10만km 속도로 움직이는 아포피스를 우주선 동체로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조종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동주는 주인공이 우주선으로 자폭해 소행성을 파괴한 영화처럼,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오 교수의 말을 들어 보니 그 가능성 또한 매우 희박해 보였다.
“자! 마지막으로, 그래 다 양보해서 운 좋게 핵미사일 몇 개가 목표를 타격했다고 치자. 그럼 정말 아포피스를 파괴하거나, 궤도를 바꿀 수 있을까?”
“아무리 덩치가 큰 아포피스라도 박살 나지 않을까요?”
상진은 핵미사일이 도시 하나는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가공한 위력을 가지고 있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하, 과연 그럴까?”
“······.”
“미 항공우주국(NASA) 산하에 PDCO(Planetary Defense Coordination Office)라는 기관이 있어.
아포피스 같은 소행성이나 혜성으로부터 지구를 지킬 목적으로, 2013년부터 운용돼왔지. 여기에서 지금까지 여러 소행성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 토양이나 암석을 채취했는데 말이야.
그때마다 확인한 건 소행성이 매우 단단한 지질구조라는 거지. 사실상 철광석 덩어리나 다름없다는 거야.”
“아······!”
“그리고 중요한 건 여러 소행성에 탐사선을 보냈지만, 하필 아포피스에 탐사선을 보냈다는 정보는 아무리 찾아도 없어. 우리도 아포피스 탐사 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데, 결국 못 보냈거든.
그렇다면 아포피스의 지질구조를 알지 못하고 요격한다는 건데······. 다른 소행성처럼 아포피스 역시 단단한 암석 구조일 가능성이 커.”
“······.”
“게다가 이 소행성은 지름이 11km니까, 여의도의 5배 정도 되는 크기야. 무게는 200억t에 이르니까 그야말로 슈퍼급에 해당하지.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 충돌 알지?”
“네, 들어봤습니다.”
동주는 워낙 유명한 가설이라,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멕시코 유카탄반도 북쪽 해안에 있는, 지름이 180km, 깊이 30km에 이르는 칙술루브 크레이터(Chicxulub crater)가 그 증거야. 그때 충돌한 소행성이 아포피스와 거의 비슷한 규모지.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크기의 소행성을 파괴하거나 궤도를 변경하기 위해, 핵탄두가 몇 개나 필요할지, 또 어느 부위를 타격해야 할지, 누구도 제대로 연구한 적이 없어.”
염려했던 부분이 모두 과학적으로 뒷받침되자, 맥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내심 틀리기를 바라고, 궤도라도 수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속 시원하게 말할게, 아포피스 본체나 적어도 그 파편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은 80% 이상이라고 봐.
대한민국은 아포피스 예상 충돌지점인 오키나와 남동쪽 3,500km 지점과 직선거리로 5,000km가량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그래서 소행성 충돌 후 1시간 이내에 전 국토가 초토화될 게 분명해.”
“하······!”
“그러니까, 너희도 살고 싶으면 가장 멀리, 그러니까 서유럽이나 브라질 동부 쪽으로 가라고. 그게 유일한 살길이야.”
오 교수의 단호한 조언엔 아포피스에 대한 두려움이 깊이 배여 있다.
“그럼, 교수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상진은 오 교수가 자신의 살길을 찾았는지 궁금했다.
“하······!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유학 중인 제자가 있어. 그쪽으로 가보려고 비행기표를 구하고 있는데, 13일까지 모두 매진이야.
어떻게 암표라도 구해보려 했는데, 여행사에서 단체로 확보해놓은 티켓을 한 장당 1억 원에, 그것도 현금으로 달라고 하는 거야. 도둑놈들!
여러 곳에 부탁해두었는데 오늘까지만 기다려 보고, 만약 안 되면 1억 원을 주고라도 사야지.”
아포피스의 비극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는 길은 대한민국에서 최대한 멀리 떠나는 방법을 찾는 거다. 그 목숨 값은 이 시각 1인당 1억 원인 셈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1억 원을 주고서라도 표를 구하려 혈안이다.
지금은 소행성을 파괴할 수 있다는 기대가 살아 있어 이 정도지만, 만약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10억 원을 주고도 살 수 없을 것이다.
현재 가까운 동남아시아나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간들 이곳에 머무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에, 여분의 표가 있는 거다.
동주와 상진은 자신이 모아놓은 돈을 떠올려보았다.
상진은 도박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만큼 씀씀이가 헤퍼 통장 잔고는 고작 5천만 원 남짓이었다.
동주도 벌써 5년째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연달아 쓰러지신 바람에 병원비 지출이 많아 모아놓은 돈이 거의 없었다.
이들은 오 교수와 달리 해외로 뜰 여력이 없었기에, 바로 이곳에서 악착같이 생존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교수님! 저희가 오늘 방문한 건 교수님께서 연구한 발포 플라스틱이 궁금해서이기도 한데요. 혹시 그걸 이용하면 좀 더 안전한 벙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동주는 진지한 눈빛으로 오 교수를 바라보았다.
“하하! 자네들 나에 관해서 연구를 많이 하고 왔군.”
“이 친구가 워낙 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이라서요.”
상진은 동주를 가리키며 너스레를 떨었다.
“발포 플라스틱은 내진(耐震)이나 면진(免震) 설계할 때, 충격을 흡수하는 댐퍼(Damper)에 사용되는 재료라고 보면 돼.
현재 많은 구조물에 유압(油壓)식 댐퍼가 사용되고 있는데, 진도 9 정도 되는 지진은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지.
그래서 유압식보다 충격 흡수에 강점이 있는 구조체를 연구하다, 발포 플라스틱을 개발한 거야.”
“네······!”
“예컨대, 지하층이 없는 단층집을 지을 때, 보통 바닥 슬래브 두께가 30cm 정도 돼.
그런데 대형 지진이 발생하면 이 바닥층은 쉽게 균열이 생기거나 비틀어지지. 그 때문에 기둥이나 벽까지 붕괴될 수 있어.
대신에, 바닥에 10cm 콘크리트를 깔고, 그 위에 10cm 발포 플라스틱을 깐 뒤 다시 그 위에 10cm 콘크리트를 깔면 높이는 30cm로 같아. 하지만 중간에 발포 플라스틱이 들어가서, 이것이 댐퍼 기능을 하게 돼.”
“아······!”
“이 경우가 가장 안전한 면진(免震) 설계야. 진도 10 정도의 지진이 발생해도 지면의 충격을 발포 플라스틱이 흡수해, 지상 건물에는 충격이 미미하게 전달되지.
쉽게 말하면 주택이 공중에 뜬 상태와 같은 거야. 바닥 면이 지진 때문에 크게 요동쳐도, 건물에는 진동이 미치지 않는 거지.”
동주와 상진은 전문 지식이 필요한 내진설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오 교수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는 발포 플라스틱의 쓰임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교수님, 그럼 벙커 만들 때 발포 플라스틱만 사용하면, 이번 소행성 충돌 때 발생하는 지진도 견뎌낼 수 있다는 말인가요?”
상진은 오 교수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기울였다.
“물론 이론적으로야, 벙커의 콘크리트 구조체를 ‘콘크리트-발포 플라스틱-콘크리트’와 같이 만들고 발포 플라스틱의 두께를 충분히 확보하면, 진도 10 지진에도 견딜 수 있지.
그런데 문제는, 지금 그런 벙커를 만들만한 시간이 없다는 거고, 아직 벙커 같은 구조물에 발포 플라스틱을 적용해 본 경험이 없다는 거야.”
오 교수는 자신의 비관적인 이야기 때문에, 동주와 상진이 낙담할 것 같아 걱정됐다.
그러나 오 교수의 설명을 곰곰이 듣고 있던 동주는 오히려 자신의 아이디어가 충분히 실현 가능하고, 어쩌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교수님! 만약 고지대에 있는 벙커 안에 컨테이너를 가득 넣고, 그 컨테이너 더미와 벙커 구조체 사이에 발포 플라스틱을 가득 채워 넣으면 어떨까요?
내진 공법이 적용된 안전한 생존 벙커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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