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계엄군 내전 (1)
아포칼립스 D-7, 2029. 4. 7.(토) 밤 11시, 정령치 휴게소.
동주는 장재건, 오승현, 심원기에게 지금까지 은수와 관련해 벌어진 일들을 설명했다. 친구인 형규가 배신해 생존 벙커가 서강파에게 노출된 사실도 알렸다.
그때 때마침 전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강파 애들의 감시를 피해 몰래 전화한 것이다.
서강파가 쳐들어와 설계도를 빼앗고 전민국을 데리고 간 사실을 알렸다. 발포 플라스틱을 제공하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한 것까지.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주는 전동기에게 아들 목숨이 중요하니 발포 플라스틱을 생산해 제공하라고 말했다. 약속대로 물량을 제공해도 전민국을 풀어줄지 의문이라 그사이에 구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서강파의 공격을 막지 못하면 지금까지 한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된다. 서강파의 위협이 이제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당장 내일부터 이곳을 지키고 방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우선 각자 구할 수 있는 방어무기들을 확보하기로 했다. 공기총이나 장검, 헬멧, 석궁, 활 등 모조리 모아야 한다.
정령치 생존 벙커는 해발 고도 1,000m 이상에 있다. 이런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 방어대책을 수립했다.
먼저 정령치 휴게소까지 오르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폐쇄한다. 남원경찰서에서 터널 붕괴 위험 때문에 이 도로를 폐쇄했는데, 지금은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철수한 상태다.
입구에 진입금지 표지판을 설치해두었지만, 적이 이 도로를 이용해 올라오는 걸 막을 순 없다.
회의 끝에 도로 진입로에는 지금처럼 표지판만 설치하고, 오르막길 중턱에 벙커 공사를 위해 가지고 온 기중기와 같은 큰 장비로 도로를 폐쇄하기로 했다. 우리 팀이 올라올 때는 기중기를 움직여 길을 트고, 외부인이 올라오면 장벽 역할을 하는 셈이다.
휴게소 주변에는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 드론을 이용한 방어방법도 고안했다. 정령치 휴게소 반경 3km 주변을 매시간 드론을 이용해 살피는 거다.
정령치 휴게소 2층이 관제탑이 된다. 그곳에서 심원기 형제와 장재건 가족이 드론과 CCTV를 이용한 경비를 맡기로 했다.
앞으로 모든 팀원은 심원기가 마련한 근거리 통신용 무전기를 휴대한다. 언제 휴대폰 통신이 마비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생 심원주의 도움을 받아 현기차에서 구매한 최신형 드론 10대를 전투용으로 개조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최용석은 계엄군 3대대가 부대 해산을 논의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계엄군이 이제 더 이상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병사들을 붙들고 있을 수 없어서다.
만약 계엄군이 해산하게 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술 무기와 전력을 어떻게 할지가 문제 된다.
동주는 최용석에게 서강파가 언제라도 쳐들어올 수 있는 다급한 상황을 알리고, 그쪽 병력이나 장비를 최대한 우리 쪽으로 끌어 올 방법을 모색해달라고 부탁했다.
* * *
아포칼립스 D-6, 2029. 4. 8.(일) 오전 9시, 광주 동구 지산동 서강파 안전가옥.
김성철은 서강파의 본거지에서 기오성, 정마리아를 만났다. 지금까지 신기수와만 거래했을 뿐 서강파의 보스 기오성은 오늘 처음 보는 것이다.
김성철은 탱크부대를 이끌고 있어 무력에서는 월등히 앞선다. 하지만 부대를 이끌고 갈 명분이나 통솔력 부분에선 한계가 드러났다.
3대대가 김성철을 무시하고 부대로 복귀한 바람에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특히 시민들을 향해 발포 명령을 한 탓에 이미 시위대에서 그에게 지휘권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탱크부대는 기름과 포탄과 같은 물자를 공급받지 못하면 언젠가는 고철 덩어리일 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인력과 장비, 물자를 공급해줄 상대가 필요하다.
서강파는 각계각층에 심어둔 인맥을 동원해 순식간에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유통과 물류를 장악하고 있는 데다, 치안을 유지할 계엄군이 사라지고 경찰이 힘을 쓰지 못하자 그 빈자리를 야금야금 차지하고 있다. 만약, 무등산 레이더기지까지 빼앗게 되면 그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김성철은 자존심을 버리고 기오성의 그늘로 들어가기로 했다. 실은 정마리아의 그늘이지만.
그는 서강파와 함께하는 조건으로 먼저 박석진의 3대대를 괴멸하자고 제안했다. 지금 3대대는 오치동에 있는 본대로 복귀해 있다. 시위대가 결성한 비상대책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고 우선 치안 업무를 돕고 있다.
기오성은 나중에 3대대가 방해꾼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남수혁에게 김성철을 도와 3대대를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3대대는 지금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아포피스를 피해 고향이나 집으로 돌아갈 궁리만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남수혁은 김성철이 부대에서 실어 내 온 총기와 박격포로 조직원들을 무장하기로 했다. 생존 벙커에 입성하기 위해 자원한 100여 명으로 구성한 보병 1개 중대급 규모다. 모두 군대를 다녀온 젊은이들로 노련미까지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다.
남수혁이 이끄는 서강파 부대는 정오 무렵 광주 북구 문흥동 정마리아의 저택에 집결하기로 했다. 김성철이 이끄는 탱크부대는 오전에 분대별로 각개 기동을 해 북구 용봉동에 있는 한빛 대학교로 집결한다.
탱크부대가 광주 북구 오치동에 있는 3대대 본부를 공격하면, 상대는 드론부대와 포병부대를 활용해 반격할 것이다.
3대대는 김성철이 이끄는 탱크부대가 기갑부대라 보병이 없어, 자신들의 후미나 측면으로 공격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남수혁이 이끄는 서강파 부대는 3대대 진영의 뒷산으로 이동해 그 후미를 노리기로 했다. 3대대가 탱크부대에 맞서 대응 사격을 하려고 하면, 남수혁 부대가 먼저 박격포를 날리고, 총격을 가해 섬멸할 계획이다.
* * *
오전 10시 30분.
비대위를 이끌고 있는 노영선은 임원들과 함께 탱크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조선대학교를 방문해 김성철을 만났다. 그녀는 동주로부터 시위대에 발포 명령을 한 자가 김성철이라고 들었다.
3대대장 박석진을 통해 다시 한번 발포명령자가 김성철임을 확인한 이상, 탱크부대를 그가 계속 지휘하도록 두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어떻게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거기다 발포 명령까지 할 수 있습니까?”
“무, 무슨 소리를 듣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전 아닙니다.”
김성철은 손까지 흔들며 억울한 척 연기를 했다.
“다 알고 왔어요. 3대대 박석진 중령에게서 다 들었단 말입니다.”
“그 친군 반역자에다, 이제 군인 신분도 아니에요. 자기 살려고 군법을 어긴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런 자가 하는 말을 믿으시면 안 되죠.”
“김성철 중령님! 발뺌하셔도 소용없어요. 이제 다 아는 이야기라고요.”
“아, 아닙니다. 저흰 탱크부대 아닙니까. 계엄군 소총부대는 다 박석진이 이끄는 3대대라고요. 맨 먼저 그쪽에서 발포해놓고는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절대 속으시면 안 돼요.”
김성철은 자신이 발포 명령한 걸 결코 시인할 수 없었다. 인정하는 순간 시위대의 적이 되고, 아군은 사라지게 된다.
“저흰 그 말 못 믿겠어요. 여하튼 발포명령자로 지목된 김 중령이 탱크부대를 지휘하는 건 곤란하다고 봅니다. 그 자리를 내려놓으세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딱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저희 계엄군 내에서 발포명령자를 색출해서 반드시 여러분께 진상을 밝혀드리겠습니다. 딱 하루요.”
노영선과 일행은 계엄군 내에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물증 없이 어느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기 어려웠다. 하루만 시간을 달라는 김성철의 말을 마냥 거절할 순 없었다.
김성철은 3대대를 박살 내고, 발포명령자를 박석진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하루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 * *
오후 12시 30분.
남수혁은 여러 대의 봉고차와 트럭에 조직원을 싣고 문흥동 정마리아 저택에 갔다. 그곳 너른 저택이 100여 명의 장정으로 가득 찼다. 탱크부대 병참 상사가 k2 소총, k16 기관총과 KM181 60mm 박격포를 조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대부분 육군 보병 출신이기에 소총과 박격포는 익숙한 무기다. 보병 중대는 보통 4개 소대로 구성되고, 그중 하나가 중화기 소대로 박격포를 운용한다. 다행히 화기 소대 출신이 여럿 있어서 당장 박격포를 만질 수 있었다.
KM181 60mm 박격포는 포 무게가 18kg으로 결코 가볍지 않지만, 81mm 박격포인 KM187이 42kg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가벼운 편에 속한다. 박격포탄은 신형 K207 탄을 사용하고, 최대사거리는 3.5km이다.
김성철이 이끄는 탱크부대가 한빛 대학에 집결했다는 소식이다. 이제 배후공격을 위한 출동이다. 실탄과 박격포탄이 지급됐다. 모두 비장한 각오로 남수혁을 따른다. 이제 실전이다.
* * *
오후 1시 30분.
김성철은 탱크 20대 전부를 끌고 한빛 대학에 입성했다. 일요일인 데다, 이미 아포피스 때문에 휴교상태라 교정은 텅텅 비어 있었다.
계엄군이 사실상 해산한 탓에 시민들도 더 이상 집회나 시위를 하지 않았다. 비대위도 계엄군 해산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이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밀려올 쓰나미를 피하려고 북쪽으로 피난하는 무리가 점점 늘고 있다. 제 살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시민들은 더 이상 정치나 군대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김성철은 무전기를 켜 3대대 박석진에게 연락했다.
“박 중령! 좋은 말 할 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 너는 계엄군 지휘관의 명령을 어기고,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발포 명령을 한 죄로 군사재판에 회부 됐다.”
“무슨 소리야? 발포 명령은 네가 해놓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누가 발포했는데? 너희 3대대 아니야? 그럼 누가 명령한 거겠어, 바로 너지!”
“아니, 그때 무전으로 발포하라고 한 건 너잖아? 계속 이렇게 거짓말하며 오리발 내밀 거야?”
“누구 말이 맞는지는 조금 이따가 보면 알겠지. 여하튼 죽고 싶지 않으면 항복해. 불쌍한 너의 부하들까지 다 개죽음으로 몰지 말고.”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는데, 설마 우리끼리 싸우잔 말은 아니겠지?”
“왜, 겁나? 네가 계엄군을 이 모양으로 만든 주범 아니야? 이게 뭐냐고, 시위대 무서워 숨어있는 꼴이. 좋은 말로 할 때 항복해. 그럼 너희 부대원들은 살려 보내 줄 테니까.”
“농담 그만하고 빨리 탱크 빼! 원래 있던 대로 가라고!”
차분하게 대응하던 박석진이 화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못 하겠는데······. 오늘 니 목을 따지 않으면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을 테니까, 알아서 해.”
“진짜, 이럴 거야?”
“5분 줄게. 너희 부대 전체에게 알릴 테니까, 알아서 해.”
김성철은 연결된 3대대 무전기 전부에 대고 선전포고를 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마지막 기회다. 5분 주겠다. 투항하는 부대는 소속과 위치를 알려라. 그럼 그쪽으론 포탄이 날아가지 않게 하겠다.
만약 투항하지 않으면 너희는 오늘 반란죄로 그 책임을 물어, 모두 죽음을 맞을 것이다.”
짙고 무거운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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