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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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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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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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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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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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79화

DUMMY

급한 불을 끄려고 하는 급한 마음은 실수를 불러일으키는 법이었다.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해결한다면 불씨는 언제든 다시 몸집을 키웠다.

강태수는 그날 박정휘의 회동을 비밀리에 강태수에 편에 선 장군 하나에게 정보원을 통해 은밀히 전해 들었다.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뭘 또 사과까지. 힘든 일도 아닌 것을.”


그렇게 배경목의 지하 감옥에서 만난 이는 박정휘에게 강태수를 얼굴 마담으로 세우자며, 더불어 중앙정보부장의 자리를 투표를 통해 결정하자고 이야기했던 사내였다.


“동굴 속에서 홀로 계시는 기분이 아니실까 하여 걱정이 됩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야.”


사내는 대외적으로는 강태수와 인연이 없지만, 전쟁 중 몇 번이나 강태수와 생사를 함께 넘나들었던 강태수의 동지였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허허, 이 사람이. 괜찮대도. 그나저나, 상황이 이제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겠군.”


태지욱의 말에 강태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멀지 않은 시기에 은밀히 회동을 가질 것이라 예측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다.


“급하기는 한가 봅니다.”

“당연하지. 누가 그렇게 활약을 했는데 말이야. 나한테는 좀 귀띔을 해 줄 수는 없나? 매번 깜짝깜짝 놀란단 말일세. 이러다가 수명 다 줄어들겠어. 심장마비로 죽게 생겼다, 이 말이야.”

“하하, 다음에는 꼭 미리 언질 드리겠습니다.”


강태수는 그동안 일부러 태지욱을 만나지 않았다. 줄을 탄다는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았으며, 인맥을 과시하는 것은 강태수의 방식과 맞지 않았다.

태지욱은 박정휘가 가끔씩 따로 술자리를 가질 정도의 인물로, 강태수가 6사단에 있을 때 대대장이었던 김웅배와 사이가 각별했다.


“내가 웅배를 만나고, 자네를 알지 못했다면 인생이 꽤 심심했을 거라는 생각은 종종 한다네.”

“대대장님께서는 잘 계십니까.”

“잘 있지. 옷 벗고 더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좀 이상하지만.”


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웅배가 쿠데타를 반대하다가 옷을 벗었다는 것은 강태수도 알고 있었다. 태지욱이 지하 감옥을 슥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5월에 움직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좀 놀랐네. 아직도 자네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놀랍고. 그리고 이 집은 대체 뭔가? 이 집이 제일 놀라운데, 나는. 그리고 자네,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긴, 바뀌는 게 너무 많은 세상이지. 나도 그때 웅배를 따라 옷을 벗었어야 했는지 가끔씩 고민하게 돼. 내가 바라던 혁명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강태수는 한숨을 내쉬는 태지욱을 바라보았다. 두 남자는 잠시 동안 침묵했다. 강태수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자네 말이 맞지. 후회한다고 한들 시간만 가지, 그 시간에 뭘 할지 생각하는 게 이로워. 행동하는 건 더욱 이롭고.”


강태수는 언젠가 급히 회동이 생긴다면 태지욱에게 강태수 자신을 중앙정보부의 얼굴 마담으로 세우는 게 좋겠다고, 그럼 비난도 강태수가 받지 않겠냐며 말을 흘려 달라고 부탁했었다.


“다행히 분위기는 나쁘지 않더군. 오히려 다들 반색하는 꼴이 눈꼴 시려웠을 뿐.”

“투표도 이견이 없었습니까?”

“그래. 오히려 강태수 대령 자네가 전에 했던 이야기처럼 박 의장이 아주 민주적이라며 좋아했지.”


강태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나는 자네가 이럴 때마다 가끔 무섭단 말이야. 웅배 그놈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자네 얘기를 했을 때도, 자네가 얼마나 능력이 좋은 줄은 알았다만. 가끔은 귀신같아서 무섭기도 하고. 혹시 신기 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럼 나 혹시 언제 죽는지 좀 알려 주고.”


태지욱의 장난스러운 말에는 강태수도 별수 없이 웃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 아닙니다. 관찰을 오래하는 것뿐입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 도움이 될 때도 간혹 있는 법이더군요.”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영 찜찜한 기분이 들어.”

“투표 방식 때문입니까?”

“그래. 조작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태수 자네도 알지 않나.”


강태수가 침묵으로 동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태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기뻐했다는 걸로 보아서는, 그 투표가 아마 거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수?”

“예.”

“이런.”


짧게 침음한 태지욱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강태수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러니 그렇게 눈에 띄게 기뻐했구만. 좋은 방법이라면서.”

“아마도 제일 먼저 손을 들 겁니다. 분위기는 만드는 쪽이 유리해지는 법이니 말입니다.”


박정휘가 강태수나 박정필 둘 중 하나에게 먼저 손을 들면 판도는 그쪽으로 쏠릴 것이 분명했다. 강태수의 생각에 박정휘는 과시하기 위해 거수를 선택할 것이었고, 자신이 원하는 이를 앉히기 위해 손을 들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중정부장의 자리도 허수아비처럼 되겠군.”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럼 여태까지 한 일들이 아무런 쓸모도 없어지겠고. 이를 어쩐다.”


강태수와 태지욱은 잠시 동안 각자 고민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강태수였다.


“제가 이번 ‘사상계’의 일을 의장의 이름으로 하도록 한 것은 ‘과시하시라’ 하는 뜻이었습니다. 장군께서도 아시다시피 박 의장은 장준하 선생을 티가 날 정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게 ‘사상계’와 장준하 선생을 따로 해결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정도니 말입니다.”


강태수는 지하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쉬고 난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아마 원하는 대로 판을 만들고자 할 겁니다. 오히려 이 일을 박정필에게 이야기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니라면 투표를 할 때 부를 이들을 따로 만나 만남을 가질 게 문명합니다. 여태까지 봐 온 의장의 성격이라면 이쪽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어?”


고개를 끄덕인 강태수가 입을 열었다.


“장군께서 박정필을 한 번 만나 주셨으면 합니다.”


*


파도도 휩쓸리지 않고 멀리서 보기만 한다면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강태수는 휴가 동안 평소보다 더욱 바삐 움직였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따라붙는 미행을 따돌리는 방법에 점점 더 익숙해졌지만 오늘은 그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됐다.

강태수는 오늘 ‘형제의 집’을 찾았다. ‘형제의 집’을 후원하는 자들과 만남을 가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일이었지만, 강태수 자신을 후원하는 자들을 만나는 것과 다름없었다.

강태수는 오늘만큼은 그 생각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태지욱을 만나고 돌아온 다음 날, 중정에서 온 수하가 박정휘의 뜻이라며 말을 전하고 갔다.


‘강태수 대령의 휴가가 끝나는 즉시 중앙정보부장 자리를 논하기 위한 회의와 투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시기가 예상보다 빨랐다. 그래서 강태수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부정 축재자들의 대한 문제를 중정부장이 된 이에게 일임할 생각이군. 그 어떤 비난도 모조리 맞도록.’


강태수가 들은 소식이니 박정필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었다. 오히려 태지욱이 박정필을 찾아가기에는 알맞은 시간이었다.

강태수는 ‘형제의 집’에 모인 사람들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상황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투표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 투표가 거수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투표란 말이요.”


하나같이 같은 반응이었으나, 그들 또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오늘 박정필 역시 자신의 손을 들어주는 자들과 만남을 가질 겁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만난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때 누군가 여기 앉아 있는 모두가 생각만 했던 질문을 입 밖으로 뱉었다.


“만약 강태수 대령이 부장 자리에 앉지 못한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질문에는 강태수 또한 쉽게 대답할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침묵해서도 안 될 이야기였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도 그때의 상황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강태수의 직설적인 대답에 사람들이 한숨을 뱉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이번 일이 마지막 기회이자 방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강태수가 중앙정보부장의 자리에 앉겠다고 확실히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모두 강태수의 측근이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전했던 야심이기도 했다. 강태수가 야욕을 드러나는 일은 좋지 않은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중앙정보부장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서, 상황이 천지개벽하듯 바뀔 수는 없다는 사실은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그저 바람을 대신 맞아 줄, 그 정도 쓸모만 하는 이를 원하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 자리에 앉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자리에는 장준하 또한 있었다. 강태수가 장준하 선생과 눈을 한 번 마주치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 때든 칼을 휘두르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분명히 올바른 상황이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말입니다. 휘두른다는 자체만으로도 칼은 무엇이든 벨 수 있겠지만, 그것이 무엇을 베는지, 어디로 휘둘러야 하는지 아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창밖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렸다. 강태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한 번 더 진정시킬 수 있었다. 자리에 있는 자들 중 일부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짓거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강태수는 차근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이 저를 안다는 이유로, 저와 우호적인 사이였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게 목숨을 걸어 달라 부탁드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정녕 원했을 때에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강태수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러니 오늘까지의 일을 전부 잊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강태수의 말이 끝난 뒤에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강태수가 휴가를 끝내고 중정에 복귀한 날, 아침부터 회의가 열렸다. 중정에서 제일 큰 회의실 안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정적이 가득했다.

긴 침묵을 깨뜨리며 박정휘가 입을 열었다.


“중앙정보부를 만든 이유는 간단했소. 정보를 다루는 곳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박정필 대령의 뜻을 따른 것이지. 그리고 여태까지도 몇 달 동안 이 중앙정보부장의 자리에 누가 앉아야 하는지 다들 열띠게 의논했고. 그리고 오늘이 그날이요.”


강태수는 박정필과 함께 박정휘의 양옆에 정복을 입고 서 있었다.


“우리 국민들이 우리에게 지금 가장 요구하고 있는 게 뭔지들 아시오? 다들 알겠지만 공정함이요, 공정함. 그러니 가장 민주주의다운 방법인 투표로 결정하도록 합시다.”


박정휘는 흡족한 듯 웃으며 무릎에 올려 놓고 있던 손을 가볍게 들어 자신의 양쪽을 향해 벌렸다.


“자, 중앙정보부장의 자리에 강태수 대령이 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오른손을, 박정필 대령이 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왼손을 들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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