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연락 두절
아포칼립스 D-11, 2029. 4. 3. 오후.
천상진은 드론 택시를 타고 광양으로 가는 중이다.
드론 택시는 8개의 프로펠러로 최대 시속 150km 속도를 낸다. 한번 충전하면 500km까지 운행할 수 있다. 연료는 수소를 사용하고, 수소전지에서 나오는 전기로 프로펠러를 가동한다.
운전자까지 포함해 3인승으로 최대 탑재 무게는 200kg이다. 도로를 따라 고도 100m가량의 높이에서 날고, 도로를 벗어날 때는 반드시 관제시스템에 보고해 그 지휘를 받아야 한다.
운행요금이 1km당 1만 원으로 매우 비싼 편이다. 대당 3억 원이나 하는 고가라, 개인이 운용하는 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주로 대기업에서 임대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진은 오랜만에 손님 없이 혼자 모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었다. 주전부리로 치킨을 먹으며, 뉴스를 듣고 있다.
전국 각지의 교회, 사찰에서는 아포피스 파괴와 궤도변경을 기원하는 종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정의로운 신들이 악의 화신 아포피스를 가만둘 순 없겠지.’
행사장 곳곳이 사람들로 가득 차 인산인해이다. 게다가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악용하려는 불순한 세력들의 사기행각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나를 믿는 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 믿지 않는 자는 이번에 반드시 죽을 테고, 사후세계에서 더 극심한 고통을 받을지니······.’
살고 싶으면 찾아오라는 광고가 뉴투브나 SNS에 넘쳐나고 있다. 같은 내용의 플래카드나 전단도 도심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나 불안을 마주할 때 극도로 무기력해진다. 사고가 멎어 버리는 것 같다. 다들 생존을 위한 노력은 포기하고, 기도할 곳만을 찾고 있으니······.
아포피스를 파괴하거나, 그 궤도를 바꾸지 못한다면 대재앙은 불을 보듯 훤하다.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생존확률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지금 할 수 있는 그에 맞는 대책을 수립해야만 한다. 그게 바로 정부의 일이다. 촌각을 아껴서 최대한 많은 시민이 생존할 수 있도록 대피소와 벙커를 마련해야만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시민들에게 삶과 죽음 또는 생존 대책을 마련할지 아니면 기다릴지 선택할 기회라도 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어느 하나도 하지 않고, 언론통제를 통해 그저 문제 일으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만 한다.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 승객들에게 언제 올지 모르는 구조선만을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 있으라 말하는 꼴이다. 씁쓸하기 그지없다.
상진은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에서 드론 택시로 5분 거리에 있는 '컨테라' 물류창고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컨테이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광양으로 오기 전에 장재건 사장과 계속 통화하면서, 적당한 컨테이너의 규모와 수 그리고 유의할 사항들을 확인했다.
냉장, 냉동시설이 있는 컨테이너는 꼭 성능을 확인해야 한다. 행성이 충돌한 직후 24시간 동안은 열 폭풍으로 인해 기온이 급하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안에 있더라도 열 때문에 위험하다.
이 경우 냉장 컨테이너로 이동해, 고열을 피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비축할 식료품 중 통조림 캔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장기 보존을 위해 냉장 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컨테이너의 5분의 1가량은 이런 냉장 시스템이 있는 것으로 구해야 했다.
중고 컨테이너는 이미 녹이 발생해 있어, 습기가 많은 지하에서는 녹 발생이 가중될 위험이 있다. 이 경우 구조체의 안전에도 문제가 되지만, 무엇보다 건강에도 해로울 것이 분명하다.
신조 컨테이너가 중고보다 거의 2배 가격이지만, 충분한 자금을 마련해두었기에 과감히 가격 흥정을 할 수 있었다.
컨테라 사장은 상진에게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은 신조 컨테이너를 사는지 물었다. 전화로 문의할 때만 해도 광주 인근에서 물품 보관창고 영업을 해보겠다고 둘러댔는데, 막상 주문하고 배송 장소를 알려줄 무렵이 되니 대충 둘러댄 이야기가 이상하게 돼버렸다.
지리산 정령치 휴게소로 컨테이너 70개, 그것도 신조 컨테이너를. 누가 보더라도 그곳은 물류 보관창고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물품 보관 용도라면 굳이 비싼 신조 컨테이너를 살 필요도 없다.
“에이! 천 사장, 좋게 말해봐. 뭐 때문에 이렇게 많은 컨테이너를 사 가는 거야?”
상진은 더는 물류 창고를 만든다고 둘러댈 수 없었다.
“장사 좀 해보려고 그러는 거지, 뭐겠어요? 500m가 넘는 곳에서만 살 수 있잖아요. 그 정령치 휴게소에 간이 숙소를 만들어 팔아 보려고 그러는 거지.”
“아하······!”
“돈 좀 되지 않겠어요? 컨테이너당 2천만 원 정도 받으면, 하하!”
“야! 천 사장 수완 좋네, 난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런 위기 때 천 사장처럼 아이템 잘 잡으면 팔자를 고친다니까. 지금 여기 광양에도 배 가진 사람들은 떼돈을 벌고 있어.”
“네? 배 가진 사람이 왜 돈을 벌어요?”
“지금 러시아로 가는 티켓은 부르는 게 값이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배 타고 간 다음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가려고 난리거든.”
“모스크바······.”
“광양에 있는 배란 배는 전부 지금 밤, 낮으로 러시아로 출항하고 있어. 이참에 돈 좀 벌겠다 이거지.”
“아······! 혹시 러시아 가는 티켓은 얼마 정도 해요?”
“한자리 잡으려면 적어도 10만 달러는 줘야 할걸.”
“하······!”
* * *
밤 9시.
동주는 사무실에 들러서 준비할 생존 물품의 목록을 정리한 후, 통금시간이 다가와 집으로 돌아왔다.
배가 고파, 라면 하나를 끓였다. 냉동만두 2개와 송송 썬 파 그리고 달걀을 풀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운데 드디어 면발에서 투명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곧장 먹어야 한다. 이때를 놓치면 라면이 불거나 탄력을 잃게 되니.
‘후루룩, 후루룩’
면발을 쑥 들이킨다. 카! 목 넘김이 좋다. 바로 이 맛이지.
"따르릉, 따르릉"
휴대전화 액정에 ‘송은채’라고 떴다. 은수의 여동생이다.
‘이 시각에 무슨 일일까?’
은채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집안의 기대가 모두 은수에게 몰린 덕에 조금은 자유로운 삶을 사는 셈이다.
직장이나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았다. 연애도 자유롭게 하고 당장은 결혼 생각도 없다. 은수보다는 훨씬 활달한 편이라 사람들과도 잘 어울린다. 동주, 상진과도 매우 친해, 같이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기도 했다.
“은채야!”
“형부, 아, 아니 오빠, 미안해요!”
은채는 두 사람이 헤어진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 형부라고 부르던 습관 때문에 그만 말이 헛나오고 말았다.
“아니야, 괜찮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니?”
“언니가 안 와서요. 집 앞에서 물건 산다고 한 지 꽤 됐는데, 갑자기 전화기까지 꺼져 있어서······.”
“뭐?”
“오늘 오빠랑 만난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혹시 오빠랑 있나 해서······.”
“응, 오늘 같이 있었는데, 아까 6시 반 무렵에 헤어졌어. ······너도 태호 알지?”
“네.”
“오늘 저녁에 태호랑 만난다고 해서, 상무지구에서 내려주고 난 일 보러 갔는데. 혹시 언니랑 몇 시에 통화했어?”
“아까 8시쯤 했는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안 들어와서요. 게다가 지금 통금시간도 지났는데, 안 들어오는 게 이상해서······.”
“혹시 어디에서 물건 산다고 했어?”
“우리 집 올라오다 보면 있는 희망슈퍼에 갔을 거예요.”
“거기 주인이 언니 얼굴 알아?”
“그럼요. 우리가 여기서 10년은 살았으니까 당연히 알죠.”
“그럼, 어서 나가서 슈퍼에 가봐. 아직 문 닫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거기서 다시 전화해줘, 난 태호에게 전화해볼게. 알았지?”
“네, 오빠!”
동주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태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독서동호회에 처음 가입했을 때 서로 인사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한 적이 있다. 이후론 따로 전화해본 적이 없다.
술자리에서 몇 번 마주치고, 언제부턴가 편하게 동생처럼 대했을 뿐이다. 은수에게 잘해준다고 해서 인사한 적은 있지만, 사사로운 친분은 없었다.
"따르릉, 따르릉"
연결음이 벌써 10번은 울린 것 같은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무슨 일일까? 은수가 집 앞에서 은채에게 전화한 건 곧 집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럼 그 무렵에는 태호와 헤어졌을 테고. ······왜 둘 다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몇 번이고 전화를 해봐도 태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은수에게도 벌써 몇 번째 전화했지만, 휴대폰이 꺼져 있는 것 같다.
동주는 태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은수가 연락이 안 돼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다. 혹시 보면 전화해줘.]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따르릉, 따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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