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노아의 방주
아포칼립스 D-11, 2029. 4. 3. 오전, 한빛 대학 화학공학과 세미나실.
“정말 서유럽이나 러시아 최북단으로 피하면 살 수 있을까요?”
오 교수가 노골적으로 물었다. 모두 눈치만 살필 뿐 제대로 답변할 수 없었다.
“방송에서 봤듯이 아포피스가 파괴되지 않고 정면충돌하면, 공룡이 멸종한 상황과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 중 75% 이상이 전멸하게 되죠.”
“하아······!”
“여기에서 생존하는 25% 생명체는 물이나 땅속에서 생활할 수 있는 양서류와 파충류, 어류, 곤충, 고양이보다 작은 일부 포유류 정도인데요. 안타깝게도 인간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오 교수의 어조는 시종일관 차분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때 김수연 변호사가 손을 든다.
“공룡이 멸종한 건 소행성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데요. 지금은 과학기술을 동원할 수 있어서 상황이 다르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죠. 그런데 운 좋게 핵미사일 요격이 성공해 아포피스가 파괴된다고 하더라도, 지구에서 너무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 문제입니다.
파괴된 행성잔해가 어느 정도 규모로 지구에 떨어질지,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예상하기 어려운데요. 그래도 과학자들의 여러 시뮬레이션 자료를 보면, 적어도 핵탄두 천여 발이 떨어지는 정도의 파괴력은 충분할 겁니다.”
“혹시 파괴가 안 된다면, 그래도 궤도는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장재건 사장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자! 여기 유럽우주국(ESA)에서 어제까지 확인한 시뮬레이션 자료입니다.”
오 교수가 지구와 아포피스의 이동 경로가 표시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나사가 발표한 대로 4월 7일 또는 8일에 지구에서 핵미사일을 실은 우주선이 출발한다고 가정합시다. 이 우주선이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이동해, 아포피스를 요격할 수 있는 때가 소행성이 지구에 도착하기 30시간 전쯤이라고 나옵니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우주선 10대가 아포피스 앞에 서서, 핵미사일로 요격하는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미사일이 발사되고 1시간 뒤, 발사된 10개의 핵미사일 중 2개만 아포피스를 충격하는 장면이 비친다.
“이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핵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적중할 확률은 20%가량입니다. 20기의 핵미사일을 발사한다면 4개가량이 맞겠죠.
그런데 핵미사일 4개가 여러 곳으로 분산돼 때리기 때문에, 즉 한 곳을 집중타격하지 못해 소행성에 폭파 흔적만 남길 뿐, 파괴하거나 궤도를 변경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오 교수는 아포피스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른 소행성처럼 단단한 암석 구조라 파괴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여기저기에서 한숨 소리가 흘러나온다.
“피해를 줄이려면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기 직전에, 지상에서 다시 핵미사일을 쏘는 수밖에 없는데요. 이때 운이 따라준다면 아포피스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질 수 있습니다.”
“······!”
“그럼 이 경우 예상했던 충돌지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파편들이 떨어지겠죠. 소행성의 운행속도와 지구와의 남은 거리를 계산해볼 때, 그 파편들 역시 대지진과 해일을 일으키기 충분합니다.”
모두 오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넋 놓고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느라, 어느새 꽤 긴 정적이 흐르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저는 어제 오 교수님과 협의하면서, 먼저 이 내용을 들어 알고 있었는데요. 오늘 처음 접한 여러분은 충격이 크실 겁니다. 오 교수님! 솔직히 소행성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어느 정도입니까?”
동주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운이 따라준다면 아포피스를 여러 조각으로 쪼갤 수 있겠지만, 그 파편들이 떨어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채 20%도 안 된다고 봅니다.”
순간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모두 넋이 빠진 모습이다.
“나사나 코드원 그리고 교수님이 보여주신 미국 방송에서도, 아포피스를 파괴하거나 궤도 변경을 자신하던데요. 뭔가 믿을만한 구석이 있으니까, 그러지 않았을까요?”
천무용은 오 교수의 말을 다 믿을 수 없다는 뉘앙스로 질문을 던졌다.
“저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오 교수는 착잡한 심경 때문인지, 목이 메어 말을 쉽게 이어가지 못했다.
“여러분이 지도자라면 소행성 충돌을 막을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소요와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그걸 이용해 어떻게든 지금의 질서를 유지하고 싶겠죠.”
오 교수가 프레젠테이션 자료 맨 아래 영상을 클릭했다.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우주선 발사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발사대에 장착된 날렵한 우주선의 모습이 보인다.
“저 우주선은 민간이 운용하는 ‘블루 드래건’인데요, 우주여행용입니다. 우주선 맨 앞쪽에 둥그런 돔 형태의 튀어나온 부분 보이죠?
우주로 나가면 저 돔 부분이 열리고, 그 안에 다시 작은 돔 형태의 여러 투명유리가 있어 여행객이 그곳에서 우주를 관람할 수 있는 겁니다.”
“아······!”
“자세히 보십시오. 우주선 안으로 무엇이 들어가는지요. 화물이 담긴 큰 플라스틱 상자가 끝없이 들어가고 있죠? 이 우주선 크기를 볼 때, 내부에 핵미사일과 발사체를 싣게 되면 남은 공간이 얼마나 될까요?”
‘블루 드래건’은 높이가 8m, 몸통 지름이 4m다. 우주인이 탑승하는 캡슐의 크기는 9.3㎥, 화물칸의 크기는 37㎥다.
화물칸 37㎥ 공간은 예컨대, 가로 4m, 세로 4m, 높이 2.3m 규모의 조그만 원룸(약 5평)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저렇게 많은 화물이 들어가는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후······!”
“하······!”
긴 한숨과 탄식이 들려온다.
“저 정도 양이 들어간다는 건, 우주선 안에 핵미사일은 없다는 겁니다.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저 우주선은 행성요격용이 아니라, 지구 탈출용 우주선입니다.”
“다른 우주선에는 핵미사일이 실리지 않았을까요?”
천무용이 마지막 희망의 끈만은 놓치고 싶지 않은 듯 필사적으로 물었다.
“물론 몇몇 우주선에는 실제로 핵미사일이 실리겠지요. 그런데 현재 운용되고 있는 우주선은 모두 저 ‘블루 드래건’처럼 우주여행용이지, 절대 행성요격용이 아닙니다. 며칠 만에 과연 행성요격용으로 개조할 수 있을까요?”
“······.”
“아시다시피 지구 대기권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고열이나 압력 때문에, 우주선 외부에 핵미사일을 장착할 순 없습니다.
결국, 우주선 화물칸에 핵미사일을 싣고 가야 하는데요. 우주에서 화물칸을 개방한 다음 우주선 밖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기술이 이론 연구만 되었지, 실제로 시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
“작은 미사일도 아닌 핵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그 발사 진동과 반발력을 우주선이 견딜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죠.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핵미사일을 발사해도, 정확히 맞출 수 있는 기술이 있느냐입니다. 아까 보여드린 시뮬레이션은 지구상에서 발휘하는 핵미사일의 정확도를 전제로 한 겁니다.”
여기저기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은수는 어젯밤 동주로부터 같은 취지의 말을 들었지만, 사실 반신반의했었다. 그가 어머님 돌아가시고, 이별 통보까지 받아 너무 감성적으로 변한 건 아닌지, 그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래서 사실, 동주를 설득해 무리한 일은 벌이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어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그러나 오 교수의 설명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저 영상을 본 은수는 더는 의심할 수 없었다.
장재건 사장도 돈이 된다고 해서 일은 시작했지만, 사실 찜찜한 구석이 많았다. 여러 건설현장 관리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에서, 직접 설계하고 시공까지 맡아달라는 동주의 요청은 거절하기 어려워 받아들였지만 큰 부담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변명거리만 생기면,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셈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일은 자신과 가족을 살리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분위기만 살피다 몰래 빠져나오려 했던 천무용 역시 이미 1시간이 훌쩍 지난 이 시각까지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10년 이상 범죄자를 잡아넣으려 변변히 쉬지도 못하고, 늘 야근에 고된 일을 자청해왔던 그의 삶 속 하루하루가 주마등 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최후가 있는 걸 알았다면, 그래도 내가 그렇게 살았을까?
갑자기 옆에 있는 상진이 부러웠다. 몇 달 일해서 번 돈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독신으로 자유연애, 좋아하는 도박 원 없이 하며 살아온 녀석 아닌가!
형이나 가족의 눈치도, 세상의 이목이나 손가락질 그 어느 하나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의 삶을 선택해왔던 동생이 이제는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김수연은 아버지 김 대표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빠! 나 죽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공부만 해오고, 연애도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단 말이야.”
“수연아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가 노력하면 그래도 희망이 있을 거야.”
동주는 참석자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핀 후, 다시 회의를 진행해 나갔다.
“정부에서는 이미 고위공무원이나 기관장 가족에 대해서 은밀하게 대피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 보셨듯이, 지금 많은 사람이 해외로 나가려고 필사적으로 비행기표를 구하고 있죠. 대규모 해일에 대비해서 고지대에 있는 벙커를 확보하려는 시도도 포착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넋 놓고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움직이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없을 겁니다.”
동주의 힘 있는 말에는 비장함이 배어 있었다.
“어떻습니까? 정부나 코드원을 믿고 4월 13일까지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함께 생존방법을 찾아보시겠습니까?”
“이 변호사가 워낙 똑똑한 친구라, 뭔가 해낼 것 같아서 함께 시작했는데요. 이제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계획에 제가 가진 모든 걸 걸겠습니다.”
김정현 대표가 가장 먼저 이 계획에 찬성하고, 힘을 실어주었다.
“물론이죠. 저희도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저도 함께 추진하겠습니다.”
“저도요.”
“동참하겠습니다.”
천무용도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여기 모이신 모든 분이 동참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쁨도 잠시, 동주는 결연한 각오로 말을 잇는다.
“이제 우리는 한배를 탄 공동 운명체입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 아시죠?”
“네.”
“구약 성서 이외에도 여러 민족의 신화나 설화에 과거 대홍수가 있었다는 내용이 전해집니다.
최근 인도양에서 발견된 대규모 크레이터(crater)를 통해, 오래전 아포피스 같은 소행성이나 혜성이 인도양에 떨어진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 때문에 거대한 해일과 기후변화가 일어나 실제로 북반구에 대홍수가 일어난 거죠.”
“아······!”
“우리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이 생존 벙커를 준비했는데요. 부디 노아의 방주가 아닌,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하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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