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결사항전 (5)
아포칼립스 D-4, 2029. 4. 10.(화) 지리산 정령치 휴게소 일대.
오후 6시 30분, 정령치 생존팀.
심원기 형제는 줄곧 정찰 드론을 보내 상대의 움직임을 살펴왔다. 그런데 적들이 드론의 조종거리 밖까지 멀리 물러나는 바람에 그곳까지 드론을 보낼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정령치 주변 반경 3km 내외를 여러 대의 드론으로 정찰했다. 적이 오전에 공략했던 정령치와 노고단로 쪽으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산길이나 등산로 주변도 샅샅이 살폈지만, 아직은 어떠한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동주는 상대가 움직이지 않고 있어 왠지 불안했다. 남수혁의 스타일로 봐서는 절대 여기에서 멈출 위인이 아니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텐데······.
낮에 공격하는 건 우리 준비태세를 봤기에 승리를 자신할 수 없을 거다. 그렇다면 분명 야간에 기습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그럴 리 없는데.
붉은 태양이 자취를 감추었다. 폭풍이 몰아치기 전 그 밤이 이제 눈을 뜨려 한다.
동주는 최용석과 스텔라에게 오늘 밤 내내 스텔스 드론으로 정찰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뭐니뭐니해도 스텔스 드론이다.
지난번 정마리아집을 기습할 때 이 녀석 덕을 톡톡히 봤기에 그 놀라운 성능을 잘 알고 있다.
30여 미터 내로 근접하지 않는 한 프로펠러 소리를 감지할 수 없다. 바람 소리를 제어하는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스텔스 드론의 외부는 전파는 물론 소리나 빛까지 속일 수 있는 그래핀 메타물질로 코팅되어 있다. 드론 내부의 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고, 밖의 빛이 드론을 그냥 통과한다. 일명 투명망토 기술 덕이다.
아직 그 기술이 완벽하지 않아 낮에는 별 효과를 얻을 수 없지만, 밤에는 드론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적에겐 무시무시한 존재가 된다.
게다가 열추적 센서를 이용해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열상감시 장치와 건물 내부에 있는 사람의 움직임까지 포착할 수 있는 레이저 투시장치까지 가지고 있어, 특수임무 수행에 적합하다.
우리가 가진 드론 중에서 스텔스 드론은 총 두 대다. 이 드론의 단점이라면, 일반 전투 드론보다 에너지 소모량이 커, 한번 정찰 나가 2시간가량 운행하면 돌아와 다시 수소 충전을 해야 한다. 거기다 수소 충전에 1시간가량이나 소요된다.
결국 빠지는 시간 없이 스텔스 드론을 운용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한 대씩 교대로 출격해야만 한다. 이 스텔스 드론은 최용석과 스텔라가 맡기로 했다.
이 드론 한 대로 정령치 주변 정찰을 전부 맡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부득이 정령치에서 가까운 거리는 심원주 형제가 정찰 드론으로 커버하고, 조금 먼 거리를 스텔스 드론이 살피기로 했다.
산길을 따라 정령치로 오려면 남원 쪽에서는 고리봉을 넘어야 하고, 구례 쪽에서는 만복대를 넘어야 한다.
남수혁 부대 매복에 참여했던 고재철과 동주가 일행을 이끌고 고리봉 쪽 산길에, 이수성과 천상진 일행이 만복대 쪽에 각 매복하기로 했다.
고재철은 현역 중위로 서강파에 대한 적개심이 커서 그런지, 매번 앞장서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이수성은 지난번 전민국 구출 작전에 함께해서 그 용맹을 익히 알고 있다.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승리도 없었을 것이다. 스텔라의 역할도 컸다. 그녀의 드론 조종술은 과연 신출귀몰 그 자체였다.
스텔스 드론을 몰고 최용석과 함께 고재철, 나갑주를 구출하러 갔을 때, 드론에 있던 모두가 그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최용석은 드론부대 소대장으로 국군의 날 행사 때 곡예 비행단에 참여했을 정도로 손꼽히는 조종술을 보유하고 있다.
전투 드론은 비록 전투기와 같은 빠른 스피드는 없지만, 대신 각 프로펠러의 속도를 조절해 자유자재로 방향을 틀고 비틀어 묘기에 가까운 곡예비행을 할 수 있다.
최용석은 오늘 자신의 주특기인 8자 모양 급선회와 급전직하 묘기까지 선보이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런데 스텔라가 군용 전투 드론을 처음 타보았는데도 금방 조종술을 익히더니, 최용석이 한 고난도 기술을 똑같이 시현하며 적의 기관총을 손쉽게 피하는 게 아닌가!
거기다 교본에서도 본 적이 없는 트위스트 비행을 하지 않나, 땅에 닿을 듯이 내려와 360도 회전하며 기관총을 쏘아대는 신기한 공격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늘 두 대의 적 드론을 격추한 것도 스텔라가 한 일이다. 최용석은 스텔라가 자신보다 한 수 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넌 누구냐?
동주는 금성산 낭떠러지에서 스텔라를 구해 이곳으로 데려온 게 신의 한 수처럼 느껴졌다.
정령치 휴게소 주차장.
동주는 오늘 있었던 전투를 복기하고 있다. 그리고 밤에 벌어질 전투를 예상하며, 혹시 놓친 게 없는지 꼼꼼히 떠올려 보고 있다. 그때 스텔라가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다가온다.
“오빠! 오늘 저 어땠어요?”
“아, 정말 대단했어요. 전투기 모는 걸 직접 봐서 드론도 잘 몰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잘할 줄은 미처 몰랐어요.”
“아이! 오빠도 참, 전 오빠라고 부르는데 계속 그렇게 존댓말로 할 거예요?”
“아! 내가 그랬나?”
동주는 아직 스텔라가 낯설기도 하지만, 그녀에 대해서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 편하게 대하기가 어려웠다.
“오늘 오빠가 작전 펼치는 거 보고, 나도 깜짝 놀랐잖아.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걸 배운 거야?”
“그, 그거야, 생존 본능이지. 여기 있는 이 많은 사람들 목숨이 달린 일인데, 어떻게든 만들어 내야지,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해온 거고.”
“야, 정말 대단하단 말이야. 그런데 오빠! 계속 이렇게 방어만 할 거야? 아까 녀석들이 후퇴할 때 우리가 드론으로 공격 퍼부었으면, 끝장낼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음······, 당연히 나도 그 생각을 했지. 그런데 스텔라가 아직 우리 구성원을 몰라서 그래.”
“······!”
“드론이야 스무 대가량 있지만, 공중전을 펼칠 수 있는 건 고작 다섯 대 정도야.
3대대가 가져온 전투 드론은 혼자서 조종도 하고 기관총도 쏘지만, 나머지 드론엔 기관총 사수가 따로 탑승해야 해. 그런데 우린 그럴 인원이 없거든.”
“음······.”
“나머지 드론은 그냥 적을 겁줄 목적으로 띄운 것에 불과해. 게다가 우리가 남원 쪽으로 쫓아갔을 때, 만약 구례 쪽에서 올라온 녀석들이 후퇴하지 않고 쳐들어 오면, 그땐 또 낭패거든.”
“아니, 벙커에 젊은 여자들도 많던데, 걔들이 드론 조종하면 안 돼?”
“하하하! 다른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아나 보구나!”
동주는 스텔라의 말을 듣고 빵 터지고 말았다.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모습 속에 어쩐지 무언가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다.
스텔라도 웃고 있는 동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따라 웃기 시작했다.
그때 벙커 밖으로 나오던 은수와 태호가 이 둘의 모습을 보았다. 선남선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고 있다.
동주도 뒤늦게 은수의 모습을 발견했다. 태호와 함께 있어 모른 체할까 하다, 나갑주의 상태가 궁금했다.
“태호야! 고생했다. 갑주 아저씨 상태는 어떠니?”
“심각해요. 신장 하나를 걷어내고, 대장이나 소장도 파열이 심해서 많이 잘라냈어요. 다행히 수혈을 빨리해서 목숨은 건진 것 같아요.”
“휴! 그래도 다행이다. 오기철과 장 사장이 다투진 않았고?”
“네, 수혈 끝나자마자 바로 자리를 뜨던데요.”
“그래, 수술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조금이라도 쉬어.”
“네, 그럼 우린 가볼게요.”
태호와 은수가 함께 주차장 쪽으로 걸어간다. 생존팀 사람들은 벙커 안에만 있으면 답답해 자주 나와 산책을 하곤 한다. 언제 서강파의 기습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짧은 여유라도 즐길 수 있어 다행이다.
동주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형규가 범인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럼 은수가 날 달리 대했을까? 아니면 그런데도 지금처럼 데면데면 했을까?
미안한 마음과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교차했다. 이제는 저 두 사람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져 신기하기도 했다. 스텔라가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는 동주에게 또다시 말을 걸었다.
“오빠! 아까 오늘 밤 작전에 대해 들었는데, 혹시 모르니까 저기에 저격수를 배치하는 게 어때?”
스텔라는 정령치 터널 위쪽을 가리켰다.
“저긴 남원과 구례 쪽으로 올라오는 도로가 한눈에 보이고, 고리봉과 만복대에서 오는 적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야.
아까 매복조가 크레모아도 가져가는 것 같던데, 저기 양쪽에도 설치해야 할 것 같아.”
“음······, 좋은 생각이다. 최후 방어선을 하나 더 만들자는 거지?”
“밤이라 그래, 녀석들이 낮처럼 쉽게 공격해올 것 같지 않거든. 조금 불안해서······.”
동주는 스텔라의 조언에 놀랐다. 그녀가 찍어 준 저격수의 위치에 가보니, 정말 사방팔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자리였다.
거기다 주변에 정령치 표지석과 바위가 깔려 있어, 몸을 눕혀 숨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동주는 장영수와 함께 이곳에 와 크레모아 설치장소를 살폈다.
그는 전동기 구출작전 때 날고 있는 정찰드론을 단 한발의 총탄으로 저격한 백발백중 스나이퍼다. 역시 해병대 저격수 출신이라 믿음직하다. 오늘 밤 그에게 이곳을 맡기기로 했다.
‘그래, 올 테면 와 봐라. 이번에도 뜨거운 맛을 보여주지!’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