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교도소 침공 (2)
아포칼립스 D-5, 2029. 4. 9.(월) 오전, 광주교도소 위병소 앞.
남수혁은 곧장 전화를 끊고 초소를 나왔다.
“이 자식들이 날 도대체 뭘로 보는 거야? 사수! 저 철문 박살 내버려!”
맨 앞에 있는 탱크가 포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이익, 끽!”
클리크를 맞추는 듯한 동작이 끝나고 포신이 자릴 잡았다. ‘덜커덕’, 포탄이 장착된 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쾅’ 하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피융, 콰광!”
전차 포탄이 정통으로 교도소 철문을 때렸다. 커다란 화염과 검은 먼지구름이 피어났다. 바람이 쓱 불자 먼지구름 사이로 대형 철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좌우로 젖혀진 철판 문은 커다란 구멍이 난 데다, 갈기갈기 찢겨 너덜너덜하다. 탱크 뒤에 있던 조직원들이 ‘와!’ 하며 함성을 질러댄다.
“이야! 역시 전차포 위력은 대단하단 말이야. 딱 한 방 쏜 것뿐인데, 완전 개박살 나버리는구먼.”
남수혁은 다시 초소로 들어가 교도소와 전화연결 했다. 보안과장은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 정신이 없는 기색이다.
“야, 보안과장! 저 철문은 너가 부순 거다, 알아?”
“아,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제발 대화로 하시지요.”
“야, 그게 니 입에서 나올 말이야! 내가 기껏 대화로 하자니까, 너가 거부한 거 아니야?”
“죄, 죄송합니다.”
“다음번엔 네가 있는 그 사무실로 포탄을 쏠 거야. 이번에는 한 발이 아니고 10발은 될 거니까 알아서 해.”
“네?”
“자! 좋은 말 할 때, 교도소 지키는 경비 애들 다 정문 앞으로 집결시켜. 가지고 있는 무기들 다 챙겨서 나오고, 이번엔 5분 준다. 5분 뒤엔 그냥 날려 버릴 테니까, 알았어?”
“네? 아이고, 제발 그렇게 할 테니까, 대포만 쏘지 말아 주십쇼.”
“빨리 안 움직여? 지금 그런 쓰잘데기 없는 말 하고 있을 때냐고.”
“네, 네 알겠습니다.”
남수혁은 다시 드론을 띄워 교도소 담장 뒤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보안과장이 지시를 따르는지, 아니면 딴생각을 하고 사고를 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다행히 겁먹은 보안과장은 상대와 싸울 힘이 없음을 인정하고, 경비 부대를 소집해 무기를 거둬들이고 있다. 부대원들이 부서진 철문을 열어젖히고 정문 앞에 모였다.
과거 경비교도대라는 군대와 같은 조직이 있었으나, 2016년 무렵 폐지되는 바람에 이제 대체복무자나 교도관들이 직접 경비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무기라고는 소총뿐이고 실탄도 많지 않았다.
남수혁은 부하들에게 교도관들이 가져온 무기를 다 빼앗으라고 지시했다. 이제 광주교도소는 무장해제 된 셈이다.
남수혁은 지프를 몰아 광주교도소 정문을 통과해 내부로 들어갔다. 뒤이어 탱크부대도 따라 들어왔다. 교도소 본부 앞에 보안과장이 서 있다.
차에서 내린 남수혁은 보안과장에게 석방자 명단을 건넸다. 김필구를 비롯한 서강파 식구들이다. 이들은 조건 없이 바로 석방해야 한다.
보안과장이 머뭇거리자 남수혁은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겁많은 보안과장은 벌벌 떨고 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교도관들이 서둘러 감방 동으로 가 김필구와 그 일행들을 데리고 나왔다. 저기 푸른 죄수복을 입은 김필구의 모습이 보인다.
남수혁은 준비해온 두부를 가지고 가 직접 김필구를 맞는다. 둘은 곧바로 포옹했다.
“필구야! 고생 많았다. 니 덕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
“아이, 쑥스럽게. 야! 그나저나, 엊그제까지만 해도 천 검사한테 뒤지게 당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이런 날이 오는구나. 수혁아! 너 진짜 멋있다.”
남수혁은 이번 작전을 지휘하면서 그 공이 커 나름 기대가 크다. 이제 서강파의 실질적인 2인자가 돼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대부대를 이끄는 지휘관답게 외모 면에서도 뭔가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3대대 본부에서 박석진이 입던 멋진 대대장 예복을 구해, 디자이너에게 맡겨 고쳤다. 마치 나폴레옹이 전장에서 입던 예복처럼 화려하다.
모자도 한껏 멋을 냈다. 챙이 짧은 장군 모자를 구한 뒤 큰 별까지 달았다. 거기다 맥아더 장군이 썼던 것과 비슷한 검은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다.
“아, 그래?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너가 봤을 때 좀 너무 나간 것 같지는 않아?”
“음, 멋지고 좋긴 한데······, 보스가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김필구는 남수혁의 성격상 기오성 앞에서도 저러고 있을 게 뻔해, 조심스럽게 걱정을 내비쳤다.
“하하!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보스에게 줄 옷은 따로 준비했거든. 거기 사단장 예복이 있더라고. 그걸 또 더 멋지게 만들어 봤지.”
“아, 그래!”
“그나저나, 필구야! 내가 시킨 대로 안에 있는 녀석 중에 쓸만한 놈 좀 알아봤어?”
“응. 야! 교도소에 있으니까, 한 가락씩 했던 기라성 같은 애들 많더라. 내가 봐둔 애가 몇 있으니까, 가서 물어볼게.”
“그런 놈들이 우릴 따라올까?”
“물론이지. 교도소에 있다가 소행성 떨어져 죽으면 그것만큼 짠한 게 어디 있냐? 진짜 개죽음이지. 다들 나가고 싶어 안달 났으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가 손 내밀면, 금방 다 충성맹세 할걸.”
“그래, 그럼 너가 괜찮은 애들 좀 데리고 나와봐.”
김필구는 다시 교도소 감방 동으로 들어가, 눈여겨봤던 녀석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30분 만에 20여 명이나 데리고 나왔다. 모두 한 덩치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녀석들이다. 꽤 쓸만한데!
* * *
새벽 6시, 담양 물류센터.
강대주는 물류센터에 있는 식료품과 각종 생존 물품을 일반 트럭과 냉장 트럭에 가득 실었다. 그곳에 있는 물류 트럭 20여 대를 끌고 무등산을 향한다.
이곳 물품을 모두 무등산 벙커에 실어다 놓으려면 몇 번을 왕복해야만 한다. 물류 트럭을 공격하는 무리가 있을 수 있어 경호 차량이 10여 대 함께 가야만 한다.
강대주도 오기철, 강창배와 함께 지프를 몰고 출발했다.
저 멀리 보이는 고속도로는 새벽 시간인데도 서울 쪽으로 향하는 도로에 차량이 가득하다. 일반 국도도 북쪽으로 향하는 방향엔 차들이 줄지어 있다. 통행이 잦지 않은 지방도로 노선을 잡아 무등산을 향했다.
담양 물류센터에서 무등산까지는 평소라면 1시간도 안 걸려 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오늘은 무등산까지 3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피난행렬이 없는 도로를 찾아 뺑 돌아야 해서다. 게다가 무등산을 오르는 길은 컨테이너를 끌고 오르는 대형 트럭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르고 내리는 대형차로 좁은 도로가 가득 차 더디게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가지고 온 생존 물자는 우선 막사 동에 보관했다. 냉장 보관 물품은 식당 동에 있는 냉장고와 임시로 설치한 냉장 컨테이너에 보관했다.
가져온 물품을 하차하는 데도 1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그곳 병사들을 동원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강대주는 기오성을 만나 담양 물류센터의 사정을 설명하고, 다음번 운송 때는 안가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그곳은 병력이 모두 빠져 경비가 허술하니, 임안나와 전민국도 데려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기오성은 강창배와 같이 가서 그곳에 있는 나머지 조직원까지 모두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역시 의심을 버리지 않는 눈치다.
강대주는 다시 담양 물류센터로 돌아가 점심을 먹은 후 오후 1시 무렵 짐을 싣고 광주로 출발했다.
다른 트럭들은 모두 무등산으로 보내고 오기철, 강창배와 함께 광주 동구 지산동에 있는 본거지로 향했다. 동주에겐 문자메시지로 미리 그곳 위치와 도착 시각을 알려주었다.
* * *
동주는 오늘 은수와 태호 가족을 지리산 생존 벙커로 데리고 와야 한다.
검사들마저 이제 출근하지 않고 다들 살길을 찾아 떠나는 형국이라, 천무용도 이제는 생존팀에 합류하겠다고 한다. 그 역시 데리고 와야 한다.
전민국을 구출한 뒤 강대주, 오기철과도 함께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전민국을 구출하면 곧바로 남원에 있는 전동기에게 그 소식을 알리고, 그 역시 공장에서 빼내야 한다.
오늘 하루는 생존팀에게 중요한 일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위험한 일을 함께할 일손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최용석과 함께 온 드론 병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은수와 태호 가족 그리고 천무용은 드론병 김원규와 나갑주가 맡기로 했다. 나갑주는 20여 년 동안 쭉 유통과 배달업무를 해와 광주 전 지역의 지리를 누구보다 빠삭하게 알고 있다.
전민국을 구출하고, 강대주와 오기철을 데려오는 건 동주와 상진 그리고 드론병 이수성이 함께하기로 했다. 가장 위험한 업무라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한다.
누구에게도 부탁할 수 없는 일이라 동주와 상진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이수성은 특별히 최용석이 부탁해 어렵게 합류하게 됐다.
전민국을 구출한 즉시 전동기를 공장에서 빼내야 한다. 만약 전민국 탈출 소식이 먼저 남원 화학공장에 전달되면, 그들이 전동기를 해하거나 경비가 삼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동기 구출 작전 역시 위험하고 돌발상황이 있을 수 있어, 부득이 현역군인인 최용석과 그 동료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드디어 지리산 생존팀과 서강파 사이에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이 열린다.
누가 살고, 또 누가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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