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비밀 침투 (2)
아포칼립스 D-7, 2029. 4. 7.(토) 밤, 정마리아의 저택.
천 검사는 담장 위에서 몸을 웅크린 다음 안쪽 화단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곤 대문 열림 버튼을 누르려고 다가갔다.
덩치 녀석이 앞을 가로막아 선다. 천 검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녀석을 밀치며 나가려고 한다. 그러자 녀석이 힘껏 천 검사를 밀친다.
“어, 지금 뭐 하는 거야? 공무집행방해로 당장 체포할까? 안 비켜?”
“지금 검사님이 주거침입 한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계속 공무집행 방해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을 쓴 거잖아. 정 문제 삼고 싶으면 나중에 법으로 따져. 우선 문 열어, 어서!”
녀석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표정이다. 천 검사는 재빨리 다시 대문 쪽으로 다가가 덩치를 밀쳐내고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대문이 천천히 앞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박 계장과 김 주임의 얼굴이 보인다.
천 검사가 신호를 보내자, 이들 모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저택에서 집사와 덩치 세 녀석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백발의 노신사가 앞장서 와서는 천 검사를 막아선다.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여긴 엄연히 사유지고, 사생활이 보호돼야 하는 곳인데요.”
“당신이 정마리아의 집사 맞지?”
“네, 맞습니다.”
“당신! 북부서 박시영 경위한테서 보이스펜 받아 간 거 다 알아. 지금 그거 어디에 있어?”
“무슨 말씀이신지? 통 모르는 말을 하셔서······.”
노련한 집사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정마리아와 통화해서 이미 상황 파악을 한 듯하다.
“이 집에 보이스펜이 있는 것 같은데······, 자! 같이 가서 봐봅시다.”
천 검사는 앞장서 저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집사는 눈짓으로 막아서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덩치 큰 세 녀석이 천 검사 앞을 막아섰다. 천 검사는 일부러 몸싸움하며 실랑이했다.
“어, 이거 봐라. 손 안 놓아?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시각 동주와 상진은 1층 로비 쪽이 조용해지자, 조심스럽게 지하실에서 나와 천천히 1층과 연결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정마리아가 키우고 있는 개들이다. 적외선 카메라에 포착된 세 개의 작은 열 덩어리가 바로 이 녀석들이었다.
동주와 상진은 불이 나게 뛰기 시작했다. 컹컹, 컹컹! 두 사람은 처음에 들어왔던 뒷문을 향해 달렸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덩치 한 녀석이 앞을 가로막고 섰다. 녀석의 주먹이 동주를 향해 날아왔다. 동주는 간신히 뒷걸음질 치며 주먹을 피했다.
녀석이 돌연 호주머니에서 칼을 빼 들었다. 작은 나이프지만 날카롭기 그지없다. 휭, 휭! 녀석이 두 사람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침을 흘리며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셰퍼드 3마리까지. 완전히 포위된 느낌이다. 정면 돌파해야 한다.
동주는 재빨리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한 손에 들고는 과감히 덩치에게 다가갔다. 녀석이 칼을 휘두르며 뒷걸음질 친다.
동주가 점퍼를 휘두르며 녀석의 시선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녀석은 계속 물러날 수 없어 동주의 가슴 쪽으로 칼을 깊이 찔러왔다.
동주는 살짝 옆으로 피하면서 칼을 쥔 녀석의 팔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녀석이 다른 한쪽 손을 휘두르며 동주를 떼어내려 하다 안되자, 주먹으로 복부를 가격했다.
허억! 숨이 컥 막히고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때 옆에 있던 상진이 녀석의 종아리를 세게 걷어찼다. 녀석이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는다.
숨을 가다듬고 있던 동주는 그 틈을 타 무릎으로 녀석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퍽, 얼굴에서 피가 터지며 무언가 우두둑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빨 몇 개가 와르르 무너지고 코뼈가 짜그라진 거다. 녀석은 이제 더 이상 힘쓸 수 없다.
그때 셰퍼드 한 놈이 동주에게 달려들었다. 동주는 순간적으로 몸을 피하며 들고 있던 점퍼를 휘둘렀다. 다행히 녀석이 점퍼를 물었다. 동주는 점퍼를 버리고 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뒷문을 열고 불이 나게 뛰었다. 최용석이 드론 양쪽으로 밧줄을 내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셰퍼드 세 마리가 뒤쫓아 오고 있다.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물릴 상황이다.
그때 다급한 상황을 포착한 최용석이 임기응변으로 드론의 전조등을 확 비췄다. 강렬한 빛이 두 사람과 셰퍼드 앞으로 쏟아진다. 쉽게 눈을 뜰 수 없었다.
뒤쫓던 셰퍼드들이 주춤하며 멈춘다. 두 사람은 손으로 빛을 가리며 뛰어가 곧장 밧줄을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셰퍼드 세 마리가 뒤쫓아 와 드론을 향해 짖어대고 있다. 어느새 집사가 뒤뜰로 와서는 이 광경을 직접 보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한다. 정마리아에게 보고하는 것이겠지!
천 검사는 두 사람이 무사히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하고는 바로 철수했다. 박홍식에게도 연락해 조선호텔에서 빠지라고 지시했다.
천 검사는 동주의 문자메시지를 받자마자 검찰 수사관에게 곽형규와 정마리아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정마리아는 곽형규의 이모였다. 그의 어머니가 정마리아의 큰 언니이다. 곽형규에 대한 재산조회 결과 광주 남구 양림동에 있는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1년 전에 취득한 것이다.
천 검사는 보고 받은 내용을 바로 동주에게 전달했다. 양림동 주소를 보니 은수네 집과 불과 100m 거리에 있는 주택이었다.
동주는 천 검사의 문자메시지를 받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진과 용석도 모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곽형규가 은수를 데리고 있는 것이다. 왜? 이 녀석이 왜?
동주는 서둘러 드론을 타고 양림동을 향했다. 박홍식 과장에게 전화해 지원요청을 했다. 드론이 금세 양림동 공용주차장에 도착했다.
위성사진으로 형규의 집을 확인했다. 은수네 집 앞 삼거리에서 이장우 가옥 쪽이 아닌 반대쪽으로 50m 간 뒤 왼쪽 골목으로 10m만 가면 나오는 너른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이다.
아직 박홍식 과장이나 경찰관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동주 일행은 그들을 기다릴 새가 없었다.
상진과 용석이 팔을 엮어 발판을 만들어 주자, 동주가 그곳을 밟고 바로 담장을 넘었다. 그리곤 대문을 열었다. 집 안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현관문은 디지털 도어록으로 잠겨 있다. 가지고 있던 해정기로 문을 땄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다란 거실이 나왔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다. 불을 켜자 거실 벽 쪽에 소파 하나가 있고, 맞은편 벽에는 벽걸이 TV가 있을 뿐 나머지 공간은 휑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방들을 뒤졌다. 빈방일 뿐이다. 텅텅 비어 있었다. 어찌 된 일이지? 이곳도 아닌가?
동주 일행은 집 안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곽형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냉장고나 다른 가전제품이 전혀 없다. 이 집을 산 이후로 이곳에서 생활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소파와 TV도 심하게 낡았다. 전 주인이 놓고 간 걸 버리지 않고 둔 것 같다.
젠장! 또 헛다리 짚었나? 박홍식에게 전화해 이곳도 아니라고 알려야겠다. 괜한 걸음 할 필요 없다고.
그때 최용석이 손가락으로 소파가 있는 쪽 바닥을 가리킨다. 동주는 바닥에 눕다시피 몸을 낮추어 소파 아래를 살폈다.
거실 바닥엔 폭 10cm, 길이 90cm가량의 자재를 덧댄 합판마루가 깔려 있었다. 나뭇결이 짙은 브라운 계열로 어두워 틈새가 잘 드러나지 않아 몰랐다.
소파 아래쪽에는 분명 다른 부위와 다른 굵은 틈새가 나 있었다. 동주와 상진은 조심스럽게 소파를 들어 거실 가운데로 옮겼다.
굵은 바닥 선이 보인다. 커다란 문 형태의 틈이다. 동주가 꼼꼼히 주변과 바닥을 누르기 시작했다. 분명 이곳 어디에 여는 장치가 있을 텐데.
아무리 곳곳을 누르고 밟아 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상진은 TV 리모컨을 찾아 눌러보기도 하고, 벽면의 스위치란 스위치는 다 눌러보았다. 그래도 변화가 없다.
동주는 바닥에 누워 거실 합판 마루 중 혹시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지 살폈다. 그때 베란다 문턱 앞부분 합판 조각 하나가 살짝 떠 있는 게 보였다.
다른 마루와 달리 조각 하나가 들떠 있는 것 같다. 동주는 일어나 그곳 바닥을 발로 밟았다.
그러자 ‘텅’하면서 네모난 마룻바닥이 툭 3cm가량 아래로 내려가더니, ‘웅’하는 소리와 함께 스르륵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그러자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드러났다.
동주 일행은 아래로 내려갔다. 그곳에 커다란 철문이 있고, 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열쇠를 찾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최용석은 밖으로 나가 큰 돌 하나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 돌로 자물쇠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보통 단단한 녀석이 아니다. 세 번이나 세게 쳤는데도 깨지지 않았다.
용석의 손이 벌겋다. 상진이 돌을 받아 다시 내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다섯 번째 내려칠 때야 비로소 자물쇠가 깨졌다.
동주는 다급히 철문을 열었다. 다시 내리막 계단이다. 아! 저기 침대가 보이고 팔, 다리가 묶인 채 잠옷 바람에 누워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동주는 용석에게 빨리 119구급차를 부르라고 했다. 이렇게 시끄러웠는데도 미동조차 없다니! 분명 은수의 모습이다.
은수야! 은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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