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삶과 죽음
아포칼립스 D-6, 2029. 4. 8.(일) 밤.
지리산 정령치 휴게소로 돌아온 동주는 최용석이 무사히 귀환해 서로 포옹하며 기뻐했다. 동아도 용석을 전쟁터에 보내고 가슴 졸이고 있었는데,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용석은 드론 부대원 5명과 함께 유인 전투드론 4대, 토우 지프 1대를 끌고 왔다.
전투드론은 생존팀이 현기차에서 사들인 일반 드론보다 훨씬 빠르고 더 오래 날 수 있다. 미사일 등을 탑재할 수 있도록 크기와 적재용량도 훨씬 크다.
탱크부대와의 교전을 준비하며 전투드론에 대전차 미사일 4발을 장착했다. 그중에서 2발을 쏘고 드론마다 2발이 남아 있었다.
지프에는 토우 대전차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는데, 10발 중 6발을 사용해 4발이 남아 있다. 적 탱크의 공격을 이 정도 무기로 막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드론에 20여 명이 가지고 있던 소총과 기관총 그리고 탄약과 수류탄까지 잔뜩 싣고 와 큰 힘이 됐다.
조만간 서강파 무리가 이곳을 침공할 게 분명한데도 무기가 없어 걱정이었다. 적의 탱크가 몰려 오면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아직은 막막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무기라도 생긴 게 너무 다행이다.
탱크부대에 투항한 병사는 모두 3대대 본부에 있던 병력이고, 나머지 시내 치안을 맡고 있던 2개 중대 병력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다. 최용석은 이들과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다.
그중에는 동기 소대장 몇몇이 있어 병력과 무기를 가지고 이쪽으로 와달라고 요청하는 중이다.
이 소대장들은 자신이 있었으면 그렇게 쉽게 패하지 않았을 거라며 억울해하고 있다. 그들은 탱크부대와 원수 사이가 돼, 기회만 있으면 어떻게든 복수할 생각이다.
그런데 박석진 대대장이 본부에 붙잡혀 있고, 많은 부대원이 패전 소식을 듣고 탈영해 사기가 엉망이었다. 보병만으로 구성된 이들이 당장 탱크부대에 맞서 싸우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무등산에서 내려온 탱크부대 일부는 광주 충장로, 금남로 일대로 나가 스피커 방송으로 나머지 계엄군에게 항복을 권유하고 있었다.
무기를 반납하고 투항하면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것이다. 마음 약한 부대원들이 하나, 둘 투항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광주 시내 전부가 탱크부대와 서강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치안 유지는 군대뿐만 아니라 경찰의 업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계엄군 내전이 벌어질 무렵 경찰조직도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청와대와 행정부가 계엄군에 장악돼, 정치가 마비된 지 오래다. 국회도, 각 정부 위원회도 멈추어 섰다.
경찰은 2022년부터 수사권조정을 통해 사실상 검찰로부터 독립했다. 몇몇 중요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건에 대해 이제 더 이상 검찰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전국 각지 각 읍면동까지 퍼져 있는 12만 명에 이르는 일선 경찰의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각지의 정보가 취합되는 경찰 정보 부서는 아포피스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의 끝을 예감한 경찰 수뇌부는 역시나 제 살길을 찾아 나섰다.
계엄군이 장악한 전방 생존 벙커에 숟가락 하나라도 꼽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했다. 그러나 경찰에게 할당된 자리는 없었다.
결국, 스스로 살길을 찾기로 한 경찰, 후방에 있는 벙커를 챙기기 시작했다.
충청권에 있는 덕유산, 계룡산, 소백산, 속리산 그리고 경상권에 있는 팔공산, 가야산, 무학산, 금정산에도 벙커가 있다. 이곳은 전쟁을 대비한 방공호 성격이다.
경찰 수뇌부는 이곳을 생존 시설로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실상 많은 경찰 간부들을 다독이기 위한 시설일 뿐.
경찰청장을 비롯한 치안감 이상의 최고위급과 그 가족이 들어갈 곳은 따로 있었다. 계엄군 사령부와 협의 끝에 경찰 몫으로 획득한 이곳은 바로 경북 봉화에 있는 시드 볼트(Seed Vault)다.
이곳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전쟁 및 핵폭발과 같은 지구 대재앙으로부터 식물유전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건설한 세계 최초 ‘야생식물 종자 영구저장시설'이다.
시드(Seed)와 금고(Vault)를 더한 단어로 종자를 저장하는 금고라는 의미이다. 이런 시설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설치됐을 법하지만, 실상은 노르웨이와 한국, 단 두 나라에서만 설치·운영되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2008년 스발바르제도(Svalbard Is.) 스피츠베르겐(Spitsbergen)섬에 시드 볼트를 설립했다. 이곳은 주로 작물(식량) 종자 보존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 시드 볼트가 야생 종자 보존에 주력하는 것과 대비되는 점이다.
한국 시드 볼트에는 총 5,000여 종, 10만여 점의 야생 종자가 저장돼 있다.
그곳에 가보면, 지상에서 보이는 건 3m 높이에 약 140㎡ 면적의 조그만 돔 형태 단층 건물뿐이다. 하지만, 그 지하 46m 아래엔 총면적 4,327㎡의 지하 공간이 숨겨져 있다.
벙커 버스터(방공호 등 내부를 파괴하는 폭탄)가 통상적으로 뚫을 수 있는 두께는 최대 30m다. 정부는 이런 미사일 공격에도 견디도록 지하 46m 아래 깊숙한 곳에 시설을 설치했다.
이곳 지하 터널과 저장소는 내진설계에 따라 60㎝ 두께의 삼중 철망 구조로 된 강화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진도 6.9의 지진에도 버틸 수 있다.
저장소 이외에 연구시설로 현미경실, 발아실험실 등이 있고, 재해를 대비해 곳곳에 수많은 차단문, CCTV가 설치되어 있다.
이런 시드 볼트 시설엔 종자를 영구 보전하기 위해 갖가지 첨단 기술력이 접목돼 있다.
통상 식물 종자를 수십 년간 온전히 보존하려면 온도가 낮고 건조한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그 때문에 저장소는 늘 영하 20도에 상대 습도 40%를 유지한다. 시드 볼트 내부에 들어갈 때 특수 방한복을 입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단전 대비 체계도 촘촘하다. 서로 다른 전력원 두 군데에서 전기를 끌어오고 있다. 한 군데가 끊어져도, 다른 데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만약, 두 군데 모두 끊길 경우, 내부 비상발전시설을 가동해 한 달간 외부 전기공급 없이도 이 시설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이른바 현대판 ‘노아의 방주’다.
경찰은 이곳을 생존 시설로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포피스 충돌로 인한 단전을 대비해 발전시설의 용량을 대폭 늘리고, 수년 동안 버틸 수 있도록 식료품 등 생존 물품을 저장해 놓았다.
경찰 수뇌부가 이렇게 제 살길을 찾고 있는 걸 일선 경찰들이 모를 리 없다. 이들도 생존을 위해 어느 동아줄을 잡을지 저울질하고 있다.
광주 지역 각 경찰서에는 서강파가 뇌물을 주고 매수해놓은 경찰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서강파가 계엄군 탱크부대와 하나가 되고 레이더기지까지 빼앗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어떻게든 서강파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이 나 있다.
이제 서강파가 하는 일을 막을 자는 없다. 계엄군도, 경찰도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줄을 잡지 못한 경찰들은 진작 일손을 놓고, 피난행렬에 끼어들었다. 북부경찰서 박홍식 수사과장은 몇몇 뜻을 같이하는 경찰들과 남아 악전고투하고 있다.
살인과 방화 같은 강력 범죄가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고 있는데, 범죄자를 잡아들일 경찰은 턱없이 부족하다. 다들 며칠째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힘든 업무와 부상으로 온몸은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유치장에 가득한 범죄자들을 먹이고 감시하는 업무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언제 폭도들이 들이닥쳐 경찰서마저 파괴할지 알 수 없다.
동주는 그간 많은 도움을 준 박홍식에게 전화해, 넌지시 생존팀에 참여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는 오래전에 교통사고로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고, 최근엔 하나 있던 딸아이마저 암으로 이별해야만 했다.
비슷한 또래인 은수를 딸처럼 예뻐했기에 누구보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은수를 구출하고 가장 기뻐했던 것도 박홍식이다.
그는 지구가 종말을 맞는 마지막 그날까지 대한민국 경찰답게 시민들 곁을 지키겠다며 동주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남은 삶에 별 여한이 없다며, 아내와 딸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가는 거라면 웃으며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삶이란 무엇이고, 또 죽음이란 무엇인가?
지금껏 늘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를 고민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어쩌면 ‘어떻게 죽어야만 하는가?’라고 물어야 할 때 같다.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훨씬 높아진 시기. 역시 삶과 죽음은 언제, 어느 상황이냐에 따라 그 색깔을 달리한다.
소행성 충돌로 인류 모두가 죽음을 앞둔 이 순간, 여전히 악착같이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일 뿐. 그러한 선택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해석에서 갈리기도 한다.
죽음이 삶의 영원한 종말을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무거운 문을 여는 과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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