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보스의 분노
아포칼립스 D-10, 2029. 4. 4. 광주지방검찰청 714호 검사실.
“남수혁 씨, 그날 광주에서 화순 너릿재 터널을 통해 보성까지 간 후 남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여수까지 갔죠?”
“······.”
“여수항에서 ‘기선호’를 빌려 금오도로 갔고, 다시 금오도에서 30분 정도 바다로 나가 그곳에 진상두 시체를 버렸죠?”
“아, 아닙니다.”
남수혁은 천 검사가 어떻게 자신의 경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건지 의아해하는 눈치다.
“우리가 이미 ‘기선호’ 확보했어요. 남수혁 씨, 그 배에 해상 내비게이션이 있었던 건 몰랐죠?”
“······!”
“그날 운항경로를 보니, 시체를 어디에다 버렸는지 대충 알겠더라고. 이미 해양경찰이 그곳에 부표 띄우고 수색하고 있어.
그, 누구야 기선호 선장 홍두식 씨, 지금 부산에 있던데······. 기오성 씨! 남수혁이 일 처리를 이렇게 해놓은 줄 전혀 몰랐죠?”
“······!”
기오성은 얼굴을 찡그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 변호사님, 저 더는 조사 못 받겠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 가지고 계속 이렇게 윽박지르는 거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그만 가시죠.”
기오성은 더 조사가 진행되면 불리할 것임을 직감했다. 자신이 대비하지 못한 부분만 꼭 집어서 묻는 천 검사의 신문에 이미 기가 꺾이고 말았다.
“천 검사님, 오늘 조사는 여기까지만 하시죠. 저희 의뢰인이 몹시 피곤하고, 힘든가 봅니다. 다음 일정 잡아주시면, 그때 또 출석하겠습니다.”
정 변호사가 기오성을 거들고 나섰다. 천무용은 계속 수사하길 원했지만, 이들이 줄곧 부인하거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의미 없이 붙잡고 있는 꼴이 된다.
“그럼, 기오성 씨에 대한 조사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런데 남수혁 씨는 안 됩니다. 증거인멸의 우려도 있고, 더 조사할 게 있어서요.”
“아, 안 됩니다. 저도 오늘 조사 여기까지만 받겠습니다. 정 변호사님, 저, 몸이 너무 안 좋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남수혁은 꾀병까지 부리며, 어떻게든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천 검사님, 오늘 전체적인 조사는 여기까지만 하시죠. 영장이 발부된 것도 아닌데, 저희도 방어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죠. 오늘 처음 듣는 이야기도 많아서요.”
정태수가 남수혁까지 데리고 나갈 판이다.
“음······, 오늘 조사를 마치지 못하면 이분들이 증거를 조작하거나, 없앨 염려가 있는데······. 실은 오늘 조사 마치고 구속영장을 신청하려 했거든요. ······정 그러시다면 오늘 조사는 여기서 마치는데요. 단, 몇 가지는 꼭 대답해주세요.”
천 검사가 뜸을 들인다.
“음······, 기선호 선장 홍두식 씨, 어디에 숨겼어요?”
“무, 무슨 소립니까. 저흰 진짜 모르는 일입니다.”
기오성과 남수혁이 동시에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좋아요. 그럼 우리가 찾아내면 되죠. 하나 더, 송은수 팀장 누가 잡아갔어요?”
“네? 누구요?”
이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 반문한다.
“기오성 씨! 북부서 형사1팀 송은수 경감 어떻게 했어요?”
“전 정말 모르는 사람입니다. 송은수 경감이 누굽니까?”
“유흥주점 살인사건 조사하던 북부서 팀장이잖아요! 알면서 이렇게 시치미 뗄 겁니까?”
“······!”
기오성은 남수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는 인물인지 묻는 표정이다.
“남수혁 씨, 송 팀장 어떻게 한 거예요?”
“정말, 이건 진짜로 저희와 관계없는 일입니다. 진짜 모르는 이름이에요.”
남수혁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손까지 흔들며 극구 부인한다.
“아니 우리가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이렇게 검찰 조사까지 받는 중에 그것도 경찰 간부를 납치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것 같습니까? 진짜 우린 관련 없어요. 헛다리 짚으신 거라고요.”
기오성은 상황 논리까지 끌어대며 완강히 부인했다.
* * *
천무용은 조사를 마치고 기오성 일행을 돌려보냈다. 이들에게 엄포를 놓긴 했지만, 아직 기소할 정도의 물증을 확보하진 못했다.
정보원은 내부 소문을 알 뿐, 직접 목격한 게 아니었다. 기선호 선장 홍두식도 부산에 있다는 건만 알 뿐 그 행방을 찾지 못했다. 진상두 시체도 해류가 거센 깊은 바다에 버린 탓에, 과연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들 내부에 갖가지 불안을 심어 주었으니, 분란이 발생해 확실한 변절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천무용은 동주의 전화를 받았다.
“형님! 조사는 다 마치셨어요?”
“응, 방금 끝냈어.”
“뭐라도 성과가 있습니까?”
“송 팀장 이야기를 물었어. 그런데 실제로 모르는 눈치던데······.”
“네?”
“물론 정확한 건 아닌데, 이놈들이 저지른 게 아닐 수 있다는 느낌이야. 정마리아가 단독으로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아······!”
“실마리라도 찾으려면 결국 정길수를 누가 죽였고, 왜 죽였냐를 알아야 하는데······.”
천 검사도 정보가 부족해 딱히 짚이는 게 없었다.
“형님! 정길수가 친구들하고 헤어지고 그 시각에 유흥주점을, 그것도 혼자 찾아간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혹시 정길수와 임안나가 서로 아는 사이 아니었을까요?”
“음······, 좋은 지적이야. 임안나가 기오성의 여자라면 아마 술 접대는 시키지 않았을 테고. 그러니 술 때문에 생긴 그런 우발적인 사건은 아닌 것 같아.”
“진짜 기오성이 모르는 눈치던가요?”
“정확한 건 아니지만, 내 직감으론 지금까지 몰랐던 눈치였어.”
“만일 그랬다면, 왜 정마리아가 기오성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요?”
“음, 임안나가 엮여 있어서 그랬을까?”
“만약, 기오성이 몰랐다면 그가 송 팀장을 잡아간 건 아니라는 건데요.”
“그렇겠지. 남수혁이 단독으로 했거나, 정마리아가 남수혁도 배제하고 혼자 다른 루트로 했을 수 있지. 그나저나 어쩌냐, 경찰 쪽에선 아직이야?”
“네. 아직 별다른 소식이······.”
“공개 수사하겠다고 하진 않아? 빨리 찾으려면 언론을 이용해야 할 텐데, 제보자가 나와야 빨리 찾지.”
“저도 같은 생각인데, 혹시 아니면 낭패라서 조심스러운가 봐요.”
* * *
같은 시각 조선호텔 7층 서강파 회장실.
기오성은 간부 전부를 소집했다.
“남수혁, 이리 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기오성이 호랑이 소리를 냈다. 남수혁은 소파에서 일어나자마자, 기오성 앞까지 달려갔다. 기오성은 기다렸다는 듯 그가 앞에 서자마자,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했다.
고개가 뒤로 젖혀진 남수혁은 휘청하며 뒷걸음질 쳤다. 입술과 코를 정통으로 맞아 양쪽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소매로 피를 훔쳐낸 후 다시 똑바로 섰다.
“너 이 자식! 우리 조직을 말아 먹으려고 작정한 거야? 아까 그 유흥주점 살인 사건 뭐야? 뭐냐고, 이 새끼야!”
남수혁은 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
“회장님!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야, 죽을 죄를 지었든 어쨌든 나한테 보고를 했어야 할 거 아니야. 지금까지 꼭꼭 숨겨뒀다가, 오늘 이 개 같은 상황을 만들어!”
기오성은 무릎 꿇고 있는 남수혁의 옆구리를 오른발로 힘껏 걷어찼다. 남수혁은 배를 쥐어 잡고는 쓰러졌다가, 금방 다시 일어나 무릎을 꿇는다.
“어이, 신기수! 너도 이거 알았어?”
“아닙니다, 회장님. 전혀 모르는 내용입니다.”
“신기수, 네가 어떻게 이런 일을 모를 수가 있어, 응? 조직 안에서 발생한 일인데, 너무 신경 안 쓴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이런 큰일이 있었다면 제가 챙겼어야 하는데, 제 불찰입니다.”
신기수도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기오성 앞으로 가 무릎을 꿇는다. 눈치를 보고 있던 차주석, 강대주도 뒤따라 신기수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하, 참······! 이봐 남수혁, 누가 죽인 거야?”
“······.”
“빨리 말 안 해!”
“제, 제가 흥분해서 그만, 죄송합니다.”
“아니, 도대체, 우리 업장에서 왜 그 짓을 하냐고. 너 정신이 있는 놈이야?”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놈이 안나 씨를 괴롭혀서, 그만.”
“가만 있어 봐. 한 달 전엔가 안나가 응급실 간 날, 바로 그날이구만. 너희들 그때 안나가 넘어지면서 뭐, 병이 깨지고 해서 그랬다고 한 게, 다 거짓말이었어. 어이구, 이놈들 봐라.”
기오성은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한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남수혁은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 처리 한 건 누가 코치한 거야? 남수혁, 네 머리로는 이런 일을 꾸밀 리가 없는데, 누구야?”
“······.”
“제대로 말 안 해?”
“저, 정마리아 님께서 그렇게 하자고 해서.”
“으흠,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 야산에 묻은 건 네 생각이야?”
“네. 그날 하도 경황이 없어서 우선 가까운 데 묻어야 할 것 같아서······.”
“그러니까, 화순 쪽으로 가다 그냥 아무 야산이나 들러 묻어버렸구먼.”
“죄송합니다. 제가 더 신경 써서 처리해야 했는데,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아! 모두가 날 속였다 이거지.”
기오성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힘겹게 억누르고 있다. 조직의 앞날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이다.
전두만, 진상두 건으로도 벅찬데, 정길수 살인 사건까지 무마해야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어떻게든 천무용의 조사를 막아야만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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