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단서
아포칼립스 D-10, 2029. 4. 4.(수) 새벽
다음은 비트코인 다단계 사기 사건이다.
조만간 상장할 비트코인인데, 상장만 하면 10배는 기본이고, 100배까지 폭등할 수 있다고 속였다. 1구좌당 300만 원만 넣으면, 나중에 3억 원으로 불릴 수 있다고 하니 솔깃할 수 밖에.
회원이 한 명을 소개하면 수당으로 30만 원을 지급하는 구조다. 10명을 소개하면 자신의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는 셈이다. 10명 이상을 모집하면 크리스털, 30명 이상을 모집하면 에메랄드, 50명 이상을 모집하면 다이아몬드 직급을 받게 된다. 직급이 높을수록 수당도 올라간다.
비트코인 상장으로 떼돈을 벌 수 있는 데다가, 10명만 소개하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전형적인 다단계 사기 수법이다. 일종의 유사수신행위(허가받지 않은 금융업)로 명백히 불법이다.
이미 광주 총책임자와 간부 3명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거짓이 없다는 태도다. 조만간 비트코인을 거래시장에 상장할 테고, 그때 되면 투자자들은 모두 돈방석에 앉을 거라며 호언장담한다.
게다가 서울 본부에서는 훨씬 더 활발하게 사업하고 있는데, 그곳은 놔두고 왜 유독 이곳만 문제 삼는 거냐며 따진다.
자세히 보니 서울 본사에서 변호사를 보내 의견서까지 제출했다. 실제 상장을 준비하며 만든 관련 서류와 회원 수백 명의 탄원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지금껏 약속한 수수료가 연체 없이 제대로 지급되고 있고, 투자를 철회하면 원금까지 그대로 돌려주고 있다는 내용이다. 조직원들의 믿음이 거의 종교집단 수준이었다.
다만, 고소인들의 의도가 마음에 걸렸다. 아직 피해가 발생하지도 않았고, 몇 명만 소개하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상황인데, 이들은 왜 고소한 것일까?
다단계는 원래 폭탄 돌리기다.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어, 아래에서 올라오는 돈을 소수의 상위 계층이 다 흡수해 간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주는 돈은 오로지 신규회원이 낸 회비로 충당할 뿐 애초에 돈이 나올 구석은 없다.
나중에 필요한 만큼의 신규회원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 폭탄이 터진다. 더는 아래로 내려줄 돈이 없을 때.
그런데 지금은 계속 회원이 증가하는 추세다. 비트코인 열풍에 편승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수많은 사람이 투자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고소인들은 다 초기 투자자로 현재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았는데, 왜 문제 삼은 걸까?
뭔가 내부 갈등의 표출인 것 같다. 은수는 왜 이 사건을 이렇게 열심히 파헤치고 있는 걸까?
혹시 이 사건 때문에 다단계 조직에 원한을 산 건 아닐까? 기록 내용만 봐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남은 마지막 기록을 펼쳤다. 이번은 살인사건이다.
야산에서 시체가 발견됐다. 사망한 지 1개월가량 지난 것으로 보이는 30대 성인 남자, 정길수.
마지막 카드사용은 2029년 3월 2일 금요일 밤 9시 30분, 광주 동구 학동 남광주역 사거리에 있는 신비루 중화요리 집이다.
그날 신비루에서 친구들과 1차로 저녁 식사를 하며 술을 마셨다. 고량주 큰 것 1병을 나누어 마셨는데, 그곳 밥값을 정길수가 냈다. 친구들의 진술에 따르면, 2차로 남광주 시장 안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세 명이 소주 5병을 나누어 마셨다고 한다. 고량주에 소주까지 더해졌으니 꽤 취했을 것이 분명하다.
친구들과는 밤 11시경 헤어졌다. 그 뒤로 목격자가 없어 행적이 묘연하다. 그의 휴대폰은 찾지 못했다. 마지막 발신지가 그날 밤 11시, 광주 동구 학동 광주천 사거리. 이 정보만으로는 그가 어디에서 사고를 당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도로변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와 건물 CCTV 영상을 통해 그가 사거리 끝에 있는 조선호텔에 들어가는 모습이 발견됐다.
그날 호텔 투숙객 명단을 보니, 그가 없다. 그렇다면 지하 도박장 아니면 2층의 유흥주점이다. 호텔 내부 CCTV 영상을 보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날 조선호텔을 나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사라진 셈이다.
은수는 유흥주점 사장인 정마리아를 조사했다. 변호인이 대동했고, 시종일관 모른다고 답변했다. 정길수를 본 적도 없고, 그가 주점에도 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날 조선호텔 CCTV 영상에서 특이한 점이 발견됐다. 유흥주점 여종업원 임안나가 새벽 1시경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팔에 흰 수건을 두르고 급히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다.
조사결과 근처인 한빛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서, 손과 팔에 난 상처를 꿰매는 치료를 받았다. 아무래도 임안나가 의심스럽다.
정마리아는 임안나에 대해서도, 그녀가 그날 왜 상처를 입었는지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때문에 내일 임안나에 대한 조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기록 말미까지 읽어 나가던 중 소환통지서 여백에 붙어 있는 노란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서강파 기오성의 내연녀, 임안나’
불길한 느낌이 쑥 올라왔다. 그날 임안나가 다친 것과 정길수의 실종이 연관된 게 분명하다. 정길수가 서강파 보스 기오성의 내연녀인 임안나를 건들기라도 한 것일까?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기오성이 치정 때문에 정길수를 살해한 걸까?
이제 정길수의 시체가 발견되고, 은수가 이 사건을 깊이 파고들자, 은수마저······.
겁이 덜컥 났다. 은수가 이 기록에 나오지 않는 어떤 유력한 증거라도 찾은 걸까? 이건 살인사건을 은폐하거나, 증거를 조작하기 위한 계획된 납치일 수 있다.
동주는 박 경위에게 골라온 사건 기록을 건넸다.
“만약, 은수가 납치된 거라면 이 두 사건 중 하나와 관련된 것 같아. 한번 잘 살펴봐 줘.”
“네, 저도 살펴보고, 앞으로 수사를 어떻게 할지 과장님과도 협의해보겠습니다.”
“오늘 수고 많았어. 난 이만 가볼게.”
“저희 김 순경이 댁까지 같이 가드릴 겁니다. 오실 때처럼 괜히 검문 걸려서 고생하시면 안 되죠.”
“아! 그렇지, 신경 써줘서 고마워.”
동주는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새벽 3시. 이제 하현달은 남쪽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아포피스가 새벽하늘 가운데에서 불타오르고 있다. 동주의 두려움과 불안 역시 식지 않고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아침 8시.
“따르릉, 따르릉”
동주는 휴대전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김태호다.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저, 김태호인데요. 이 변호사님이시죠?”
“어제 전화를 스무 통 넘게 했는데, 왜 전화를 안 받은 거니?”
“아, 죄송합니다. 제가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내린 통에······. 아침 출근하면서 이제야 봤습니다.”
“아······!”
“어제 여러 곳에서 전화가 엄청 많이 왔더라고요. 다 모르는 번호인데, 이 변호사님은 저장된 번호라 이렇게 전화한 겁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태호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은수가 어젯밤부터 실종 상태야.”
“예? 뭐라고요,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은수가 왜 갑자기 실종됐다는 거죠?”
“음······.”
“어제 저랑 헤어질 때 분명 집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제가 집 쪽으로 걸어가는 것까지 다 봤어요.”
어느새 태호의 목소리 톤이 높아져 있었다.
“진정하고, ······어제 은수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해줘. 지금 심각한 상황이니까, 있는 그대로 다 말해줘야 해.”
“저, 정말입니까? 은수가 실종됐다는 게?”
“진짜야! 어젯밤 경찰들이랑 양림동을 샅샅이 뒤졌다고. 그런데도 은수를 못 찾았고, 여전히 휴대폰은 꺼진 상태야.”
“아, 윽······!”
태호는 자책하며, 비명 같은 신음을 토해냈다.
“태호야! 지금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빨리 은수를 찾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어. 어서, 어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해봐.”
“어제 상무지구에서 은수를 만났어요. 저녁을 먹자고 해서, 파스타 집에 갔죠. 거기에서 은수가 형님이랑 만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준비하고 있는 벙커 이야기도요.”
“그리곤?”
“어제 솔직히 은수에게 서운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다퉜어요. 어제, 그제 계속 형님과 만나는 것 같고, 은수가 조금 싸늘한 것 같아서······.”
“······.”
“아무튼 전 그 생존계획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은수가 절 계속 설득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더 대화하면 힘들 것 같아, 식사만 하고 헤어진 겁니다.”
“그 뒤로는?”
“제 차로 양림동 그 오거리까지 데려다주고, 전 집으로 갔죠. 그게 전부에요.”
“태호야, 은수를 양림동에 내려준 시각이 정확히 언제야?”
“아마 7시 50분쯤 됐을 건데요.”
“내려주고 넌 집으로 바로 갔어?”
“실은 좀 화가 나기도 해서, 친구 집에 가서 잤어요. 술을 사서 갔는데, 양손에 짐이 많아서 그만 차에 휴대폰을 두고 말았죠.”
“그래도 휴대폰이 없다는 것 정도는 금방 알았을 텐데.”
“한참 술을 먹다 보니, 그때야 휴대폰이 없는 걸 안 거예요. 휴대폰 가져와서 은수에게 전화할까 하다가, 아까 다툰 것도 있고 해서······.”
“······!”
“일부러 차에 두고 그냥 계속 술을 마셨어요. 정말 아침까지 그냥 쭉 친구 집에 있었다구요. 설마, 절 의심하는 건 아니죠?”
“어제 새벽 내내 네가 연락이 안 돼서, 경찰에서는 어쩔 수 없이 너도 용의선상에 올렸어.”
“네?”
“네 휴대폰 통화내역하고, 위치추적 조사를 하고 있을 거야. 난 이제 북부서로 갈 건데, 가서 자료 보면 네 말이 맞는지 알 수 있겠지.”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확인하면 바로 알려 줄게. 그나저나 문자로 어제 잤다는 친구 집 주소 좀 보내줘.”
“네, ······그런데 은수가 왜 실종된 거죠? 누가 은수를 데려간 겁니까?”
“어제 양림동을 다 살피고, CCTV 영상도 봤는데, 아직은 모르겠어. 분명 밤 8시에서 9시 사이에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동주는 태호와 전화를 끝내자마자, 아침 식사도 거르고 바로 북부경찰서로 향했다.
‘뭐라도 좋은 소식이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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