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비밀 누설 (3)
아포칼립스 D-9, 2029. 4. 5.(목) 오전, 조선호텔 부근 설렁탕집.
“상진아! 실은 너한테 부탁 하나 하자.”
강대주는 자못 진지한 모습이다.
“네? 무슨 부탁을······.”
“나, 솔직히 너희 형과 구면이야.”
“아······!”
“지난번 너희 형이 회사 압수, 수색하러 왔었는데, 그때 한참 서서 이야기한 적 있어. 그때 네 형하고 나눈 말이 있거든.”
“무, 무슨 말을 했어요?”
“그건, 너희 형한테 물어보면 알려줄 거야. 절대 나쁜 의미가 아니니까, 널 힘들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 너희 형하고 원수질 생각 없어.”
“저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그러니까, 네가 자리만 한 번 만들어주면 돼.”
상진은 난감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시, 실은 제가 형하고 사이가 좋지 않아요. 그래서 형이 절 믿질 않거든요. 특히 제가 서강파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걸 알기 때문에, 더더욱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래? 음······, 그냥 이렇게 전해. 난 노는 물이 다르다고.”
“예?”
“그렇게만 전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거야.”
상진은 이렇게 된 이상 될 대로 되라는 오기가 생겼다. 원래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고 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이왕 정보를 다 흘렸으니, 실속이라도 챙겨야지.
“저도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뭔데, 말해봐.”
“저, 실은 저희가 생존 벙커를 만들고는 있는데, 도무지 식료품하고 생필품을 구할 방법이 없어서요.”
“그래서?”
“이사님께서 물류는 다 잡고 계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저희에게도 물량 좀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음······. 돈만 넉넉히 준다면 어렵지는 않은데, 그건 아무래도 너희 형하고 이야기해보고 결정할게. 대화가 잘 되면, 그땐 바로 풀어줄게.”
“아, 고맙습니다.”
“오늘 저녁 7시에 보자고 해. 장소는 믿을 수 있게 형님이 잡으라고 그러고, 알았지? 꼭 성사시켜야 한다.”
“네. 그런데, 제가 한 말들은 제발 꼭 비밀로 해주십쇼. 입방정을 떤 사실을 알면 전 죽습니다.”
“무슨 소리야? 너나, 나나 한배를 탄 거나 똑같은데. 나, 네 형이야. 형이 동생 힘들게 하는 거 봤어? 앞으로 확실히 형이라고 불러, 알았지?”
“네, 형님”
* * *
상진은 설렁탕집에서 나와 드론 택시에 탑승했다.
동주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막막하다. 사실대로 말하면 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을 다 망친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
그래도 강대주가 다른 녀석들이랑은 뭔가 다른 구석이 있다.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떡해야 하나? 그래 거짓말로 둘러댈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어쩐다, 형이 내 이야기를 믿지도 않을 텐데. 만일 형과 강대주의 만남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강대주가 내게 들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할 게 분명하다.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다. 모든 게 망가지는 거지. 동주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거야. 형에게 이야기 꺼낼 때도 동주와 상의하고 해야 한다.
상진은 어렵게 동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주야, 미안해!”
“왜, 무슨 일 있어?”
“실은 어제 강대주 그놈의 꾀에 넘어가서, 우리 이야기를 다 해버린 것 같아.”
“뭐, 뭐라고?”
“미안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만······.”
“야! 상진아,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디까지 얼마나 이야기한 거야?”
“잘은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술기운에 자랑한 것 같아. 아마 오 교수 기술이랑 이런 걸 자랑하면서, 무등산보다 우리 쪽이 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것 같아.”
“하······! 어이구! 너 정말 왜 그러니? 이게 우리 둘만의 이야기면 어떻게든 우리가 책임지면 되지만, 이제는 수십 명의 목숨이 달린 문제잖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하아······,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술만 좀 들어가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나도 많이 반성하고 걱정하고 있어. 그런데 너한테는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그런데 방금까지 강대주랑 아침 먹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방금 식사 마치고 헤어졌어.”
“그쪽은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실은 아직 말할 게 하나 더 있는데.”
“뭐야? 야, 정말 무섭다, 네 이야기 듣는 거. 너 혹시 또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거야?”
“응, 실은 형 이야기까지 해버렸나 봐.”
“어이쿠, 너 어쩌려고 그러니. 서강파 얘들이 이 사실을 알면 무용이 형이나 너까지······, 너무 위험한데.”
“나도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이제 난 죽었다고 생각했거든. 형한테도 어떻게 말 하나 하고 너무 걱정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강대주 이 작자가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뭐, 뭔데?”
“오늘 저녁에 형하고 자리만 만들어주면, 우리가 필요한 물자까지 자기가 다 대주겠다는 거야.”
“뭐? 다시 말해봐. 뭘 대죠?”
“우리가 지금 못 구하고 있는 것들 있잖아, 식료품이나 생필품들. 그걸 자기가 대주겠다는 거야.”
“이상한데, 뭔가 이상해. 형은 왜 만나겠다고 하는 것 같아?”
“몰라, 다른 이야기는 안 하고, 지난번에 압수 수색 왔을 때 형하고 나눈 이야기가 있대. 그리고 뭐라더라, 자기는 노는 물이 다르다고만 전해달라는데, 그러면 형이 알아먹을 거라고.”
“음······, 뭔가 조직하고 갈라설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은데.”
“동주야! 나, 이 이야기를 형한테 꺼낼 자신이 없어. 네가 도와주면 안 될까?”
“음, 이 문제는 무용이 형이 진행하고 있는 수사만 문제 되는 게 아니야. 은수 실종이랑, 우리 생존계획까지 모든 운명이 이번 만남에 달려 있어. 너가 형하고 약속 잡아봐. 내가 같이 갈 테니까.”
“그래, 고맙다 동주야. 그나저나 나 때문에 우리 생존 벙커가 위태로워지는 게 아닐까?”
“그놈이 기오성에게 정보를 넘기면 분명 위험해지겠지.”
“······!”
“지금은 서강파가 우리 계획을 안다고 해도 무력으로 빼앗을 방법은 없어. 그런데 나중이 문제지. 혼란한 시기가 왔을 때.”
“아! 내가 죽일 놈이야. 나, 생존팀에서 빠질게, 너무 미안해서 같이 못 할 것 같아.”
“너무 걱정하지 마. 우선, 오늘 만남을 성사시켜 보고 그때 걱정해도 늦지 않아. 강대주가 형을 만나려고 하는 걸 보니까, 그 이전엔 발설하지 않을 것 같아.”
“그렇겠지?”
“아무튼 앞으로 더 조심해. 술 좀 작작 마시고, 으이구 이 친구야!”
“말도 마. 나도 아침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후회했는지. 나 다시는 이런 실수 안 할게. 진짜야, 약속해!”
“전화위복이라고 하지 않냐. 뭔가 좋은 쪽으로 일이 진행될 수도 있으니까, 지켜보자.”
“그래, 형 만날 때 보자.”
* * *
아침 9시 정령치 휴게소.
장재건은 새벽부터 인부들과 장비를 이끌고 이곳으로 왔다.
어제 현장사무실과 근로자 간이숙소가 완성됐다. 컨테이너 개조작업을 위해 전력공급이 원활해야 해서 별도의 발전기도 설치했다.
정령치 휴게소는 관정을 뚫어 그곳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다. 이 지하수 물을 끌어다 생존벙커에 사용할 계획이다. 그런데 만약 대지진이 발생해 이 관정에 문제라도 생기면 생명줄인 물을 확보할 수 없다.
오·폐수를 최대한 줄이고 하수를 정화하는 시스템까지 갖추었지만, 40여 명이 사용할 물을 확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컨테이너 5개 정도는 물탱크로 개조해 물을 보관해야 한다. 비상용 관정도 두 군데 정도 더 뚫어야 한다. 어제 정령치 터널 바로 옆 공터에서 시추작업을 해 지하수 수맥을 찾아냈다.
장재건은 오전 6시부터 이곳에서 관정 작업을 시작해 8시 무렵에는 두 곳의 지하수를 확보했다. 지하 100m까지 뚫고 내려간 것이라 수질이 최상급이었다.
물론 소행성 파편이나 방사능비가 쏟아진다면 이 역시 정수하지 않고는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총 3개의 관정을 확보했으니 적어도 물 문제는 안심이다.
현장에 수십명의 용접공과 설비기술자가 투입됐다. 각 컨테이너 외벽을 잘라 문을 만들고, 내부에 생존 시설을 일일이 설치하고 있다.
오후에는 심원주가 현기차에 발주한 ESS(전기 저장장치)와 수전해 시스템을 가지고 온다.
그는 이미 컨테이너 규격에 맞게 현기차에서 각 설비의 규모를 조정하고, 개조작업을 마쳤다. 그곳에서 시험 운전까지 마쳐, 이곳에서는 곧바로 컨테이너 안으로 집어넣는 작업만 하면 된다.
벌써 컨테이너 20개가량의 개조작업이 완료된 상태다. 전체 상세 설계가 나온 터라 컨테이너는 공장에서 찍어내기라도 한 듯 똑같은 형태로 개조돼 나오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곧바로 3단 구조의 용접작업을 시작하고, 바퀴가 달린 하부 받침대에 올리는 작업이 진행된다. 그렇게 하면 터널로 들어가는 생존벙커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그 이후로는 15개 무리를 연결하고 내부에 전기와 통신 시스템, 전열과 냉방 시스템을 설치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런 내부 시설 설치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장재건은 일정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아침부터 불이 나도록 전화통을 돌리고 있다.
신수경은 휴게소 앞 마당에서 민호 그리고 진돗개 뭉치와 함께 공사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공사가 한꺼번에 착착 진행되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최창민이 혼자서 터널을 둘러보러 왔다. 그는 내일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광주를 떠난다. 그는 장재건에게 정령치 터널에 오르는 도로를 폐쇄하기로 했다고 알려 주었다.
폐쇄된 이 도롯가에 사는 사람은 정령치 휴게소를 운영하는 신수경뿐이다. 이제 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오직 이 휴게소로 가는 차량만 통행할 수 있다.
김정현 변호사는 남원시로부터 정령치 휴게소 개축공사 허가를 받아냈다. 이곳 공사를 위해 운행하는 차량도 통행할 수 있다.
이제 휴게소 주차장에서 개조하고 있는 컨테이너 시설이 완성되면, 곧바로 터널로 끌고 들어가 생존 벙커를 만들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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