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정마리아 (2)
“이 자식이 미쳤나, 어디에서 행패야! 죽고 싶어?”
남수혁이 정길수의 앞을 가로막고, 집게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밀면서 말했다.
“아니, 이 X발, 이 X자식이 건방지게 뭐 하는 짓이야. 안 비켜!”
정길수는 만취한 상태라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치밀어 오른 화를 욕지거리로 뱉어내고 있다.
“어, 이놈 봐라. 입이 제대로 걸구나.”
화가 난 남수혁은 오른 손바닥으로 정길수의 뺨을 제대로 가격했다. 휘청거리는 정길수, 임안나를 잡고 있던 손도 어느새 풀리고 말았다.
남수혁은 그 찰나를 노려 오른발로 그의 종아리를 후려쳤다. 그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다. 그러자 남수혁은 정길수의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빈방으로 질질 끌고 간다.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안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보자 보자 하니까, 완전히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오늘 한 번 뒤지게 맞아봐야 정신 차리지.”
남수혁은 룸에 세팅 되어 있던 양주병을 들어 정길수를 후려치려고 했다.
그때 옆에서 안절부절하며 지켜보던 임안나가 비명을 지르며 남수혁 앞으로 뛰어들었다.
남수혁은 애초에 정길수의 등을 치려고 했는데, 갑자기 임안나가 뛰어드는 바람에 이미 휘두른 양주병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안나를 치지 않으려 급하게 방향을 튼 게 그만 정통으로 정길수의 머리를 가격하고 말았다.
게다가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양주병이 산산조각 나고, 깨진 유리 조각이 옆에 있던 임안나의 팔에 튀어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 룸 바닥은 정길수의 머리에서 쏟아진 피와 임안나의 팔에서 흘러내린 피가 뒤범벅돼, 흥건하게 젖어 있다.
임안나는 팔의 통증보다는 정길수의 상태가 걱정돼, 피범벅이 된 채로 그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길수는 콜록, 콜록 기침하며, 흐릿한 눈으로 안나를 바라보고 있다.
“사장님! 정신 차리세요.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안 돼요. 사장님!”
임안나는 통곡하며 정길수를 끌어안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와 도와주려 한 것인데. 어쩌다 이 참혹한 상황에까지 이르고 말았으니! 이 모든 게 자기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에 괴로웠다.
정길수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그녀에게 가장 많은 정을 준 사람이다. 비록 사랑의 감정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빠 같은 따뜻한 정은 느끼고 있었기에 그가 고통받는 건 감당할 수 없었다.
임안나는 자기 팔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것도 잊고, 정길수의 몸이 싸늘히 식어가는 것에 넋이 빠져 있었다. 몸과 머리를 계속 흔들며, 눈을 뜨라고 소리치고 있다.
갑작스러운 소란이 거슬린 정마리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직접 확인하러 나섰다. 생생한 살인의 현장, 아찔했다.
남수혁은 예기치 않게 일이 커진 것 때문에, 정신을 놓고 줄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임안나는 정길수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에 올려놓고, 멍하니 흐르는 피를 바라보고 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공들여서 임안나를 기오성에게 붙여놨는데, 벌써 불미스러운 남자 문제로 정떨어지게 할 순 없다.
남수혁이 이 짓을 저지른 줄 알면, 기오성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간 여러 사고를 쳐 신뢰를 잃었는데, 불에 기름을 끼얹을 수는 없다. 내 손에서 묻어버려야 한다.
정마리아는 남수혁을 따로 불러 조용히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기오성에게 알리지 말고. 시체를 호텔 뒷문으로 빼 적당히 처리하면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남수혁은 기오성이 모른다면 당장 걱정할 일이 없어, 흔쾌히 수락했다.
임안나 역시 계속 혼이 빠진 상태로 있을 수는 없었다. 어서 치료도 받아야 하고, 정신 차려 실리를 챙겨야만 한다. 필요한 돈을 모을 때까지는 이 생활을 견뎌내야만 했다.
*
“좋아, 그런데 이 건은 어떻게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오성은 정길수 사건 대책이 궁금했다.
“정태수 변호사랑 이야기 끝났어요. 국과수에서 부검했는데, 지문이나 특별한 게 나오지 않았데요. 계속 모른다고 하면, 별다른 증거가 없어 문제없을 거랍니다.”
“그래? 그런데 말이야. 그 여자 경감 이야기는 뭐야? 뭐, 실종됐다는 경찰 있잖아.”
“나도 모르는 이야기예요. 내가 미쳤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 경찰 간부를 작업하게.”
“그러지? 정 여사가 한 게 아니지?”
“제가 그렇게 바보로 보여요?”
“알지, 자기가 그런 일 할 사람이 아닌걸. ······그럼 누가 했을까? 설마 수혁이가 자기가 하고는 발뺌하는 걸까?”
기오성이 정마리아를 뚫어지라 바라본다.
“수혁이도 아니에요. 그 여자 경감이 워낙 깐깐하게 묻고, 임안나를 의심하는 눈치더라고요.”
“그래?”
“조사 끝나고 수혁이한테 이야기했더니, 뭐, 욕을 하면서 어떻게 해버리겠다는 둥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미친 짓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어요.”
“하아! 그놈 정말 어디로 튈지 몰라서, 진짜 문제라니까. 확실히, 수혁이가 안 한 거 맞아?”
“아시잖아요. 수혁이가 내 말은 잘 듣는 거. 그놈이 좀 멍청하긴 해도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지가 몇 년인데, 그 정도 사리 판단은 할 거예요.”
정마리아가 남수혁을 두둔하고 나선다.
“그럼, 도대체 누가 처리했다는 거야! 딱 봐도 우리 같은데. 천 검사도 대놓고 우리가 한 짓이라고 몰아붙였단 말이야.”
“제가 따로 조사해볼게요.”
“그래, 당신이 잘 살펴봐 줘. 신기수 그 친구도 요즘은 총기가 떨어졌나 봐. 조직 관리가 영 엉망이야.”
“신기수도 너무 믿지 마세요. 그렇게 웅크리고 있는 놈이 제일 꿍꿍이가 많은 법이니까. 알았어요?”
“알지. 나도 잔머리 좀 굴린다는 얘들은 별로 안 믿어. 차라리 수혁이가 백번 믿을 만하지.”
정마리아는 기오성과 헤어진 후 밀실에서 남수혁을 만났다.
기오성에게 맞아 입이 부르트고, 눈가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정마리아는 그를 침대로 데리고 가 눕히고, 손수건에 물을 묻혀 정성스럽게 닦아 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의 따뜻한 손길에 분노로 가득했던 마음마저 어느새 눈 녹듯 녹아내린 남수혁.
그의 눈빛은 이미 정마리아의 풍만한 가슴에 이끌려 요동치고 있었다. 남수혁은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의 허리를 잡아끌어 눕히고는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이들은 그렇게 불타는 밤을 보내며,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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