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

아포칼립스 D-9, 2029. 4. 5. 오후.
드디어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가 나로호 우주센터 발사대에 섰다. 모든 방송과 신문, 라디오가 이 뉴스로 도배됐다.
이 우주선은 7명의 우주인과 2만 2,700kg의 짐을 싣고 우주로 나갈 계획이다. 우주비행사가 탑승하는 궤도선의 크기가 길이 40m, 너비가 날개까지 포함해 23m에 이른다.
그 아래에 궤도선보다 훨씬 큰 연료탱크와 2개의 작은 로켓 부스터가 붙어 있다. 가히 웅장하고 멋들어진 모습이다.
이 우주선은 1985년에 제작되었으니 무려 44년이나 된 골동품이다. 2011년 7월 퇴역할 때까지 총 33회 우주비행을 하는 동안, 위성 14기를 발사하고 지구를 4,648회나 돌았다.
아틀란티스호의 마지막 비행이 미국의 우주왕복선 역사 마지막 135번째 비행이었다. 그 이후론 유인 우주왕복선 프로젝트가 중단돼, 플로리다에 있는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전시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의 협조를 얻어, 우선 우주선을 케네디 우주센터 정비창으로 가져가 그곳에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우주왕복선은 지구궤도를 벗어나거나 귀환할 때 엄청난 열을 견뎌내야만 한다. 이때 발생하는 열은 최고 약 1,500도에 이른다.
그래서 우주왕복선의 외부는 이런 고열을 견디도록 내열 타일로 마감했지만, 늘 이 타일이 떨어지거나 고열을 견디지 못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퇴역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과학기술이 몰라보게 발달한 상태다. 3,000도의 고열에도 견디는 내열 타일로 교체하고, 동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특수코팅까지 했다.
내부 운용시스템도 기존의 것을 들어내고, 고성능 AI 컴퓨터가 모든 기능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며칠 만에 이런 개조가 가능했던 건 이곳에서 미 공군이 운용하는 X-37B 무인 우주왕복선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인 우주선은 2010년 4월 처음 발사된 이후 네 차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임무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무인이다 보니 한 번 우주로 나가면 길게는 710일 동안이나 임무를 수행하고 귀환했다. 지금까지 네 차례의 임무 수행 기간이 무려 2,000여 일에 이른다.
해외 전문가들은 그 실제 임무가 우주탐사가 아닌 군사정찰, 적국의 스파이 위성 파괴, 인공위성 포획, 우주 폭격이라며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 무인 우주선의 운용시스템을 그대로 얹었기에 아틀란티스호의 개조가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우주왕복선에 탑승할 우주인 중 2명은 국민 공모로 모집했다. 우주인 훈련 경험이 없어도 가능하다고 해, 지원자가 2만 명이 넘도록 모였다. 드디어 오늘 그 최종 선발자가 발표됐다.
한 명은 천체물리학을 전공하는 남자 대학생이다. 나머지 한 명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이 두 사람은 이제 국민 영웅이 됐다. 이들의 성장 과정과 지금껏 사회를 위해 봉사해온 미담들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구를 지키겠다고 자신 있게 인터뷰했다. 기억 속 어느 영화의 한 장면과 너무도 같았다.
2만 명의 지원자 중 왜 이들이 선발되었을까? 우주인을 선발하는 과정과 이들이 뽑히게 된 이유가 간략히 보도되긴 했지만, 알맹이가 없었다.
이들이 다른 지원자들보다 어떤 면에서 우월하다는 건지? 젊고, 사명감이 투철하다? 단지 이력서만 가지고 그런 걸 평가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미군 핵미사일을 실은 아틀란티스호는 발사 이후 지구로부터 200만km쯤 이동했을 때, 핵미사일을 발사한다.
시뮬레이션대로라면, 먼저 우주왕복선의 화물칸 덮개가 열린다. 다음으로, 핵미사일을 지탱하고 있던 지지대가 마치 고소 작업대가 올라가듯 미사일을 약 10m 높이까지 천천히 들어 올린다.
인공위성을 발사할 때와 같이 화물칸에 있던 핵미사일이 조금씩 우주선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제 우주선 밖으로 나온 핵미사일이 발사준비를 마쳤다. 이번에 뽑힌 두 명이 이때 발사 버튼을 직접 누른다.
이 핵미사일은 우주선 안에서 직접 제어하는데, 이런 임무는 같이 탑승한 미군 핵 전술가가 한다.
시민들은 이런 정부의 홍보영상을 보고 아포피스를 파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올랐다.
계엄철폐, 박민우 대통령을 직접 만나게 해달라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이런 뉴스는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양대 노총에서도 내일 총파업 궐기대회를 예고하며 계엄철폐를 외쳤지만, 이 역시 우주선 발사 뉴스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 * *
저녁 7시, 광주 동구 동명동 화개원 한정식집.
천무용은 안내받아 예약해둔 방으로 들어갔다. 강대주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천무용을 보고는 바로 일어나 인사했다.
“천 검사님! 어서 오십시오.”
천무용은 양복 상의를 벗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밖에서 보니까 조금 달라 보이네요.”
“그렇죠. 업무로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딱딱해지니까요. 아무튼,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뭘요! 밥 한번 먹는 건데. 우리 배고픈데, 식사 먼저 할까요?”
“네, 좋습니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아 왔던 사이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의 대화는 식사가 끝난 이후로도 밤 9시가 넘도록 계속됐다.
* * *
저녁 7시 30분, 광주지검 714호 검사실.
동주는 검사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6시 30분경 약속대로 천무용을 찾아갔다. 무용은 강대주를 만나러 간 사이에 동주가 수사기록을 살펴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은수를 찾으려면 서강파와 관련한 수사기록을 전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무용에게 부탁해 이렇게 시간을 냈다.
두 달 동안 천무용이 조사한 자료는 장수로만 3천 페이지가 넘고, 권수로만 7책이나 되는 방대한 기록이었다.
평소 형사기록을 살피는데 이골이 난 동주는 왼손 엄지에 파란 골무를 끼고, 한 장 한 장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은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무용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정마리아와 임안나, 정길수, 남수혁, 기오성 이들 사이에 무언가 연결고리가 있는 게 분명하다.
동주는 서강파 기오성이 지금껏 저지른 여러 살인사건의 구체적 내용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 전모를 파악해야 은수 실종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강파 내부의 알력 관계나 이들의 성향까지도 제대로 파악해놓아야만 한다.
이 시각 은수는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태어나서 처음 겪는 극도의 불안과 고통, 혹시 예전에 겪었던 불안장애가 다시 재발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제발 살아만 있어 다오. 은수야! 내가 널 꼭 찾을게!
* * *
밤 9시, 조선호텔 지하 도박장.
상진은 서강파의 움직임을 살피러 다시 도박장을 찾았다. 평소와 다를 게 없이 도박꾼들로 북적대고, 모든 판이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천무용이 강대주를 만나고 있어, 오기철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오기 전에 잠깐 유흥주점에 들렀다. 그곳도 통금시간인 9시까지 영업을 끝내려고 분주히 달리고 있을 뿐 특별한 게 없었다.
내 포커 인생도 이제 끝나는 건가?
광주에서 한 이름 날리며 잘 놀았다. 그동안 경험했던 스릴 만점의 포커판들이 주마등처럼 기억 사이를 스쳐 갔다.
아! 그 짜릿한 손맛. 이제 다시는 느낄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에이! 인생 뭐 있어? 순간을 즐기는 거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건 나중의 문제고. 뭐니 뭐니 해도 지금 재밌어야지. 오늘 마지막으로 크게 한판 벌리고 대미를 장식하자.
상진은 적당한 판이 있는지 둘레둘레 살피며 장내를 어슬렁거렸다. 그때 직원 하나가 상진에게 다가왔다.
“상진 씨! 오늘 VIP룸에서 큰 판이 벌어지는데, 지금 마지막 한자리 남았어요. 어때요?”
“뭐,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해줬어야지. 어디야?”
상진은 직원이 이끄는 대로 밀실에 들어갔다. 그곳엔 처음 보는 네 사람이 포커판에 앉아 있고, 판 위에는 고액 칩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 이거 어마어마하게 큰 판인데!’
상진은 남은 한자리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다행히 한 자리 남았네요.”
참석자들은 서로 가볍게 눈인사하고, 다소곳이 게임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다. 딜러가 나타나 게임룰을 설명하고, 오늘 판의 크기를 말해주었다.
바닥에 모인 돈만큼 베팅할 수 있는 풀베팅 시스템이다. 가장 많이 하는 하프베팅보다 훨씬 판돈이 크다. 가장 낮은 단위의 기본 칩도 1만 원짜리였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보통 1천 원짜리를 기본 칩으로 하는데, 여긴 벌써 10배가 그냥 뛴 셈이다. 바닥 기본 판돈도 10만 원이다. 4구부터 레이스가 가능해 판돈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된다.
상진은 사설도박장 VIP로 그곳에 자신의 금고를 두고, 평소 5억 원가량을 넣어놓았다. 집을 빼고는 실제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5억 원도 이 판에서는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그래도 실력 하나는 자신 있는 상진.
광주에서 보기 드문 이런 큰 판에 내가 빠질 수는 없지. 오늘 대박 한 번 내보자!
시작은 좋았다. 투 페어 싸움에서 몇 번 승리하고, 풀 하우스도 잡아 벌써 1억 원 넘는 돈을 땄다.
상대들은 매너도 좋아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정한 승부사들과의 대결이다.
쫀득쫀득한 기리 맛을 느끼며 포커 삼매경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은 동주나 은수의 생각은 온데간데없다. 오직 이 판에서 살아남아, 큰돈을 버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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