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실종 (1)
아포칼립스 D-11, 2029. 4. 3.(화) 밤
“따르릉, 따르릉”
‘누굴까, 혹시 은수나 태호?’
아쉽게도 송은채였다.
“오빠!”
“응, 은채야!”
“8시에 나랑 전화할 때, 여기 슈퍼에 온 게 맞아. 내가 과일이 먹고 싶다고 해서, 사과를 샀더라고요”
은수가 오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려던 참인 게 분명하다.
“8시 5분이면 집에 와야 할 사람이 1시간이 넘도록 안 들어오고 있어요. 게다가 휴대폰도 꺼져있고······. 무슨 일 있는 것 같아, ······오빠, 어쩌지?”
은채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은채야! 내가 갈 때까지 너는 그 슈퍼에 있어. 주인아저씨에게 사고 난 것 같다고 말하고, 경찰 올 때까지 문 닫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해줘, 알았지?”
“아, 알았어. 오빠,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별일 아닐 거야. 혹시 모르니까 경찰에 신고하는 거야. 내가 금방 달려갈게. 다시 연락할 때까지 그곳에 있어, 알았지?”
“응, 오빠.”
동주는 전화를 끊자마자, 북부경찰서 박시영 경위에게 전화했다. 박 경위는 송은수 팀장이 지휘하는 형사 1팀의 선임 수사관이다.
동주는 한 달 전 형사 1팀 회식 때, 2차 술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박 경위가 고등학교 후배인 사실을 알고 허물없이 친해져, 따로 자정이 넘도록 술을 마셨다.
“박 경위! 나 이동주 변호사야.”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잘 계셨죠?”
“응, 급한 일이 생겨서 전화했어. 혹시 근무 중일까?”
“네, 팀장님이 연가 내시면서 부탁해서, 제가 오늘 야간 조예요.”
“송 팀장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네?”
“방금 동생한테서 연락받았는데, 집 앞에서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어. 지금 한 시간 넘도록 행방을 알 수 없어.”
“네?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요? 다른 일이 생겼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그러지 않을까요?”
“아니야! 집에 들어간다고 전화하고 슈퍼에 들렀는데, 그 이후에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거야.”
“······.”
“알잖아? 송 팀장이 휴대폰을 일부러 꺼놓을 리가 없는 거. 언제 긴급출동이 있을지 모르는데······. 분명 무슨 일이 있어, 느낌이 안 좋아.”
“아······, 그래요!”
은수가 맡은 형사 1팀은 강력계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이 많은 곳이다. 수시로 발생하는 강력 사건에 대응하려면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팀장인 은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휴대폰을 꺼놓은 적이 없었다.
“내가 북부서로 갈 테니까, 자네는 송 팀장 핸드폰 위치추적 좀 해줘. 마지막 발신 지점이 어딘지 확인해주고, 통화목록과 문자메시지 내용도 조회해 주고.”
“네.”
“그리고 형사 1팀하고 혹시 출동할 수 있는 다른 인원 있으면 모두 불러 모아 줘. 송 팀장 집이 있는 양림동 일대를 샅샅이 뒤져야 할 것 같아. 무슨 단서라도 찾아야 하니까.”
동주는 마치 수사지휘라도 하는 듯 박 경위에게 요구사항을 쏟아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라 절차나 예의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제발, 아무 일도 아니어야 하는데요.”
박 경위도 사태가 심각하다고 여기고는 동주의 요청에 순순히 응했다.
“난 바로 출발할게, 부탁 좀 할게, 미안해!”
“아니요, 우리 팀장님 일인데, 제가 더 나서야죠.”
동주는 바로 외출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승용차에 타자마자 북부경찰서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계속 은수와 태호에게 전화했지만,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런, 도대체 무슨 일이야! 태호랑 같이 있는 거면 그나마 다행인데······.’
텅 빈 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다. 집에서 북부경찰서까지는 평소라면 차로 20분은 걸릴 거리이다. 그렇지만 통행금지가 된 야간이라면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때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리고, 경찰차 한 대가 뒤에서 쫓아오기 시작했다.
“3014, 3014 차량 멈추세요. 속도 줄이고, 오른쪽으로 정차하세요.”
싸늘한 확성기 소리가 텅 빈 도시 한가운데를 크게 메아리치고 있다.
‘으윽! 빨리 가봐야 하는데, 이런!’
동주는 승용차를 도롯가에 세우고,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뒤쪽 경찰차에서 2명의 단속 경찰이 나왔다.
“지금 몇 시인지 압니까? 거기다 그렇게 과속하고 달리면 어떡합니까?”
동주는 지갑을 꺼내 그곳에서 변호사 신분증을 제시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사건이 발생해서 급하게 출동하는 중입니다. 북부경찰서 형사 1팀 박시영 경위 님을 만나러 가는 중인데요. 못 믿으시겠다면, 전화로 확인 한 번 해주시죠.”
“네? 박 경위 님이요!”
단속 경찰관은 유심히 동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어디서 뵌 것 같은데······.”
“제가 방송에 출연 중이라 그럴 겁니다. SBC 방송의 ‘열린 광주’ 보셨어요?”
“아! 기억납니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요. 하하! 반갑습니다.”
경찰관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이제 더는 의심하는 눈치가 아니다.
“그런데 무슨 사건이길래 이렇게 급하게 가시는 겁니까?”
“송은수 팀장이 실종된 것 같아요. 빨리 현장에 가봐야 해서 그렇습니다.”
“네, 정말요? 그럼, 빨리 가시죠.”
동주는 다시 승용차에 탔다. 이번에는 경찰차가 앞서 출발하고, 동주는 그 뒤를 따라 북부서로 향했다.
북부경찰서 형사과 사무실.
박시영 경위가 당직 근무자들과 그밖에 연락이 된 경찰관들을 불러 모아놓았다. 벌써 10여 명이 그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동주가 헐레벌떡 사무실에 들어왔다. 박시영 경위가 동주를 보자마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송 팀장님 남자 친구 이동주 변호사님이야. 지난번에 본 친구들도 있을 거야. 오늘 우리랑 같이 움직일 거니까, 많이 도와드려. 알았지?”
“네, 잘 알았습니다.”
형사 1팀에서는 아직 은수와 동주가 헤어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저랑 같이 가시죠. 차로 이동하면서 말씀드릴게요.”
“고마워!”
“자, 양림동으로 출발하자.”
형사과에 있던 경찰관들이 모두 주차장 쪽으로 이동했다. 동주는 박시영 경위가 운전하는 경찰차에 탑승했다. 북부경찰서가 있는 오치동에서 양림동까지는 평소라면 차로 30분쯤 걸리는 거리다. 다행히 통금 이후라 훨씬 일찍 도착할 수 있다.
“휴대폰 위치추적은 해봤을까?”
“네, 방금 확인했습니다. 양림동 집 근처에서 마지막 신호가 잡히고, 지금은 휴대폰이 꺼져있는 상태예요. 음······, 뭔가 이상하긴 합니다.”
은수의 휴대전화가 꺼져있다는 건 뭔가 일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통금시간에 누군가를 만날 리가 없다. 그것도 휴대전화를 꺼놓고······.
“혹시 통화목록이나 문자메시지는?”
“그건 통신사에 조회신청 했는데,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요. 내일 오전에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
“혹시 요즘 은수가 담당한 사건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사건은 없어?”
“저희 팀이 워낙 많은 사건을 하고 있어서······. 송 팀장님이 직접 조사하는 사건은 몇 개 안 되는데······. 음······!”
어느새 광주천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가면 양림동이다. 저기 멀리 ‘양림 역사 문화마을’이라는 철골 기둥 간판이 보인다. 은수의 집으로 가려면 천변에 있는 양림교를 건너 쭉 직진해야 한다.
조금만 가면 양림동 행정복지센터가 나오고, 그 앞에 회전 교차로가 있다. 그 교차로 위쪽에 여러 갈래의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그 골목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오른쪽에 넓은 정원을 가진 전통 한옥 주택이 나온다. 그곳이 양림동의 명소인 이장우 가옥이다.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다.
대문간, 곳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를 갖춘 고급 기와집이다. 1899년에 지어진 가옥이니 130살인 셈이다. 은수의 집은 바로 그 뒤편에 있는 2층 양옥 주택이다.
동주와 박 경위는 회전교차로 옆 갓길에 차를 세웠다. 먼저 맨 오른쪽 골목길에 보이는 희망슈퍼로 향했다. 그곳엔 송은채와 중년 남자가 동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어, 은채야! 오래 기다렸지?”
“아니야, 그래도 사장님이 같이 걱정해주셔서······.”
“사장님! 여기는 북부경찰서 박시영 경위이고, 전 이동주 변호사입니다.”
슈퍼 사장은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얼떨떨한 표정이다.
“사장님! 송 팀장이 여기서 사과를 산 시각이 정확히 어떻게 될까요?”
슈퍼 사장은 계산대에 놓여 있던 영수증 중 하나를 꺼내 든다.
“여기 매출전표를 보니까 7시 58분에 샀더라고요.”
“그때 혹시 송 팀장 혼자서 있었는가요, 아니면 주변에 다른 손님이 있었을까요?”
“은수 양이랑 중학생 애 하나가 있었던 것 같아. 여기 매출전표를 보니까 8시에 과자랑 콜라를 산 게 그 중학생 애 같아요.”
“혹시 가게 앞이나 주변에서 수상한 사람을 보진 못하셨어요?”
“밖이 깜깜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럼, 혹시 가게에 CCTV가 있을까요?”
“저희야 조그만 구멍가게라 CCTV가 없어요. 저기 교차로 앞에는 CCTV가 있는 것 같던데.”
“아! 고맙습니다.”
동주와 박 경위는 재빨리 회전교차로 쪽으로 달려갔다.
슈퍼 사장이 말한 것처럼 원형 교차로에는 방범용 CCTV가 두 대나 설치되어 있었다. 박 경위는 곧장 통합관제소에 전화해, 오늘 밤 8시 무렵 이곳 CCTV 영상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송해달라고 요청했다.
북부서에서 출동한 다른 경찰관들도 그 근처에 차를 세우고, 원형 교차로에 모였다. 박 경위는 바로 주변을 수색하기로 했다.
“자! 송 팀장님 휴대전화가 이곳에서 8시경 신호가 끊겼습니다. 희망슈퍼에서 송 팀장님 집까지 가는 길에는 여러 골목이 있으니까. 흩어져서 혹시 단서가 될 것이 있는지 찾아봅시다.”
“네!”
“길바닥에 뭐라도 떨어진 게 있는지. 그리고 주차된 차량 중에서 블랙박스가 켜져 있는 것들 일일이 확인해주시고요. 자! 출발합시다.”
10여 명의 경찰이 두세 명씩 짝을 지어 각자 골목길로 흩어졌다.
‘은수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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