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결사항전(決死抗戰) (1)
아포칼립스 D-4, 2029. 4. 10.(화) 오전, 남원.
남수혁은 부대를 둘로 나누었다. 자신은 남원에서 고기 삼거리를 거쳐 정령치로를 따라 올라간다. 나머지 김필구가 이끄는 팀은 구례 노고단 길을 통해 반대 방향으로 공격한다. 탱크도 각각 3대씩 나누고, 드론 부대도 절반씩 나누어 10대씩을 운용하기로 했다.
남수혁 부대는 고기 삼거리에서 정령치 길에 접어들어 어느새 고기 댐 부근에 도착했다. 이곳까지는 일반 국도와 다를 게 없는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길이었다.
왼편에 농수를 저장한 큰 저수지가 보인다. 조금 더 오르니 드디어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악도로가 나타났다.
그때 공중에 떠 있던 생존팀이 파견한 조그만 정찰 드론이 먼저 탱크 부대가 진격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쌩’ 재빨리 움직여 구릉 너머로 몸을 피했다.
심원주는 현기차에서 드론개발과 연구를 해와 무인 드론을 조정하는 데 탁월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국방과학 연구소에서 위탁한 정찰 드론 연구사업도 진행한 바 있다.
그 덕에 남수혁 부대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그들이 정령치 산악도로 초입에 들어선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속 드론을 통해 몰래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남수혁 부대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순조롭게 정령치 산악도로를 오르고 있다. 그런데 급격하게 꺾인 커브 길을 지나자, 그들 앞 아스팔트 도로에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산비탈이 무너져 내린 것 같다. 비탈면에서 흘러나온 흙이 비스듬히 도로 위를 덮고 있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지? 수상한데? 남수혁은 드론 택시를 가지고 주변을 샅샅이 살피라고 지시했다.
서강파는 드론 택시 조수석에 기관총을 장착해 전투용으로 개조했다. 전투 드론이 정령치 도로 위를 ‘쒱’ 하고 날아올라, 주변 구릉과 산을 살피기 시작했다. 매복이나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보고다.
‘음······, 별일 아니군, 괜히 걱정했네. 그럼 그렇지, 샌님들이 뭘 할 수 있겠어.’
남수혁은 전진하라고 지시했다. 탱크가 맨 먼저 흙더미를 밟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흙이 비스듬하게 쏟아져 내려와 다행히 얇게 깔린 도롯가 쪽은 치우지 않고도 통행할 수 있었다. 저기 다시 아스팔트 길이 보인다.
그때 ‘콰앙’ 하는 폭발음이 크게 울려 퍼졌다. 앞장서던 탱크가 대전차 지뢰를 밟아, 굉음과 함께 화염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때 탱크가 살짝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툭 떨어졌다. 먼지구름이 걷히자 양쪽 궤도가 걸렛장처럼 너덜너덜해진 모습이 보인다.
이런! 언제 녀석들이 지뢰를 매설했지? 아! 아스팔트엔 지뢰를 매설할 수 없으니까, 이놈들 일부러 비탈을 무너뜨려 흙으로 덮어둔 것이구나! 으윽! 당했다.
앞장서던 탱크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돼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곳에 대전차 지뢰나 다른 지뢰가 더 묻혀 있을 수 있어 쉽게 전진할 수 없게 됐다.
남수혁은 김필구 부대에 무전을 날렸다. 대전차 지뢰가 매설돼 있으니 흙길이 나오면 지나가지 말고 먼저 지뢰부터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남수혁 부대는 이곳에서 지뢰를 제거하고, 파괴된 탱크를 옮기는 작업부터 해야 했다. 공격이 순조롭지 못하다. 오전은 이걸 처리하느라 다 보낼 상황이다. 남수혁은 장비를 끌고 와 저 고물 탱크를 치우라고 지시했다.
그 무렵 김필구는 구례를 거쳐 지리산 노고단 길을 통해 정령치 휴게소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쪽은 아직 아무런 문제도 없다.
음, 수혁이가 멈춰 섰으니 나라도 먼저 가 녀석들 혼 좀 내줘야지.
김필구는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않고 바로 서강파에 입문한 탓에 군대도 면제됐다. 지금껏 다른 녀석들 군대 다녀온 무용담을 들어주느라 고역이었다.
이번 기회에 녀석들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지. 군대 갔다 온 게 뭐 대수라고. 진짜 전쟁을 해봐야지. 나처럼 말이야.
김필구는 직접 탱크 위에 탑승해 기관총 사수 자리를 꿰차고 위풍당당하게 부대를 이끌어 전진하고 있다.
남수혁이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해서 먼저 드론 택시를 공중에 띄워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전진했다. 점점 경사가 가팔라진다.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령치 휴게소가 보일 것 같다.
녀석들이 남원 쪽으로 공격해올 거로 생각하고, 반대쪽은 전혀 방비하지 않은 것 같다. 어리석은 녀석들!
김필구는 지리산 생존 벙커를 빼앗아 그곳에서 자신이 왕 노릇 할 걸 생각하니 벌써 기분이 째질 듯 좋았다.
남수혁은 기오성과 함께 무등산 레이더기지를 지켜야 해서 이 전투가 끝나면 바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럼 이곳은 김필구가 지키고, 관리해야 한다.
다른 간부가 오지 않는다면 이곳은 완전히 자신이 독차지하는 셈이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다.
자신을 따르는 동성파 애들이 그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가? 작두파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해 그놈들을 섬멸한 공을 세웠지만, 그 결과 모두 교도소로 붙잡혀 가지 않았는가? 물론 작심하고 한 거지만, 힘든 나날이었다.
천 검사의 그 강도 높은 조사에도 굴하지 않고 버텨내니, 결국 이런 날이 오는구나! 남수혁 혼자 잘 나가 배 아팠는데, 이제 내 시대가 오는 거다.
오늘따라 유달리 봄바람이 푸근하고, 산 공기는 청명하다. 김필구는 남수혁이 지체하는 사이 자신이 지리산 생존 벙커를 점령해 공을 세울 생각에 신바람이다.
그때 ‘콰과광, 쾅, 쾅!’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순간 오른쪽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흙과 돌덩이가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수백 톤에 이르는 토사와 바위가 김필구가 탄 탱크와 일행들 위로 쏟아져 내렸다.
“아! 아, 아악!”
김필구의 외마디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대의 절반가량이 흙과 바위에 매몰되고 말았다.
탱크 뒤에서 행군하던 서강파 병사들 일부가 흙 속에 파묻혀 순식간에 그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흙더미 사이로 파묻힌 병사의 손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다. 위력은 줄었지만 산비탈에서 여전히 토사가 흘러내려 온다.
뒤따르던 나머지 병사들은 겁이나 뒤쪽으로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언제 또 절벽이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
김필구 부대가 끌고 온 탱크 세 대 중 두 대가 흙과 바위에 파묻혀 그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남은 탱크 한 대도 뒤로 물러선 뒤 바로 후진해 너른 가변도로를 낀 공터 쪽으로 피했다.
“뭐, 뭐라고? 필구는 어떻게 됐어? 필구 말이야.”
“저, 대, 대장님이 탄 탱크가 맨 앞이라 제대로 당한 것 같습니다. 흙더미에 싸여서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마 돌에 맞아 즉사한 것 같습니다.”
“야, 이 새끼야! 너 누구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빨리 애들 보내서 우리 얘들 꺼내와. 탱크 안에 있었으면 지금도 살아 있을 거란 말이야. 빨리 뛰어!”
“네, 네, 대장님!”
남은 김필구 부대원들은 트럭에 실린 삽을 들고 산더미처럼 쌓인 흙더미 위로 뛰어가 흙과 돌을 치우기 시작했다.
한참 흙을 퍼내고 보니 삽날에 ‘캉’하는 소리와 함께 탱크 철판이 닿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 냈다. 사람 팔과 다리가 발견됐다. 손으로 흙을 파내 몸을 꺼냈다. 두 번째 탱크의 기관총 사수다.
다행히 탱크 안에 있던 조종사와 병사들은 재빨리 해치를 닫아 무사했다. 맨 앞에 있는 탱크 쪽에서도 사람 몸이 발견됐다.
조심스럽게 손으로 흙을 파 내려갔다. 몸이 이미 만신창이다. 바위에 부딪히고 무거운 흙에 눌려 온몸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주변 흙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흙을 치워 얼굴 쪽을 보니 김필구다. 그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흙더미를 맞고 만 것이다.
“뭐, 확실해? 김필구 맞아?”
“네, 대장님. 피, 필구 형님이 맞습니다.”
“하아!”
남수혁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배낭 무전기에 달린 수화기가 땅으로 떨어져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어제 광주교도소에서 구출해 이제 만 하루 함께 보낸 게 전부인데, 그게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 김필구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은 남수혁은 망연자실해 멍하니 파란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강창배가 씩씩거리며 다가온다.
“형님! 이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필구 형님 복수를 해야죠. 형님! 제발 정신차리십쇼.”
“······.”
“형님! 이게 다 그 강대주, 오기철 그놈들 때문입니다. 그놈들이 잔머리를 써서 우릴 골탕먹인 거라고요.”
갑자기 남수혁의 눈빛이 변했다. 복수를 다짐한 듯 살기가 배이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내가 한 놈이라도 살려두는가 봐라, 다 죽여버릴 거야! 아악!”
분노에 찬 남수혁의 고함이 산 정상까지 들릴 만큼 크게 울려 퍼졌다. 화가난 남수혁은 생존 벙커가 다 박살 나는 한이 있더라도 저 녀석들을 초토화하라고 지시했다.
남수혁이 이끄는 탱크 두 대가 정령치 휴게소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았다. 김필구 부대 쪽 남은 탱크 한 대도 발사 준비를 마쳤다. 남수혁은 발포 명령을 내렸다.
“다 박살 내 버려!”
“펑, 퍼벙, 펑, 피융, 피융”
전차포가 불을 품기 시작했다. 수십 발의 전차포가 연발로 정령치 휴게소 부근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포탄이 참호를 충격해 모래 먼지와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있다. 돔 형태의 정령치 휴게소가 여러 발의 포탄을 맞고 반쪽가량 날아가 버렸다.
파괴된 휴게소가 불길에 휩싸여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고 있다. 정령치 터널 위쪽 언덕과 능선에도 포탄이 떨어져 그곳 나무들이 불타고 있다.
어느새 불길이 주변 산까지 번져 온통 화염과 연기가 가득하다.
“저 새끼들 다 죽여! 벙커고 뭐고 필요 없어, 다 박살 내 버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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