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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박살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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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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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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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그저 바라만 봐주세요

DUMMY

아포칼립스​ D-12, 2029. 4. 2. 늦은 밤.


“딩동!”


동주가 현관문을 열어젖히니, 그 앞에는 경찰 제복을 입은 은수가 서 있다. 이곳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은수였는데, 이별 때문인지 어색한 표정이다.


*


은수는 한빛 대학 로스쿨 3학년, 동주는 변호사 3년 차였을 때다. 변호사 실무연수 겸 현직 변호사로부터 조언을 듣는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이 둘은 처음 만났다. 은수는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편이었다.


법과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은퇴한 아버지는 그런 은수가 정의로운 검사가 되길 바랐다. 마음 약한 은수는 거절하지 못하고 아버지 뜻대로 로스쿨에 입학했고, 이후 검사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하지만, 두려웠다. 범죄자를 만나 직접 조사하는 것도, 수사를 지휘하는 것도······. 그렇다고 변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로스쿨 졸업이 가까워져 갈수록 두려움은 커졌고, 그만큼 절망도 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과 어지러움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뇌 MRI, PET-CT 검사까지 다 해보았지만, 이상이 없었다. 결국, 정신과 검사를 받고 나서야, 자율신경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생기는 심각한 불안장애 증상임을 알게 됐다.


그 때문에 휴학을 고민하던 찰나에 동주를 만났고, 동주는 은수에게 약으로 얻을 수 있는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그 이상의 기쁨을 주었다.


멘토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는 날이다.


은수는 아침부터 신경안정제가 들어간 불안장애약을 먹고 와서, 나른한 상태였다. 변호사실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큰 키에 군살 없이 매끈한 몸매가 드러나는 슬림핏 양복을 입은 동주가 서글서글한 눈빛으로 반갑게 맞이했다.


“들어와요, 은수씨! 여기 앉으세요.”


동주는 은수가 앉을 의자를 챙겨주면서, 금방 그녀의 불안한 기색을 눈치챘다.


“멘티 소개서는 제가 잘 읽어봤습니다. 성적이 대단하던데요. 제가 오히려 배워야 하는 게 아닌지 몰라요? 하하!”


“아, 아닙니다. 제가 실은 부족한 게 많아서, 많은 도,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혹시 뭐가 부족하다는 걸까요?”


“그것이, ······제가 사람 앞에 나서거나,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변호사 생활을 경험하면서, 혹시 이런 점이 개선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음······, 알겠어요. 바로 오늘 프로그램 시작해볼까요!”


“네.”


동주는 오늘 은수에게 의뢰인을 대할 때 꼭 필요한 덕목인 ‘공감’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자! 제 얼굴을 봐보세요. 제가 우리 송 변에게 찾아온 의뢰인이에요. 당연히 힘든 일이 있어서 찾아왔겠죠?”


“네······.”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5분 정도는 의뢰인과 눈으로 대화하면서, 공명(共鳴)하는 거예요. 내가 마치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알겠죠?”


“네.”


“자, 시작합니다.”


상황극에서 동주는 의뢰인 역할을 맡고, 은수는 상담을 진행하는 변호사 역할이다.


“송 변호사님, 저희 아내가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아요.

요즘 들어 직장에서 일이 있다며 자정이 돼서야 들어오질 않나, 주말에도 종종 모임에서 여행 간다며 외박 하곤 하는데요.”


동주는 최근 들어온 이혼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주저리주저리 계속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은수는 이런 동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스스로 의아했다. 남자의 얼굴을 이렇게 오래 쳐다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대학 때 캠퍼스 커플로 동거까지 한 남자가 있었다. 둘이서 유럽 배낭여행도 다녀왔을 정도이니, 은수는 철석같이 그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대학 4학년 무렵, 남자는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며 이별을 통보했다. 은수의 마지막 대학 생활은 실연의 아픔으로 텅 빈 공허함, 그 자체였다.


은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희미한 실루엣으로만 그려질 뿐이다.


‘내가 그 남자의 얼굴을 이렇게 오래 지켜본 적이 있었나?’


동주는 마치 자기 아내가 바람이나 난 것처럼 연기에 취해, 망설임 없는 폭주를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은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예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송 변호사님! 이런 상태라면 이혼소송을 해야겠지요?”


“음······, 선생님이 마음먹기 나름이죠. 아내의 외도는 친구분이 목격한 것도 있고, 단서가 될 문자 메시지도 있으니, 증거는 어느 정도 확보한 셈이에요. 만약, 이혼소송 한다면, 승소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잘했어요, 은수씨!”


동주는 은수가 의뢰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는 것에 흡족했지만, 답변내용에 대해서는 다소 어색하고 딱딱한 느낌을 받았다.


“힘들지만,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그게 의뢰인과 교감하는 지름길이에요. 너무 빤히 쳐다봐서, 부끄럽기까지 하던데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아니에요, 농담인 걸요, 뭐. 다만. 조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아왔을 때 바라는 건, 궁극적으론 승소해달라는 거겠죠?”


“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주고, 자기편이 돼 달라는 간절함이 숨어 있어요. 그래서 내 변호사가 날 이해하고, 내 편이 되어 주는 걸 느끼면, 너무도 기뻐하죠.

저는 그래서 의뢰인과 똑같은 입장이 돼서 함께 욕도 하고, 원망도 하고, 울기도 한답니다. 그럼, 금방 의뢰인과 친해지게 되죠.”


“아······, 그렇군요! 제가 너무 딱딱하게 군 것 같아요.”


“조금, 아주 조금 그런 면이 있었어요. 다시 한번 해볼래요?”


“음······, 네!”


은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아,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하필 그것도 친구와 바람이 나다니! 많이 고통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저 같으면 이미 쫓아가서 주먹다짐이라도 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참으셨어요?”


은수는 마치 자기 애인이 바람이라도 난 것처럼 흥분해서 말했다.


“저도 몇 번이고 찾아가, 둘이 있는 곳에서 온갖 창피를 다 주고 싶었죠. 그런데 애들 엄마이고 살아온 날도 있는데, 차마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아······, 정말 대단하세요! 전 절대 그렇게 못 할 것 같은데······.”


은수가 종전보다 훨씬 의뢰인의 상황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와! 좋아요, 대단한데! 그렇게만 하면 돼요. 내가 의뢰인이면 바로 계약하고, 성공보수도 후하게 약정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변호사로서 자질이 충분하지, 하하하!”


은수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뿌듯한 자신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해맑게 웃는 동주의 얼굴을 보며, ‘참 맑고 깨끗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


“잘 왔어, 들어와.”


은수는 이 집에 처음 온 사람처럼 주변을 둘레둘레 쳐다보며, 낯선 발걸음으로 거실을 향했다.


“왜, 뭐라도 변한 것 같아?”


“아니야, 조금 낯설게 느껴져서 그런가 봐.”


“그럴 수 있지. 앉아, 마실 거라도 줄까?”


“아니야, 사무실에서 많이 마셔서 괜찮아.”


은수가 거실과 주방 사이에 있는 식탁 의자에 앉자, 동주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은수가 멍하니 식탁을 바라보고 있다.

예전에는 식탁 유리 밑에 동주와 은수가 제주도와 내장산에서 함께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그런데 동주는 은수가 올 것이기에, 미리 그 사진들을 빼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다.


“실은 네 도움이 필요해서 그래.”


“무슨 도움?”


“넌 행성파괴나 궤도수정이 가능할 것 같아?”


“모르겠어. 불안하긴 한데, TV에서는 핵미사일로 요격한다고 하고, 성공 가능성도 크다고 해서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은수의 목소리나 눈빛에선 알 수 없는 불안과 막막함이 느껴졌다.


“전문가하고 이야기해봤는데, 소행성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거래. 소행성을 파괴한다고 하더라도, 그 파편의 크기가 커서, 거의 핵미사일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꼴이라는 거야.”


“진짜?”


“응.”


“······.”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어. 믿고 기다리는 건, 나 자신에게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서······.”


“나도 실은 답답해. 직원들도 정부 발표를 의심하는 눈치야. 불만도 많고, 계엄군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신세라며, 난리지.”


“그래서 말인데······. 은수야! 우리가 지리산 가다 보면 있는, 정령치 터널을 벙커로 개조해볼 생각이거든.

그런데 그러려면 언젠가 터널로 연결되는 도로를 봉쇄해야 해. 네가 지난번에 남원경찰서에서 근무했잖아, 거기에서 도움받을 사람 없을까?”


은수는 로스쿨을 좋은 성적으로 마쳤지만, 검사임용에는 떨어지고 말았다. 성적은 충분했지만, 면접을 망치고 만 것이다.


이후 아버지의 성화로 경찰 특별임용신청을 했고, 2년 전 일선 부서에 경감으로 발령이 났다. 처음 부임지가 남원경찰서였고, 현재는 광주 북부경찰서에서 형사과 수사팀장을 맡고 있다.


“사람이 있기는 해. 오빠도 알 거야. 그때 회식 자리에서 오빠랑 나를 짓궂게 놀렸던 그 선배, 최창민이 거기 경비교통과장이야.”


*


동주는 은수가 남원경찰서에 부임한 직후, 간부들 회식 자리에 불려간 적이 있다.


은수가 워낙 사교성이 없어, 남원서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일에 재미를 느끼고, 다른 직원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때 은수를 보살펴주는 한빛 대학 로스쿨 선배가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게 바로 최창민 경정이다.


동주가 회식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술을 권한 것도 그였다.


“우리 송 팀장 남자친구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는데, 정말 훈남이네······!”


“아휴, 과찬이십니다. 우리 은수가 재밌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제 어깨가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요즘에는 바가지 긁는 일이 줄어들더라고요.”


“하하하! 벌써 신혼 분위기인데, 자자, 한 잔 받아요.”


창민은 동주에게 잔 가득 소주를 따라 주었다. 그러자 동주는 바로 잔을 비우고는 그에게도 술을 권했다.


“술도 아주 잘하네!”


“변호사로 살아남으려면, 술은 기본이죠.”


“맞아, 맞아! 우리 2차로 노래방에 가서, 송 팀장 커플 노래 한 번 들어봅시다.”


완전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최창민은 하나부터 열까지 이동주의 실체를 확인해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계속해서 술을 권하면서 원샷을 요구하고, 다른 직원들도 동주에게 술을 권하도록 눈치를 주었다. 동주는 그날 거의 초주검이 될 정도로 술독에 빠지고 말았다.


최창민은 노래방에서도 수줍어하는 은수에게 계속 노래를 권했고, 은수가 뺄 때마다, 벌주라며 동주에게 술을 권했다. 동주는 작심하고 덤비는 최창민이 싫었지만, 은수의 직장생활이 피곤해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는 맥주 한잔을 재빨리 들이키고, 은수의 손을 잡고서 노래방 무대 위에 올랐다.


벽에 붙어 있는 노래 목록 중에서, 종종 은수와 함께 불렀던 노래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재빨리 노래방 버튼을 눌러 선곡을 마치자, 전주가 흘러나온다.


동주는 최창민이 계속 짓궂게 굴자,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수를 바라보는 최창민의 눈빛이 영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주는 은수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노래 가사가 너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동주는 노래를 부르는 내내 은수의 얼굴에 눈을 떼지 않았다.


♬♬♬

내 눈을 바라봐요.

그저 바라만 보아도

알 수 있잖아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무 말 말아요.

그저 바라만 봐주세요.

오래, 오래

그 사랑의 눈빛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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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단서 21.11.25 279 9 11쪽
28 28화. 실종 (2) 21.11.24 296 11 12쪽
27 27화. 실종 (1) +6 21.11.23 320 9 10쪽
26 26화. 연락 두절 21.11.22 310 10 9쪽
25 25화. 휴게소 계약 21.11.22 313 10 14쪽
24 24화. 파란 하늘 +2 21.11.21 320 12 11쪽
23 23화. 수전해 시스템 +6 21.11.20 341 12 11쪽
22 22화. 밀당 +2 21.11.19 325 11 11쪽
21 21화. 뇌물 21.11.19 340 11 14쪽
20 20화. 화해 21.11.18 360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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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생존 티켓 21.11.11 438 16 12쪽
12 12화. 서강파 21.11.11 461 14 13쪽
11 11화. 발대식 준비 21.11.10 468 13 12쪽
10 10화. 정령치 터널 +2 21.11.09 494 13 11쪽
9 9화. 충돌 확률 21.11.08 548 14 11쪽
8 8화. 우주선 +2 21.11.07 540 13 13쪽
7 7화. 자금줄 21.11.05 548 14 12쪽
6 6화. 첫 발걸음 21.11.04 607 16 11쪽
5 5화. 후회 21.11.03 639 15 9쪽
4 4화. 죽음의 화신 아포피스 21.11.02 698 19 12쪽
3 3화. 희망의 불씨 +2 21.11.01 756 16 13쪽
2 2화. 이별의 끝을 붙잡고 +6 21.11.01 811 22 11쪽
1 1화. 멸망의 서곡(序曲) +5 21.11.01 1,033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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