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밀당
아포칼립스 D-11, 2029. 4. 3. 오후.
검찰 수사팀이 광주 동구 학동에 있는 조선호텔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힘 좀 쓰는 검찰 수사관 5명이 7층에 진입하려 한다. 그때 깍두기 머리를 한 조직원 3명이 이들을 막아섰다. 그러나 완력으로 쉽게 밀쳐내며 길을 텄다.
그 뒤로 검찰 수사관 10명가량이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올라왔다. 압수 물품을 담을 상자들이 손수레에 실려 속속 들어온다. 이들은 긴 복도를 지나 곧장 서강파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조선유통’, ‘조선물류’라고 적힌 큰 간판이 문 양쪽에 세로로 세워져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조직원 네 명이 문 앞을 막고 서서, 수사관들을 강하게 막아선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겁니까?”
뒤따라온 천무용은 압수, 수색영장을 제시한다.
“광주지검 천무용 검사인데요.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습니다. 이곳 책임자를 불러주시죠. 계속 막아서면 공무집행방해죄로, 바로 입건하도록 하겠습니다.”
천무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강대주가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조직원들을 뒤로 밀고, 맨 앞에 나선다.
“제가 여기 조선유통의 대표이사인 강대주인데요. 무슨 일로 이렇게 소란들이시죠?”
옆에 있던 박 계장이 앞으로 나섰다.
“저희도 조선유통의 대표자쯤은 확인하고 왔습니다. 자! 강대주씨, 신분증 좀 제시해주시죠.”
무표정의 강대주는 양복 상의에서 지갑을 꺼낸다. 그곳에서 주민등록증을 빼, 놀리듯 박 계장이 아닌 천무용에게 건넸다.
“말 많이 들었습니다, 천 검사님! 깐깐하다고 소문이 자자 하시던데······. 허허, 너무 뻣뻣하면 부러지기 마련인데요!”
천무용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시비를 거는 강대주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말없이 주민등록증을 살핀 후 바로 돌려주었다. 그리곤 서둘러 영장 범죄사실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동성파가 벌인 작두파 진영에서의 조직폭력 범죄, 작두파 보스 진상두 실종사건, 서강파 전 보스 전두만 실종사건. 자! 이 사건들과 관련해서 압수수색을 실시합니다. 압수수색 장소는 서강파 사무실로 추정되는 조선유통, 조선물류 사무실 전체입니다.”
이때 강대주가 끼어든다.
“아니, 우리와 관계도 없는 다른 사건들을 왜 거론하는 겁니까? 아무 증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이렇게 압수수색 해도 되는 겁니까?”
“판사가 아무 이유도 없이 영장을 발부했겠습니까? 당연히 증거들도 다 살펴봤겠죠.”
“아니 무슨 증거? 말로만 하지 말고, 증거를 대봐요.”
강대주는 계속 삐딱하게 굴며, 천무용의 심기를 건드린다. 천 검사는 준비해온 압수수색 영장 사본을 강대주에게 건넸다.
“자! 천천히 봐보세요. 범죄사실 고지하고, 영장 제시까지 마쳤습니다.”
“······.”
“조선유통, 조선물류 대표자께서는 직접 참여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요.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도 있습니다.
만일 변호인의 참여를 원하신다면, 변호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보안 문제 때문에 미리 통지해드리지 못한 점은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변호인 참여를 요청하시겠습니까?”
“지금 변호사를 부르면, 언제 오겠습니까? 저희야 유통 사업하는 업체지, 범죄 조직이 아닙니다. 자! 마음껏 살펴보시고, 더 조사할 것이 있으면, 다 가져가십시오. 애들아! 문 활짝 열어드려라.”
조직원들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곤 문 양옆으로 다른 직원들과 함께 길게 대오를 짜, 손님을 맞이하는 모양으로 섰다. 천무용은 헛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애를 먹었다.
‘허, 참! 이놈들 봐라. 우리가 온다는 걸 이미 알고 준비들 단단히 했다, 이거지? 그래 좋다. 얼마나 깨끗하게 해두었는지 보자.’
“그럼, 바로 영장 집행하겠습니다. 자! 박 계장님, 평소처럼 3개 팀으로 나누어서, 각 방에 있는 물품 확인하시죠.”
“네.”
“김 수사관님은 컴퓨터, 노트북 다 찾아서 하드 확보하시고요. 디지털포렌식 하게 꼬리표 잘 붙여주시고. 압수할 물품은 목록에 등재하고, 바로 봉인해서 밖으로 빼내시죠.”
“네, 검사님!”
“참, 저기 CCTV 있죠? 최 수사관님, 관리실 가셔서 CCTV 영상 확보해주시죠.”
검찰 수사관들이 일사불란하게 자기 일을 찾아 흩어진다. 여기저기 서성이던 조직원들은 이들의 일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때 강대주가 슬그머니 천무용에게 다가온다.
“천 검사님! 대단하십니다. 며칠 뒤면 지구가 박살 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열심히 하시니. 음······, 지금 우리 같은 사람들 괴롭힐 때가 아닌데. 그렇지 않아요?”
“······!”
“일반 시민들은 넋 놓고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데,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뭔가 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높으신 곳에 있으니,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아실 것 아닙니까?”
강대주는 검사장부터 그 가족을 무등산 벙커에 대피시키고 있는 걸 비꼬고 있다.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지구가 망한다고 해서, 당신들이 저지른 일이 없던 일로 됩니까? 뭐, 면죄부라도 받는 줄 아나 본데, 착각하지 마시죠. 우린,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흥분해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그러지 마시고, 저희와 진지한 이야기 한 번 하시죠. 제가 좋은 자리 하나 만들어 보겠습니다.”
“하······!”
천무용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는다.
“걱정하지 마십쇼. 잘 아시잖아요? 제가 내일 검찰청 제 방에, 좋은 자리 만들어놓은 거. 그때 좋은 차 한잔 대접할게요.”
내일 있을 검찰 조사를 말한 것이다. 강대주는 듣던 대로 천 검사를 포섭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
“그나저나 서강파의 보스 기오성 씨가 안 보이네요. 신기수나 남수혁 씨는 어디 간 겁니까?”
“검사님, 이곳에서 왜 그 사람들을 찾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은 다 따로 사업하시는 분들 아닙니까?”
강대주는 시치미를 딱 뗐다.
“아! 그러시던가요. 몰랐습니다. 그런데 주변 CCTV를 살펴보니까, 그분들 이 건물에 거의 매일 출근하는 것 같던데.”
“하하! 맞습니다. 저희 호텔과 식당 V, VIP분들이죠. 여기 유흥주점과 오락실도 좋습니다. 언제 한 번 와보시죠. 잘 모시겠습니다.”
천무용은 능숙한 강대주의 임기응변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만만치 않은 녀석임을 직감했다.
“강대주 씨는 이런 일 할 사람으로는 안 보이던데, 안타깝네요.”
천무용이 강대주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제가 사업가로 변신한 게 맘에 들지 않나 보군요. 회계사라는 직업이 겉만 번지르르하지, 뭐 별것 없습니다. 남의 돈 관리하며, 뒤치다꺼리하는 거 지겨워서 때려치웠죠. 역시 저는 사업이 적성에 맞아요.”
“아······, 그러시군요!”
“얼마나 좋습니까?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일 원 없이 하고, 그렇죠? 천 검사님도 상사들 눈치 보느라 힘드시죠? 확 때려치우고, 변호사 개업하고 싶을 때가 많지 않습니까?”
강대주는 지검장과 차장검사가 천 검사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은연중에 이런 사실을 내비치며, 천무용의 속을 뒤집어 놓을 셈이었다.
“저같이 일선 검사가 위쪽 눈치 보는 건 당연한 거죠. 그래야 위계질서라는 게 생기고,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강대주 씨가 그렇게 자유롭게 사업하고 계신 줄은 몰랐네요.”
바지사장인 강대주는 어색한 미소를 띠며, 낯 뜨거워지는 걸 숨겨야 했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증거가 있다고, 이렇게 대대적인 조사를 하시는 겁니까?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셔야, 저희도 준비할 거 아닙니까?”
강대주는 넉살 좋게 수사가 어디까지 되었는지 물었다.
천무용은 오래전부터 강대주를 서강파의 약한 고리로 점찍었다. 그는 태생부터가 조폭들과 한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불안을 심어주면, 언제든지 변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 봐보세요. 아시다시피 동성파 조직원들이 이미 자백했잖아요? 서강파가 지시했다는 내용의 진술서가 몇 장이더라!
전두만 실종 때에 남수혁이 애들 여럿 데리고 여수로 간 건, 뭐 다 아는 사실일 테고. 배를 빌려 금오도까지 갔더군요. 희한한 게, 진상두 실종 때도 남수혁이 여수로 갔단 말이야.”
강대주는 무표정으로 천무용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불안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배신자가 단순한 말단 조직원이 아니었어. 나도 모르는 내용까지 줄줄이 나오는 걸 보니. 이 정도면 서열이 높은 조직원이야. 음······, 생각보다 심각한데.’
“그나저나 검찰 끄나풀은 누굽니까?”
강대주가 느닷없이 천무용에게 직구를 던진다.
“무슨 말씀이신지?”
“다 알고 있습니다, 누군지. 하하하!”
강대주는 천 검사가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돌직구를 던졌다. 천무용은 갑작스러운 강대주의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이놈들이 정보원의 신분을 알아챈 건가? 사실이라면, 정보원이 위험한데······. 아니지, 그럴 리가 없어. 쉽게 드러날 친구가 아니야.’
복잡한 계산을 하는 천무용, 아무래도 그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다 알고 계시면서, 저에게 왜 묻는 거죠?”
천 검사는 실제로 정보원이 드러난 건지 알아내고 싶었다.
“아하! 정보원이 있기는 있군요. 저는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역시 천 검사님이 심어놓은 게 맞았어. 이거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완전 불법 수사인데.”
‘이런, 저놈의 유도신문에 제대로 걸려버렸군!’
“음······, 농담한 걸 가지고 너무 나가신 것 아닙니까?”
천무용은 강대주의 말솜씨에 놀아나고 말았다. 정보원이 있음을 확인시켜준 것 같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간신히 참았다.
“박 계장님, 어느 정도 살펴보셨습니까?”
“네, 다 돼 갑니다.”
“저는 그럼, 일이 있어서······.”
강대주는 천 검사를 만나 어떻게든 그를 포섭하거나, 정보를 캐려 했다. 그러나 그를 포섭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거기다 천 검사가 흘린 정보로 미래에 대한 걱정만 짊어지고 말았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