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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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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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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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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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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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70화

DUMMY

강인수가 상한 곳 없이 무사히 중정 밖으로 나왔다는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 갔다. 더구나 웃으며 나왔다는 말은 소문을 더욱 부풀렸다.

어느새 이 이야기는 강인수의 무용담처럼 와전 되었다.


[‘형제’ 강인수 사장 부정 축재 전면 부정]

[강 사장, 일주일 만 복귀 ‘이제 다들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


사람들은 제각기 신문을 하나씩 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군인들이 강 사장님께 깍듯이 인사했다지?”

“강태수 대령 때문일까?”

“글쎄, 그건 모르지.”

“듣기로는 이번 일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럼 강 사장님 혼자 이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건가?”

“그 군인들 틈에서 말이지?”

“이제 보니 강태수 대령이 형을 닮은 거구만.”


이번 일은 점점 국민들에게 새롭고, 입맛에 맞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군인들도 함부로 제재할 수 없었다.

강태수는 변화하는 상황을 면밀히 관찰했다.


‘한 번 쳤으니, 지금은 잠시 멈추는 게 좋겠군.’


이번 일의 결과는 강인수의 입지가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박정필의 입지가 흔들린 것에 가까웠다. 강태수는 그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이면 어떻게든 움직일 줄 알았는데. ‘영광‘도 조용하고. 누굴 잘라낼지 고민하고 있겠군.’


강태수의 예상대로, 박정필은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박정필은 아무리 알아보아도 강인수의 패를 알 수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강인수의 패는는 강인수에게 있지 않았으므로.

강인수 자체가 하나의 패였다.

강태수는 손에 쥔 것을 언제나 적재적소에서 쓸 줄 알았고, 그것은 강태수의 탁월한 능력이었다. 강태수는 집으로 돌아가 약속된 시간을 채우고 군산으로 전화를 걸었다.


“예진 씨, 접니다.”

[태수 씨!]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강태수의 인상이 풀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성예진과 통화할 때마다 깨달았다.


“별일 없었습니까?”

[네, 배경목 그 사람도 돌아가고 나서는 조용해요.]


그제야 둘은 오랜만에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상황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바다집’을 찾아갈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럼 당신은요?]


성예진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났다. 투정 어린 목소리에 강태수가 설핏 웃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보고 싶다구, 진짜. 우리 신혼인데.]


강태수는 고개를 돌려 휑한 집 안을 둘러보았다. 성예진과 며칠 지내지도 못했는데, 온갖 곳에서 그녀가 떠올랐다.


[보고 싶어, 태수 씨.]

“예, 나도 보고 싶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끊겼다. 순식간의 주변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이토록 일상적인 대화를 나눠 본 게 얼마 만인지 아득했다. 강태수는 그럴수록 더욱 생각했다. 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해내야겠다고.


‘아마 은밀하게 접촉할 테지.’


강태수는 열흘 전에 갔던 ‘화양’을 떠올렸다.


‘박정필은 분명 과시하기 위해서 나를 그리로 데려갔다. 하지만 무엇을 과시하고 싶었던 걸까. 무엇을···.’


고민이 갈수록 깊어졌다. 강태수는 이럴 때마다 헛웃음이 날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차라리 몸 쓰는 싸움이 더 편했던 것 같군. 이거야, 원.’


남의 속내를 파악하는 것은 너무도 피로했다. 그것도 지척에 살던 사람을 등 돌려야 하는 것이라면 더욱. 강태수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고민이 깊어져도 아침은 왔고, 잠들지 못해도 다시 해는 떴다.

강태수는 며칠 전부터 행방이 묘연한 배경목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뿐이다.

강태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잘 들지 않았다. 수 년 동안 목숨을 내놓고 살았던 경험은 강태수가 더욱 초연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었다.

지키지 못할 것 같다면 쥐지 않았고, 지울 수 없을 것 같다면 새기지 않았다. 강태수는 가만히 생각했다.

자유롭지 못하다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강태수의 인생은 언제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숨을 쉬었다. 모조리 이겨 내야만 살 수 있는 인생이었다. 언제나 틀린 적 없던 예감이 불현 듯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겠군.’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번이 강태수가 해결해야 하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가 아닌가. 이다음은 이제 없는 것이 아닌가.

언제까지나 목적을 위해 살아온 인생이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뒤돌아보지 않고 살았으며, 살아야 했기에 눈앞의 모든 것을 치우며 살아갔다. 미련을 남긴 순간은 단 하나였다. 그 미련을 잊기 위해 더 발악하듯 나아갔다. 그래야만 하는 때였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때였기 때문에.

강태수는 언젠가 속죄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평생이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 것을 쥐는 일은 욕심이었다.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여겼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한 결과에서 성예진을 포기했다면, 강태수는 앞으로도 그 어떤 것도 쥐고 살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니 강태수는 다시 생각했다.


‘쥐었으니, 지켜야지.’


강태수는 고풍스러운 눈앞의 한옥을 응시했다.

강태수를 맞으러 오는 사람도, 인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나 분명 무언가 숨겨진 것이 있었다.


저벅.


“아무도 없습니까?”


언뜻 보아서는 그날의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음식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고, 연기도 보이지 않았다.


‘기묘할 정도로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만 빼고는.’


모든 것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강태수는 박정필과 식사를 했던 자리에서, 박정필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보았다.


“그래서였군.”


박정필이 앉았던 자리에서는 모든 것들이 보였다. 문 밖 정원의 연못, 누군가 다가온다면 시야에 들 수밖에 없는 각도, 다른 자리들과, 닫힌 문들이 어느 순간 무엇이 열리는지, 그것까지도 전부.


‘정필은 이런 기분을 좋아하지.’


모든 것을 관망할 수 있는, 그런 기분. 강태수는 보초를 함께 섰던 때, 박정필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는 이렇게 모든 게 보이는 자리가 좋아, 태수.’

‘어째서?’

‘한눈에 모든 게 들어오면, 꼭 모든 걸 볼 수 있다는 기분이 들거든. 착각에 가깝지만, 모든 걸 볼 수 있다는 사실은 흔한 게 아니야.’


강태수는 그 자리에 앉아 박정필처럼 생각하고자 시도했다. 주변을 하나하나 차근히 훑던 강태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가 벌떡 일어났다.


텅!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자 텅 빈 소리가 났다. 조금 옆은 묵직한 소리를 뱉어냈다. 강태수가 조금 세게 힘을 주어 가벽을 밀치자 나무 계단이 나타났다.


‘이거였군.’


*


강태수는 자신의 집이 아닌, 강인수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가도 성예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삼촌!”


달려오는 강연우를 안아 주며 강태수가 강인수를 찾았다.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한데 모여 식사를 했다.


“이것도 좀 먹어요.”


강인수는 최민영의 밥그릇 위에 고기 반찬을 올려 주었다. 최민영은 그 며칠 사이에 야위어 있었다. 아무리 강태수와 강인수가 별일이 없을 것이라 장담했다고 해도,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최민영에게는 지옥 같은 일주일이었다.


“여보, 도련님도 계신데.”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보기 좋습니다.”


강태수가 웃으며 대꾸하자 최민영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강태수는 성예진이 반찬을 올려 주던 모습을 떠올렸다.


‘예진 씨가 걱정이군.’


저녁 식사가 끝난 후, 강태수와 강인수는 마당으로 향했다. 강태수가 한참 자란 나무들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 이제는 이사를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가볍게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강인수 또한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집이라는 것은, 쉽게 떠날 수 없는 것이었다. 강태수는 발목 밑으로 올라오는 잔디를 바라보았다.

풀벌레가 계절을 알리며 울어댔다. 강태수는 그대로 평상에 누웠다. 그 순간,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강인수가 강태수의 옆에 걸터앉았다.


“··· 이번 일이 끝나면 말입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지만 강태수는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강인수가 그대로 강태수의 옆에 손바닥을 머리 뒤에 댄 채 누웠다. 강인수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별이 참 많지 않으냐.”


강인수의 말처럼 하늘에는 수없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강인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늘이 머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고개를 들고 사는 순간 잊게 된다. 앞만 보며 살게 되는 순간, 하늘에 별이 있다는 것도 잊게 되지.”


강인수의 목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강태수는 고향을 생각했다. 죽은 친구의 얼굴은 기억이 났지만, 목소리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함께 하늘을 보자고 말하던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데 태수야, 잊는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시 깨닫는 순간이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는 기분이 들게 하니까.”


강인수는 강태수가 대꾸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지금은 인생을 조금 더 먼저 살아 본 형으로서 해 주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겠어. 머리 위에 하늘을 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에 별이 있다고 생각하면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고는 한다.”

“···.”

“너희들을 모두 서울로 보내고 부여에서 혼자 농사를 지을 때 했던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꽤 많은 게 괜찮아졌거든.”


죽은 부모, 키워야 하는 동생들, 눈앞의 벼. 강인수는 그날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했다. 처음 낫에 손을 베이던 순간의 통증, 소작으로 모든 벼를 빼앗겼던 때의 실망감, 쌀 맛이 좋다던 강태수의 편지를 보고 느꼈던 기쁨.

그 모든 것이 모여 강인수라는 인간을 지탱했다. 기억은 인간을 이루는 가장 큰 요소였으니까. 강인수는 어느덧 다 자란 동생을 바라보았다.


“일주일 동안 그 지하에 갇혀 있으면서 꽤 많은 생각을 했지 뭐냐.”


웃음기 어린 목소리는 다정했고, 가끔 잠들지 못하는 어린 동생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대로였다. 강태수는 그 순간, 적지 않은 안도를 얻었다.

세상이 변하고, 자신이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해도 강태수에게는 적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다.

가족. 강태수가 지켜야 하는 강태수의 형. 그러나 언제나 자신을 받쳐 주고 있던 형. 그런 형이 강태수에게 물었다.


“네가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태수야.”


강인수는 가만히 강태수를 바라보았다. 한점의 차가움도 없는 따뜻한 온기였다. 강태수는 그 눈을 응시했다. 의문이 들 때면 강태수 자신도 모르게 형을 찾았다. 확신이 필요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강인수는 지금도 강태수에게 제일 필요한 질문을 건넸다. 어쩌면 강태수가 제일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문제였다.


“네가 그 자리에 앉고 나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게냐.”


그래서 강태수는 그 대답을 오래 고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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