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뜻밖의 고백
아포칼립스 D-10, 2029. 4. 4.(수) 아침 광주 북부경찰서 형사1팀
박 경위는 어제 당직을 섰는데도, 송 팀장 사건 때문에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 경위, 혹시 뭐라도 나온 것 있을까?”
“일찍 오셨네요! 아침에 재촉해서 통신 조회랑 CCTV 영상 확인했죠.”
“고마워!”
“이상한 게······, 양림교회, 사직도서관은 물론이고, 학강초등학교 사거리, 양림로 사거리, 천변 전부 다 살펴봤는데.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어디에도 송 팀장님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
“차를 타고 이동했거나, CCTV가 없는 골목으로만 이동했다는 건데. ······송 팀장님 차는 어제 아침부터 줄곧 양림동 공용주차장에 있었거든요.”
“음······, 납치됐다면 다른 차로 이동했을 수 있지. 혹시 송 팀장 집 주변에 차량 움직임은 어땠어?”
“아시다시피 그쪽에 골목이 많고, 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 많아서. 게다가 CCTV 영상으로는 그 시간에 움직인 그 많은 차를 일일이 다 확인할 순 없었습니다. 차량 내부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요.”
“하······, 막막하네.”
동주는 자기도 모르게 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렇게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단 말인가?
“혹시 통화목록이나 문자메시지 내용에는 이상한 점이 없었어?”
박 경위가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동주에게 다가와 서류를 내민다.
“휴대폰 위치추적을 해보니까, 송 팀장님 남자 친구라는 김태호 씨는 8시 20분경 이후로 쭉 동구 지산동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 미안해. 그것부터 말했어야 하는데, 실은 방금 오기 전에 통화가 됐어. 어제 술 마시고 친구 집에서 잤다고 하더라고.”
“아······!”
“휴대폰이 차에 있었는데 일부러 그냥 놔뒀다고 해. 송 팀장하고 약간 다퉜나 봐.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고.”
동주는 김태호가 문자로 보낸 주소를 박 경위에게 보여주었다.
“친구 집 주소가 광주 동구 동명로 101이니까, 지산동 맞네요. 휴대폰 위치랑 거의 같습니다. 그럼 김태호 씨는 용의선상에서 빼야겠네요.”
“그, 그럴 것 같아.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 친구라는 사람에게 직접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음······, 혹시 모르니까 제가 확인해보겠습니다. 참, 이 통화내역 좀 보시죠. 어제 6시 30분에 송 팀장님과 통화하고, 7시 55분에도 통화한 사람이 있습니다. 6시 50분에는 송 팀장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요.”
“누구지, 그 사람이?”
은수가 동주와 헤어진 직후에 통화하고, 다시 태호와 헤어진 이후에도 통화한 다른 누군가가 있다. 유력한 용의자일 수 있다.
“남원경찰서 최창민 경정이에요.”
“뭐? 누구라고, 최창민?”
동주는 의아했다. 왜 최창민이 2번이나 은수와 통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을까?
“혹시 문자메시지 내용은 확인됐을까?”
박 경위는 난처한 표정이다.
“실은 확인해봤는데, 내용이 좀······.”
“아니,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뜸 들이지 말고 바로 말해봐.”
“그게······.”
박 경위는 동주에게 서류 한 장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은수 휴대폰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그곳에는 최창민이 어제 6시 50분에 보낸 장문의 문자메시지가 있었다.
[ 은수야! 네가 다녀간 이후 많은 생각을 했어.
네가 우리 서를 떠난 게 벌써 반년쯤 됐구나.
그동안 마음 정리된 줄 알았는데.
오늘 널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나 런던으로 떠나는데, 네가 밟혀서 도저히 못 갈 것 같아.
혹시 나랑 같이 런던으로 가지 않을래?
나 정말 너 많이 좋아해.
지금 출발할 테니까 1시간 뒤에 너희 집 근처에서 얼굴 보자.
꼭 만나줘 부탁이야! ]
동주는 깜짝 놀랐다. 최창민이 은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게다가 은수가 실종된 이 상황에서 이런 내용의 문자메시지라니. 혹시 최창민이 은수를 데리고 간 걸까?
“혹시 최 과장에게 전화해봤어?”
“아니요, 저희 서장님에게 보고하고 어떻게 할지 정하려고요. 지금 올라가야 해서, 서류 정리 좀 할게요.”
“아, 그래.”
박 경위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동주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은수가 태호와는 다퉜고, 최창민으로부터는 뜻밖의 고백을 받은 상황이다. 은수가 실종된 무렵에 태호는 어찌 된 일인지 연락이 안 됐다. 그런데 은수가 실종된 시각에 최창민이 광주에 있었고, 심지어 양림동 부근에 있었다.
동주는 인터넷으로 남원경찰서 교통과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바로 그곳으로 전화해 최창민 과장을 찾았다. 최 과장은 오늘 오전에 연가를 냈고, 오후에나 출근한다고 한다.
최 과장의 휴대폰 번호를 물었으나, 개인정보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답답하지만 북부경찰서에서 어떻게 조치하는지 기다려볼 수밖에 없다.
그때 천상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 상진아!”
“나 지금 광양에서 출발했어. 야! 드론 타고 올라오면서 보는데 장관이다. 컨테이너 70개가 트럭에 실려서 지금 고속도로를 줄지어 가고 있거든.”
“아, 그래. 고생이 많다.”
“야!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동주는 어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데다가, 은수 걱정 때문에 목이 좋지 않았다. 계속 가래가 끓고 머리도 아픈 상태다. 아마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실은 어젯밤에 은수가 실종됐어.”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은수 실종사건 때문에 어제부터 계속 북부서에 있어.”
“설마, 진짜? 안 되겠다. 컨테이너 다 하적하고 나도 그쪽으로 가볼게.”
“아니야, 여기 와도 지금은 할 일이 없어. 나도 여기 수사계획까지만 들어보고, 출근하려고.”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은수가 왜?”
“어제 은수 동네를 샅샅이 뒤졌는데, 아무런 단서도 못 찾았어. 계속 조사 중이니까 조금 지켜보려고.”
“야, 하필 이런 때에. 아무튼 힘내고,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금방 돌아올 거야. 우리 그렇게 생각하자.”
“그래, 고맙다. 상진아! 조심히 올라와.”
“다시 연락하자.”
“응.”
그때 서장실에 다녀온 박 경위가 수사과장 박홍식 경정과 함께 동주에게 다가온다.
“이 변호사, 오랜만이야.”
“네, 과장님. 잘 계셨죠?”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하······!”
“혹시, 수사계획은 어떻게 정하셨을까요?”
“응, 방금 서장님께 보고드리고 허락받았어. 지금까지도 송 팀장 휴대폰 꺼져 있고, 집이나 그 누구에게도 연락이 없어. 이 시간부로 경찰 간부 납치사건으로 보고,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아, 고맙습니다.”
“우선, 어제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김태호와 최창민 모두 지금 바로 소환조사할 거야. 그리고 송 팀장이 수사했던 사건 중에서 박 경위가 의심스럽다고 한 두 건에 대해서도 수사팀을 짜서 연관성을 조사해야지.”
“과장님, 특히 서강파 기오성 관련한 사건을 잘 살펴봐 주십시오. 아무리 봐도 그쪽이 마음에 걸립니다.”
“나도 그렇게 보고 받았어. 아무튼 오늘 형사 1팀은 다른 사건 조사는 중단하고, 바로 양림동으로 가서 탐문수사 시작할 거야. 다시 주변 CCTV와 차량 블랙박스 영상 찾아서 어떻게든 단서를 찾아봐야지.”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이 변호사가 지금까지 고생해줬다고 들었어. 고맙고, 이제 수사는 우리에게 맡기고 자네 일 봐. 알았지?”
“네. 우리 송 팀장 꼭 찾아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당연하지, 우리 자식인데. 내가 꼭 찾을게. 약속할게.”
수사과장 박홍식은 20년 이상 수사업무만을 전담해온 베테랑이다.
수많은 강력 사건을 해결해왔고, 범죄에 대한 촉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박홍식이 전면에 나서 그나마 위안이 됐다.
동주는 박 경위에게 김태호와 최창민의 조사가 끝나면 꼭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박 경위는 동주의 간절한 마음을 어제부터 옆에서 직접 목격했기에,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제발! 차라리 최창민이 은수를 데려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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