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레이더기지
아포칼립스 D-10, 2029. 4. 4.(수) 오후 6시.
강대주의 오른팔 행동대장 오기철이 물류 트럭을 끌고 와 조선호텔 앞에 정차한다.
“형님! 출발하시죠.”
강대주는 트럭 조수석에 탑승했다. 그곳에는 갈아입을 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물류 직원 신분으로 레이더기지에 잠입해, 그곳의 상황을 직접 파악할 계획이다. 트럭이 무등산을 향해 출발했다.
“기철아! 너, 나 믿지?”
“아,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저야 당연히 형님하고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 놈 아닙니까.”
“그래서 말하는 건데, 내가 무슨 일을 벌이더라도, 넌 날 믿고 따라와야 한다. 알지?”
“걱정하지 마십쇼. 전 형님한테 목숨 빚진 놈 아닙니까? 형님이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한다니까요.”
오기철이 모는 물류 트럭이 무등산 원효사 길에 있는 검문소에 도달했다.
그 뒤로 레이더기지까지 쭉 폭 4m가량의 산악도로가 나 있다. 주말에만 몇 차례 무등산 장불재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다닐 뿐, 평소에는 공군기지 차량만이 이용할 수 있는 길이다.
오직 예외로는 조선 물류가 공군기지에 식자재와 주류를 납품하고 있어, 그 물류 트럭만 이 검문소를 통해 기지까지 올라갈 수 있다.
후방에 있는 군인들은 위험한 상황이 없으니 경계가 허술할 수밖에 없다. 이곳 경계병들이 가지고 있는 총에는 공포탄만 들어 있을 뿐이다.
군인들은 오기철을 반갑게 맞았다. 오기철은 조수석 바닥에 두었던 쇼핑백을 군인에게 건넨다.
“소대 회식할 때 쓰시라고, 좋은 양주 하나 담았습니다.”
“아이고! 오실 때마다 이렇게 좋은 걸 주시고······. 소대장님께 잘 전하겠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직원은 처음 보는 분 같은데요?”
“아, 네. 이번에 새로 채용한 신참입니다. 인사드려, 박 병장님이셔.”
“잘 부탁드립니다. 신입직원 강대주라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어서 들어가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쇼, 박 병장님!”
오기철은 트럭을 끌고 천천히 산악도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군바리들 꼬시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양주가 최곱니다. 이번에 조니워커 블루라벨로 2병 올렸으니, 한동안 제대로 된 검문은 없을 겁니다.”
“······!”
“원래는 저희가 식자재를 다 내려야 하는데, 꼬박꼬박 상납했더니 언제부턴가 병사들이 알아서 다 내려주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둘이서만 가도, 별로 힘들지 않을 겁니다. 하하!”
오기철은 자신이 군인들을 구워삶아 수월하게 정탐할 수 있는 걸 생색내고 싶어 했다.
“야! 많이 늘었어, 오기철!”
“하하!”
“나중에, 우리 애들 짐칸에 몰래 태우고 들어가야 하니까, 돈 아끼지 말고 분위기 잘 조성해놔.”
“네, 형님!”
트럭이 무등산 레이더기지 앞에 도착했다. 이 기지에 대해서는 세간에 말이 많다. 워낙 정보가 차단된 데다, 무등산 정상 부근 넓은 대지를 50년 이상 독차지하고 민간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미사일 기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적의 미사일이 날아올 때 이곳에서 요격할 수 있는 방어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레이더기지 지하에 미군의 이동식 전술 핵무기가 보관되어 있다는 말도 많았다. 그러하리라는 설만 난무할 뿐 실제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곳 레이더기지에는 높이 30m, 폭 5m가량의 대형 철제 구조물이 3개나 우뚝 서 있다. 그곳에는 전파를 반사하거나 모으는 수십 개의 접시 모양 위성안테나가 부착되어 있었다. 광주 시내에서도 이 레이더 철탑이 보일 정도이니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왼편에는 군인들의 숙소나 식당 등으로 사용되는 막사 건물이 3개 동 연이어 있고, 맞은 편에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무동이 있다. 막사동과 사무동 사이에는 조그만 연병장이 자리하고 그 위쪽에 20여 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사무동 건물 뒤편에는 큰 언덕이 있다. 그곳에 지하벙커로 들어가는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그런데 정보통에 의하면 여긴 늘 잠겨 있고, 장기 근무자들도 그 철문이 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철문 이외에 별도의 출입구가 있다는 이야기다. 겉모습만 봐서는 어느 건물에 지하벙커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트럭을 주차장에 세웠다. 검문소에서 미리 연락을 해두었는지, 식자재를 받으러 온 취사병과 말단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기철이 차에서 내리자, 하얀 주방 모자를 쓴 병사 하나가 다가온다.
“제가 팩스로 보낸 물품들 다 이상 없이 올라온 거죠?”
“네, 물론이죠. 김 병장님 분부대로 넉넉하게 가져왔습니다. 생닭은 회식하신다고 해서 5마리 정도 더 가져왔습니다. 안주로 치킨이나 닭볶음 하시라고······.”
“고맙습니다!”
“소주도 이번에 새로 나온 참마음 한 박스 가져왔으니까, 드셔 보시고 또 말씀해주십시오.”
“역시 우리 오 사장님밖에 없다니까, 하하하!”
“그나저나 올라오다 보니, 맞은편 길 쪽에 못 보던 차들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던데, 무슨 행사라도 있습니까?”
“아이고! 그건 기밀이라서 저도 말 못 해 드립니다. 다들 고급 차인데, 대충 눈치가 있으실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온통 외제차에 대형차들 같던데, 그분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 그런 거 물으시면 안 된다니까요.”
김 병장은 말로는 대답할 수 없다면서도, 계속 큰 눈을 실룩거리며 입을 내밀어 사무동 쪽을 가리켰다.
오기철과 김 병장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강대주는 트럭에서 내려 참마음 상자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는 병사들을 따라서 막사동 오른편 끝에 위치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느 군대의 취사장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아까 들은 내용대로라면 벙커 연결통로는 사무동에 있고, 그 안에 벌써 고위직이나 VIP들이 대피해 와있다는 것이다.
강대주는 신발 끈을 묶는 척하면서 눈치를 살핀 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옆문을 통해 막사동을 빠져나왔다.
주차된 차량 사이로 재빠르게 몸을 숨기고는, 주위에 사람들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곤 물품을 나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사무동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 입구 양쪽에는 경비대원이 위치할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그곳에 실제 근무자는 없었다. 외부인의 침입이 있을 수 없다고 방심한 탓이다.
강대주는 유유히 사무동으로 들어갔다. 입구 양쪽으로는 경비실과 창고가 있고, 1층 건물 가운데는 널따란 광장으로 사방의 복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위층으로 올라가는 라운드 계단이 있고, 그곳을 통해 2층의 레이더실로 올라갈 수 있다. 왼쪽 복도 쪽에는 교육관과 정비실이 자리하고, 가운데 통로의 양쪽은 모두 행정실이다.
강대주가 오른쪽 통로로 향할 무렵 갑자기 방송에서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시간이면 자동으로 틀어지는 음악이다. 행정실 문이 열리고 군인들이 줄지어 나오기 시작했다.
재빨리 계단 아래 으슥한 부분에 몸을 숨겼다. 그곳에는 청소도구와 쓰레기통이 있어 몸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각 방에서 쏟아져 나온 군인들이 맞은 편 식당동으로 다 빠져나가자, 사무동이 고요해졌다. 강대주는 다시 몸을 움직여 이번에는 오른편 복도로 향했다.
그곳에는 컴퓨터실, 의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맨 끝 방에는 아무런 표지판도 붙어 있지 않고, 유리창에는 가림막이 짙게 드리워져 내부를 엿볼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 방이 수상하다.
‘지하벙커로 가는 통로가 이 방 내부에 있는 게 틀림없어.’
강대주는 둥글고 뭉뚱한 손잡이를 붙잡고 좌우로 세게 비틀어 보았지만, 잠긴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방안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렸다. 문에 귀를 대고 내부의 소리에 집중했다.
멀리서 여러 사람이 웃으며 손뼉을 친다. 희미하게 노랫소리도 들렸다. 술판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 지하벙커 입구를 닫아두었다면 이런 소리가 흘러나왔을 리가 없다.
고위직 가족들이 들어와 이렇게 흥청망청 놀고 있으니 이곳 분위기가 뒤숭숭할 수밖에. 경계경비는 형편없을 정도로 허술했다. 특히 저녁 식사 시간에는 더욱 허술하다.
강대주가 바닥에 내려놓았던 술상자를 다시 집어 들고는 사무동을 나서던 찰나,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거기 누군데 여길 들어왔어요?”
강대주는 당황했지만 놀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행정실에서 나온 병사 하나가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었다.
“네, 저는 부식 가지고 온 직원입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참마음을 행정실에 갖다 드리라고 해서요.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돌아가는 길입니다.”
“아, 그래요. 그게 요즘 조아라 씨가 광고 때리고 있는 참마음입니까?”
조아라는 아이돌 여가수로 국민 여동생, 국민 첫사랑으로 불리는 연예인이다.
“네, 맞습니다.”
“저를 주시면 제가 행정실장님께 드리겠습니다.”
“아! 네, 고맙습니다.”
강대주는 걱정을 한시름 덜어서인지 밝은 웃음을 지으며 술상자를 건넸다. 그가 트럭으로 돌아왔을 때, 오기철은 식당동 앞에서 주임원사 장성철을 만나고 있었다.
그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부사관으로 10년 넘게 이곳 레이더기지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번 레이더기지 탈취 작전을 위해서 반드시 포섭해야 할 인물이다. 오기철은 주변을 살핀 후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준비한 봉투를 건넸다.
서강파가 원하는 날만 잡으면 언제든지 이곳을 점령할 수 있도록 사전에 모든 준비를 해주는 대가다. 걱정 없는 100달러 지폐로 두둑이 담았다. 공무원 월급으로는 10년을 모아도 얻을 수 없는 큰돈이다.
무등산에서 내려오는 물류 트럭, 어둠이 짙게 깔려 전조등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오늘 정부 발표 들었어?”
“아, 저도 오늘 업장 관리하느라 뉴스도 못 봤습니다. 틀어드릴까요?”
“그래, 그 우주왕복선 온다는 거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
오늘 드디어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가 김해 국제공항에 들어왔다. 외부 연료탱크와 로켓 부스터까지 함께 그 위용을 드러냈다. 이제 이 우주왕복선은 내일 고흥에 있는 나로우주센터로 옮겨져 발사대에 자리 잡게 된다.
“야! 그럴싸하네, 그치?”
“네, 형님. 참, 오늘 광양에서 컨테이너를 70개나 사서 올라온 놈이 있답니다.”
“뭐? 그렇게 많이.”
“그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들이 고속도로에 쭉 줄지어 올라왔으니, 그것도 장관이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형님! 그 컨테이너가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어디로 갔는데?”
“그게 세상에, 지리산 꼭대기에 있는 무슨 휴게소로 갔다는 거예요.”
“음······! 어떤 돈 있는 놈이 살길을 찾고 있구나.”
“그렇죠, 딱 봐도 아시겠죠! 형님, 그런데 그 컨테이너를 산 놈이 세상에 우리 업장에 뻔질나게 다니는 천상진이란 놈이에요.”
“천상진? 나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 기가에서 놀던, 바둑도 잘 두고, 포커도 잘 친다고 소문난 그놈 아니야?”
“맞습니다.”
“너하고도 친하잖아? 맨날 죽기 살기로 포커치는 앙숙 아니야? 전화로 한 번 물어보지?”
“에이, 아무리 친해도 지금 시국에 사실대로 말하겠습니까?”
“하긴, 그 정도 규모라면 그놈도 남의 일 하는 게 뻔할 테니까. 그런데 궁금하긴 한데, ······도대체 어떤 놈이 우리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그러니까요.”
“우린 어떻게든 레이더기지를 탈취해볼까 생각했는데, 어떤 놈은 벌써 아예 산 정상에 뭔가를 만들고 있다 이거지······.”
“그런데, 형님! 그 상진이란 놈이 지금 업장에 떴답니다.”
“그래? 기철아, 오늘 그놈 작업 들어가자,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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