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미궁

아포칼립스 D-10, 2029. 4. 4. 조선호텔 7층 회장실.
“참, 그 북부서 여 경감 이야기는 무슨 소리야?”
“······.”
“남수혁, 넌 아는 이야기일 것 아니야!”
“회장님, 저도 아까 처음 들은 이야기입니다. 정 여사가 경찰 조사받으러 간 것까지만 알고 그 뒤로는 저도 모르는 일이라······.”
남수혁이 우물쭈물 대답했다.
“뭐, 벌써 경찰 조사까지 받으러 갔다 왔다고? 아니 조직 일을 왜 나만 모르냐고. 하, 정 여사 문제가 많은데······. 회의 끝나는 대로 올라오라고 해, 알았어?”
“네, 회장님!”
“그리고 강창배 이야기는 또 뭐야? 세상에 대포폰의 출처가 까발려진다는 게 말이 돼? 내가 20년간 이 일을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안 그래 신기수?”
“대포폰이라면 다 폐기했을 텐데, 어떻게 된 건지······.”
신기수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이 머저리 같은 녀석이 강창배에게 어떻게 일을 시켰길래. 어이구, 그날 우리가 사용한 대포폰 10개가 고스란히 다 까발려졌다고. 위치추적에 문자메시지까지.”
기오성은 화를 못 참고, 다시 남수혁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이 자식 때문에 우리 조직 다 말아먹게 생겼어. 천 검사가 우리가 한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다고. 이게 도대체 말이 돼? 진작 그 끄나풀 찾으라고 했잖아! 그 자식 빨리 찾지 못하면, 우리가 다 죽게 생겼다고.”
“죄송합니다.”
간부들은 모두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오늘부터 모두 비상이야, 알았어? 집에 갈 생각 말고.”
“네, 회장님!”
“가장 먼저 그 배신자 놈 내일까지 찾아내, 알았어?”
“네, 회장님!”
“기선호 선주라는 놈, 그놈까지 천 검사에게 넘어가면 정말 그때는 끝장인 거 알지? 잘 조치한 거 맞아?”
“네, 회장님. 꼭꼭 숨겨뒀습니다. 절대 천 검사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남수혁은 사고를 친 강창배에게 직접 기선호 선주를 데리고 숨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유흥주점하고 여기 또 압수수색 들어올 게 뻔하잖아! 지금 당장 처리할 것들 깨끗이 정리해, 알았어?”
“네, 회장님!”
“야, 강대주! 왜 무등산 관련해서 보고가 없는 거야? 일은 잘하고 있어?”
“네, 회장님. 군 간부들은 이미 매수해두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저녁에 레이더기지를 살펴보러 갈 계획입니다. 다녀와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우리 목숨이 달린 거니까 그 일도 잘 처리해. 너도 수혁이처럼 사고 치는 건 아니겠지?”
“절대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강대주 역시 바짝 군기가 든 모습이다.
“빨리 나가서 일해. 남수혁, 넌 남고.”
간부들이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남수혁은 혼자 남아 계속 기오성에게 맞을 걸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수혁아! 이리와 앉아.”
왜지? 기오성의 목소리와 톤이 한층 차분하고, 심지어 따뜻하기까지 하다.
“네, 회장님!”
남수혁은 기오성 가까이 앉아 고개를 푹 숙인다.
“고개 들어! ······우리 담배나 한 대 피자.”
기오성이 먼저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남수혁에게 새로운 걸 건넸다. 흰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간다.
“편하게 피워, 예의 찾지 말고.”
“네, 회장님. 고맙습니다.”
“오늘 내가 너 심하게 때린 거, 네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닌 건 잘 알지?”
“네. 회장님.”
남수혁은 눈물을 글썽이더니, 코까지 그럭그럭 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부하들 중에 네가 가장 충성스러운 거 내가 잘 안다. 네가 그놈 때려죽인 것도 나 대신 화낸 거란 것도 충분히 이해해.”
“······!”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나라도 때려죽였지. 감히 안나를 괴롭혀, 죽어도 싼 놈이야.”
“죄송합니다. 제가 일 처리를 더 잘했어야 하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괜찮아. 앞으로 어떻게 할지만 잘 정하면 돼. 그래, 어떻게 할 거야?”
기오성은 꼬리를 자르는 방식으로 뒷수습할 생각이지만, 먼저 내색하지 않았다.
“도저히 못 빠져나올 상황이면, 저나 제 부하 중에서 하나가 교도소 들어가겠습니다. 우리 조직에는 절대 폐가 안 되도록, 제가 다 책임지고 정리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그 여자 경감 누가 손댄 것 같아?”
기오성이 실눈으로 남수혁을 지긋이 바라본다.
“전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정말 아닙니다.”
“정 여사가 손 쓴 걸까?”
기오성은 남수혁을 달래며, 납치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다.
“모르겠습니다. 그건 정 여사님과 직접 이야기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 여사 말고 또 누가 손볼 사람 있어?”
“그 사건은 저와 제 부하들 그리고 정 여사님만 압니다. 다른 간부들이 손 쓴 건 아닐 겁니다.”
“수혁아! 아무리 봐도 다른 간부들은 못 믿겠어. 네가 꼭 그 끄나풀 찾아내라, 알았지?”
“네, 회장님! 꼭 제가 찾아내겠습니다.”
“그리고 천 검사, 말로 통할 인간 아니다. 위에서 누른다고 그만둘 위인이 아니야. 다른 방법 좀 찾아봐. 너 잘하는 거 있잖아?”
“네, 회장님! 제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생각해 놓은 게 있습니다. 조만간 좋은 결과를 내놓겠습니다.”
“그래, 우리 수혁이, 너만 믿는다.”
“네, 회장님. 믿음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저랑 제 부하들이 저지른 이번 실수, 다 만회할 수 있도록 이 한 몸 다 바쳐서 꼭 해결해 내겠습니다.”
“그래, 그런 깡다구가 있으니까, 내가 널 제일 믿는 거야. 나가 봐! 다친 데 있으면 바로 치료하고.”
“네, 회장님!”
* * *
동주는 주점에서 최창민의 알리바이를 확인한 후 다시 북부경찰서로 갔다.
어제 당직근무를 한 박시영 경위가 출근해 있었다. 양림동 부근 CCTV와 정차된 차량의 블랙박스 분석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박 경위, 분석결과는 어때?”
“어제 7시 반부터 9시까지 양림동에서 이동한 차량이 100여 대가 넘더라고요. 아마 다 분석하고 연락해서 탑승자 확인하는데, 며칠은 걸릴 것 같습니다.”
“특별한 단서나 이상한 점은 없었을까?”
“이상하게도 송 팀장님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양림동에 좁은 골목이 많아서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는 건지?”
“하! 목격자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게요. 오늘 수사팀 전부가 양림동에 가서 탐문하고 있는데, 아직 목격자가 없네요.”
“혹시, 공개수사 계획은 없어?”
“음, 서장님이 조금 꺼리시는 것 같더라고요. 연락이 안 된 게 아직 만 하루도 넘지 않아서.”
“아무리 봐도 실종된 게 분명한데, 이렇게 넋 놓고 시간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꼭 다시 한번 부탁해줘.”
“······!”
“공개 수사했다가 갑자기 아무 일도 아닌 거면, 비난받을까 봐 그러시는 것 같은데. 그건 그때 해결할 수 있지만, 송 팀장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네, 저도 같은 생각이라, 그렇게 건의했는데. 아시다시피 높은 분들은 자기들 앞날이 더 중요하잖아요.”
“하아······! 혹시 조그만 단서라도 발견하면 바로 연락해주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시죠.”
“그래, 고마워.”
동주는 풀이 죽은 채로 북부경찰서를 나왔다. 주차장에는 천상진과 곽형규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동주가 상진에게 은수의 실종을 알렸고, 상진이 다시 형규에게 말한 것이다. 이들은 은수가 걱정돼 이곳까지 왔다.
“동주야, 뭐 좋은 소식 없어?”
상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없어. 공개수사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안 된대.”
“도대체 어떤 놈이 우리 은수를 데려간 거야?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잖아. 오후엔 너랑 남원에 갔었고. 야, 불과 몇 시간 만에 실종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우리 은수 괜찮겠지?”
동주는 은수가 당하고 있을 고통이 떠올라 갑자기 울컥해졌다.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상진의 어깨에 머리를 툭 기대고, 눈을 감는다.
어제부터 극도의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피로가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만 같다.
“괜찮을 거야, 은수가 많이 강해졌잖아. 이번에도 어떻게든 잘 이겨낼 거야. 금방 돌아오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형규는 동주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위로해준다.
“상진아, 실은 아까 점심때 무용이 형 만나러 갔어.”
“아, 그랬어? 형이 도와준다고 하던?”
“응, 실제로 많이 도와주셨어.”
“아, 그래.”
“은수가 담당하던 사건 중에 조선호텔 유흥주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있어. 아무래도 그 사건과 은수의 실종이 관련된 것 같아.”
“뭐? 그래서?”
“형이 서강파 애들 조사할 때 직접 물어봤는데, 은수 실종에 관여하지 않은 눈치라는 거야. 난 아무래도 믿기지 않아서······. 게다가 유흥주점 사장인 정 마리아도 의심스럽고.”
“아······.”
“네가 조선호텔을 자주 출입하잖아? 그리고 행동대장도 잘 알고 하니까, 오늘 거기 가서 분위기 좀 살펴봐 줄래? 혹시 은수가 서강파에 붙잡혀 있으면, 뭔가 낌새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동주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진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다.
“그런 일이라면 내가 잘하지. 오늘 검찰 조사도 받았겠다, 분명 뭔가 분위기가 바뀌었을 거야. 그래, 내가 가서 뭐라도 한 번 찾아볼게.”
“고맙다. 오늘 생존팀 회의에는 네가 일이 있다고 대신 말할게. 형규야, 넌 회의에 갈 수 있지?”
“아, 미안해. 오늘 야근이라서,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지금도 간신히 빼고 나온 거야, 너 얼굴 보려고. ······하루 사이에 많이 핼쑥해진 것 같다. 동주야, 힘내!”
형규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동주를 바라본다.
“응, 고맙다. 난 회의 때문에 준비할 게 많아서, 이제 가볼게.”
“그래 우리 또 연락하자.”
동주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처량했다. 얼마나 은수를 걱정하고 또 사랑하는지, 그 모습이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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