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침탈
아포칼립스 D-7, 2029. 4. 7.(토) 밤 7시 30분, 남원시에 있는 전동기의 화학공장.
남수혁은 강대주와 함께 조직원 20명을 데리고 화학공장을 치러 왔다. 모두 칼과 쇠파이프로 무장했다. 공장 앞에 봉고차 3대가 줄줄이 멈추어 섰다.
공장 기둥마다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고 있었다. 이 시각까지도 공장은 불을 다 켜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전동기는 지난 일주일 동안 발포 플라스틱 생산에만 매진했다. 어젯밤까지 생산한 발포 플라스틱 전부를 생존 벙커에 투입하고, 남은 건 장재건 사장의 탱크로리 차량에 보관하고 있다.
그동안 다른 주문이 밀려왔지만 생산하지 못해 이 밤에도 밀린 일을 해야 했다. 직원들에게 부탁해 야간 생산까지 하고 있었다.
군대를 갓 제대한 아들 전민국도 일을 돕고 있다. 그는 대학 2학년으로 복학해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동기는 발대식이 끝나자마자 전화해 당장 집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우선 살고 봐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남수혁과 강대주는 조직원들을 이끌고 공장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그곳엔 전동기와 전민국 그리고 공장장과 몇몇 직원이 있었다.
“자, 자! 동작 그만!”
남수혁이 성난 얼굴로 소리쳤다. 전동기 일행은 갑자기 몰려온 녀석들을 보고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직감했다.
하나같이 칼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있다. 무언가를 빼앗으려 하는 것이다. 목이 바짝 타올랐다.
“무, 무슨 일로······.”
“여기, 전동기 사장이 누구야?”
“네, 저, 전데요.”
“이리 와봐.”
“무, 무슨 일인지 말씀 해주셔야······.”
남수혁은 머뭇거리는 전동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젊은 청년의 얼굴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음······, 옆에 있는 친구가 아들이구만, 맞지?”
“······!”
“저, 자식 잡아 와!”
남수혁은 전민국을 가리키며 끌고 오라고 지시했다. 조직원 둘이 전민국의 양팔을 붙잡아 남수혁 앞으로 데리고 온다.
전민국은 몸부림치며 벗어나려 했지만, 워낙 덩치 차이가 커 그 힘을 감당하지 못했다. 남수혁은 전민국이 앞에 서자마자, 주먹으로 복부를 강타했다.
‘아악!’ 비명 소리가 고요한 사무실의 정적을 찢어 놓는다. 전동기는 놀라 남수혁 앞으로 뛰어가 무릎을 꿇는다.
“제발! 제 아들은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차라리 절 때리세요, 네?”
“진작 그럴 것이지. 왜 태도가 그 모양이야?”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강대주는 옆에서 팔짱을 끼고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오기철도 그 뒤에 서서 물끄러미 남수혁이 하는 짓을 바라보았다.
“좋은 말 할 때 그 컨테이너로 만든다는 지리산 벙커 설계도 가져와!”
“네? 그, 그게 무슨 말인지······!”
남수혁은 바로 무릎을 꿇고 있던 전민국의 허벅지를 세게 밟았다. 다시 전민국이 ‘아아악!’ 비명을 지르고는 나뒹굴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전동기가 전민국 옆으로 뛰어가 그의 몸을 감싼다.
“이 아이는 아무것도 몰라요. 제발, 절 때리세요, 네?”
“하하! 널 때리면 재미가 없지. 너가 순순히 분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지 않아요?”
남수혁이 강대주를 바라보며 은근히 분위기를 떠본다. 분명 강대주의 변절을 의심하고 떠보는 눈치다.
“저런 놈은 말이 안 통할 걸. 아들놈이 죽어야 정신 차리지. 시간 없다, 빨리 부는 게 좋을 거야.”
강대주는 의심을 불식시켜야 해서 남수혁을 두둔하며 더 잔인한 말을 내뱉는다.
“들었지? 자, 셋 셀 때까지 가져와. 그렇지 않으면 니 아들은 여기서 초상 치를 줄 알아. 자! 하나.”
“저, 저는 발포 플라스틱만 만들기로 해서 설계도는 없어요. 진짜예요.”
“둘!”
“아, 제발, 제발 믿어주세요.”
“셋! 야, 저 자식 잡아 와. 칼 가지고 오고.”
덩치 세 녀석이 뛰어가 전민국을 붙잡아 일으킨다. 몸부림치는 전민국을 질질 끌고 왔다. 남수혁 손에는 어느새 단검이 쥐어져 있다.
전동기는 소스라치게 놀라 전민국 앞으로 뛰어가 무릎을 꿇는다.
“죄송합니다.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 공장장! 캐비닛 맨 꼭대기에 있는 설계도 좀 가져다주세요. 어서요!”
공장장이 뛰어가 캐비닛에서 설계도 뭉치를 들고 온다. 강대주가 그걸 받아 책상 위에 펼치고 하나, 하나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음······, 이게 지리산 정령치 터널이고, 여기 이게 컨테이너 시설이야. 야!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보니 대단한데!”
남수혁은 무릎 꿇고 있던 전동기의 옆구리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전동기는 숨이 컥 막히고, 통증이 몰려와 사무실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고 있다. 전민국은 아버지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짜아식! 진작 내놓았으면 아무 일 없을 것을, 계속 거짓말을 해. 난 말이야, 이렇게 거짓말하는 놈이 제일 싫어. 그렇지 않아요, 우리 강 이사님!”
“그, 그렇지.”
강대주는 갑작스러운 남수혁의 질문에 당황했다. 계속 난처한 질문과 상황을 만들고 있는 남수혁.
“이봐! 저 설계도가 끝이 아니야. 발포 플라스틱은 어떻게 할 거야? 우리도 그게 필요한데······.”
“저, 저희는 그건 다 생산해서 지금은 다른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당장은 생산할 수 없는데······.”
전동기는 배를 움켜쥐고는 간신히 대답했다.
“하아, 참.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먼. 저 자식 잡아 와.”
덩치들이 다시 전민국을 붙들고 온다. 전동기는 놀래 다시금 아들 앞으로 뛰어갔다.
“아, 아닙니다. 당장 생산 시작하겠습니다. 제발, 제 아들은 그냥······.”
“이제야 좀 정신이 드나 봐? 그나저나 전 사장님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할까요, 강 이사님?”
‘어이구 이 얄팍한 놈! 나보고 확실히 생존팀을 괴롭히라 이거지? 나쁜 짓은 다 내 몫으로 만들겠다!’
“저 아들놈은 우리가 데리고 갑시다. 내일 당장 발포 플라스틱 납품하지 않으면, 바로 없애버리는 거지, 뭐.”
강대주는 남수혁의 머리 속에 있는 말을 그를 대신해 읊고 있을 뿐이다. 당장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들었지? 우리 강 이사님 제안! 난 좋다고 봐. 그렇지, 애들아?”
“네, 형님.”
함께 온 덩치들이 합창이라도 하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전 사장! 잘 들어둬. 우리도 빨리 벙커 만들어야 하거든. 앞으로 사흘 줄게. 그동안 발포 플라스틱인가 뭔가 하는 거 다 만들어내. 만든 족족 보내고, 알았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발 우리 아들만은······.”
“걱정하지 마. 전 사장이 약속 지키면, 우리도 아들 바로 집으로 보내줄게. 참! 우리랑 같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
“설계도며 발포 플라스틱까지 넘겨준 거 알면, 그쪽에서도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차라리 이참에 우리랑 같이하지?”
“네, 저도 고민해보겠습니다. 제발! 우리 아들 다치게만 하지 말아주세요.”
“그거야, 전 사장이 약속을 어떻게 지키냐에 달렸지. 내일 물량 보내는 거 보고 우리가 결정할게.”
“아······!”
“우리 회장님은 나보다 훨씬 무서운 분이야. 내일 약속 안 지키면, 아마 팔 하나는 잘리지 않을까?”
남수혁은 노골적으로 전동기를 협박하고 있다.
“참, 너가 또 언제 변심할지 모르니까, 오늘부터 여긴 우리 애들이 지킬게. 저 사람이 공장장인가 본데, 오늘부터는 우리 애들이 공장장이랑 사장 다 하는 거야,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남수혁은 부하 다섯 명을 남겨두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전민국은 남수혁이 직접 봉고차에 태워 데려갔다.
* * *
광주 동구 지산동 서강파 안전가옥.
남원에서 넘어온 남수혁, 강대주 일행은 기오성이 머무는 서강파 본거지로 전민국을 끌고 갔다.
이곳은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대저택이다. 지산동 법원 뒤쪽 오르막길에는 고풍스러운 집들이 많다. 한적한 길가에 드문드문 큰 집들이 있다. 대부분 담장을 높이 쌓고 대문이 커 내부에 있는 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이곳도 겉에서 봐선 대문의 크기가 커 제법 큰 집이려니 추측할 수 있을 뿐, 길고 높은 담장 때문에 그 뒤로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치 골프장이 연상될 만큼 널따란 정원이 펼쳐지고, 2층 주택이 여러 채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곳곳에 경비원과 매서운 셰퍼드가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다.
남수혁은 전민국을 지하실로 끌고 가 가두었다. 발에 쇠사슬까지 채워 도망칠 엄두를 낼 수 없다.
기오성은 강대주가 가지고 온 생존 벙커 설계도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포피스 충돌 이후까지 대비한 견고하고 짜임새 있는 설계다. 만만치 않은 놈들임을 직감했다.
이 생존 벙커를 반드시 빼앗아야 한다. 만약 무등산 벙커가 시원치 않으면 그곳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기수는 강대주가 제안한 것처럼 생존 티켓을 팔아 벙커 만들 계획을 착착 준비해놓았다. 현기차 공장이 생산을 중단하자, 그 작업자들을 불러 모았다.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의 공장장, 음압병동 설계자, 공조 장치 전문가까지 최고의 프로페셔널을 모아 단기간에 무등산 벙커를 개조할 계획이다.
내일 탱크부대 대대장 김성철과 담판을 마무리하면 곧장 레이더기지를 치러 갈 것이다. 그곳을 손아귀에 넣자마자 바로 생존 벙커를 만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