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탈출 (2)
아포칼립스 D-5, 2029. 4. 9.(월) 오후.
지프가 담양 고서면을 지나 담양읍으로 향하는 국도에 접어들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서 남원 방면 국도를 타면 된다.
그때 맞은편에서 발사한 기관총 총탄이 지프 차량 쪽으로 쏟아진다. 저 멀리 기관총을 장착한 지프 세 대가 다가와 강대주 일행을 향해 총질해댄다. 어느새 남수혁이 이곳까지 와 있다.
강창배는 본거지에서 강대주 일행이 도주하자, 곧바로 남수혁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남수혁은 강대주가 언젠가 배신할 줄 알고 있었기에 그 기회를 포착해 처참히 죽일 계획이었다.
바로 오늘이다. 남수혁은 광주교도소를 접수하고 인재를 뽑던 중이었다. 김필구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곧바로 우선 기동력이 있는 지프를 끌고 강창배와 교신하며 담양 쪽으로 이동했다.
나머지 병력은 뒤쫓아 오도록 지시했다. 운 좋게 그쪽으로 강대주 일행이 차를 몰아 오고 있었기에, 바로 이곳에서 맞닥뜨린 것이다.
운전기술이 뛰어난 오기철이 아니었다면, 곧장 피격당해 전복되었을 것이다. 오기철은 총알 세례를 피해 담양 나들목 고속도로 진입로 방향으로 틀었다.
그런데 이런 제길! 그곳엔 피난 가기 위한 차량 행렬이 톨게이트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미 고속도로는 물론 그 진입로까지 피난 차량이 줄지어 서 있다. 더는 차로 움직일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나 다름없다.
동주와 상진은 저들을 구해야 한다. 드론 두 대가 강대주 일행이 탄 지프 앞 공중에 멈춰선 상태에서 남수혁 일당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다.
놀란 녀석들은 급히 차를 틀어 흩어진다. 공중에서 조준 사격이 가능해 월등히 유리한 상황이다. 동주는 강대주에게 전화해, 차에서 내려 걸어서 고속도로로 피신하라고 지시했다.
그쪽으로 가면 저 녀석들도 차를 가지고 진입할 수 없으니, 걸어서 북쪽으로 이동하다 남원 쪽으로 빠지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강대주 일행이 차에서 나와 고속도로로 뛰는 모습이 보인다. 멈추어 서다시피한 차량들 사이를 걷고 뛰면서 전진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동주와 상진은 남수혁이 모는 지프를 향해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
“드르륵, 드르륵, 척, 크르륵!”
이런 제길! 탄환이 기관총 총열에 걸려 연발 발사가 중단됐다. 조수석에 있던 동주는 뜨거운 총열 중간 노리새 부분을 발로 차면서 걸린 탄피를 빼보려 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는다.
상진이 탑승한 드론 혼자서 세 대의 기관총 차량을 감당할 순 없었다. 도망치기 급급했던 녀석들이 상대 드론의 공격이 약해지자 여유가 생긴 모습이다.
차량 위에 서서 기관총으로 조준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상진은 드론 택시 운전사다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 적의 조준을 피하면서 쉴새 없이 기관총을 퍼붓고 있다.
동주의 드론에서 기관총이 나오지 않은 사실을 간파한 녀석들이 이쪽으로 집중사격하기 시작했다.
이런! 오른쪽 프로펠러 하나가 총탄에 맞아 튀어 날아오른다. 갑자기 오른쪽으로 확 기울더니, 드론이 무게 중심을 잃고 공중에서 뱅글뱅글 회전하기 시작한다. 자동항법제어 버튼을 누르자, 남은 프로펠러들로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동주는 무전으로 상진에게 연락을 취했다. 여기서 더 대치하는 건 의미 없다며 서둘러 피하라고 말했다. 그때 또다시 총알이 동주의 드론 쪽으로 쏟아졌다.
이번에는 왼쪽 프로펠러 두 개가 총탄에 맞아 튀어 오른다. 제어버튼을 몇 번이고 눌렀지만, 이번에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하염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드론병 이수성은 핸들을 잡아 수동 조작을 시작했다. 남수혁 일당이 있는 쪽으로 추락했다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그 반대쪽인 고속도로 방향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운전대 방향을 틀고 남은 프로펠러를 풀가동했다. 다행히 추락속도가 줄었다. 담양 IC 톨게이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운행하는 차량들 위로 비스듬히 날았다.
드론이 검은 연기를 내며 떨어지려 하자, 주변에 있던 차량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와 몸을 피하기 급급하다. 다행히 빈 차량의 보닛과 루프가 쿠션 작용을 하고, 드론에 있는 에어백이 터져 동주와 이수성은 큰 부상을 면했다.
에어백이 터지면서 머리를 세게 쳐 몽롱한 상태인 동주, 누군가가 다가와 자신의 몸을 끄는 것 같아 의식을 찾았다. 강대주와 오기철이다.
전민국은 맞은 편에서 이수성을 꺼내고 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 추락한 드론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지만, 다행히 불길은 붙지 않았다. 드론에 있는 배터리 제어장치가 연소를 방지하기 위해 자동으로 전류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동주는 상진이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상진은 남수혁의 공격을 피해 고속도로 방면으로 피신해 우리를 엄호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다.
동주 일행은 남수혁이 뒤쫓아 올 수 있어, 멈추거나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는 차량 사이를 비집고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미 고속도로는 상행선뿐만 아니라 하행선마저도 북쪽으로 향하는 차량으로 가득 차버렸다. 이제 고속도로는 일방통행로가 된 셈이다.
그때 지축을 흔드는 탱크 궤도 소리가 들렸다. 이 미친놈들이 고속도로로 탱크를 끌고 들어왔다. 언제 갈아탔는지 저 멀리 탱크 위에서 기관총 사수와 함께 이쪽을 바라보는 남수혁이 보인다.
그는 강대주를 발견하고 탱크 위에서 기관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르륵, 콰광, 쾅, 쾅!”
기관총에 맞은 차량들에서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시동을 켜고 있는 차량의 엔진에 총탄이 충격해 바로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동주와 강대주 일행은 탱크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와아! 으악, 아아악!”
곳곳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고 기관총에 맞지 않으려고 차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이 멈춰선 차량 사이 비좁은 공간에서 엉키고 설켜서 뛰고 있다.
남수혁은 동주 일행이 점점 멀어지자, 탱크를 움직여 가로막고 있는 차량들을 힘으로 밀쳐 내거나 짓밟으며 전진한다. 뒤이어 탱크 사수에게 전차포를 발사하라고 지시했다.
“네?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뭐 하는 거야! 낼모레면, 다 뒤질 놈들이야. 지금 죽으나 며칠 뒤에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다고. 잔말 말고 어서 조준해. 저 강대주 자식 박살 내 버리라고.”
‘위이잉, 윙!’
탱크 포신이 멀리 강대주 일행을 향해 정렬했다.
상진은 드론에서 남수혁의 탱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성질내면서 무전기로 무언가를 지시하자, 탱크 포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거 뭐지? 설마? 다급해진 상진은 동주에게 무전을 날렸다. 지금 탱크가 전차포를 쏘려 하니 무조건 바닥에 엎드리고, 기어서 이동하라고 말했다.
동주는 상진의 말을 듣자마자 일행을 자동차 밑으로 기어들어 가게 했다. 그리고는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전진했다.
강대주 일행을 조준하던 탱크 사수는 갑자기 목표물들이 사라져 난감했다.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많은 사람과 차량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어, 어느 순간 표적을 놓치니 그 뒤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저기······, 애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는데요!”
“뭐라고? 망원경 줘봐. 음······, 쥐새끼 같은 놈들 어디로 숨은 거야! 야! 차를 부수든, 아니면 밟든 탱크로 밀어붙여. 전진하라고!”
‘쿠르릉, 쿠르릉.’
탱크 궤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앞을 막고 있던 승용차가 종잇장처럼 얇게 눌리고, 밟혀 부서졌다. 남수혁은 탱크 위에서 망원경으로 종전 강대주 일행이 있던 부근을 살피기 시작했다.
상진은 계속 드론으로 상황을 살피고 있다. 다행히 동주 일행이 기어가고 있어 탱크에서는 그들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통에 탱크가 동주 일행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다. 뒤이어 총을 든 서강파 조직원들이 줄지어 앞에 있는 차량을 수색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다 잡히고 말 것 같다.
상진은 뒤쪽에서 쫓아오는 무리의 상황을 동주에게 전달했다.
'어, 이거 잡히는 거 아니야?'
불안이 엄습했다.
제길! 무슨 방법이 없을까?
동주는 지금 담양 IC에서 광주·대구 고속도로를 타고 남원 방면으로 가고 있다.
그 방향으로 50여 미터만 가면 영산강 지류를 건너는 다리 위다. 그곳은 강물에서 높이가 10여 미터 남짓이고, 강 중간중간에 보를 만들어 두어 물살이 세지 않다.
이 고속도로로 계속 가다가는 주변 피난민들도 다치게 하고, 우리 목숨도 위험하다. 도박이지만, 여기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동주는 일행에게 앞쪽에 다리가 있으니 그곳까지 전속력으로 뛴 다음, 오른쪽 영산강으로 뛰어내리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설득했다.
다들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미 탱크 소리가 가깝게 들려오고 있었다. 위치가 탄로 나면 곧바로 전차포가 날아올 것이다. 그때는 정말 뼈도 못 추리고 몰살당한다.
동주는 자신을 믿어달라 말하고 맨 먼저 뛸 테니, 곧이어 죽을 힘을 다해 뛰라고 말했다. 다들 동주를 믿고 고개를 끄덕인다.
가장 걱정은 임안나다. 체력이 약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가장 뒤처져 있었다. 민국은 안나의 곁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계속 부축하며 끌고 오다시피 했다.
민국은 안나의 손을 잡고 눈빛을 교환했다. 동주가 먼저 뛰기 시작했다. 뒤이어 강대주와 오기철이 뛰고, 다음으로 곧장 민국과 안나가 달렸다. 많은 사람 사이를 비집고, 차량 사이를 뛰고 있다.
남수혁은 망원경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이놈들 보이기만 해봐라, 바로 전차포를 쏴 개박살을 내리라!
도로를 꽉 매운 차량들과 그 사이를 겁먹고 뛰는 사람들 때문에 누가 누군지 분간되지 않았다. 화가 난 남수혁은 옆에 있던 기관총 사수를 밀치고 직접 기관총 손잡이를 잡았다.
탱크 앞 고속도로에 있는 차량과 사람들을 향해 마음 가는 대로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드르륵, 트르륵, 콰광, 쾅, 쾅, 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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