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실종 (2)
아포칼립스 D-11, 2029. 4. 3.(화) 늦은 밤
때마침 박 경위의 휴대폰으로 이곳 CCTV 영상이 도착했다. 동주와 박 경위는 숨을 죽이고 영상에 집중했다.
희망슈퍼를 바라보고 있는 CCTV 영상에서 7시 59분 슈퍼에서 나오는 은수의 모습이 보인다. 오른 어깨에 숄더백을 메고, 왼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천천히 CCTV가 있는 회전교차로 쪽으로 걸어온다. 회전교차로 부근을 양림오거리라고 부른다. 그곳에 다다라 LED 조명으로 울긋불긋 형형색색 빛을 내는 ‘양림동 근대역사 문화마을’ 약도가 그려진 큰 벽을 끼고, 오른쪽 골목으로 튼다.
은수가 걸어오는 동안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원형교차로에서 은수네 집 방향 쪽으로는 세 갈래 골목이 있다. 은수는 원형교차로에서 이중 가장 오른쪽 골목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갈 때까지 주변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은수가 다시 왼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 뒤로 은수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럼 저 골목 이후에 다른 CCTV나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를 확인해야 한다.
동주와 박 경위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그곳을 향해 달렸다. 은수가 사라진 골목길 부근은 삼거리다. 은수의 집으로 가려면 왼쪽 골목길로 가야 한다. 만일 쭉 직진하면 다시 천변 도로가 나온다.
왼쪽 골목길은 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길이었다. 주차된 차량도 없었고, 주변에 CCTV도 없었다.
골목길을 따라 60m가량 쭉 직진하니 다시 삼거리가 나왔다. 그곳에서 오른쪽 골목길로 30m가량만 가면 이장우 가옥이 나온다. 그리고 그 뒷집이 바로 은수네 집이다.
이 골목 삼거리에도 주차된 차량이나 길에 설치된 CCTV가 없었다. 넓은 이장우 가옥의 정원 안쪽 안채에 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지만 이건 오로지 이장우 가옥을 비추고 있는 경비용일 뿐이다.
양림동 문화마을 개선사업 때문에 공용주차장이 여러 곳 생겼다. 예전에는 도롯가에 주차된 차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단속이 심해 모두 공용주차장에 주차하고 있다.
‘이 골목길에서부터는 은수가 어디로 간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어.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동주와 박 경위는 삼거리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어쩌죠? 여기에서 집 쪽으로는 안 갔을 테고. 그럼 반대쪽인데, 양림교회 쪽으로 가볼까요?”
박 경위는 은수가 집이 아닌 반대쪽으로 갔으리라 추측했다. 집을 지나쳐서 다시 천변 쪽으로 가지는 않았으리라 여긴 게다.
“박 경위는 양림교회 쪽으로 가봐. 나는 혹시 모르니까 이장우 가옥 지나서 천변까지 쭉 가볼게.”
두 사람은 갈림길에서 헤어져 각자의 방향으로 이동했다.
동주는 이장우 가옥을 지나 한희원 미술관이 있는 삼거리까지 갔다. 휴대폰 플래시로 골목 구석구석을 비추며 천천히 걸었다. 그 어디에서도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밤은 더 깊어가고 있다. 통금시간이라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하현달이 동쪽 하늘에 슬그머니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저 멀리 유난히 반짝이는 큰 별이 보인다. 분명 아포피스일 것이다.
며칠 전만 해도 그저 반짝이는 작은 별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는 반딧불이만큼이나 제법 커서, 달을 제외하곤 가장 크게 빛나는 녀석이다.
다시 좀 더 걸어가니 막다른 골목이다. 왼쪽으로는 최승효 가옥이 있고, 그 옆으로 다시 두 갈래의 좁다란 골목이 나왔다. 사람 한 명이 겨우 걸어 다닐 수 있는 오르막 좁은 길이다. 은수가 저곳으로 갔을 것 같지는 않다.
반대편으로 가면 원형 로터리에서 은수가 맨 처음 이동한 그 길과 연결되는 골목이 나온다. 그 어디에서도 은수의 흔적이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동주는 박시영 경위에게 전화했다.
“박 경위! 그쪽은 어때?”
“송 팀장님 흔적이나 특별한 건 못 찾았습니다.”
“그래, 여기도 별다른 게 없어.”
“양림교회 앞에 CCTV가 있어서 여기는 내일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요. 다른 동료들도 주변을 샅샅이 살폈는데, 별다른 게 없답니다. 저······, 오늘은 그만 철수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 그래야지. 오늘 너무 고생 많았어.”
동주는 중요한 단서가 아니더라도, 사소한 뭐라도 하나 찾을 수 있길 기대했다. 그런데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가야 할 상황이라 착잡했다.
“참, 오늘 당직이라고 했지?”
“네, 가서 밀린 일도 하고, 송 팀장님 실종 건 보고서도 써야죠.”
“송 팀장 동생 만나서 잠깐 설명하고, 같이 북부서로 갈까?”
“네, 그러시죠.”
“그럼 잠시만 기다려줘.”
동주는 서둘러 희망슈퍼로 가 송은채를 만났다.
“오빠, 뭐라도 찾았어?”
“아니, 아직 별다른 단서나 흔적은 찾지 못했어. 내일 주변 CCTV를 다 살펴보면, 뭐라도 나올 거야. 참, 부모님께는 말씀드렸어?”
“네, 간단히······. 오빠가 찾고 있고, 경찰에도 알렸다고······.”
은채는 금세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다.
“오늘은 너무 늦어서 경찰들도 다 철수할 거야. 너도 집에 들어가서, 우선은 쉬어. 알았지?”
“별일 아니겠지, 오빠?”
“그럴 거야. 경찰 일이라는 게 그럴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가서 쉬어.”
“응, 오빠. 고마워.”
동주는 은채를 집으로 보내고, 바로 박 경위의 차에 탔다. 다시 북부경찰서로 가는 길이다.
“박 경위! 실은 말하지 못한 게 있는데······. 나, 송 팀장이랑 헤어졌어.”
“아······! 저나 직원들은 전혀 몰랐는데······.”
“미리 말해야 했는데, 미안해!”
“아니요, 그럴 수 있죠.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실은 오늘 일이 있어서 송 팀장이랑 남원경찰서에 갔어. 거기서 예전에 송 팀장이랑 같이 근무했던 최창민 경정을 만났거든. 그리고 6시 20분쯤 송 팀장을 상무지구에 내려줬어. 송 팀장이 거기에서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거든.”
“아! 그럼 마지막에 송 팀장님과 같이 있었던 사람이 그 남자겠군요.”
“그래······. 나도 아는 친군데, 한빛 대학병원 외과 의사인 김태호야.”
“······.”
“북부서로 가기 전부터 계속 그 친구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아. 송 팀장은 휴대폰이 꺼져 있고, 그 친구는 전화를 안 받고······.”
“혹시 연인들끼리 그냥 잠수탄 건 아닐까요?”
“나도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는데······. 집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 거로 봐서는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그러는데, 서에 들어가서 그 친구 휴대폰 위치추적 좀 해주면 안 될까?”
“네? 음······. 따로 실종신고가 들어온 게 아니라, 그분 휴대폰 위치추적을 하는 건 곤란할 것 같은데요.”
“알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 그렇지만, 너무 걱정돼서, 그래. 혹시 편법이긴 해도, 송 팀장 실종사건의 용의자나 참고인으로 지목해서 하면 안 될까?”
“······.”
“지금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잖아. 혹시 나쁜 일이라도 생긴 거라면······.”
박 경위는 망설이고 있다. 개인 위치정보를 함부로 조사하다가는 크게 문책을 받을 수 있다.
“서에 들어갈 때까지 김태호라는 분과 통화를 시도해보고요. 계속 전화를 안 받으면, 그땐 그렇게 해보죠.”
“고마워!”
벌써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다. 동주는 태호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벌써 20통화 넘게 한 셈이다. 그런데도 태호는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에도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북부경찰서 형사1팀 사무실.
출동했던 직원들은 모두 귀가하고, 이제 당직근무를 하는 박 경위와 동주만 휑한 사무실에 남아 있다.
박 경위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통신사에 연락해 김태호의 휴대폰 위치추적을 요청했다. 그러나 실종신고가 들어온 게 아니라, 까다롭게 요구하는 게 많았다. 게다가 너무 늦은 시각이라, 정식 공문을 보내는 절차도 밟을 수 없었다. 오늘은 그의 위치를 추적할 수 없다.
동주는 그 사이 은수의 책상 앞에 가 있었다. 다른 팀원들이 일하는 책상의 맨 뒤편이다. 뒤로 너른 통유리창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상 주변으론 꽤 넓고 여유로운 개인 공간이 있다.
옷걸이에는 은수가 사무실에서 입는 카디건과 제복 상의가 걸려 있었다. 평소에 신던 슬리퍼도 가지런히 책상 아래에 놓여 있다.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동주가 선물한 방석과 허리 쿠션도 보인다. 하루 한 봉 건강을 위해 챙겨 먹자며 같이 주문한 적이 있는 견과류도.
책상 오른쪽에는 결재할 서류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하루만 자리를 비워도 이렇게 일이 쌓이는구나. 은수도 그동안 고생이 많았군.’
박 경위가 동주에게 다가온다.
“선배님! 오늘 김태호 씨 위치추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지간히도 까다롭게 구네요.”
“그래, 그럴 것 같더라. 충분히 이해해.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여기 쌓여 있는 기록들이 많은데, 혹시 송 팀장이 직접 수사하는 사건이 있을까?”
“네, 제가 찾아볼게요.”
박 경위는 기록을 하나하나 세심히 살폈다. 그중에서 송 팀장이 직접 수사하고 있는 기록을 따로 모았다.
“최근에 수사하고 있는 게 모두 4건 정도 되네요.”
“혹시 내가 이 기록들을 봐도 될까? 비밀은 꼭 지킬게. 여기에 무슨 단서라도 있을 수 있어서······.”
“오늘 집에 안 들어가실 건가요?”
“갈 건데······, 집에 들어가 봐야 잠자는 거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잖아. 은수 걱정 때문에 잠도 안 올 게 뻔해. 여기에서 뭐라도 찾아봐야,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아서.”
박 경위는 망설이면서 주변을 쓱 둘러본다. 이 야심한 시각에 누군가가 형사과에 찾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사진을 찍거나, 메모 같은 건 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제가 보여줬다고 절대 말씀하시면 안 되고요.”
“물론이지.”
“여기서 본 건 어디에서도 사용하시면 안 되니까, 그것만 약속해주세요.”
“그럼,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고마워, 박 경위!”
동주는 은수의 책상에 앉아 차분히 기록을 살피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록은 절도사건이다.
시내 도심 대로변에 주차해 있는 차량을 턴 사건이다. 도구를 이용해 차 문을 연 다음, 안에 있는 돈이나 값나가는 물건을 훔쳤다.
최근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여러 곳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다. CCTV나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애들이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이 확인되지 않지만, 등치나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고등학생 정도일 것 같다. 아직 초동단계다. 이 사건 때문에 은수가 원한을 살 이유는 없다.
다음 기록은 사기 사건이다.
중국에서 낙지를 수입해 팔면 떼돈을 벌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수억 원을 챙겼다. 투자자들이 수십 명이고 피해 금액도 사람마다 1억 원이 넘는다.
실제로 몇 번 낙지를 수입한 적이 있는데, 고작 천만 원 내외의 물량이다. 낙지의 상태가 좋지 않아 제대로 팔지 못하고, 그마저도 다 폐기했다.
낙지 사업은 오로지 속이려는 방편에 불과하다. 기록 말미에 보니, 피의자가 이미 범행을 자백했다. 합의한다고 해서 시간을 준 상태다.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어 영장을 청구할 계획도 없다. 이 건도 아니다.
‘뭐라도 단서가 나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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